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83화 (82/729)

# 83

제83장 암시장

천제현이 그를 불쌍하게 쳐다보았다.

백자묵은 이때다 싶어 외쳤다.

“내 형제가 암시장 영지에 있다. 너희가 감히 내 털 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네가 날 죽이면 네 삼족이 멸할 것이다!”

잔혹하고 악독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웃기는군! 내가 널 못 죽일 거 같아?”

천제현이 장검을 들었다.

“안 돼!”

백자묵의 단발마와 함께 차가운 빛이 그의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천제현은 검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이제 마지막 마력까지 다 소비한 것이다.

천제현은 기절할 것 같은 느낌에 서둘러 약제 주머니에서 회복 약제를 꺼내 마셨다.

채집, 항호는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너 정말 그를 죽였니?”

“백자묵의 형은 혼성술사야. 암시장 영지에서 대단히 유명한 사람이지. 그가 죽으면 우리는 아마도…….”

천제현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정말 너무 순진하시네요. 저놈은 동료를 팔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저놈을 풀어준다고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요? 그럴 바에야 죽이고 마무리 짓는 게 낫죠!”

두 사람 모두 멍해졌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소인배에다 악랄한 이 인간은 살려두어도 나중에 틀림없이 후환이 될 것이 뻔했다.

천제현은 몇 분 간 휴식을 취한 뒤에 말했다.

“주변에 강시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빨리 가죠!”

오늘 강시협곡은 너무 이상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엄청난 수의 강시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깨어났다.

협곡의 강시가 크게 늘었고 그 어느 때보다 광폭했다.

하지만 강시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백 년 이상 묵은 강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정말 위험한 순간들이 참 많았다.

황혼이 질 무렵이 되어서야 세 사람을 목적지에 도착했다.

천제현은 말로만 듣던 전설의 암시장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

피로 물든 석양 아래에서 칠흑같이 어두운 거대한 영지가 고즈넉하게 서 있었다.

협곡 깊은 곳에 엎드려 있는 마수처럼 안에서 밖으로 퇴폐와 난폭의 기운이 농후했다.

암시장은 암석 무더기를 빙 둘러싼 모양새로 형성되어 있었다.

바깥에는 깊이 파인 기다란 도랑이 있고 거기에는 각종 장애물이 놓여 있었다.

활을 든 흑갑무사 수백 명이 초소와 탑, 담장에서 지키고 서 있었다.

그들은 습격해 오는 강시에 대비해 철통 방어를 하는 중이었다.

영지 내부에는 바위와 집들이 초라하고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땅바닥은 정비가 안 된 채 자갈이 수두룩했고, 온갖 쓰레기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곳은 공기조차도 이상한 냄새를 품고 있었다.

거리에는 수련자로 가득했고, 다른 지역,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옷가지와 장신구들이 즐비했다.

암시장은 질서도 없었고 더욱이 법률적 장치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 완전한 무법 지대였다.

양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처럼 실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암시장의 통치자가 되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암시장에서는 내분과 살생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실력에 자신 있는 사람만 암시장에 들어왔다.

실력이 없다면 거리에서 약탈이나 죽임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 거리였다.

그렇게 죽어가는 이들을 어느 누구도 동정하지 않았다.

그저 죽어가는 자들을 보며 운이 없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강시가 난데없이 활개를 친 탓에 오늘 암시장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긴장감이 감돌았다.

많은 사람들이 때 아닌 강시 소동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열을 올렸다.

천제현은 어지러운 암시장 거리를 돌아다녔다.

대주국 상단을 찾아다니며 정보를 모았다.

“이리 오세요! 이리 오세요!”

“남방 지역의 이종족 국가에서 잡은 호인족 노예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기회를 항상 오는 게 아니에요. 어서 와서 구경하세요!”

아담하고 마른 체구에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노인이 외쳤다.

노인은 기골이 장대한 사내 몇 명을 데리고 길가에서 노예를 팔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요괴처럼 생겼네!”

채향이 깜짝 놀라 말했다.

붉은 머리의 노인은 키가 1m 조금 넘는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 주변의 우람한 사내들은 족히 2m는 넘어 보였다.

온몸이 까만 털로 뒤덮여 있어 마치 곰 같았다.

팔려온 노예는 더욱 괴상했다.

대부분이 여성이었는데 모두 풍만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비록 인간의 모습과 거의 비슷했지만 보송보송한 꼬리와 호인족의 귀를 한 모습이 기괴했다.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호인족 노예는 순종인가요?”

상인들이 신기한 듯 모여들었다.

“손님은 운이 좋습니다! 이 호인족 노예는 모두 아주 멀리서 데려온 것입니다요. 모두 순수 혈통입죠. 보세요. 가슴도 크고 엉덩이가 솟아 있잖아요.”

붉은 머리의 노인이 호인족 노예 한 명을 앞으로 밀더니 그녀의 가슴 가리개를 벗겼다.

“한 번 보세요. 어떤가요? 들어갈 때 들어가고 나올 때 나왔죠. 이 호인족 노예의 시중을 받는다면, 최고의 쾌락을 선사할 겁니다.”

호인족 노예들이 매력적인 웃음을 지었다.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수 있는 웃음이었다.

호인족은 조금의 수치심도 느끼지 않았다.

붉은 머리의 노인은 쉴 새 없이 조잘대며 판매에 열을 올렸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명문가든 이종족 하인을 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한 마리 데리고 돌아가 보십쇼. 얼마나 체면이 살겠습니까!”

상인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

“얼마요?”

붉은 머리 노인은 재빠르게 가격을 제시했다.

“상등품은 하품원석 열 개, 중등품은 하품원석 다섯 개, 하등품은 하품원석 세 개를 주시오!”

“인간 이외의 종족은 처음 봐!”

채향은 물건 구매가 아닌 단순히 여행이나 재미, 또는 견문을 넓히고자 암시장에 온 것 같았다.

암시장의 노예 상인은 장사 수완이 좋았다.

인간 국가에서 인간 노예를 사들여 이종족 국가에 내다 팔고, 이종족 국가에서 그 나라 노예를 사서 인간 국가에서 팔았다.

그러면서 족히 100배도 넘는 이윤을 남겼다.

마력이 없는 일반적인 인간 은 남하국 노예시장에서 금화 수십 냥에 팔린다.

그러나 인간이 드문 이종족 국가에서는 물건이 희소할수록 귀하기에 족히 금화 수만 냥에 팔 수 있었다.

암시장은 실제 풍문과 마찬가지로 일반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물건이 많았다.

이종족 노예, 이종족 무기, 이종족 특산물 등등 종류도 다양했다.

“광활한 대륙에는 백여 개 종족이 존재해요. 딱히 신기하지도 않네요.”

천제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우리 대주국 상단을 찾으러 갑시다!”

이때 마침 몇 사람이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천제현은 호기심이 일었다.

“어이, 그거 알아? 협곡의 유적지를 다시 개방했대!”

“어쩐지 요즘 암시장에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찾아오드만!”

“유적을 개방하기만 하면 협곡 내 음기가 가중된다는데, 외곽의 강시가 집단으로 각성한 걸 보면 틀림없다니까! 요즘 영지에 유명 인사들이 찾아오는 것도 보물을 찾기 위한 게 아니고 뭐겠어? 나도 가서 운을 시험해 보고 싶다니까!”

“꿈도 꾸지 마. 고묘령(古墓令)을 가져가지 않으면 만시고묘(萬屍古墓)에는 아예 들어갈 수 없다고!”

“…….”

암시장 사람들의 대화에서 여러 비화가 넌지시 새어나왔다.

강시협곡에는 상당히 오래된 유적이 매장되어 있었다.

오늘 나타난 이상 현상은 유적의 힘이 변화하여 협곡 내에 음기가 가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강시들이 폭주한 것이다.

정말 신선한 일이지 않은가!

3만 년 후에는 상고시대의 유적, 비경 등이 이미 훼손되어 남아 있지 않았다.

대부분이 도굴된 탓이었다.

그리하여 3만 년 후에는 고대의 것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천제현은 전설 중에 기록된 바를 볼 때마다 그 시대에 태어나지 못한 것이 늘 안타까웠다.

하지만 지금 기회가 왔다.

영웅급, 전설급 보물들.

신화의 유적과 비경.

대륙 도처에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이전 문명, 심지어 더 오래된 혼돈시대에 남겨진 것도 있다.

그렇다면 이 대륙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보다 백 배 이상 길다는 얘기다.

수 만년 동안 인류가 비약적인 발전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유물의 지혜를 흡수한 덕분이다.

이 가운데 영웅급 보물의 매장 위치는 국사책에 기록된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 발굴되지 못한 유명한 보물은 향후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찾으러 갈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우선은 강시협곡에 집중해야 할 때다.

강시협곡의 유적은 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뒤바꾼 위대한 보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고대 문파의 유적지로서 그 차제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단지 어떻게 유적에 들어가야 하는가가 문제다.

천제현이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항호가 흥분한 모습으로 뛰어 들어왔다.

“찾았어, 찾았어! 대주국의 상단이 이곳에 있어!”

‘드디어 찾았다!’

천제현은 암시에 정감이 가지 않았다.

퇴폐적이고, 난잡하며 미궁처럼 사람을 정신없게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주국 상단은 대저택에 주둔해 있었다.

바깥에는 검정색 깃발이 가득 꽂혀 있고, 문지기들 모두 흑의를 입은 채 귀신 가면을 쓰고 있었다.

거기다 으스스한 기운까지 가득하여 암울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이 기운의 8할은 사파의 무공을 연마하며 생긴 것이다.

암시장 안에는 각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대주국 상단의 문지기를 봤을 때도 세 사람은 딱히 놀라지 않았다.

천제현 일행은 360여 개의 강시 내단을 얻었다.

하품 60여 개, 중품 240여 개, 상품 5~60개, 최상품은 1개 정도 되었다.

천제현의 공이 가장 컸기에 3/4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두 사람이 똑같이 나누었다.

그렇다고 해도 결코 수량이 적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대단히 기뻐했다.

잠시 뒤 청동 귀신 가면을 쓰고 철방망이를 든 노인이 걸어왔다.

등이 굽은 채 두 세 번 헛기침을 하고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을 사시겠습니까?”

항호는 상기된 채 말했다.

“무기 하나를 사려고 합니다!”

항호가 강시 내단이 든 주머니를 내밀었다.

청동 귀신 가면을 쓴 남자가 주머니를 풀고 잠깐 보더니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좌측 첫 번째 방에 들어가 직접 정령급 중품 무기를 고르십시오!”

대륙의 장비는 등급에 따라 나뉘었다.

정령급 무기는 아무리 낮은 등급이어도 진귀한 1급 재료를 가지고 제기사가 제련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거기에 진법이 추가되어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니 일반 무기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성능이 정령급 무기의 십분의 일도 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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