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제90장 보물을 얻은 천제현
천제현이 섬에 착륙하자 살을 엘 듯 불던 돌풍이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성공이다!’
‘진짜 성공했어!’
석판길을 걷던 수련자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어린놈이 돌풍을 뚫고 섬에 착륙하다니!’
서둘러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천제현은 섬에 도착하자마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돌 탁자를 향해 달려갔다.
그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옥병과 반지를 품에 쑤셔 넣었다.
그 두 개의 보물 외에도 섬에는 족히 천 년은 된 것 같은 영약들이 널려 있었다.
적어도 몇백 개는 될 법했다.
전부 가져갈 수만 있다면 엄청난 부자가 되리라.
그러나 그때!
휘이잉!
돌풍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바람의 기세가 거세진 것이다.
‘이런! 시간이 없다!’
천제현은 정신없이 약초 몇 개를 뽑아 들고 달렸다.
성광이 그의 몸 주변에 응집되었다.
천제현은 다시 한번 불멸체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불사조가 날개를 펼치듯 높게 뛰어올라 석판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섬으로 뛰어갔을 때부터 다시 돌아올 때까지 몇 초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도 돌풍은 두 배로 강해진 것 같았다.
게다가 기세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콰지직!
무형의 칼바람이 세차게 몰아닥치자 천제현의 주변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3미터, 2미터, 1미터!
천제현이 석판길에 거의 도착했을 때, 성광불멸체가 빛을 잃었다.
그는 순식간에 예리한 돌풍을 맞아 대여섯 개의 큰 상처를 입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 시점에서 정신이 붕괴되어 끝없는 심연으로 추락했으리라.
그러나 천제현은 흔들리지 않고 마력을 운용하여 마침내 석판길에 착지했다.
천제현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어둠 속에서 돌풍이 미친 듯이 불어 닥치고 있었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줄 알았네. 좀만 느렸거나 정신줄을 좀만 놓았어도 영원히 이 세상과 안녕할 뻔했잖아!”
어찌됐든 보물을 손에 넣었다.
천제현은 품속에서 물건을 꺼내 살펴봤다.
그의 입가에 웃음이 걸려 있었다.
지금까지 이 죽음의 땅에서 보물을 손에 넣은 건 천제현이 유일하리라.
‘이 약초는 뭐지?’
생김새를 봐선 천 년은 된 약초 같았다.
아무리 평범한 약초라도 천 년 정도 살면 영약급의 보물이 되곤 했다.
그러나 그런 영약은 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고, 모든 수련자들이 탐을 내는 보물이었다.
천제현은 약초를 들어 냄새를 맡아봤다.
강력한 정기가 체내로 유입되며 소진한 마력이 즉각적으로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천제현의 눈이 반짝였다.
‘천년정원초(千年精元草)다!’
정원초는 흔히 보이는 약재로, 마력 회복을 돕는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마력의 소모는 승부를 가르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순식간에 마력을 회복시켜 주는 약재가 있다면 목숨이 두 개인 것과 같았다.
그런데 그냥 정원초도 아니고 천년정원초다.
약효가 얼마나 강하겠는가?
따로 조제 과정 없이 그대로 한 입 뜯어먹는다 해도 소진된 힘을 전부 회복시켜 주는 건 물론이고 마력 상승효과까지 가져올 것이다.
조금의 부작용도 없이!
천년정원초 갖고 있는 한 마력 걱정은 없을 것이다.
‘좋아, 좋아!’
음풍검객이니 거령거사, 자전공자들이 밖에서 얼마나 강할지는 몰라도 이제 이 고묘 안에서 천제현과 싸운다면 그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정원초 덕분에 전력투구를 할 수 있고, 마력 소모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옥병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천제현이 옥병을 꺼내자 맑은 향기가 주변을 채웠다.
병 안에는 은은한 빛을 내는 액체가 담겨 있었다.
‘이건…… 생명의 정수다!’
생명의 샘 하나에서 얻을 수 있는 생명의 정수는 겨우 몇 방울 정도였다.
생명의 정수는 그 어떤 상처라도 치료하는 효능을 갖고 있었다.
물론 연체술사에게 한정된 얘기지만, 마력이 약한 자는 이 정수를 한 모금만 마셔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게 다가 아니야!’
천제현은 옥병의 재질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단순한 용기 같지 않아 자세히 살펴보니 병 아래에 오래된 마력진이 새겨져 있었다.
천제현은 그게 무슨 마력진인지 한눈에 알아보고 기쁨을 참지 못했다.
“그야말로 생명의 병이로군!”
옥병의 그려진 마력진은 생명의 정수를 만드는 마력진이었다.
물론 마력진만으로 생명의 정수를 만들 수는 없었다.
이 옥병이 생명의 정화를 흡수하는 옥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말해, 이 옥병만 있으면 생명수를 끝없이 다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연적인 방법으로 생명의 정수를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몇 주, 심지어는 몇 달이 걸려야 겨우 한 병을 채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병을 천남성 밖에 있는 생명의 샘 안에 넣는다면 한두 시간 안에 생명의 정수를 가득 얻을 수 있으리라!
생명의 정수는 엄청난 값을 자랑했다.
그런 생명의 정수를 끝없이 만들 수 있는 옥병이라면 작은 도시 하나를 살 만한 값어치는 될 것이다.
이제 천제현은 마지막 보물인 반지를 살펴보았다.
반지는 예리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천제현은 반지에 새겨진 마력진이 왠지 낯익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는 그 반지를 오른손 둘째손가락에 꼈다.
‘완벽해!’
목숨을 걸기는 했지만 그럴 가치가 있는 보물들이었다.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저 욕망에 가득 찬 시선으로 천제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까지 모두가 실패했는데, 이놈만 살아서 돌아왔어!’
‘대체 어떻게 한 걸까?’
천제현이 보물을 손에 넣은걸 보니 수련자들의 배가 아파왔다.
무엇보다도 짜증나는 건 저놈이 보란 듯이 자신의 수확 품을 늘어놓고 자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 저 보물들을 봤소?”
수염을 기른 거구의 사내가 분노한 눈빛으로 이를 갈며 말했다.
“저놈이 저걸 혼자 차지하게 둘 순 없지 않소!”
또 다른 수련자도 소리쳤다.
“옳은 말이오! 우리도 나눠 가져야 하오!”
이 둘이 입을 열자 모두가 탐욕으로 눈이 시뻘개졌다.
“빨리 내놔!”
“반지는 내 거야!”
“난 저 옥병을 갖겠다!”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은 하나같이 탐욕에 사로잡혀 천제현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저 애송이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혼자 힘으로 모두를 상대하진 못하리라.
수염을 기른 사내가 소리쳤다.
“말해두겠는데, 난 혼성술사다. 나한테 그 보물은 내게 어울리는 것들이란 말이다! 어서 내놓거라!”
“억울해도 어쩔 수 없어!”
“누가 모두가 있는 앞에서 보물을 자랑하래?”
“물건만 내놓으면 목숨을 살려주겠다!”
천제현은 하이에나 같은 수련자들을 조용히 지켜봤다.
그의 입가에 경멸의 냉소가 떠올랐다.
그 순간.
오른손에 낀 반지에서 강렬한 진동이 일더니 날카로운 기운이 일거에 폭발했다.
“엄청난 기운이다!”
수염을 기른 사내는 반지를 보고 흥분해서 소리쳤다.
“저건 내가 반드시 가져야겠다!”
“이걸 갖고 싶어?”
천제현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그럼 가져가 봐!”
천제현이 손을 휘두르자 연청색 검기가 발사되었다.
수염 난 사내는 그 검기를 정통으로 맞고 몸이 둘로 갈라졌다.
그와 일직선상에 서 있던 네다섯 명의 수련자들 역시 깔끔하게 몸이 잘렸다.
그들은 그대로 심연으로 떨어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련자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 애송이의 실력이 저렇게 대단하단 말인가?’
‘아니다. 반지가 대단하다고 보는 게 맞다!’
반지에서 나온 그 검기의 위력은 혼성 1성 수련자가 전력을 다한 일격과 맞먹을 만했다.
고묘의 금제로 인해 혼성 경지의 힘을 쓰지는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반지의 힘일 것이라는 추측에 확신이 더해졌다.
‘저 애송이가 저 정도의 힘을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이건 분명…… 저 반지의 힘이다!’
천제현은 차가운 눈으로 앞에 있는 수련자들을 쏘아보았다.
“자, 보물이 여기 있다! 가져가 봐!”
그러나 수련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을 크게 뜬 채 아무도 입을 떼지 못했다.
천제현이 두려워 아무도 앞에 나서는 자가 없었다.
“꺼져!”
주변을 에워쌌던 수련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길을 열었고 천제현은 위풍당당하게 그 사이를 걸어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천제현이 속해 있는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섭리가 지배하는, 말 그대로 힘이 최고인 곳이다.
엄청난 전투력을 보여준 그의 앞에 누가 감히 나설 수 있겠는가?
빠르게 그 자리를 뜬 천제현은 자세히 반지를 살펴봤다.
이 반지의 위력은 과연 엄청났다.
마력을 주입하면 바람의 검기를 모으는데, 그 힘은 혼성 1성 수련자의 검기와 맞먹었다.
게다가 그 위력은 고묘 금제의 영향조차 받지 않았다.
연체술사로 하여금 혼성 경지의 공격을 할 수 있게 하는 반지!
연체술사에게 이보다 귀한 물건은 없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현재 단계의 천제현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게 해주는 보물이었다.
천제현은 방어력이 뛰어났지만, 공격력은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제 검기 반지가 천제현의 공격력을 크게 높여주리라!
천제현은 계속 앞을 향해 걸었다.
주변에는 여전히 수많은 보물들이 나타났다 사라졌지만, 십 장 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건 거의 없었다.
게다가 몰아치는 돌풍의 기세가 갈수록 격렬해지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주변에 보이는 보물들 역시 값을 따질 수 없는 귀한 물건이었지만, 목숨을 바칠 정도는 못 됐다.
성공률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경솔하게 또 한 번 모험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마침내, 석판 길의 끝에 도달했다.
천제현은 빛의 문을 통과해 2층으로 올라갔다.
1층인 죽음의 심연을 통과하자 2층, 원령의 전당 문이 열렸다.
끝없는 허무의 공간이 사라지고 천제현은 낡은 궁전들이 나타났다.
먹구름이 시야를 가려 10미터 너머로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음산한 바람이 수시로 불며 잿빛 안개를 흔들었다.
게다가 수시로 찢어질 듯한 귀곡성도 들려왔다.
귀면노자는 1층과 2층의 난이도는 원래 별로 높지 않았지만, 많은 수련자들이 고묘 안에서 목숨을 잃으면서 점점 더 위험해졌다고 말했다.
고묘 안에서 죽은 수련자들은 승천하지 못하고 영혼이 묶이기 때문에 원념이 강해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원령전 안에서 악령이 된다.
그리고 악령들은 살아 있는 수련자들을 몹시 질투하여 마주칠 때마다 미친 듯이 달려든다는 것이다.
천제현은 자신을 둘러싼 안개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사방에서 끊임없이 처량한 울부짖음이 들려와 사람의 심지를 흔들어 놓았다.
이것은 보통 안개가 아니다.
사악한 힘을 지닌 귀무(鬼霧)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