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제81장 백 년 묵은 강시
맞다.
그는 의도적으로 이 꼬맹이를 정리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게 누가 어린 나이에 막강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랬나?’
전풍은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저놈이 8성의 마력으로 9성의 마력을 지닌 전풍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니.
‘천부적인 자질은 나보다 위일 수 있다!’
백자묵은 천성이 오만하여 스스로 자기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참지 못했다.
바로 이런 까닭에 그는 처음 본 순간부터 이 애송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질이 아무리 높다한들 어쩌겠는가?
‘싹이 자라기 전에 빨리 밟아야지!’
그런데 채향이 감히 자기와 척을 지고 계획을 망치려들 줄 누가 알았겠는가.
천제현은 짧게 탄식했다.
백자묵의 의중을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저런 인간은 그릇이 작고 교활하며 경쟁을 두려워한다.
자질이 아무리 뛰어나도 분명 별다른 성과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다들 괜찮습니다. 제가 혼자 해볼게요!”
천제현은 눈을 부릅뜨고 마치 환영처럼 쏜살같이 진격했다.
발끝으로 바위를 딛고 도약한 다음 벽을 발로 차서 강시를 향해 날아갔다.
마치 화살을 쏜 것처럼 꼿꼿한 모양새였다.
강시가 이를 보고는 더욱 짙은 시독을 온몸에서 내뿜었다.
톱에 검은 기운이 자욱하게 깔리더니 울부짖으며 천제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빨리 돌아와!”
“너 혼자 상대할 수 없어!”
채향과 항호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적전만이 혼자 재빠르게 장궁의 시위를 당겼다.
천제현은 반쯤 뜬 상태에서 부적을 꺼내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즉시 입미 상태에 돌입하였다.
천제현은 강시가 손톱으로 자신을 할퀴려 하자 몸을 비틀어 피한 후에 강시에게 부적을 날렸다.
부적이 하얀 빛이 나는 창으로 변했다.
이내 강시의 흉부를 향해 빠르게 날아가 강시의 몸에 박혔다.
“가라!”
창은 강시의 몸에 박히고도 힘을 잃지 않았다.
창에 맞은 강시는 창에 꽂힌 채 그대로 암벽으로 날아가 박혔다.
이론적으로 강시는 일반적인 부위에 입는 부상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강시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고, 온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강시는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진 미라로 변했다.
적전의 시위는 절반만 당겨진 상태였다.
그 안에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질 만큼 천제현의 동작은 대단히 빨랐다.
번개와도 같은 진격, 절묘한 회피, 그리고 부적 시전으로 일격에 적을 제압했다.
수많은 훈련을 거쳐야 이렇듯 간결하고 막힘이 없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백 년 묵은 강시를 얼굴도 마주하기 전에 제거해 버렸다!
채향은 놀라움을 참지 못했다.
“너 어떻게 한 거야?”
천제현은 강시 내단을 꺼내며 말했다.
“저에게 빛 속성 부적이 있어요. 빛 속성 부적은 강시에게 특수한 피해를 입히죠!”
백자묵은 흉흉한 눈빛을 번뜩이며 싸늘하게 말했다.
“흥, 외부의 힘을 빌려놓고 뭘 그리 기고만장하는 거야! 정말 내가 다 부끄럽군!”
채향은 백자묵에게 크게 실망했다.
백자묵이 이렇게 치졸한 사람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어쨌든 암우개가 강시를 죽였잖아요! 우리들이 방금까지 죽인 강시 전부를 합쳐도 방금 전 강시가 더욱 강력했어요. 그건 당신도 인정하죠?”
백자묵은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적전이 돌연 소리치기 시작했다.
“큰일났어요! 주변에 있는 강시들이 몰려와 우리를 포위하려고 해요!”
그의 말에 부응이라도 하듯, 협곡 사방에서 강시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땅, 동굴에서 강시가 끊임없이 기어 나왔다.
모두 생김새가 흉악했다.
게다가 강시들의 대다수 7, 8성의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백자묵의 안색이 변했다.
“내가 이 길을 수차례 지나다녔는데,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어디서 이렇게 많은 강시가 몰려온 거지?!”
강시는 대부분 깊은 수면 상태에 있다.
어떤 계기가 있지 않는 한 그들이 집단으로 깰 리가 없다.
이 순간 다섯 일행 주위로 100마리에 육박하는 강시가 사방팔방에서 몰려들었다.
쿠으으어!
공포스러운 울음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대략 50~60m 높이의 가파른 절벽 위에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강시가 서 있었다.
이 강시는 우람한 몸체에 온몸에서 강렬한 시체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게다가 이미 옅은 흑색으로 변한 시독은 그 독기가 더욱 강했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이 강시의 털이 절반쯤 검정색으로 변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소한 저 강시가 흑색 강시로 진화 중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이 강시의 강함은 혼성술사에 근접할 것이라는 말이였다!
강시는 사람에 비해 육체적으로 우월한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온전히 혼성경에 이르지 못해도 혼성 1성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큰일이군!”
다섯 명이 협공하면 일반 강시 100마리 정도는 상대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혼성 경지에 근접한 강시가 나타났으니 이들의 힘만으로 어떻게 대적할 수 있겠는가?
백자묵은 눈자위를 번뜩이며 재빨리 말했다.
“이 쓸모없는 놈아, 지금 네 실력을 발휘할 때가 왔다! 너는 방어력이 강하니 저것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저것의 시선만 끌 수만 있다면 내가 처치하지!”
천제현의 방어력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어떻게 흑색 강시의 시독을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천제현은 이제 연체 8성의 소유자이다.
반면 이 강시의 전투력은 혼성경과 맞먹는 수준이다,
백자묵에게 천제현을 엄호할 생각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그저 천제현이 시간을 끌 동안 기회를 틈타 도망가려는 것이다!
천제현은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그가 기지를 발휘했다.
“서두를 것 없어요. 우리 집단에는 한 명이 더 있잖아요. 지금껏 나서지 않은 사람이!”
채향, 항호, 적전은 모두 백자묵을 바라보았다.
분명 이 다섯 명 중에 연체 9성 정점인 백자묵만이 이 강시를 잠시 동안이라도 막아낼 실력이 있다.
“네놈들…….”
백자묵의 하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천제현이 이어 말했다.
“우리 집단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어나는 소인배는 필요 없어요! 그러니 직접 나서시죠!”
어딘가 익숙한 말이었다.
이 말은 바로 몇 분 전에 그가 천제현에게 한 말이 아니던가!
이때, 절벽 위의 강시가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그러더니 수십 미터 높이의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렸다.
이 강시의 목표는 분명했다.
마력이 가장 높은 백자묵.
그를 첫 공격 상대로 정한 것이다!
“제기랄!”
백자묵이 고함을 내지르더니 등 뒤에서 장검을 뽑아 들었다.
눈부신 검광이 강시를 향해 뿜어졌다.
9성 정점의 마력이 들끓고 용솟음치며 백두루미와 같은 모양을 형성했다.
백두루미 모양의 검광이 날개를 펼치며 한달음에 도약했다.
탕!
강시가 날카로운 발톱을 사납게 쓸었다.
새까만 손톱과 검이 충돌했다.
요동치는 두 힘이 일순간 뿜어져 나왔다.
백자묵과 강시는 진동에 밀려 동시에 수 장 밖으로 밀려났다.
‘막상막하구나!’
채향, 항호, 적전은 실낱같은 희망을 보는 것 같았다.
백자묵은 강시와 정면으로 싸워도 밀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니 이번 싸움은 기대를 걸어볼 만했다.
‘백자묵이 백 년 묵은 강시를 잡고 있기만 하면…….’
‘우리가 일반 강시를 서둘러 쓸어버린 다음 협공 하면 승산이 있어!’
그러나 백자묵의 생각은 달랐다.
‘빠져야겠어!’
백자묵은 기혈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좀 있으면 검을 쥐지 못할 것만 같았다.
강시의 실력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월등히 강했다.
여기에서 계속 싸운다면 분명 위험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백자묵이 누구인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모험을 할 리가 없었다.
강시의 실력이 이렇듯 막강하니 백자묵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설사 나머지 네 사람과 협공하여 이 강시를 제거한다고 해도 자신은 부상을 입을 게 뻔했다.
이번 일정의 진정한 목표는 상고시대 문파의 유적이었다.
강시 내단을 얻는 것은 부차적인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강시 따위와의 전투로 부상을 입으면 본말전도인 셈이다.
‘반드시 도망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강시가 다시 달려들었다.
백자묵은 검을 들고 백두루미 정령을 소환했다.
그러자 백두루미가 엄청난 속도로 활공하여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적전에게 달려들었다.
백자묵의 두 눈에 차가운 빛이 번쩍였다.
“너…… 무슨 짓이야!”
적전이 백자묵에게 풍기는 무서운 기운을 감지하고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사이 적전은 방어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고 백자묵은 그런 적전의 어깨를 잡아 던졌다.
백자묵이 적전을 방패막이로 삼기 위해 던져 버린 것이다.
채향, 항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너, 이 짐승만도 못한……!”
“네놈들은 걸림돌이나 되는 쓸모없는 것들이다. 내가 네놈들이랑 다니긴 아깝지 않겠어?! 너네끼리 놀아라!”
백자묵의 백두루미 정령은 짧은 시간 빠르게 비상하는 능력이 있었다.
속도를 내면 순식간에 100m는 날아간다.
그는 나머지 사람들 모두 버리고 눈 깜짝 사이에 자취를 감춰 버렸다.
‘도망갔어?’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사람이 저 정도까지 비열해질 수 있다니.
위험한 고비에 동료를 버리고 도망가는 것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어떻게 동료의 목숨을 도망갈 시간과 맞바꿀 수 있는가!
“도와주러 가요!”
천제현이 길을 막고 서 있던 일반 강시 두 마리를 제거하고는 가장 빠르게 적전을 향해 달려갔다.
‘너무 늦었다!’
천제현은 직감적으로 적전을 구하기엔 늦었음을 느꼈다.
적전은 무방비한 상태로 백 년 묵은 강시 앞에 내던져진 것이다.
본래 적전의 마력은 백자묵에게도 미치지 못했고, 근거리 전투는 적전의 주특기가 아니었다.
그런 그가 백 년 묵은 강시의 공격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첫 발톱 공격.
적전의 단도가 날아갔다.
두 번째 발톱 공격.
적전의 흉부와 복부가 찢겼다.
세 번째 발톱 공격.
적전의 심장을 후볐다.
이 일련의 공격들은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진행되었으니 제아무리 천제현이라도 막을 방도가 없었다.
“아!”
적전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선혈이 낭자한 몸이 땅에 떨어졌다.
주변에 있던 강시들이 적전을 향해 연이어 달려들었다.
이 모습은 보던 사람들의 모골을 송연해졌다.
적전이 죽었다!
이렇게 죽다니!
강시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이제 완전히 끝났어!’
채향은 싸울 의지를 모두 잃었다.
천제현도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일단 백 년 묵은 강시를 제압하는 수밖에!’
그 순간.
백 년 묵은 강시가 천제현을 급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