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제93장 유명전
천제현이 소리쳤다.
“정신 차려!”
운요의 몸이 크게 떨리더니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귀야차가…… 정신공격을 사용한다니!’
간신히 정신 차린 운요와 달리 수련자들은 운이 좋지 못했다.
귀야차가 긴 삼지창을 휘두르자 푸른 귀화가 한 수련자 몸에 붙었다.
그는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렀다.
하지만 귀화는 보통 불과는 달라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끌 수가 없었다.
그의 피부가 빠르게 타들어가며 쪼그라들었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했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나자 젊고 건장했던 청년이 마른 고목나무처럼 말라비틀어진 노인이 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귀야차가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귀화가 귀야차에게로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저런 식으로 수련자의 정기를 모조리 흡수하는 것이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광경이다!’
나머지 두 수련자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천제현 일행을 보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리쳤다.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순간 운요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저놈들이 괴물을 끌고 왔잖아!”
천제현은 도와주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크아아!
귀야차가 삼지창을 땅에 꽂자 푸른색 귀화가 지면을 태우며 불의 장막을 형성했다.
불의 장막은 용처럼 꿈틀거리며 앞으로 뻗어나가 두 수련자를 삼켜 버렸다.
그들은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귀화에 불타오르며 처참하게 즉사했다.
천제현과 운요는 급히 양옆으로 피했다.
모든 생명을 태워 버리는 저 귀화와 부딪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뇌!”
운요가 허공에서 번개 정령을 소환했다.
귀야차는 실체가 없는 괴물이다.
형체가 없어 일반적인 무공으로는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내 번개라면 먹힐지도 모른다!’
그녀가 열 손가락을 쫙 펴자 수없이 많은 번개 줄기들이 내리쳤다.
하지만 귀야차가 삼지창을 들어 올려자 번개들을 모조리 흡수됐다.
운요는 몹시 놀랐다.
‘저 괴물이 번개 공격을 막아내다니? 번개는 사악한 힘과 상극인데!’
그녀와 반대로 천제현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귀야차는 고묘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냈어. 힘이 봉인됐다고는 해도 마력은 엄청날 거야. 체내의 음의 기운으로 번개를 막아낸 거야. 보통이 아닌걸!”
운요는 쉴 새 없이 번개 공격을 퍼부었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얼마 버티지 못할 거야! 뭔가 방법이 없겠어?”
천제현이 천천히 부적을 하나 꺼냈다.
그러고는 두 다리에 힘을 주어 펄쩍 뛰어올랐다.
귀야차는 한 손으로 운요의 공격을 막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푸른 귀화를 만들어 천제현을 향해 쏘아 보냈다.
천제현은 침착하게 검기 두 줄기를 날려 귀화를 베었다.
귀화를 베고 귀야차 코앞까지 다가간 천제현은 발광부적을 꺼내 놈의 몸에 붙였다.
태양이 폭발한 듯 엄청난 빛줄기가 번쩍였다.
금백색 광채가 귀야차를 휘감았다.
‘기회다!’
운요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번개의 힘을 모은 후 상처 입은 귀야차의 몸을 다시 한 번 찢어 놓았다.
번개 줄기가 다시 한 번 내리치자 땅에 몇 개의 구덩이가 생겼다.
천제현은 잽싸게 몸을 피했다.
조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자리에도 번개가 내리쳤다.
“젠장! 이 여자가! 이 참에 날 죽이려고!”
운요의 눈에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힘 조절을 못한 것뿐이거든!”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악랄한 여자 같으니! 어쩌면 지금 해치워 버리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 내버려 뒀다가는 언젠가 화를 입을 것이 분명해!’
운요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천제현의 표정을 보며 바짝 긴장했다.
“너…… 너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고의가 아니었다고 했잖아!”
운요를 죽이려는 마음이 든 건 사실이었지만, 검은 궁전을 보자 그 마음이 빠르게 사라졌다.
혼자 힘으로는 저 궁전을 통과하기 힘들 것이다.
‘운요를 옆에 두면 도움이 되겠지.’
천제현은 살기를 거두며 말했다.
“다음엔 이런 일이 없길 바라겠어.”
“알았어…….”
운요는 자신이 저 애송이한테 굽신 거리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터라 부아가 치밀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감히!’
하지만 현재 상황에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운요는 천제현의 손에 검보라색 구슬이 들려 있는 걸 보고 물었다.
“그건 뭐야?”
“귀주(鬼珠)도 몰라? 아는 게 없군!”
그 귀주는 귀야차의 몸에서 나온 것이었다.
천제현은 귀주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귀주는 강시 내단보다도 더 귀한 보물이었다.
“귀주는 영혼의 집결체야. 같은 급의 내단보다 더 귀한 물건이지.”
천제현은 한시름 놨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귀야차는 정말 무서운 상대였다.
만약 이곳이 고묘 밖이었다면 귀야차는 운요보다 훨씬 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귀야차가 강한 만큼 귀주의 가치도 높았다.
실제로 천제현이 챙긴 귀주는 매우 귀한 물건이다.
‘그렇게 귀한 물건을 혼자 챙기다니!’
운요는 기분이 나빠져서 이를 꽉 깨물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 그 귀찮은 놈도 없앴으니 빨리 들어가!”
천제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며 말했다.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야?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야?”
운요의 눈빛이 번득였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천제현이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 궁전 안에는 귀야차만 있는 게 아니라고. 다른 요괴들이 우글거릴 거야!”
운요는 코웃음을 쳤다.
“들어가 본 적도 없으면서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보통 괴물이라면 문제가 안 될 거야.”
천제현이 심각한 눈빛으로 검은 궁전을 바라봤다.
“귀야차는 귀왕의 호위라고. 귀야차가 나타났다는 건 저 안에 귀왕이 있다는 뜻이야.”
귀왕은 천 년 넘게 수련한 강력한 요괴였다.
바깥세상에서라면 혼성술사도 가볍게 쓸어 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고 있는 요괴!
고묘 안에 있어 힘이 봉인되었다고는 하나 힘든 상대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후후, 귀왕의 존재를 아는 자가 있을 줄이야!”
안개 속에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 한 명과 중년의 검객 한 명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운요는 중년 남자를 보며 말했다.
“만무일?”
그녀는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을 보고 또다시 말했다.
“흑화약사(黑火药师) 묵연, 당신도 왔을 줄이야. 대전에서는 왜 안 보였던 거지?”
중년의 검객은 음풍검객으로 불리는 은둔 고수, 만무일이었다.
검은 도포를 입은 노인은 조금 전 대전에서 몸을 낮추고 조용히 있었기에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노인 역시 흑화약사라 불리는 유명인사로, 중주성에서 이름 난 제약사였다.
만무일은 곱지 못한 시선으로 운요를 노려보며 말했다.
“자전공자도 유명전에서 한몫 챙기려는 것인가?”
“무일 아우, 서두르지 말게.”
묵연은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마른 노인이었으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자전공자는 유명전에 뇌령주를 찾으러 가는 길이겠지?”
운요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렇다면 어쩔 건가요?”
묵연이 천천히 말했다.
“무일 아우는 유명검(幽冥劍)을, 나는 유명귀화(幽冥鬼火)를 손에 넣으려고 하네만. 뇌령주에는 관심이 없으니 이렇게 된 거, 힘을 합치는 게 어떻겠소?”
운요는 귀가 솔깃했다.
천제현에게서 벗어날 기회가 온 것이다.
운요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 말했다.
“일리가 없진 않군요. 같이 힘을 모아 싸운 다음 원하는 걸 각자 갖고 떠나는 걸로 하지요.”
천제현은 화가 나서 뒷목을 잡을 뻔했다.
“당신들이 보물을 하나씩 나눠가지면 내 몫은 뭐가 남지?”
천제현이 어리고 평범해 보이는 데다 별로 강한 것 같지도 않다고 판단한 묵연은 차갑게 쏘아붙였다.
“이 친구는 자전공자의 일행인가?”
운요는 콧방귀를 뀌었다.
“모르는 사람이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보물을 나눠 갖겠다고?”
만무일은 흑옥으로 만들어진 듯한 보검을 천제현에게 뻗으며 말했다.
“안 죽이고 보내줄 때 꺼져!”
천제현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충고 한마디 하지. 너희 잡것들은 저기 들어가자마자 귀왕의 간식거리가 될 거다!”
자전공자, 음풍검객, 흑화약사!
이 쟁쟁한 인물들을 앞에 두고 잡것이라고!
“네놈이 감히!”
음풍검객은 화가 나서 검을 휘둘렀다.
예리한 검기가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운요는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풍검객의 검법은 보통이 아니니, 뜨거운 맛 좀 보겠군!’
그때, 천제현의 등 뒤에서 흐릿한 흑검의 형체가 나타났다.
“우습군!”
천제현이 정령의 검을 휘두르자 파괴적인 힘이 용솟음쳤다.
만무일은 그 기세에 몇 걸음 뒷걸음질 치며 안색이 몇 번이나 변했다.
운요는 만무일보다 더욱 놀랐다.
‘검의 정령! 이놈에게 정령이 있을 줄이야!’
그 말인즉 이놈이 자신과 싸울 때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만무일의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너한테 그런 재주가 있는 줄은 몰랐구나. 하지만 아직 멀었다! 음풍검결의 위력을 보여주마!”
“아우, 잠깐 기다리게!”
천제현을 살펴보던 묵연이 말했다.
“이 친구도 꽤 실력이 있는 것 같군. 우리와 함께 움직이고 보물은 공평하게 나누면 어떻겠나?”
“좋소!”
사실 천제현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마력이 거의 소진된 터라 더는 신마의 검을 소환하지 못할 것 같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운요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이놈을 떼어 버리지 못한 것도 짜증나는데 앞으로도 계속 같이 다녀야 되다니!
‘음풍검객, 흑화약사! 이 멍청한 놈들. 이놈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약한 놈이 아니란 말이야! 일대일로 싸우면 아무도 이 변태의 상대가 못 될 텐데!’
네 사람은 각자 꿍꿍이가 있었다.
묵연은 여우 같이 교활한 자였고, 만무일은 꾀가 많은 자였다.
운요는 천제현에 대한 분노가 뼈에 사무치도록 깊다.
천제현은 세 사람을 경계하면서 자신의 몫을 챙길 궁리를 하고 있다.
이 임시동맹은 매우 위태해 보였다.
서로를 의심하고 있으니 언제 분열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묵연은 걸어 가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자전공자는 이미 번개의 정령을 가지고 있는데 뇌령주까지 얻게 되면 실력이 몇 배나 늘겠군. 만시고묘 안에 공자를 위협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겠소이다.”
운요가 뇌령주를 얻으면 실력이 크게 늘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자연히 위험해 처하게 된다.
만무일의 눈에 흉악한 빛이 번뜩였다.
운요에 대한 경계심이 한층 더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