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
제88장 만시고묘로 향하는 길
전당은 유적 깊은 곳에 우뚝 솟아 있었다.
반은 외부에, 나머지 반은 산 안에 들어가 있었고 주변에는 사악한 안개와 함께 어둠과 죽음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휙!
휙!
수많은 수련자들이 전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여기가 바로 만시고묘의 입구인 것이다.
귀면노자도 일행 넷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은 매우 컸는데, 중앙에는 100미터 높이의 요괴 석상이 놓여 있었다.
그 요괴 석상의 모습은 매우 흉측했으며, 팔이 여섯 개나 달려 기괴한 느낌을 자아냈다.
100여 명의 수련자들이 석상 주변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기둥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고묘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귀면노자 일행도 옥기둥 위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쉬었다.
그때 한 거한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거 귀면노자 아니신가? 우리 남하국의 유적에 대주국 사람이 무슨 볼일이 있어서 왔지?”
한 중년 남자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 자도 암시장 사람으로 꽤나 유명한 인물이었다.
“거령거사 양곤, 음풍검객 만무일?”
귀면노자는 자신에게 다가온 두 명을 슥 훑어봤다.
그의 눈빛에 꺼리는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능력 있는 자가 보물을 얻는 법. 그대들은 와도 되고 나는 오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그때 상대를 본 채향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양곤과 만무일?”
천제현은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
“저들을 알아요?”
채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중주성에서도 유명한 수련자들이야. 실력이 엄청나대. 우리 아버지가 저 둘을 식객으로 초대하려고 했었는데 실패했지.”
천제현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가 놀란 건 앞에 있는 두 사람의 정체 때문이 아니었다.
거령거사, 음풍검객 이 두 사람은 딱 봐도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채향의 아버지는 대체 어느 정도의 인물이길래 이 둘을 문객으로 초대한단 말인가?
대머리 거한, 양곤이 껄껄거리며 말했다.
“능력 있는 자가 보물을 얻는 법이라고? 좋지! 고묘 안에 오래된 강시 병사가 있다고 들었다. 그 병사만 손에 넣으면 천하를 제패할 수 있다지? 그건 내가 가져갈 것이다!”
중년 남자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시 병사? 난 관심 없다! 내가 원하는 건 유명검(幽冥劍)이야! 그 검을 손에 탐내는 자는 내가 가만히 두지 않겠다!”
“하하하!”
밖에서 낭랑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멀리 들렸다 가깝게 들렸다 하는 것이 고수 같았다.
“아직 고묘의 문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자기 몫을 나누고 있다니! 누가 보면 비웃겠군!”
여인의 목소리였다.
몹시 아름다운 음색이었으나 날카로움과 오만함이 느껴졌다.
음풍검객이 분노하며 말했다.
“누구냐!”
갑자기 수련자들 주위로 쉴 새 없이 번개가 쳤다.
수천 개의 번쩍이는 번개가 대전을 수놓자 자리에 있던 자들이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수많은 번개가 대전 중앙으로 모이더니 사람의 형체를 띠기 시작했다.
이내 번개 속에서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보라색 옷을 걸친 여자는 대략 스무 살 정도로 보였다.
얼굴을 얇은 보라색 천으로 가리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보이는 옥처럼 희고 매끄러운 피부가 눈에 띄었다.
그녀에게 느껴지는 기운은 거칠고 포악하며 아무 곳에도 얽매이지 않고 제멋대로 날라 다니는 번개 같았다.
“중주성 사 공자 중의 하나라는 자전공자(紫電公子) 운요?”
“이런 젠장, 저 여자가 여긴 왜 왔지?”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군!”
“…….”
채향은 소곤거리며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해주었다.
“중주성 사 공자는 중주의 젊고 유능한 네 명의 천재들을 부르는 말이야. 천검공자(天劍公子) 초성하가 첫째고, 자전공자 운요가 넷째지. 사 공자 중에서 유일한 여자야. 넷째라고는 해도 실력이 엄청나. 아주 독특한 번개 정령을 갖고 있어서 번개를 조종할 수 있거든. 파괴력이 어마어마하대.”
만무일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중주성에나 있지 않고 여긴 무슨 일로 왔느냐?”
운요는 그 말에 조금의 동요도 없이 말했다.
“온갖 쥐새끼들까지 다 왔는데 나라고 못 올 이유가 뭐지?”
만무일은 분노해서 소리쳤다.
“뭐라고?”
운요의 몸 주변에 다시 한 번 번갯불이 번쩍거렸다.
“왜? 억울하면 덤벼 보시든가!”
중주 사 공자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타고난 천재들이 어릴 때부터 가문의 집중 양성을 받아 만들어진 인재들이며, 단계를 뛰어넘는 도전도 식은 죽 먹듯이 해온 인물들이다.
만무일은 화가 치솟았지만, 사 공자 중 한 명인 그녀에게 싸움을 걸 생각은 없었다.
“흥, 난 고묘에 보물을 찾으러 왔을 뿐, 너 같은 시정잡배에게는 볼일 없다!”
운요는 코웃음을 쳤다.
“한심하긴!”
그러나 만무일은 고개를 푹 숙이고 못 들은 척했다.
이때, 운요가 기둥에 앉아 있는 천제현 일행에게 다가왔다.
“그 자리는 내 거야! 꺼져!”
천제현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해도 너무하는군!’
남궁혜도 한 성깔 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의리를 아는 여자였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그야말로 안하무인 격 아닌가?
“자전공자가 이 자리를 원한다니 양보해 드려야지!”
귀면노자는 이 여자와 부딪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두려워서는 아니고 운씨 가문의 세도 때문이었다.
어쨌든 여기는 남하국이니까.
염귀, 빙마, 귀면노자가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천제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운요는 천제현을 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안 비켜? 내가 비키게 해줄까?”
운요의 주변에 번갯불이 번쩍거렸다.
채향은 덜컥 겁이 나서 천제현을 잡아끌며 귓속말을 했다.
“영웅은 눈앞의 모욕을 참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야. 가자!”
운요의 수행은 적어도 혼성 3성은 될 것이다.
지금의 천제현으로서는 그녀를 이길 방도가 없었다.
채향의 말이 맞다.
‘눈앞의 모욕은 참고 나중에 되갚아 주자!’
귀면노자 일행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
운요는 요란하게 기둥 위에 앉더니 도발하는 듯한 시선으로 천제현을 한 번 째려보며 거만하게 말했다.
“하나같이 겁쟁이들이군. 이렇게 담이 작아서 무슨 고묘의 보물을 얻겠다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까지 달려들다니! 나중에 울지 말고,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빠는 게 좋을 텐데?”
귀면노자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이번 모험에 천제현을 끌어들이면 열에 아홉은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거령거사, 음풍검객, 자전공자 셋 모두 엄청난 실력자들이었다.
이 밖에도 숨겨진 고수가 있을 지도 모를 일 아닌가.
이번 모험이 쉽지 않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천제현은 침울한 표정으로 자전공자를 쳐다봤다.
‘넌 고묘 안에서 날 마주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랬다간 좋은 일 없을 테니 말이야!’
거령거사, 음풍검객, 귀면노자, 자전공자는 모두 뛰어난 실력자들로 이번 모험에서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거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시고묘에 들어가면 고묘 내부의 금제와 함정만 조심하면 되는 게 아니다.
수련자들 간의 속고 속이는 신경전을 더욱 조심해야 한다.
만시고묘는 봉쇄된 금역으로, 안에서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봤을 때 이번 모험의 난이도가 결코 낮은 것 같지는 않았다.
채향은 천제현 옆에 붙어 작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기분 풀어. 운요는 보통 여자가 아니야. 뒷배경도 엄청나니까 웬만하면 안 건드리는 게 좋아.”
그러나 천제현은 방금 일을 까맣게 잊은 듯 헤헤거렸다.
“상황파악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대충 알 것 같아요.”
채향은 그 말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이 소년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건 아니지만 그의 종잡을 수 없는 성격만큼은 잘 알고 있었기에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운요는 중주의 사 대 가문 중 하나인 운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천씨, 낙씨, 양씨, 운씨 가문으로 구성된 중주 사 대 가문은 어느 하나 만만한 가문이 없었다.
그러니 방금처럼 작은 일 하나 때문에 자전공자와 척을 진다는 건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이었다.
운요를 이길 수 있다 해도 운씨 가문의 눈 밖에 나서 좋을 일은 없으니까.
단, 채향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천제현은 나중 일 따위 걱정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과 이미 그가 사 대 가문 중 세 개를 건드렸다는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운씨 가문 하나 더 건드린다고 딱히 달라질 것도 없었다.
두 시간가량이 흘렀다.
갑자기 대전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대전 한가운데 위치한 요괴 석상이 천천히 눈을 떴다.
강력한 기가 하늘을 꿰뚫을 듯했다.
그 모습을 본 모두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드디어 때가 됐군!’
“팔비마가 눈을 떴어. 만시고묘가 열렸네!”
귀면노자는 때가 됐음을 깨닫고 벌떡 일어났다.
“자, 모두 힘을 내보세. 고묘 안에 있는 보물은 먼저 찾은 사람이 갖는 걸로 하지. 어떤가?”
자전공자 운요는 코웃음을 쳤다.
“그럼 뜸 들이지 말고 빨리 움직이자고!”
경지가 높은 수련자 몇 명이 동시에 마력을 방출하자 지면이 조금 흔들리는 것 같더니 주문들이 나타나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주문들은 마치 거미줄처럼 사방에 퍼졌다가 대전 끝에 모였다.
대전 벽에는 10미터 크기로 마수 머리가 조각되어 있었다.
수련자들이 조각에 마력을 주입하자 금속 질감의 조각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눈에서 빨간 빛을 내뿜으며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 입안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보라색 통로가 나타났다.
고묘가 열린 것이다!
수련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거령거사는 마음이 급해져 제일 먼저 고묘령을 들고 고묘 내부로 들어갔다.
문에 들어선 그의 몸이 보라색 빛에 휘감기는가 싶더니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고묘가 열렸다!”
“들어갑시다!”
수련자들이 하나둘씩 빛나는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귀면노자는 천제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바로 고묘의 전송문이라네. 안으로 들어가면 고묘 1층에 무작위로 전송되지.”
천제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작위로 전송된다고요?”
“그래. 어디 떨어질지 모른다네.”
귀면노자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묘 1층은 죽음의 심연이라고 부르네.”
천제현이 물었다.
“그곳은 어떤 곳인가요?”
“지금까지의 정보에 따르면 죽음의 심연에는 돌풍이 자주 불어 닥친다고 하네.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돌풍을 만날 확률도 높아지겠지. 그러니 돌풍에 휘말려 심연으로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네. 심연에 빠졌다간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으니까 말이야.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난이도가 높은 관문은 아니지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만나게 된다고들 하지. 그러니 명심하게. 그 어떤 유혹을 만나더라도 섣불리 달려들어서는 안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