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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103화 (102/729)

# 103

제103장 신비로운 여우

우두커니 서 있는 강시왕의 괴이한 여우 얼굴이 생기를 잃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늙기 시작했다.

피부에는 순식간에 수많은 주름이 생겼고, 새하얀 머리카락은 하나둘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자연의 순리를 역행한 듯한 이 괴물은 흑옥관에서 나온 이후부터 늙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말라비틀어진 고목과도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배는 점점 부풀어 올라 마치 임신 8~9개월의 임신부와 같았다.

강시왕은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천제현은 호기심이 동했으나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

강시왕의 힘은 매우 강했다.

수천 년의 음기를 축적하여 고묘 안의 금제에도 구속받지 않고 엄청난 힘을 뿜어냈다.

천제현이 강시왕을 이길 가능성은 전무했다.

그나마 범상치 않은 그의 정령 덕에 간신히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다.

정령이 아직 완전히 각성을 하지 않았지만 그 범상치 않은 기운은 상대를 겁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효과가 지속될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으리라.

곧장 통로를 향해 달려가던 천제현의 눈에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운요가 들어왔다.

다행이 운요는 아직 살아 있었다.

천제현은 그녀를 어깨에 메고 대전 밖으로 뛰어나갔다.

“만약 여기서 살아나간다면 넌 나한테 두 번이나 목숨을 빚진 셈이야!”

백지장처럼 창백한 운요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고, 옷은 피로 시뻘겋게 얼룩져 있었다.

그래도 아직 의식은 있어보였다.

그녀의 입술이 살며시 떨렸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거의 다 왔다!’

천제현이 정령을 해제하고, 운요를 어깨에 멘 채로 재빠르게 통로를 빠져나왔다.

크아!

그림자 정령이 사라지자 정신을 차린 강시왕이 크게 울부짖었다.

울부짖음에 섞인 어마어마한 살기가 강시왕전을 뒤흔들었다.

포효를 멈춘 강시왕은 몇 걸음을 내딛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느려보였다.

하지만 강시왕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그녀의 몸은 순식간에 수십 장을 이동했다.

단지 몇 걸음만 걸었을 뿐인데 몇 초 지나지 않아 벌써 통로 안쪽까지 쫓아왔다.

‘너무 빨라!’

천제현의 속도로는 강시왕의 추격을 따돌리기란 불가능했다.

삼천현관진에서는 아직도 전투가 끝나지 않았다.

양곤이 데려온 수련자들은 거의 다 죽었고, 흑색강시들만이 남아 천년강시와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흑색강시는 천년강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수적 우세로 잠시 천년강시를 막아내고 있기는 했지만, 그 수가 급격히 감소하여 이제 절반도 남지 않았다.

염귀, 빙마, 채향은 거대한 바위 뒤에 숨어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 초조함이 묻어나 있었다.

“나왔다!”

놀라 외치는 채향의 눈동자가 순간 번뜩였다.

천제현이 운요를 멘 채 절벽 통로 안쪽에서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설마 강시왕을 처치한 건가?’

그러나 셋이 채 기뻐하기도 전에 거대하고 위압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통로 안쪽에서 수많은 검붉은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면서 공포스러운 붉은 색 인영이 통로 안으로부터 튀어나왔다.

절벽 밑에 있던 천년강시들이 강시왕의 존재를 감지해내고 크게 울부짖었다.

천년강시는 강시왕처럼 지능이 높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사고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강시왕의 공포스러운 기운은 천년강시마저 공포에 떨게 했다.

강시왕이 손을 내리치자 천년강시 한 구가 그 자리에서 여러 조각으로 찢어졌다.

키아!

다른 천년강시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대더니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강시에 대한 공격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놀랍게도 강시왕을 포위 공격하였다.

‘천년강시가 강시왕을 공격하다니? 절호의 기회다!’

천제현이 방울을 높이 들고 마력을 모아 크게 한 번 흔들었다.

그러자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던 십여 마리의 흑색강시들이 천제현에게 다가왔다.

마력이 부족한 관계로 천제현은 십여 구밖에 조종할 수 없었다.

천제현은 흑색강시를 방패로 삼을 생각이었다.

“당신들은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거예요? 살기 싫어요? 빨리 도망가요!”

천제현은 채향 등 세 명이 달려오는 것을 보더니 급히 외쳤다.

이 셋은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여 강시왕의 눈에 띄는 순간 죽을 것이다.

십여 마리의 천년강시는 얼마 버티지 못했다.

강시왕이 무형의 검은 안개로 변해 천년강시의 몸을 뚫고 지나가더니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피로 얼룩진 그녀의 손에는 둥그런 강시 내단이 들려 있었다.

그녀의 몸이 몇 차례 번쩍이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강시왕이 천년강시의 몸을 뚫고 지나갈 때마다 강시왕의 피로 얼룩진 손에는 강시 내단이 들려 있었다. 천년강시들은 조각상처럼 꼼짝 않고 서 있더니, 몇 초 후 쓰러졌다.

‘순식간에 처치해 버렸다!’

그 흉악했던 십여 마리의 천년강시들이 순식간에 죽임을 당했다.

이때, 삼천현관진이 요동치더니 또 다른 무리의 천년강시가 나타났다.

크아!

강시왕이 고개를 쳐들고 포효했다.

섬뜩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기기기기긱!

기괴하고 둔탁한 마찰소리가 들리더니 현관대진법이 멈추었다.

천제현은 너무 놀라 눈을 댕그랗게 떴다.

뜻밖에도 강시왕이 현관대진법을 멈춘 것이다.

천년강시들도 더는 나오지 않았다.

‘도망쳐야 해! 도망칠 수 있을까?’

하지만 강시왕의 저 괴이한 보법 앞에서 도망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잠에서 깨어난 지 일각도 되지 않아, 강시왕은 급격히 늙어 버렸다.

그녀의 몸은 이미 말라서 쭈글쭈글해졌다.

등불처럼 빛나던 강시왕의 붉은 두 눈이 점차 어두워지더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뱉어냈다.

“내 시간이…… 많지 않구나!”

천제현은 어리둥절했다.

강시왕의 생명력이 곧 사그라지려고 했다.

그런데 왜일까?

죽이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천제현은 벌써 수십 번도 넘게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강시왕이 경악할 행동을 했다.

유명검을 들고 부풀어 오른 자신의 배를 그은 것이다.

배가 갈라지고 수많은 검은 마기가 배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천제현은 그제야 깨달았다.

강시왕이 만년동안 품고 있었던 것은 바로 마기와 요기의 혼합체였던 것이다.

그 에너지는 천제현이 지금껏 보아왔던 것 중 가장 정순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태초의 기운이었다.

강시왕이 두 손으로 결인을 하자 수많은 태초의 기운이 한데 뒤섞이더니 흰색의 거대한 구를 형성하였다.

빠직!

알처럼 생긴 거대한 구가 깨지자 솜털이 보송보송 난 동물의 새끼 한 마리가 나왔다.

외형만 봤을 때는 새끼 여우 아 보였는데, 주먹만 한 크기에 먼지 한 점 묻지 않은 말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건…….”

천제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태초의 기운에서 잉태되고 태어났다면 고대의 신과 같은 존재 아닌가.

강시왕이 손가락을 뻗자 검은 파동이 주문으로 변해 천제현의 가슴팍에 떨어졌다.

그 주문은 문신처럼 천제현의 가슴에 계약 각인을 남겨 놓았다.

“주인 식별 계약?”

강시왕의 흉악하고 노쇠한 얼굴에 경건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는 두 손으로 새끼 여우를 받쳐 들고 천천히 땅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오른손을 가슴에 넣어 금색 강시 내단을 꺼내더니 새끼 여우 앞에 놓았다.

새끼 여우가 그 내단을 삼켰다.

내단을 잃은 강시왕은 더 쇠약해 졌다.

“주인님의 후계자시여!”

강시왕이 고개를 들었을 때, 등불처럼 불타오르던 그녀의 두 눈은 완전히 빛을 잃고 있었다.

그녀는 한마디한 마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이제야…… 당신께…… 제 생명을…… 드립니다!”

말을 마친 강시왕은 만 년 동안 짊어졌던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이윽고 화로에 들어간 도자기처럼 그녀의 온몸에 균열이 생기더니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이봐, 잠깐만!”

천제현은 이렇게 기이한 일은 태어나 처음 보았다.

“죽더라도 말은 제대로 끝맺고 죽어야지! 주인이라니, 그게 누구야!”

그러나 강시왕의 부서진 몸은 바람에 흩날리는 재처럼 끝없는 허공에 흩어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이렇게 짧은 생이라니.

강시왕이라는 존재는 저 불가사의한 생명체를 잉태하기 위한 그릇에 불과했단 말인가.

강시왕의 내단을 삼킨 새끼 여우는 몇 번 몸을 부르르 떨고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 눈동자는 최고급 보석처럼 맑고 반짝였으며, 사람의 마음을 현혹시키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낑낑!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천제현을 발견한 새끼 여우는 신나서 몇 번 낑낑거리고는 그에게 발을 뻗었다.

슥!

이윽고 새끼 여우가 안개로 변하더니 사라졌다가 천제현의 곁에 나타났다.

순간이동처럼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난 새끼 여우는 그의 오른 다리를 끌어안았다.

“깜짝이야! 강시왕이 썼던 그 수법인가?”

깜짝 놀란 천제현은 급히 그놈에게서 다리를 빼내려고 했다.

“넌 뭐야! 달라붙지 말고 꺼져!”

그러나 새끼 여우는 딱풀처럼 천제현의 다리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아무리 힘을 써도 떼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천제현은 마음이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대체 이게 뭐야?’

3만 년 앞선 식견으로도 이런 일은 듣도 보도 못했다.

분명 인간의 문명에 있어 3만 년은 길고 긴 시간이다.

그러나 한 세상에 있어 3만 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는 짧은 순간이다.

인류 문명이 있기 전에 얼마나 많은 타문명이 있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시대를 거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번영에서 쇠락까지 끝없는 반복을 되풀이했으리라.

천제현은 고도로 발달한 문명 시대에서 왔으나, 세상의 모든 신비를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천제현은 처음에 고묘를 보고 크게 놀랐다.

수천 년 전에 이곳에 존재했던 종문의 힘은 한 나라 전체와도 맞먹을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종문이 이렇게 영기가 희박한 곳에 터를 잡았을까?

이 고묘와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고묘의 실제 역사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길 것이다.

새끼 여우는 휙하고 천제현의 어깨 위로 올라가서 뽀송뽀송한 제 털을 핥기 시작했다.

새하얗고 보드라운 털에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그 여우는 몹시 사랑스러웠다.

‘그래 받아들이자. 강시왕의 의도가 어떻든 주인식별계약이 있는 걸!’

이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한 천제현은 그 여우를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애완동물이라고 생각하지 뭐.’

천제현은 강시왕이 사라진 곳으로 다가가 유명검을 집고 십여 개의 핏빛 강시 내단을 줍기 시작했다.

끼잉!

강시 내단을 본 새끼 여우의 눈이 반짝거렸다.

“먹고 싶어?”

새끼 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제현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놈 이거 지금 사람 말을 알아듣는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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