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제92장 언제 한 번 해본 거 같은데
주먹을 쓰다듬는 천제현의 얼굴에 경멸의 빛이 가득했다.
운요의 검은 머리카락은 엉망으로 흐트러졌고, 얼굴의 반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녀는 너무 놀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 어떻게 분뢰장을 막은 거지!’
천제현은 상처 하나 없이 원래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몸 주변에는 전류가 감돌고 있었으며 성광이 번쩍였다.
그 파괴적인 위용은 마치 천신이 인간 세상에 재림한 것과 같았다.
그는 손속도 매우 악랄했다.
운요는 그가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에 주먹을 날릴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패배와 좌절감이 그녀의 가슴을 후벼 팠다.
‘최강의 기술로 저 꼬마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다니!’
이는 운요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녀는 이번 공격으로 천제현의 콧대를 눌러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천제현은 멀쩡하고 자신만 피해를 입은 것이다!
‘왜지? 중주성에 젊은 기재들 중에서 나보다 강한 자는 기껏해야 셋이 안 될 텐데? 어떻게 저런 이름조차 모르는 놈한테 내가 진 거지?’
천제현은 운요에게 다가가며 또다시 그녀를 조롱했다.
“겨우 이거냐? 약해! 나는 둘째 치고 내 친구한테도 안 되겠군!”
천제현이 말한 친구는 당연히 남궁혜였다.
“그렇게 자신이 있으며 고묘 밖에서 싸우자!”
운요가 분노하여 두 손을 꽉 쥐고 소리쳤다.
“한 손가락으로도 널 죽일 수 있어!”
“아이고, 감히 날 위협하는 거냐?”
천제현이 재수 없게 웃었다.
“나름 그럴듯하긴 하지만 복수 따위 할 기회는 없을 거야.”
펑!
천제현이 오른손가락으로 운요의 높게 가슴 위를 강하게 찍었다.
그러자 천제현의 마력이 운요의 경맥을 타고 들어가 주요 경맥을 막았다.
운요의 몸이 크게 한 번 떨렸다.
눈처럼 하얀 볼이 붉게 상기되었다.
하지만 천제현은 신경도 쓰지 않고 운요의 몸을 뒤적거렸다.
‘이놈이 감히 날 욕보이려고 하는 건가!’
“무슨 놈의 사대공자! 오그라드는군. 사대거지라고 하면 딱 좋겠군!”
천제현이 그녀의 몸에서 단약 몇 병과 팔찌 한 개, 목걸이 한 개를 찾아냈다.
더 찾아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화를 내며 말했다.
“고작 이따위 싸구려 물건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거야? 망할! 창피하지도 않나!”
운요의 아름다운 얼굴이 수치심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강탈!
그녀는 20세도 안 돼 혼성의 경지에 이르렀고, 지금은 혼성 3성의 고수였다.
그런 그녀가 연체술사 따위에게 이런 모욕을 당할 것이라고 언제 생각이라도 해봤겠는가?
‘이곳에서 살아나가기만 한다면 반드시 저놈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것이다!’
“걱정하지 마. 죽이지 않을 거야. 넌 아직 쓸모가 있으니까.”
천제현이 운요의 경맥을 풀어주며 말했다.
“네가 말한 보물에 흥미가 생겼어. 내가 그 물건을 가져올 수 있게 네가 미끼가 좀 되어야겠어. 잘되면 보상은 후하게 쳐주지.”
운요는 화가나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이건 방금 전에 자기가 한 말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 말이 천제현의 입에서 나왔다.
정말 치욕적이었다.
치욕도 이런 치욕이 없었다.
천제현이 흉악하게 말했다.
“멍하니 서서 뭐하는 거야? 이제 넌 내 포로라고. 안 가고 뭐해. 빨리 가!”
“이 버러지 같은 놈, 내가 너 같은 악질의 협박을 두려워할 것 같으냐!”
운요가 분노하자 그녀의 몸에서 뇌광이 다시 뿜어져 나왔다.
“네놈 말을 들을 바에야 네놈과 같이 죽겠다!”
그러나 몇 합을 주고받은 후 운요는 다시 땅에 쓰러졌다.
천제의 입가에서도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고 옷과 머리카락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온몸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운요는 공격은 너무나도 강했다.
천제현이 그녀를 이기긴 했지만 정말 간발의 차이였다.
운요의 모습은 더욱 비참했다.
머리카락은 심하게 헝클어졌고, 얼음장처럼 아름다운 얼굴은 크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녀는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그럴 배짱이 있다면 날 죽여봐!”
‘참나, 이 여자는 굽힐 줄을 모르는군!’
천제현이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그녀가 일어나 다시 덮쳐왔다.
‘젠장, 성격 정말!’
그녀가 죽기 살기로 천제현에게 달려들었다.
‘뭐, 상관없지. 저번에도 이런 적이 있던 거 같은데…….’
천제현은 지칠 대로 지친 그녀를 간단히 제압했다.
“승복하지 않겠다?”
천제현이 운요를 가볍게 바닥에 눕히더니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때렸다.
“네가 승복할 때까지 때려줄 테다!”
순간 운요는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감히…… 내 엉덩이를 때리다니!’
운요가 분노하거나말거나 천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언젠가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겪었는데, 그게 언제였는지 골똘히 생각할 뿐이었다.
‘아! 기억났다. 큰아가씨 때였구나!’
운요는 사대공자 중 한 명으로 어렸을 때부터 공주 대접을 받으며 지내왔다.
그녀는 성격이 매우 터프하고 제멋대로여서 걸핏하면 남을 괴롭혔다.
그런 그녀가 어찌 괴롭힘을 당해 봤겠는가?
그런데 지금!
그것도 남자에게 엉덩이를 맞고 있었다!
찰싹!
천제현이 그녀의 엉덩이를 힘껏 내려쳤다.
그 유명한 사대공자 중 하나를 이렇게 손봐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천제현이 다시 한 번 물었다.
“갈 거야, 말 거야?”
운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노려봤다.
“안 가!”
천제현이 다시 한 번 그녀의 엉덩이를 때렸다.
운요는 완전히 넋이 나가 울면서 말했다.
“날 이렇게 모욕하다니!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반드시 널 죽여 버릴 거야!”
“네가 남을 모욕하는 건 당연한 거고, 남이 널 모욕하는 건 안 되는 일인가? 남을 모욕한 자는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당하는 법! 이런 말 못 들어봤어?”
천제현은 여자라고 봐주지 않았다.
그는 또 그녀의 엉덩이를 매섭게 내리쳤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묻는다. 갈 거야, 안 갈 거야?”
“차라리 날 죽여라!”
“아이고, 정말 고집불통이군!”
천제현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쩔 수 없군. 걱정 마. 난 널 죽이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난 남을 괴롭히는 걸 좋아하거든.”
“네가…… 감히!”
“감히 뭐?”
천제현이 흉악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결정했어. 널 범한 후, 너의 마력을 폐하고 얼굴을 훼손시켜 주지!”
세상에 변태가 많다지만 이렇게 심한 놈은 본 적이 없었다.
“너…… 이 변태 자식!”
운요는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멈춰! 감히 나한테 그런 짓을 저질렀다가는 죽어서도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운요는 치욕을 당하고 계속 살아갈 용기가 없었다.
“내가 못할 것 같아?”
천제현의 말투에는 연민 따위는 없었다.
“정말 마지막으로 묻는다. 갈 거야, 안 갈 거야?”
운요가 하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
“그래…… 갈게!”
천제현이 다시 그녀의 엉덩이를 세차게 때렸다.
“잘못했지?”
운요는 화가나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그래. 내가…… 잘못했어.”
천제현이 또 엉덩이를 때렸다.
“내게 복수 할 거야?”
운요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일었다.
“닥쳐! 내 너의 몸을 수천 개로 찢어 버려 잘근잘근 씹어 먹고 너의 피를 모조리 다 마셔 버릴 테다!”
“망할, 독한 계집이군. 아직도 상황판단이 안 되나?”
천제현이 운요의 옷을 벗기는 척했다.
“어쩔 수 없군. 후환을 남겨서는 안 되겠어. 내 스타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눈 딱 감고 해버려야지!”
“멈춰, 멈추라고! 복수 안 할게. 복수 안 한다고!”
운요의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빨리 손 치워!”
“정말 복수 안 할 거야?”
“안 한다니까!”
“좋아, 한 번 믿어보지!”
운요는 엉덩이가 화끈거렸고, 마음속에서는 분노가 끓어 넘쳤다.
‘내가 복수를 안 할 것 같아? 절대 그럴 일 없어! 이 고묘에서 나가는 순간 널 죽여 없애 버릴 테다!’
천제현이 어찌 그녀의 속내를 모르겠는가?
그저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뭐해? 앞장서지 않고? 왜? 엉덩이가 또 근질근질하냐? 좀 문질러 줄까?”
운요의 얼굴이 엉덩이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어금니가 부서질 정도로 세게 깨물었다.
보물이 있는 곳은 그녀가 먼저 발견했다.
그런데 결국은 남 좋은 일을 하고만 것이다!
하지만 아직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 두고 보자!’
운요가 서슬 퍼런 눈빛으로 천제현을 노려보았다.
극히 평범하게 생긴 데다 명성조차 없는 놈이 성격은 어찌나 고약하던지 그녀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천제현을 미끼로 삼으려다가 오히려 자신이 미끼가 되어 버렸다.
운요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검은 궁전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은 궁전은 궁전들 중에서도 가장 가운데 위치해 있었고, 음기가 가득했다.
짙은 안개 속에서 고대의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저 안에서 보물을 취하기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았다.
운요는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이를 꽉 깨물고 있었다.
‘정말 내가 미끼가 되어 저 안의 괴물을 끌어내야 하는 건가? 보물이 저놈 손에 넘어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하나?’
운요가 모든 걸 체념하고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천제현이 뭔가를 발견하고 운요를 불러 세웠다.
“잠깐!”
운요가 영문을 몰라 멍하니 있을 때, 안개 속에서 폭발 소리와 함께 처절한 울부짖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안에 사람이 있었다.
“빨리 도망쳐!”
세 수련자가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뒤에는 괴상한 물체가 바짝 따라오고 있었다.
몸은 안개에 뒤덮여 있었고, 얼굴은 매우 추하고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손에는 푸른색 귀화(鬼火)가 타오르는 검은 삼지창을 들고 있었다.
괴물의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그가 지나가는 자리에는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천제현이 대경실색하여 말했다.
“귀야차(鬼夜叉)다!”
귀야차는 수천 년의 수련을 거친 악귀가 변해서 된 것으로 매우 두려운 괴물이었다.
만약 똑같이 봉인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면 운요는 귀야차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고묘 밖이라고 해도 귀야차는 예측 불가능한 힘으로 웬만한 혼성의 강자들은 능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크아!
귀야차가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운요는 순간 마치 바늘이 정신을 파고드는 듯한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눈앞이 순식간에 캄캄해지더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순간 모든 감각이 마비가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