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제82장 비열한 백자묵
천제현은 강시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냈으나 수 장 밖으로 밀려났다.
몸 전체를 감싼 성광이 크게 찢겼다.
‘윽, 더럽게 강하네!’
천제현은 어깨가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백 년 묵은 강시의 힘이 호신 무공을 뚫고 상처를 낼 정도일지 몰랐다.
물론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와 환부가 검게 변하기 시작한 것을 보니 시독에 중독된 것이 틀림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방에서 강시가 피냄새를 맡고 천제현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천제현은 크게 소리쳤다.
“일반 강시부터 막으세요. 이놈은 제가 상대할게요!”
채향, 항호는 깜짝 놀랐다.
겨우 연체 8성의 마력을 지닌 소년이 백 년 묵은 강시의 공격을 받고도 죽지 않다니?
저것은 혼성술사에 가까운 실력을 지닌 무서운 괴물이다!
이때.
강시의 괴이한 동공이 피에 굶주린 듯 흉흉하게 빛났다.
강시는 뾰족한 이빨로 가득한 입을 쩍 벌리더니 순식간에 검은 안개를 내뿜었다.
안개가 천제현을 삼켰다.
두 사람은 경악했다.
강시의 까다로움은 대부분 시독에서 비롯된다.
이 안개는 격렬한 시독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혼성술사도 감당할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연체 8성의 소년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겠는가?
천제현은 뒤로 물러나면서 더듬거리며 약제를 찾았다.
그가 병뚜껑을 열고 그 자리에서 마시자 청량한 기운이 체내에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물약의 효과로 천제현은 체내에 침투한 시독을 잠시나마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천제현은 충분히 준비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시독에 중독된 순간 죽기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제기랄, 만만치 않네. 제대로 싸워야겠어!’
이 백 년 묵은 강시는 속도가 빠르고 놀라울 정도의 힘을 가졌다.
순식간에 천제현에게 다가와 흉부를 내려쳤다.
천제현의 몸을 감싸던 성광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강시의 공격에 천제현은 마치 포탄처럼 날아갔다.
천제현의 몸이 검은 안개를 헤치고 땅바닥에 부딪혔다.
어찌나 강하게 부딪혔는지 구덩이가 파일 정도였다!
“크헉! 쿨럭! 켁!”
천제현의 몸 구석구석에 고통이 엄습했다.
하지만 강시는 천제현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빠르게 달려들어 바닥에 있는 천제현을 힘껏 짓밟았다.
천제현은 땅을 치고 몸을 위로 튕김으로써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쿵!
강시가 발을 구르자 충격파가 일었다.
충격파는 천제현을 다시 수 장 밖으로 날려 버렸다.
하지만 천제현도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풍부한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허공에서 균형을 잡았다.
이내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강시는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다가와 번개와 같은 속도로 주먹을 휘둘렀다.
천제현은 재빨리 고개를 숙여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강시의 허점을 노려 반격했다.
쾅!
엄청난 진동이 울렸다.
천제현과 강시 모두 충격을 받았다.
채향은 검으로 일반 강시를 베는 도중 갑자기 울려 퍼진 큰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창 격전을 벌이고 있는 천제현이 있었다.
그녀는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
천제현의 실력은 백자묵에 결코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강시와 육탄전을 벌이는 데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강시의 시독까지 두려워하지 않으며, 강시의 수많은 공격을 강력한 호신 무공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정말 강하구나!’
소년은 겨우 연체 8성에 불과한데 말이다!
‘저 강시와 팽팽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니!’
항호는 거대추를 휘둘러 강시 두 마리를 날려 보내며 흥분한 듯 소리쳤다.
“우리 신명나게 싸워봅시다. 이것들이 저 소협을 방해하지 않도록 잘 막아냅시다!”
“네!”
채향은 자신감이 급상승했다.
그녀가 추수검을 휘두르니 아름다운 검광이 그 자태를 뽐냈다.
강시 네다섯 마리가 빳빳하게 굳더니 이윽고 몇 조각으로 분해되었다.
십여 차례 격전을 벌이니 천제현의 마력도 점차 바닥을 드러냈다.
경지의 한계로 마력 총량이 높지 않은 탓이었다.
소모전으로 이어졌다간 패배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방법을 생각하자. 단번에 처치해야 해!’
천제현은 육체의 감각기관을 봉인하고 심안 상태에 돌입했다.
마력이 전부 응집되기 시작했다.
곧 강렬하고 찬란한 성광이 피부 표면에 응결되더니, 마지막에는 유리처럼 투명해졌다.
이 한 번에 너무 많은 마력을 소모했다.
‘내 목숨은 여기에 달렸다!’
이 유리체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방어 기술이다.
과거 천익과 맞붙을 때 천제현은 이 기술로 천익의 공격을 막아냈고, 그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유리체를 오래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양소매가 떨렸다.
부적 두 장이 손바닥 위에 떨어졌다.
쿠와아앙!
강시가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강시는 천제현의 가슴 쪽으로 묵직한 공격을 날렸다.
눈 깜짝할 사이 투명한 유리체에 큰 균열이 생겼다.
강시도 힘의 반동으로 몇 장 밖으로 날아갔다.
‘바로 지금이다!’
부적이 눈부신 빛을 내뿜는 창으로 변했다.
천제현은 빛의 창을 강하게 쥐고 강시의 견고한 몸을 찔렀다.
‘너무 단단해!’
천제현이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도 창끝은 조금밖에 박히지 않았다.
쿠워어어!
강시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검은 안개를 끊임없이 내뿜었다.
빛의 창은 얼마 박히지는 않았음에도 강시에게 중상을 입혔다.
쾅!
강시가 다시 천제현을 치자 유리체가 순식간에 깨지며 무수한 성광으로 흩어졌다.
천제현의 입가에 선혈이 흘러나왔다.
‘젠장! 유리체가 깨졌다!’
강시가 다시 공격한다면 천제현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
“시체는 시체답게 누워 있어라!”
천제현이 양손으로 빛이 나는 창을 잡고는 전력을 다해 강시에게 달려들었다.
빛의 창이 앞으로 날아가 강시를 관통했다.
강시를 꿰뚫은 창은 뒤에 있던 벽에 박혔다.
몸이 벽에 박히자 강시는 움직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강시의 발버둥은 최후의 발악이 되었다.
천제현이 빛의 창을 하나 더 만들어내 강시의 머리에 꽂은 것이다.
강시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얼마 못가 온몸이 불타기 시작했다.
치열한 격전이었지만, 빠른 시간 내에 백 년 묵은 강시를 처치한 것이다.
천제현은 곧장 채향, 항호를 향해 다가가 그들을 도왔다.
그리고 5분 남짓.
이후 남은 강시들이 모두 소탕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이거 진짜 우리가 한 거야?”
채향이 바닥에 널브러진 강시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고작 세 명이서 100마리가 넘는 강시를 없애 버렸다.
이 강시들 모두 생각보다 강한 데다 더욱이 이들 중 흑모강시로 진화 중인 존재도 있었다.
항호는 천제현에게 크게 감복했다.
“암우개, 사람이 맞기는 한 거야? 정말 대단하군!”
물론 천제현도 죽을 것처럼 피곤했다.
몸 여러 군데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천제현은 애써 괜찮은 척 밝은 목소리를 냈다.
“강시 내단을 수거하러 가요. 최소 백삼사십 개 정도는 있을 거예요. 품질도 좋을 거고요!”
채향, 항호는 방금 죽음에서 빠져 나와서 그런지 아직 두근거리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 천제현의 말을 듣고는 두 사람 모두 뛸 듯 기뻐했다.
‘맞다!’
‘이곳에 엄청난 전리품이 있지!’
두 사람은 시간을 들여 강시 내단을 모두 수거했다.
채향은 제법 묵직한 주머니를 가늠해 보더니 기쁜 듯 미소 지었다.
“오늘 수확이 엄청나요. 영지에 도착할 때쯤이면, 300개 이상 모일 거예요. 암우개, 이게 모두 네 덕분이야. 네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살아서 영지에 가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 내 몫의 반을 네게 줄게!”
항호 역시 말했다.
“나도 절반을 네게 주지.”
천제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안 그래도 돼요!”
채향이 방긋 웃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이 갖는 건 당연해. 그러니 거절하지 마!”
천제현은 두 사람에게 호감이 생겼다.
은혜를 알고 보답할 줄 알며, 기본적인 품성도 나쁘지 않았다.
천제현도 재료로 바꿀 강시 내단이 많이 필요했으므로 두 번 사양하지 않았다.
“후후, 너희들 날 잊었나 봐!”
세 사람이 쉬고 있을 때 차가운 음성이 들렸다.
“백자묵!”
“너…… 무슨 낯짝으로 나타난 거냐!”
백자묵이 장검을 손에 쥐고 걸어왔다.
그는 땅바닥에 널려 있는 강시를 한번 쓱 훑어본 후에 기력이 다한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뜻밖이야. 네놈들 실력이 생각보다 괜찮았군. 입 아프게 말할 것 없지. 내 몫을 내놔!”
항호의 분노가 폭발했다.
“염치라는 것도 모르느냐?”
백자묵은 바로 검을 휘둘렸다.
항호가 재빨리 거대추를 들어 막았다.
그러나 힘에 밀려 그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항호의 입가에서 선혈이 흘렀다.
“생각이 바뀌었다. 이 강시 내단은 내가 다 가져가지. 너희는…… 그냥 영원히 이 강시협곡에 있는 게 좋겠군. 수십 년 후에 강시로 변할지도 모르잖아.”
백자묵도 오늘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길 원하지 않았다.
그러려면 이들을 죽여 입 다물게 할 수밖에.
채향은 믿을 수 없었다.
“우릴 죽이려고?”
“이거 미안하게 됐소이다. 채향 아가씨, 사실 난 그대를 참 좋아했다오. 당신과 뜨거운 밤을 보낼 기회가 없어 아쉬웠소.”
백자묵은 음흉한 눈빛으로 채향의 몸을 훑어보았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채향이 손에 쥐고 있는 장검에 꽂혔다.
“이 검이 바로 추수검이지? 이렇게 좋은 검이 당신 손에 있으면 그거야말로 낭비가 아니겠소. 그러니 이 검은 내가 가치 있게 쓰도록 하겠소!”
천제현이 천천히 일어났다.
“김칫국부터 마시기는.”
백자묵은 천제현을 쏘아보았다.
순간적인 살기가 폭발했다.
“닥쳐! 네놈부터 먼저 죽여주지!”
차가운 빛이 번쩍였다.
샤악!
보검이 천제현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런 보잘것없는 실력으로 날 죽이겠다고?”
천제현은 심안에 돌입했다.
상대방의 빈틈과 약점을 포함하여 전신에 흐르는 마력의 흐름을 살폈다.
이내 백자묵이 휘두르는 검을 종이 한 장의 차이로 피했다.
백자묵의 자세가 흐트러진 틈을 타서 복부를 힘껏 걷어찼다.
백자묵은 비명을 지르며 정면의 거대한 바위로 꼬꾸라졌다.
거대한 바위가 백지묵과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백자묵은 연이어 수차례 선혈을 토했다.
그의 하얀 장포는 붉게 물들었다.
“너…… 어떻게 이럴 수가!”
천제현이 땅에 떨어진 백자묵의 검을 집었다.
그리고 백자묵을 향해 한 발 한 발 걸어갔다.
“잠깐, 잠깐! 나 필요 없어. 강시 내단 필요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