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제84장 혼영과
얼마 지나지 않아 항호가 신바람이 난 모습으로 뛰어나왔다.
양손에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었다.
몸체에서는 검정빛이 났으며 강력한 파동을 발산하고 있었다.
“하하하! 강시 내단 수십 개로 금화 1만 냥 이상짜리 정령급 무기를 샀어! 정말 날아갈 것 같군! 이 무기가 있으니 내 실력이 아마 배로 늘어날 거야!”
귀신 가면을 쓴 노인의 눈빛에서 순간 깔보는 듯한 기색이 드러났다.
‘하긴 소국의 자유 수련자니 세상 물정을 모르겠군. 그저 평범한 정령급 무기에 지나지 않은데 말이야. 대주국에 이런 무기는 널리고 널린 걸 모르고 말이야.’
천제현이 채향에게 물었다.
“아가씨는 무엇으로 바꿀 건가요?”
채향은 막막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추수검은 정령급 무기에 속했다.
게다가 무공도 부족하지 않으니 무엇으로 바꿔야 좋을지 몰랐다.
“난 그냥 단약으로 바꿀래!”
귀신 가면을 쓴 노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우측 두 번째 방에 가셔서 직접 고르십시오.”
얼마 있다가 채향이 나왔다.
손에 단약통 하나를 들고 즐거워하며 말했다.
“여기에 홍안단(紅顔丹)이 있다니. 이 귀중한 보물은 중주성에서조차 살 수 없다고!”
홍안단은 마력 증강에 어떠한 효능도 없다.
이 단약은 단순히 미용을 위한 단약이었다.
항호는 아연실색했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강시를 죽였는데, 홍안단으로 바꾸다니요!”
채향은 고운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그럼 어때서요? 여인에게 미모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천제현도 약간은 어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전혀 뜻밖이지는 않았다.
채향의 신분은 수수께끼였다.
변신술을 하고 상품의 정령급 무기를 갖고 있었다.
돈이 모자라지도, 무공이 부족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어느 명문가의 귀하신 따님이 몰래 모험을 즐기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영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러한 사람은 생각 자체가 일반인과 다르다.
천계현은 강시 내단을 노인에게 주었다.
“전 재료로 바꾸겠어요.”
귀신 가면을 쓴 노인이 주머니를 풀어보더니 눈동자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노인은 주머니 안에서 강시 내단 한 알을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것은 백 년 묵은 강시의 몸에서 채취한 것이 아닌가!’
노인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품질이 좋군요! 절 따라 오십시오!”
귀신 가면을 쓴 노인이 천제현을 데리고 우측 첫 번째 방으로 직접 안내했다.
족히 5~600개에 달하는 수정관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수정관 하나하나마다 진법을 새겨 넣어 영약 기운의 유출을 예방했다.
수정관 안에는 영약이 들어 있었다.
영롱한 빛이 반짝여 시선을 사로잡았다.
천제현은 순간 크게 놀랐다.
방안에 놓인 것은 모두 수백 년 이상 생장한 영약이기 때문이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천 년 가까이 된 것도 있었다.
일반 약초가 천 년 동안 생장하면 최상급 약재로 변한다.
천제현이 살던 시대에 대륙 인구는 지금의 백 배나 된다.
이미 개척한 대륙의 면적이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천 년급 보약을 찾기 힘들었다.
‘이렇게 대단한 약재들을 고작 이따위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니!’
천제현이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의 입장에서 보면 이 시대에서 천하의 재료와 보물을 개똥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것과 같았다.
천제현의 시선이 탁자 정중앙에 놓인 약단지 10여 개에 고정되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방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가치 있는 영약이었다.
이 가운데 세 개의 자색 열매는 크기가 주먹만 하고 아기처럼 생겼다.
영약에서 흐릿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천제현은 온몸이 떨었다.
“이건 혼영과(魂嬰果)!”
“어?”
귀신 가면을 쓴 노인이 깜짝 놀랐다.
“이런 소국에서 이 재료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천제현은 감격스러웠다.
아무것도 사지 못하더라도 이 혼영과만 얻게 된다면 암시장에 헛걸음 한 게 아닌 것이다.
이 재미난 물건은 지금의 천제현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천제현은 멀쩡한 듯 보이나, 실제로는 기력이 많이 쇠한 상태였다.
게다가 요 며칠 동안 수련하면서,혼성경을 돌파하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원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천제현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었다.
그 시간 내에 혼성 경지에 오르지 못하면 정신이 붕괴되어 죽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 물건을 발견했으니 급한 불은 끌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장비만 등급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재료도 등급과 품질로 엄격하게 나뉜다.
등급은 일반적으로 품종에 의해 결정된다.
재료 품질은 재료의 생장 연수의 영향을 받는다.
품질은 하급에서 고급까지 있으며, 이는 순서대로 약초, 영약, 성약, 선약, 신약으로 나뉜다.
일반 약초가 수백 년 이상 혹은 천 년까지 생장하면 영약이 된다.
1만 년 동안 생장하면 일반 약초는 성약으로 진화할 수 있다.
선약과 신약은 품종의 영향을 비교적 많이 받는다.
선천적으로 일반 품종의 약초라면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이 정도까지 진화할 수 없다.
약초가 어떻게 진화하든 품질이 어떻게 높아지든 등급은 기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다만, 약초의 진화 과정에서 품종마저도 진화할 뿐이다.
이곳의 재료는 대다수 1급 영약이었다.
그중 유일하게 혼영과만 2급 영약이었다.
동일하게 수백 년 동안 생장했다고 해도 2급 단약의 가치는 1급 단약보다 몇 배는 높다.
그래서 혼영과를 비롯한 몇 개의 2급 영약의 가치는 방 안에 있는 모든 약재를 합친 것보다 월등히 높았다.
천제현의 눈빛이 오랫동안 혼영과에 머물렀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노인이 모를 리가 없었다.
“혼영과는 고급 약재인 정령단의 주재료이지요. 연체9성 정점에 있는 자가 정령단을 복용하면 한계를 돌파할 가능성이 삼 할은 올라가지요.”
‘삼 할? 그렇게 낮아?’
낙후한 단약 조제 기술 때문일 것이다.
천제현은 자신이 직접 정령단을 제조할 경우 성공률을 적어도 8할까지는 끌어올릴 자신이 있었다.
연체9성의 정점에 오르기만 하면 다른 것 생각 않고 이 정령단을 통해 한계를 돌파하리라.
그렇게만 되면 바로 혼성 경지에 도달해 중주성 혼성술사 대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이 큰 유혹 앞에서 심장이 뛰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천제현은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혼영과는 매우 귀한 약재이다.
고작 하루 동안 모은 강시 내단 몇 개로 그 귀한 영약을 얻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쉽게 영약을 구할 수 있다면 혼성술사들 모두가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주국 상단의 영약들은 진즉에 털려 자신한테까지 차례가 왔을 리 없다.
천제현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다.
“혼영과는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이번에 행상들이 가져온 물건 중에 혼영과가 있지요. 가장 값비싼 재료 중 하나이지요!”
노인은 주머니에서 최상품 강시 내단을 꺼냈다.
천제현이 백 년 강시를 사냥해 얻은 강시 내단이었다.
“이 정도 품질의 강시 내단 100개 이상을 모아오거나 천년강시의 강시 내단을 구해온다면 한 알 정도는 교환해 주겠지요.”
‘최상품 강시 내단 백 개나 천년강시의 강시 내단?’
천제현은 어이가 없었다.
‘이 늙은이가 지금 농담하나? 사람 등골을 빼먹어도 정도가 있지!’
백 년 강시를 사냥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둘째치더라도, 백 년 강시를 100마리나 찾는 것은 일이었다.
그러니 천년강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강시협곡에 천년강시가 나타났다면 암시장은 진즉에 폐허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아니, 주변 도시와 본성까지도 그 파장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천년강시를 사냥해 오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다니.
2급 희귀 영약의 가치가 귀하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천년강시의 강시 내단을 대가로 요구하는 건 지나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제현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 혼영과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다.
“강시 내단은 더 없습니다만, 금화 50만 냥이라면 드릴 수 있습니다. 그걸로 혼영과 하나를 살 수 있을까요?”
“흥!”
노인이 코웃음을 쳤다.
순간 천제현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무형의 위압감이 일시에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노인은 대놓고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희 대주국 상단이 촌구석에서나 유통되는 저급 화폐를 받을 것 같소? 시간 낭비하게 하지 말고 빨리 고르시지요!”
‘역시나.’
금화 50만 냥은 그 누구라도 눈이 뒤집힐 액수였다.
2급 영약 역시 귀하다고는 하나 금화 50만 냥으로 못 살 물건은 아니었다.
그런데 대주국에서 왔다는 이 노인은 콧방귀를 뀌는 건 물론이고 짜증까지 내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이 노인의 경지는 남궁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니 억지로 빼앗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잘못해서 심기라도 건드렸다간 뒤끝이 좋지 않으리라.
“그럼…… 원령과나 한 개 주시지요.”
노인의 모습이 눈 깜짝할 새 휙 하고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천제현의 손바닥에 수정관 하나 놓였다.
그의 귓가에 차갑고 쉰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가보시지요!”
천제현은 미련이 남는 눈빛으로 탁자 위에 놓은 십여 개의 영약들을 쳐다봤다.
혼영과 외에도 하나같이 진귀한 것들이었다.
천제현은 한숨을 쉬면서 우울한 기분으로 그곳을 떠났다.
채향이 천제현을 보며 말했다.
“어? 원령과로 바꿔온 거야?”
그 말을 들은 천제현은 신기해서 물었다.
“예? 원령과를 아세요?”
채향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내가 이것저것 많이 먹어봤지. 그런데 그건 진짜 맛없어.”
원령과는 즉각적으로 마력을 높여주는 약재였다.
중주 경매시장에 내놓는다면 못해도 금화 3~5만 냥은 될 것이다.
‘그런 귀한 약재를 간식 먹듯이 먹었다고?’
사실 원령과는 따로 약으로 조제하지 않고 그냥 바로 먹어도 마력을 크게 높여주는 효능이 있다.
‘그런 것치고 채향의 마력은 별로 높지 않은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천제현은 몰래 심안을 사용하여 채향을 살펴보았다.
채향의 체내에는 과연 막대한 영기가 쌓여 있었다.
어릴 때부터 진귀한 약재들을 많이 복용한 게 확실했다.
‘그렇다면 마력이 훨씬 높아야 정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