# 108
제108장 인내심의 한계
서련이 괜찮은 척 하는 걸 공화련이 어찌 모르겠는가?
동생을 대신할 수 없는 게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요 며칠 내로 천제현이 돌아올 거야. 그 성격 잘 알잖아. 네가 이렇게 된 걸 알면 엄청 화를 낼 거야. 그럼 결국…… 상상조차 못 하겠다!”
‘흥!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이렇게 당한 걸 천제현이 알면, 주저하지 않고 내 복수를 해줄 거야!’
복수에 대해 생각하자 공서련은 조금 즐거워졌다.
하지만 천제현은 천지에 무서울 게 없고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성격이니 지금 돌아왔다간 스스로 화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안 돼! 절대 안 돼! 아무리 천제현이라지만 지금 돌아오면 안 돼!’
천씨, 양씨 가문에는 고수가 많고 혼성술사도 수두룩했다.
놀랄 만한 진용을 자랑하기 때문에 성주조차도 그들과의 정면승부를 가급적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천제현이 어떻게 그들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다친 걸 절대 말해선 안 돼!”
“걱정 마. 알았으니까.”
공서련은 약을 들었다.
한 손으로 코를 잡고는 단숨에 약을 삼켰다.
“염 오라버니는 대체 무슨 약을 만든 거야? 너무 쓰잖아! 내가 장담하는 데, 천제현이 만든 건 염 오라버니보다 더 나을 거야!”
공화련은 마지못해 웃음 지었다.
‘이 녀석, 말끝마다 천제현 타령이구나.’
염천웅의 약은 먹기가 고역이라 그렇지 효능은 굉장히 좋았다.
공서련은 약을 먹자마자 통증이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약의 효능에 흡족해했다.
‘더 천제현이 오기 전까지 다 나아야지.’
바로 이때.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성주의 대청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두 자매는 바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최근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으므로, 설령 성주부 안에 피신해 있더라도 안전을 완전히 보장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두 자매는 자그마한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공서련이 이불을 걷고는 새하얀 얼굴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공화련이 바로 막아섰다.
“상처가 아직 안 아물었어. 경거망동하지 마!”
공서련이 고개를 내저었다.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가서 봐야겠어!”
공화련은 어쩔 수 없이 공서련을 부축한 채 방에서 나왔다.
공서련이 요양 중인 방은 바깥으로 성주부 대청과 이어져 있었다.
대청은 대단히 소란스러웠다.
남궁의는 성주 의관을 차려 입은 채 성주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뒤로 갑옷으로 무장한 남궁 일가 호위대 수십 명이 서 있었다.
대청 안에는 법관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고압적인 태도로 남궁의와 대치하고 있었다.
백발의 노인이 족자와 영패를 들고 크게 소리쳤다.
“남궁의! 나는 중주성 감찰부 낙봉이라고 하오. 천제현이 성주부 내에 있을 것으로 사료되오니 이곳을 수색하는 데 협조해 주시오!”
“또 핑계거리를 달고 오셨구려. 정말 우습지 않소?”
남궁의는 냉소를 지었다.
“얼마 전에도 수색하더니 오늘 또 와서 수색한다니. 성주부가 당신네들 정원에 있는 쓰레기통인 줄 아나보오? 이 성주가 화나기 전에 얼른 꺼지시오!”
“남궁의! 이게 무슨 태도인가! 천남성이 네 것도 아니거늘!”
“지금 내 태도는 굉장히 우호적인 거요. 그러니 경고하는 데, 얌전히 구는 게 좋을 거요!”
남궁의는 바로 일어서서 몸을 돌렸다.
그는 뒷모습만 보인 채 성가신 듯 손을 내저었다.
“썩 꺼져!”
성주부 호위대 십여 명이 포위했다.
“물러가시오!”
낙봉의 마력이 끓어오르더니 정령으로 응집되었다.
양손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훑고 지나가자 열댓 명이 순식간에 나가떨어졌다.
호위대 대부분이 중상을 입었다.
남은 호위대는 두려운 마음에 멈칫했다.
낙봉은 혼성 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남궁의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대청 전체를 에워쌌다.
그 압박감에 사람들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이 성주 앞에서 버젓이 성주부 호위대를 공격하다니! 날 겁박하는 것이오?”
“남궁의! 모르는 척 하지 마라!”
지금 양가와 천가의 고수가 천남성에 와 있기에 낙봉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제 아무리 남궁의라도 어쩔 도리가 없겠지!’
낙봉이 거칠게 말했다.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은 당신도 잘 알 것이오!”
“오? 말씀해 보시오!”
남궁의의 목소리에 찬 기운이 묻어났다.
낙봉이 막 입을 열려던 찰나 공화련이 공서련을 부축한 채 걸어 나왔다.
남궁의의 단정한 눈썹이 일그러졌다.
“너희 둘은 상처나 잘 치료하고 있지, 여기서 뭐하는 것이냐? 빨리 돌아가!”
“바로 저들이오!”
낙봉의 눈동자에 냉기가 서렸다.
그러고는 뒤에 있는 다른 사람을 불렀다.
“천제현을 잡지 못하면 저 두 계집을 잡아가야겠소! 저 둘을 달달 볶다 보면 천제현 그 겁쟁이도 나오지 않곤 못 배기겠지!”
“무엄하다!”
남궁의가 대로했다.
“사람을 잡고 싶으면 무고한 이를 아무나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언제부터 감찰부에 그런 권한이 있었는가!”
낙봉이 부정했다.
“이번 일은 감찰부와 무관하오. 천제현이 낙씨 가문의 장로인 낙원산을 죽였잖소! 이 일로 가주께서 격분하셨소. 낙씨 가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일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남궁의, 당신도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요. 이번 일은 당신이 참견할 수 있는 게 아니오! 중주성 성주도 당신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다오. 괜히 실수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성주 자리에서 끌어내리겠단 거요?”
남궁의가 서슬 퍼렇게 말했다.
“낙원산도 이 말을 했었지. 그런데 지금은 이 세상이 사람이 아니지 않소. 당신들도 그의 전철을 밟고 싶은 것이오?”
낙봉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남궁의는 강경하게 말했다.
“이 성주가 다시 말해주지. 내가 성주로 있는 한, 단 하루라도, 당신들 같은 쥐새끼가 이 성주부에서 허튼짓을 하지 못할 것이오! 썩 물러가시오!”
“좋습니다. 좋아요!”
낙봉이 교활하게 웃었다.
그가 소매 안에서 족자를 꺼내 들었다.
“남궁 성주는 중주성과 척을 지기로 결심했나 보오! 이건 감출부 명령서요! 남궁 성주는 범인은 비호한 죄로 오늘부로 성주 직위를 일시 파면토록 한다! 이제부터 내가 사건이 마무리 될 때까지 임시 성주직을 맡는다!”
‘성주를 일시 파면해?’
공화련과 공서련의 안색이 바뀌었다.
남궁의는 작은 천남성 성주에 불과했지만 그 의미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다.
기적상회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있기 때문에 중주성 세력들이 다시 그들을 위협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생긴 상회는 강력한 보호막 아래서만 생존할 수 있었다.
남궁의의 성주 지위가 박탈되면 기적상회는 어디서 보호막을 찾는단 말인가?
낙봉은 득의양양한 태도로 남궁의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공화련 자매를 보며 말했다.
“너희 둘은 순순히 나를 따라 오너라. 아니면 끌고 가는 수밖에!”
공화련은 입술을 꽉 깨물며 앞으로 한 발짝 내딛었다.
“네가 가겠어요. 동생은 놔주세요!”
“언니! 안 돼!”
공서련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더니 갑갑한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상이 갑자기 심해지며 붉은 선혈을 토해냈다.
“서련아! 왜 그래! 놀라게 하지 마!”
공화련이 황급히 달려가 공서련을 끌어안았다.
“큰일이다!”
남궁의가 깜짝 놀라 말했다.
“빨리 염천웅을 불러오라!”
낙봉은 즐겁다는 듯 크게 웃었다.
“너희 자매 중 한 명도 놔줄 순 없다. 성주부 호위대는 들어라! 이 두 범죄자를 잡으면 금화 천 냥을 상으로 내리고 3급으로 승진시켜 주겠다. 항명하는 자는 군법에 따라 처벌하겠다!”
성주부 호위대들은 서로의 얼굴만 볼 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러나 바로 이때, 대청 바깥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영감탱이, 작작 좀 날뛰지!”
공화련 자매는 크게 놀랐다.
‘천제현! 천제현이 벌써 돌아왔어?!’
남궁의도 순간 멍해졌다.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천제현이 떠날 때, 남궁의는 사건을 몰고 다니는 그만 없다면 공화련 자매를 잘 돌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사람들 귓가에 가벼운 방울 소리가 울렸다.
부드러우면서도 낭랑한 울림이 있었다.
마치 사람의 귓가에 최면을 건 것처럼 다들 어리둥절했다.
객지를 떠돈 듯한 소년 한 명이 거들먹거리며 대청 안으로 들어왔다.
더러운 회색 도포를 입고 천으로 돌돌 말아 감싼 보검을 짊어지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허리춤에 걸린 방울 소리가 청량하게 울려 퍼졌다.
하얗고 단정한 얼굴에 별빛처럼 빛나는 눈을 가졌으며, 눈동자는 블랙홀처럼 깊고 심오했다.
낙봉이 깜짝 놀라 물었다.
“넌 누구냐?”
공서련이 바닥에 앉았다.
옷의 가슴 쪽이 피로 물들었다.
그녀는 천제현을 보자 머리가 핑 돌더니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지난 며칠 동안 억지로 웃고는 있었지만 천제현을 보자마자 모든 설움이 복받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천제현을 걱정했다.
‘큰일 났다! 이런 시기에 돌아오다니! 이러다 큰일나겠다!’
천제현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행히 둘째 아가씨는 살아 있구나!’
천제현은 서슬 퍼런 얼굴로 낙봉을 응시했다.
“며칠 동안 나만 찾아다녔으면서 정작 네놈 앞에 있는데, 못 알아보는 것이냐? 웃기는군!”
“네가 천제현이냐!”
낙봉을 비롯한 사람들 몇몇이 어리둥절한 듯 멍해졌다.
천제현이 어째서 저리도 당당하게 이곳에 나타났단 말인가?
‘신발이 닳도록 찾아다녀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 마침내 이놈을 찾았구나!’
낙봉이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뜻밖이군. 감히 제 발로 나오다니! 네놈의 말로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느냐? 공격해라! 저놈을 쓰러뜨려라! 먼저 저놈의 양쪽 손발을 다 부러뜨려라!”
낙씨 가문의 고수 십여 명이 동시에 천제현을 둘러쌌다.
다들 연성 8~9성에 이른 정예군이었다.
천제현은 비웃으며 말했다.
“오합지졸들이군!”
검의 정령이 떠오르며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눈 한 번 깜짝할 시간이었다.
그 사이에 낙씨 가문의 고수들이 정령의 검에 베여 쓰려졌다.
낙봉은 순간 공포에 질렸다.
“이……, 이놈! 네놈이 감히 대놓고 낙씨 가문의 제자를 살해하다니!”
“그들을 죽인 게 뭐 대수라고? 이제 널 죽일 건데!”
천제현은 격분한 채 무서운 기세로 낙봉에게 달려들었다.
낙봉이 하늘을 향해 포효하니 돌로 된 호랑이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랑이 정령의 전신에는 단단한 암석갑옷이 둘려있었다.
천제현은 석호정령(石虎元魂)이 소환된 순간 정령에게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주먹으로 호랑이의 머리를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