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104화 (103/729)

# 104

제104장 다시 암시장으로

여우가 어떻게 사람의 언어를 안단 말인가?

하지만 이 새끼여우는 정말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알았어. 하나 줄게.”

천제현이 강시 내단을 하나 건네자 새끼 여우는 신이 나서 작은 발로 그것을 잡고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다시 남은 내단을 바라보았다.

“더 먹고 싶어?”

새끼 여우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천제현은 다시 내단 한 개를 건넸다.

여우는 이번에도 두세 입 만에 그것을 먹어치웠다.

그러고는 작은 발을 쭉 뻗고 눈을 반짝이며 남은 내단을 바라보았다.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네. 저 작은 배에 뭐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 거야?’

천제현이 다시 하나를 건네자 새끼 여우는 또 두세 번 씹고 꿀꺽 삼켜 버렸다.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네.’

강시 내단은 음기와 시체의 기운이 응축되어 생성된 물건으로, 천년강시의 내단은 더욱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이놈이 아무리 강시왕 뱃속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어쨌든 생명체인데 생명체가 어떻게 강시 내단을 먹는단 말인가?

다른 동물들이 그랬다면 즉사했을 것이다.

‘물론 이놈에게 일반적인 상식의 잣대를 댈 수 없긴 하지. 어떤 동물이 강시왕 뱃속에서 만 년을 버티겠어?’

천제현은 손가락을 튕겨 여우의 코를 살짝 치며 말했다.

“안 돼, 이제 그만 먹어!”

끼잉.

천제현은 남은 강시 내단을 챙기며 말했다.

“나도 쓸 데가 있단 말이야. 그런데 너, 입맛이 꽤나 까다롭구나. 너 키우다가 파산하겠다! 말해 두겠는데, 우리 천씨 집안에서는 일 안 하는 놈한테는 밥도 안 준다고. 그러니 말해 봐. 넌 뭘 할 수 있지? 그래! 나한테 순간이동술을 가르쳐 주는 건 어때? 그럼 배불리 먹게 해줄게!”

그러나 새끼 여우는 콧방귀라도 뀌는 양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뭐 이렇게 까칠해?’

그때, 고묘 전체에서 강렬한 진동이 느껴졌다.

강시왕이 죽어 진법이 불안정해지면서 예상보다 빨리 문이 닫히려는 것 같았다.

“나가야 돼!”

천제현은 어혼방울을 흔들어 십여 명의 병사를 모았다.

그리고 그놈들에게 돌아다니면서 강시 내단을 줍게 했다.

다 줍고 보니 내단이 총 100개가량 모였다.

이어 그는 강시를 시켜 정신을 잃은 채향과 염귀 형제를 업게 한 후 황급히 고묘를 빠져나가 암시장 영지로 돌아갔다.

고묘는 예정보다 일찍 열렸고 또 예정보다 일찍 닫혔으며, 괴이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이미 수련자 수백 명이 이곳에 들어갔지만, 그중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다.

중주성에서 이름을 떨치던 수련자들도 증발한 것처럼 자취를 감췄다.

만년고묘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이번에 또다시 완전 폐쇄된다면 재개방은 아마도 수백 년이 지난 후일 것이다.

귀면노자의 계획은 철저히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강시왕의 내단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목숨마저 잃었다.

그의 말로가 비통하기 그지없다.

천제현이 염귀, 빙마 형제를 찾았다.

두 형제는 완전히 기가 죽은 채로 남하국에서 떠날 준비를 하였다.

종문은 이번 일로 참담한 손해를 입었다.

장로가 죽어 상단의 대규모 물자는 남하국에서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럴 바에야 진작 종문으로 돌아가 만년고묘에 대한 정보를 보고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두 형제가 소년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소년은 평범한 생김새에 소박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특이한 점으로는 어깨에 털이 보송보송한 흰색 여우가 앉아 있다 것이다.

그 외에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두 형제는 소년을 괄시할 수 없었다.

천제현의 잠재력은 그 둘이 지금껏 본 그 누구보다도 컸기 때문이다.

종문이 배출한 최고의 천재들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없을 정도다.

거기다 천제현이 두 형제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그들에게는 은인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암우개님, 어찌하여 오셨습니까?”

“떠날 채비를 하는 거죠?”

염귀와 빙마는 서로를 힐끗 쳐다보더니 무력감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장로님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이번 작전은 완전히 실패하셨어요. 저희에게 상단을 관할할 권한이 없으니 종문으로 돌아가 보고드릴 수밖에요.”

천제현이 신비롭게 웃었다.

“강시왕의 내단을 얻지 못했다고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지요.”

두 사람이 어리둥절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뜻이죠?”

천제현이 품안에서 주머니를 꺼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주머니 안에는 강시 내단 10여 개가 담겨 있었다.

강시 내단 모두 핏빛처럼 선홍색을 띠고 강력한 죽음의 기운을 흉흉하게 내뿜고 있었다.

“이것은…….”

염귀 형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것은 강시 내단이 아닌가? 암우개님이 어떻게 이토록 많은 강시 내단을 가지고 있는 거지?’

어제 고묘에서 강시왕이 포효를 내질렀을 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혼절했었다.

강시왕의 포효 속에는 강한 정신공격 능력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여우의 내력을 비롯하여 이후에 발생한 일들에 대해서 이 둘은 전혀 알지 못했다.

갑자기 여우가 펄쩍 뛰어올랐다.

새하얀 털을 곤두세운 채 발톱을 휘둘렀다.

그리고는 이빨을 드러내며 불만을 표시했다.

여우가 주인의 의도를 눈치챈 것이다

.‘강시 내단을 주려는 게 틀림 없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건 내 먹이인데!’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천제현은 여우가 표출한 불만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에게 강시 내단이 열댓 개쯤 있어요. 이 강시 내단은 모두 천년강시 내단이에요. 물론 강시왕의 내단보다 품질이 훨씬 떨어지지만, 이 10여 개를 합치면 일반 강시왕의 내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걸요!”

염귀와 빙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시왕 수중에서 탈출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이 많은 처년강시의 내단을 가져올 수 있는 거지?’

하지만 의문도 잠시.

염귀와 빙마는 뛸 듯이 기뻐했다.

정말 뜻밖의 선물이었다.

이 강시 내단을 가지고 돌아가면 큰 공을 세운 셈이었다.

귀면노자가 사력을 다해 세우고 싶어 했던 공이 결국 두 형제의 손으로 넘어간 것이다.

“암우개님, 고맙습니다!”

염귀 형제가 거듭 감사를 표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대주국에 오시면 말씀만 하십시오. 무슨 일이든 상관없이 곧장 달려가겠습니다!”

천제현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고마워할 필요 없습니다. 저 역시 제가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해서인걸요.”

염귀 형제는 천제현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귀면노자는 천제현에게 자신이 강시 내단을 얻도록 도와주면 혼영과 3개를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암우개님께서 저희 종문에 가져다준 이익은 혼영과 3개에 비할 수 없지요!”

어쨌든 지금은 장로가 부재하므로 염귀는 아예 자기가 알아서 정하기로 했다.

“천년강시 내단 1개는 혼영과 1개의 가치가 있지요. 나머지는 영단옥약(靈丹寶藥)으로 교환해 드리겠습니다!”

천제현이 움찔했다.

“그럼, 저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여우가 눈을 부릅뜬 채 주인이 자기 간식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왜 뿔이 났어!”

여우가 씩씩거리며 털썩 주저앉아서 다리를 꼬고는 고개를 획 돌렸다.

“네가 이렇게 잘 먹는데 주인인 내가 강해지지 않으면 어떻게 널 먹여 살리겠어!”

여우가 코웃음을 치는 듯 했다.

“그래도 모르겠어?”

천제현이 여우의 머리에 꿀밤을 때리며 말했다.

“투자야. 투자라고, 알아들어!”

여우가 아픈 듯 짧게 신음하더니 양발로 머리를 감쌌다.

천제현은 여우를 본체만체하며 우선 혼영과 3개를 담았다.

사실 천제현은 혼영과만 있으면 충분했다.

다른 약초와 영약은 효능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짜로 얻는 셈인데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천제현은 약재들을 열심히 고르기 시작했다.

“혈수영지(血髓靈芝)?”

천제현이 가운데 옥처럼 생긴 버섯을 발견했다.

“이것도 2급 희귀 영약인데! 이걸로 교환하겠습니다!”

“흑옥자문참(黑玉紫紋參)? 천년용장련(千年熔漿蓮)?”

천제현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두 개도 가져갈게요!”

천제현은 이밖에도 2급 약재 몇 개를 선택했다.

모두 영약 등급의 약재였다.

‘약재 중에서도 제일 좋은 걸 고르시다니! 보는 눈이 대단하시군!’

그래도 염귀와 빙마는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귀면노자는 이미 죽었고, 상단 관련 인물들이 대다수 교체될 것이다.

그러니 이 물건을 전부 잃어버려도 책임을 추궁할 만한 사람이 없다.

두 사람이 귀하디귀한 혈색 강시 내단을 가지고 돌아가면, 종문에 백 년 만에 가장 큰 공을 세우게 될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상단의 물품 몇 개 정도는 대수로울게 없었다.

천제현은 가장 귀한 영약 몇 개를 고른 후, 또 뭘 가져가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치료에 쓰는 성약이 있습니까?”

“치료 성약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침 하나가 있습니다!”

염귀가 직접 옥으로 된 상자에서 꺼내주었다.

“이것은 장로가 외국에서 비싼 값을 치루고 경매로 얻은 단약입니다. 생생조화단(生生造化丹)이라고 합니다. 이것만 있으면 전신의 뼈가 다 부러져도 전부 회복할 수 있습니다. 어떤 후유증도 남지 않습니다. 원래 장로께서 문파에 상납하려고 했던 겁니다만, 암우개님께서 원하시면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좋아, 좋아! 이 형제들 참으로 의리 있네!’

천제현은 이번에도 흔쾌히 단약을 챙겼다.

그는 더 이상 필요한 물건이 없음을 확인하고 작별인사하려고 했다.

“암우개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염귀가 그를 불렀다.

“암우개님은 흑색강시 내단이 많이 갖고 계시지 않습니까? 남하국에서 강시 내단은 그다지 쓸 데가 없을 겁니다. 괜찮으시면, 일부를 저희에게 파시겠습니까?”

끽끽!

천제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천제현 어깨에 앉아 있던 여우가 갑자기 몸을 곧게 세우더니 두 사람을 향해 짖어댔다.

두 형제는 깜짝 놀랐다.

‘강시 내단은 내 먹이야. 제일 좋은 내단은 주인놈이 쓰레기들로 바꿨는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방금의 거래로 여우의 심사는 이미 단단히 꼬였다.

여우 입장에서 고급 간식도 빼앗긴 셈인데, 그나마 남은 간식까지 가져가면 대체 무엇을 먹는단 말인가?

그러니 여우는 전혀 기뻐할 수 없었다.

“조용히 해!”

천제현이 여우를 툭 치고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얼마에 살 건데요?”

염귀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1개 당 10개 하품마석이 어떠십니까?”

‘10개 하품마석? 그럼 대략 금화 10만 냥쯤 되잖아!’

천남성에서는 엄청난 돈이다.

천제현의 주머니 속에는 200~300개의 흑색강시 내단이 있었다.

‘이걸 교환하면 대체 얼마지?’

상회에 돈 들어갈 일이 많은 때라 천제현은 별다른 고민 없이 말했다.

“그럼 50개를 팔도록 하죠. 나머지는 쓸 데가 있어 남겨놓아야 해요.”

그러면서 천제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우의 먹이는 남겨놔야 하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