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제100장 양곤의 습격(2)
이 강시굴에 있는 마물 중에 가장 급이 낮은 것은 백모강시였고 그다음이 흑모강시, 마지막이 홍모강시였다.
홍모강시는 최소 천 년의 시간을 들여 만들어진 괴물이다.
천 년!
인간의 수명으로서는 짐작하기도 힘든 긴 시간 아닌가!
생명체가 아닌 강시는 이론상으로 무한한 수명을 지닌다.
단, 천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천년강시가 되는데, 이때 거대한 변화가 일어난다.
물론 모든 강시가 그런 것은 아니다.
천년강시가 되는 데에는 환경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륙의 영기는 불균형하게 분포되어 있다.
영기가 많은 곳은 비옥하고 자원이 풍부하여 대국을 이룰 수 있지만, 영기가 희박한 곳은 자원이 부족하고 물자가 귀해 발전하기 힘들었다.
남하국은 영기가 부족한 곳이었다.
그러니 이 땅에서 강시가 천 년, 아니 만 년을 버틴다 해도 홍모강시가 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 있던 관은 진법과 금제의 일부로서 그 안에 음기를 모으는 진법이 설치되어 있었다.
즉, 관의 힘을 통해서 강시를 키우고 있던 것이다.
그로 인해 관 속에 천 년을 갇혀 있던 강시들은 무시무시한 천년강시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양곤, 이 멍청한 놈! 몇 마디 도발했다고 바로 계략에 당하다니!’
“어서 갑시다!”
천제현은 천년강시와 상대하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천년강시는 귀왕만큼은 아니지만 거의 그에 상응하는 실력을 갖고 있다.
한 번에 저렇게 많은 강시가 눈을 떴으니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것이다.
천제현 일행은 절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빌어먹을! 어째서!”
양곤은 분노로 길길이 날뛰며 소리쳤다.
“어째서 저놈들은 아무 일 없는 것이냐!”
귀면노자 일행은 멀쩡히 관 사이를 걸어가는데 어째서 자신들은 발을 들이자마자 금제를 건드려 천년강시를 깨웠단 말인가!
“돌파하자!”
“무슨 일이 있어도 저놈들을 죽여야 한다!”
양곤은 히스테리를 부리듯 소리쳤다.
콰과광!
굉음이 들리더니 관이 산산조각 나고 그 안에서 거대한 구름 같은 핏빛 안개가 빠져 나왔다.
안개는 순식간에 허공을 덮었다.
“큰일이다! 시독이야!”
붉은 안개에 닿은 수련자 몇 명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염산에 닿은 것처럼 그들의 피부가 녹아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수련자들은 곧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피부가 벗겨지더니 무시무시한 혈색 강시로 변해 버렸다.
크어엉!
처참한 비명 소리가 점차 울부짖음으로 바뀌더니 수련자들의 두 눈이 핏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타오르는 화염처럼 온몸의 마력을 체내에서 분출하며 몸을 돌려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천년강시의 시독은 사람을 죽일 뿐만 아니라 희생자의 체내에 있는 마력을 불태워 순식간에 괴물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이 쓸모없는 것들! 전부 죽어라!”
양곤이 어혼방울을 흔들자 강시들이 밀물처럼 달려들어 시독에 먹힌 수련자들을 가로막았다.
파살수도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먹구름을 뿜어내 수련자들을 뒤덮었다.
파살수에게 당한 수련자들은 순식간에 몸이 썩어 들어가 뼈다귀만 남았다.
“우리 숫자가 더 많다! 겁낼 것 없어! 천년강시가 아무리 대단해도 고묘 안에서는 힘을 못 쓴다! 죽여! 죽여라!”
그때, 천년강시에 의해 흑모강시 몇 마리가 종잇장처럼 갈기갈기 찢겼다.
잔뜩 화가 난 양곤은 마력을 모아 거대한 금빛 물체를 만들어 냈다.
그것의 크기는 3미터나 됐으며, 사람 허리 굵기의 황금 팔을 지니고 있었다.
정령을 불러낸 양곤의 힘이 열 배 이상 강해졌다.
그는 주먹을 쥔 채 천년강시에게 달려갔다.
“거령대력권!”
거대한 금색 주먹과 핏빛 안개가 뭉쳐져 만들어진 주먹이 서로 부딪혔다.
안개의 강력한 부식성으로 인해 금색 주먹이 반 이상이 녹아내렸다.
그러나 순수한 힘만 본다면 양곤이 한 수 위였다.
금색 주먹은 미친 듯 돌진하여 정면의 안개를 뚫고 강시의 가슴팍을 세게 쳤다.
그 엄청난 힘이 폭발하니 폭풍이 몰아치는 듯 했다.
그 충격으로 흑모강시 몇 마리가 나가 떨어질 정도였다.
강시가 절벽에 내동댕이쳐졌고, 부딪힌 자리에는 큰 구멍이 생겼다.
‘엄청나군!’
수련한 무공이 육체 단련 위주였기 때문에 양곤이 지닌 정령 역시 힘을 강화해 주는 쪽으로 특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마력이 봉인된 상황에서도 최대한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현재 양곤의 상태는 혼성1~2성 수련자와 비슷했으며, 자신의 능력을 오롯이 다 사용할 수 있었다.
“날 따라와라! 저 빌어먹을 쥐새끼들을 죽여 버리자!”
곽승음의 파살수는 끊임없이 검은 안개를 내뿜어 일행의 몸을 감쌌다.
마수와 상극인 파살수의 힘 덕분에 강시들도 쉽사리 그들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흑모강시 무리가 천년강시를 막는 틈에 양곤은 일행을 데리고 파살수의 보호를 받으면서 삼천현관진을 강행 돌파하기 시작했다.
양곤 일행이 막 진법에 들어왔을 때, 천제현 일행은 이미 산 중앙의 대전에 도달해 있었다.
대전의 면적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평평하고 고른 바닥은 흑옥으로 깔려 반들거렸다.
대전 안에는 기둥 몇 개만 서 있을 뿐 아무 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다만 각각의 굵은 기둥 위에 거대하고 검은 쇠사슬이 묶여 있었다.
그 쇠사슬은 대전 중앙의 거대한 흑옥관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 흑옥관에는 요괴 그림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그 탓에 아주 섬세하게 만들어진 공예품처럼 보였다.
수십 개의 굵은 쇠사슬이 묶고 있는 하나의 관.
‘저 안에 있는 것이 강시왕이다!’
귀면노자는 흥분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강시왕이 눈앞에 있었다.
강시왕의 내단만 손에 넣으면 종문에 큰 공을 세우게 될 것이리라.
그의 덕으로 자손들까지 영광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흑옥관에서는 몹시도 불안한 기운이 느껴졌다.
수십 개의 쇠사슬로 묶여 있는 모습은 어떻게 봐도 좋게 보기가 힘들었다.
천제현 역시 마음이 불편해져서 물었다.
“정말 저 안에 잠든 것을 깨울 생각입니까? 양곤 일행이 언제 여기까지 올지 모릅니다. 그들을 상대할 여력도 없는데 강시왕까지 불러내면 일이 힘들어지지 않겠습니까?”
“아직 그들이 여기까지 안 왔으니 기회가 있는 셈 아니겠는가!”
귀면노자는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양 말했다.
“천신만고 끝에 강시왕을 찾았는데 도중에 그냥 갈 수는 없지 않겠나? 염귀, 빙마, 관의 봉인을 열게!”
“네!”
이윽고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흑옥관을 묶고 있던 쇠사슬들이 하나씩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강시왕 대전 전체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 늙은이가! 왜 이렇게 사람 말을 안 듣는 거야!’
극도의 긴장으로 인해 채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천제현은 그녀에게 부적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이 염식부(斂息符)는 외부의 기운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 이걸 갖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질 거야. 그리고 이번 전투에는 참여하지 마.”
채향이 쓴웃음을 지었다.
천제현의 속뜻을 알아챈 것이다.
지금 채향의 실력은 너무 보잘것없어서 싸움에 끼어들어 봤자 도움은커녕 방해만 될 게 뻔했다.
진동이 점점 더 커지더니 사악한 기운이 대전을 뒤덮기 시작했다.
귀면노자는 흑옥관에서 세 장쯤 떨어진 곳까지 다가가 말했다.
“모두 준비하게! 이제 이 관을 부수겠네!”
천제현은 유명검을, 운요는 뇌령주를 들어 올렸다.
“합!”
귀면노자가 낮게 기합을 넣자 검은색 마력이 모이더니 그의 머리 위에 초승달 모양의 마검이 나타났다.
귀면노자의 정령은 기이하게 생긴 초승달 모양 마검이었던 것이다.
“베어라!”
귀면노자가 두 손을 십자가 모양으로 엇갈리게 들어 올렸다가 힘을 주며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마검이 검은색 궤도를 그리며 따라 움직여 흑옥관 위에 떨어졌다.
그 순간, 거대한 파열음이 들렸다.
하지만 귀면노자의 혼신을 다한 일격은 스폰지에 흡수된 물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무 소리도, 아무 흔적도 없이!
심지어 작은 불꽃 하나도 일지 않았다.
괴이한 정적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얼어붙었다.
귀면노자는 얼굴이 벌개져서 십여 차례 공격을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흑옥관에는 조금의 흠집도 남지 않았고 모든 공격은 그대로 흡수되어 사라져 버렸다.
‘소용이 없어? 그럴 리가! 이렇게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관을 열 수 없다고?’
그때 천제현이 뭔가를 느끼고 말했다.
“잠깐만요. 움직임이 있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는 모두의 눈에 흑옥관이 미세하게 떨리며 균열이 생기는 것이 보였다.
그 균열은 아주 작아서 육안으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으며, 귀면노자의 공격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안쪽의 힘에 의해 생긴 것 같았다.
흑옥관 안의 거대한 힘이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관 뚜껑에 균열을 내고 있는 것이다.
‘어찌 됐든 이제 곧 관이 열리겠군.’
그러나 귀면노자가 기뻐할 틈도 없이 대전 통로 쪽에서 날카로운 노호성이 들렸다.
그 소리에 귀면노자의 안색이 변했다.
“벌써 쫓아오다니!”
천제현을 비롯한 일행의 안색도 크게 어두워졌다.
조금 일찍 오든가 늦게 오든가 하지, 하필 이럴 때 오다니.
“하하하하, 도망갈 수 있을 성싶었나?”
양곤이 미친 듯이 웃으며 코뿔소처럼 앞으로 달려 나왔다.
그는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오른팔을 휘두르면서 태산 같은 기세로 천제현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라!”
천제현이 급히 채향을 잡고 피했다.
운요는 뇌령주를 높이 들어 거대한 번개 그물망을 만들었다.
펑!
금빛 주먹이 번개막에 부딪히자 방어막이 움푹 파였다.
뇌령주의 힘을 빌린 운요조차 간신히 양곤을 막은 것이다.
사실 양곤의 물리적인 힘은 엄청나서 마수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마력이 봉인되어 혼성 아래의 실력밖에 낼 수 없는데도 그 전투력은 여전했다.
“넌 사대공자 중에서도 가장 약하지! 초성하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두 공자보다도 실력이 한참 떨어진다고 들었다. 그러니 그만 죽어라!”
양곤이 고함을 지르며 힘을 주자 번개막이 파괴되었다.
운요는 그 충격으로 몇 걸음 밀려나며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