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
제89장 죽음의 심연
천제현은 그의 말을 머릿속에 잘 새겨두었다.
“죽음의 심연을 통과하면 2층인 원령의 전당에 갈 수 있다네. 원령의 전당에는 악령들이 출몰하네. 사실 예전에는 2층이 그렇게 힘든 관문은 아니었다고 들었네. 다만 실력이 부족한 자들이 거기서 목숨을 잃었고, 그렇게 죽은 수련자들이 승천하지 못하고 원령이 되어 보물을 찾으러 온 수련자들을 공격하게 됐다지. 그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위험한 곳이 될 수밖에.”
채향은 조금 걱정이 되어 눈썹을 찡그렸다.
“그럼 2층을 어떻게 통과해야 되죠?”
귀면노자는 대답했다.
“전당 안에 있는 보물에 신경 쓰지 말고 되도록 빨리 통과해야 하네. 오래 머물면 안 돼. 명심하게.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요괴들의 이목을 끌게 된다는 걸 말이야. 가장 빠른 속도로 지나가야 하네!”
“그럼 3층은요?”
“3층이야말로 진짜 만시고묘일세. 우리는 3층에서 만나기로 하세.”
채향은 흥분해서 말했다.
“그럼 빨리 들어가요!”
“잠깐만요.”
천제현이 부적 주머니를 끄르더니 안에서 부적 한 개를 꺼냈다.
“1급 빛 속성 부적이에요. 잘 갖고 있다가 위험할 때 사용해요. 만에 하나를 대비해야지요.”
채향은 감동해서 말했다.
“고마워!”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채향과 오래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동료이니 돌봐주는 게 당연했다.
채향은 그렇게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고묘의 금제 때문에 내부로 들어온 자들 모두가 혼성 경지 아래의 실력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괴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채향은 추수검을 갖고 있는 데다 이제 1급 부적도 생겼으니 어느 정도 안심해도 되리라.
“가자!”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빛의 문 안으로 들어갔다.
찰나의 시간 동안 주변 환경이 180도 변했다.
모든 장면과 소리가 사라지는 듯싶더니 온도가 10도 이상 떨어지고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리고 어둠과 허무의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은 깊으면서도 신비롭고, 광활하면서도 적막했다.
인간의 태곳적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장소였다.
천제현은 두 다리가 붕 뜨는 것을 느꼈다.
그는 검은색 석판 위에 서 있었는데, 그 아래는 끝도 없는 심연이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수없이 많은 석판들이 허공에 떠 있는 게 보였다.
높이는 각각 달랐지만, 수많은 석판들이 긴 도로를 만들며 시야 끝까지 뻗어 있었다.
‘환술진법인가?’
천제현은 두 눈을 감고 심안을 떴다.
환술진법이라고는 해도 규모가 너무나 커서 거리적 한계 때문에 틈을 발견할 수 없었다.
‘대단하군, 대단해. 현실과 환상을 완벽하게 섞어 버렸어. 이 만시고묘를 설계한 사람의 실력이 보통이 아닌걸?’
“여기가 바로 말로만 듣던 죽음의 심연이구나!”
“모두 양쪽 심연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
“발을 헛디디면 심연에 먹히게 돼. 그럼 영원히 고묘에 묶여 환생할 수 없다고.”
수련자들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전진하려고 할 때, 허공에서 돌풍이 불어 닥쳤다.
돌풍이 어찌나 강력한지 소 한 마리쯤은 거뜬히 날려 버릴 것 같았다.
몇 명의 청년들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돌풍에 휘말려 석판 길에서 떨어졌다.
“으악!”
“사람 살려!”
“살려줘!”
그들은 놀라 팔다리를 휘저었지만, 다시 석판에 오르지 못하고 끝없는 심연으로 추락했다.
비명 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어느 순간 사라졌다.
‘사라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 있던 사람이 이렇게 쉽게 사라진 것이다.
마치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급히 마력을 운용해 몸을 보호하면서 돌풍에 휘말리지 않도록 신경 썼다.
‘정말 무서운 곳이다.’
실수로 발이라도 헛디디면 참혹한 결과가 기다릴 것이다.
사람들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천제현은 허공에 떠 있는 석판을 밟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저길 봐!”
“마력석이다!”
“진짜 많아!”
몇몇 수련자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자세히 살펴보니 석판 길의 양끝 허공에 무수히 많은 정석들이 박혀 반짝거리고 있었다.
‘마석이다! 전부 마석이야!’
수천 개의 마석!
이것은 혼성술사들도 미쳐 버리게 할 만큼 거대한 재화였다.
시장에 가면 하품 마석 하나도 최소 금화 만 냥 이상이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마석의 가치를 모두 더하면 금화 수천만 냥은 되리라!
그야말로 놀라운 액수가 아닐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값을 따져본 천제현은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귀면노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죽음의 심연에서는 많은 유혹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그 유혹 중 대부분은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며, 헛된 욕심을 부렸다간 죽음을 마주하게 될 뿐이라고 했다.
‘돈이 아무리 좋아도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지!’
천제현은 마음을 부여잡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이때.
얼굴 가득 수염이 숭숭 난 한 남자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보물이다! 보물이 엄청 많아!”
‘보물?’
천제현은 고개를 들었다.
오래된 구리거울이 허공에 뜬 채 돌풍을 맞아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거울 표면에는 복잡한 주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언뜻 봐도 매우 진귀한 물건 같았다.
게다가 거울까지의 거리도 채 10장이 되지 않아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손을 뻗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거울뿐만 아니라 주변에 점점 더 많은 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음 같은 빛으로 반짝이는 보검.
피처럼 붉은 보도.
눈부시게 번쩍거리는 갑옷 등 진귀한 물건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이 보물들은 모험가들의 유품인가, 처음부터 고묘에 있던 것인가?
어쨌든 하나같이 세상에 둘도 없는 장비들이라 보는 이의 피를 끓게 했다.
그러나 천제현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보물이 유혹적이라고는 해도 손에 넣으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으니까.
물론 눈앞에 있는 보물들은 돈이 산더미처럼 있어도 구할 수 없는 귀한 것들이었지만, 그걸 위해 목숨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길 양쪽에서는 여전히 강한 돌풍이 불고 있었다.
이 돌풍에 휘말리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날아가리라.
천제현은 계속 앞을 향해 걸어갔다.
주변에는 더 귀한 보물들이 나타나 수련자들을 유혹했다.
한 수련자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순음초(纯阴草)다! 순음초가 있다니!”
주변 허공에 부서진 석판들이 섬처럼 떠 있었다.
석판으로 된 섬 위에 진귀한 약재들이 자라고 있었다.
순음초는 매우 귀한 영약이었다.
고작 십여 장 떨어진 작은 석판 위에 수십 개의 순음초가 빽빽이 자라있는 걸 발견한 수련자는 미친 듯 흥분했다.
“순음초만 있다면 극음검기(極陰劍氣)에 도달할 수 있어! 저건 내 거야! 아무도 손댈 수 없어!”
수련자는 낮게 중얼거렸다.
이윽고 그의 몸에서 흰색 마력의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그가 순음초 석판으로 몸을 날렸다.
10장!
9장!
8장!
갑자기 수련자의 마력이 빠르게 사라졌다.
석판 길에서 멀어질수록 돌풍의 기세가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연체9성의 마력으로는 그 돌풍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목표까지의 거리가 약 다섯 장 정도 남았을 때 수련자의 마력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깜빡거리다가 결국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안 돼! 안 돼!”
수련자는 소리를 지르며 돌아가려고 했지만, 돌풍에 휩싸여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짙은 어둠 속에서 처참한 절망의 울부짖음이 들렸다.
옆에서 그의 결말을 본 수련자들은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것 같았다.
‘어렵다! 너무 어려워! 보물이 이렇게 많은데 단 하나도 손에 넣기 힘들구나.’
천제현의 눈빛이 흔들렸다.
심안을 지닌 그는 돌풍의 변화를 알아챌 수 있었다.
이 돌풍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강해졌다 약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돌풍이 가장 약할 때 손을 뻗으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수련자들은 계속 앞을 향해 걸어갔다.
그 과정에서도 몇 번의 비극이 있었다.
전부 보물을 탐내다가 돌풍에 휩싸인 자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보물을 잡기까지 했지만 돌아오는 과정에 바람을 맞고 날아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죽음의 심연은 그야말로 인간의 탐욕을 이용해 유혹한 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곳이었다.
그러나 냉정한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천제현은 돌풍의 규칙에 대해 100% 파악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이때 또 하나의 작은 석판 섬이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그 섬에는 옥빛 약초들이 가득 자라 있었고 가운데에 돌 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투명한 옥병과 반지가 있었다.
거리는 약 칠 장.
투명한 옥병에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음에도 몸에 난 작은 상처들이 회복되는 것 같았다.
또한 반지에서는 예리한 기가 느껴졌다.
엄청난 보물임이 분명했다.
주변의 옥색 약초들 역시 유혹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사실 아주 일반적인 약초더라도 수백 년, 수천 년이 지나면 영약이 되는 게 당연했다.
이 작은 섬에는 그런 영약들이 가득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동하지 않을 자, 그 누가 있겠는가?
보물이 주변에 산처럼 쌓여 있는데!
바로 이때, 미친 듯 불던 돌풍의 기세가 꺾였다.
천제현은 바람의 변화를 꿰뚫고 있었다.
‘지금이다!’
작은 섬이 몇 보 거리까지 다가왔을 때, 그는 석판 길에서 뛰어올라 섬으로 몸을 날렸다.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은 깜짝 놀라 웅성거렸다.
‘아직도 욕심을 못 버린 자가 있다니!’
‘목숨이 아깝지도 않나?’
수련자들은 걸음을 멈추고 연민의 눈길로 불에 뛰어든 불나방을 바라보았다.
석판에서 도약한 천제현의 몸 주변에 성광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스산한 돌풍이 칼날처럼 밀어닥치며 천제현을 공격하자 성광도 순식간에 옅어지며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돌풍이다!’
성광불멸체를 지닌 천제현조차 힘이 들 정도니 보통 육신을 지닌 일반인이었다면 벌써 몸이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돌풍의 힘이 약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날카로웠다.
‘이것도 함정이었을까?’
강력한 방어 무공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돌풍의 규칙을 깨달았다 할지라도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으리라!
그러나 천제현은 돌풍을 이겨낼 능력이 있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전방의 섬을 향해 전진했다.
5미터!
3미터!
1미터!
성광불멸체의 힘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천제현은 마침내 그 섬에 도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