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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80화 (79/729)

# 80

제80장 강시 사냥

백자묵은 마음이 불편하고 껄끄러웠다.

“좋소. 기왕 들어왔으니 중요한 순간에 방패막이로 써도 되겠군.”

백자묵은 천제현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몸을 돌렸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암시장으로 가야 해!”

채향은 서둘러 천제현을 위로했다.

“저 사람 성격이 원래 저래. 개의치 마!”

항호도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 백자묵은 마력이 높을 뿐만 아니라 그의 가문 사람 중 몇 명이 암시장에 주둔하고 있어. 신분이 좋고 실력도 강하니 조금 거만하더라도 참는 게 좋아. 그가 암시장을 여러 번 다녀갔나 봐. 그러니 그가 길을 안내하면 우리는 위험한 지역을 피해갈 수 있어. 분명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천제현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기고만장하는 거야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자기 분수를 아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지!’

백자묵의 태도가 거만해도 입으로만 나불댈 뿐이 아닌가.

천제현은 굳이 죽기 살기로 입씨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채향, 항호, 적진 등 세 사람은 연체 9성의 수련자였다.

백자묵은 연체 9성 정점이었으니 천제현만 유일하게 연체 8성 정점의 수련자였다.

그러나 백자묵의 실력이 아무리 높아도 천익과 비등할 터였다.

상대하기 까다롭겠지만, 천제현은 그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흑석진 외곽은 잡초와 고목이 무성하고 황폐했으며 쥐죽은 듯 고요했다.

생명이라고는 전혀 없는 곳 같았다.

이때 몹시도 과묵한 청년, 적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다들 조심하세요. 앞에 강시 몇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적전은 특수한 무공을 수련하여 비범한 정찰 능력을 지녔다.

주변에서 강시가 출몰하면, 그는 항상 다른 사람보다 먼저 발견했다.

적전이 말한 대로 돌덩이가 어지럽게 쌓인 곳에서 사람 형상을 한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전신에서 괴이한 음기가 감돌고 생김새도 무서웠다.

강시의 몸은 물기라고는 하나 없이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피부 표면에는 백색의 곰팡이가 가득하고, 새까만 손톱은 뾰족하고 길었다.

눈동자는 요기가 서린 녹색이었으며, 일그러진 얼굴에는 감정의 편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게 바로 강시인가?’

강시의 등급은 그것의 털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다.

이 강시의 털은 음기와 시체의 기운으로 생겨난 실 모양의 곰팡이로 연체 경지에 오른 강시는 백색, 혼성 경지인 강시는 검은색을 띠었다.

혈색 강시를 본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이는 풍문에 지나지 않았다.

검은색 강시는 수백 년 묵은 강시이며, 혈색 강시는 최소 수천 년 동안 존재한 강시였다.

혈색 강시가 출현하면 암시장 영지, 흑석전은 물론이고 주변의 도시 모두에 재앙이 닥칠 것이다!

“음기로 봤을 때 최대 삼사십 년 된 강시요!”

첩향이 강시를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모두 공격해요!”

30~40년 된 강시는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편이다.

이 강시들은 불행하게도 이곳에서 죽은 자유 수련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연체 3, 4성의 정도였기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적전이 앞서 나가 자세를 취한 후 네댓 발의 화살을 뽑았다.

휙휙휙!

45도 각도로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곧장 하늘을 가르며 날아갔다.

몇 안 되는 강시가 화살을 발견하고 피하기 전에 그들 머리에 박혔다.

화살을 맞은 강시들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빠르네! 엄청 빠르다!’

천제현은 찬사를 금치 못했다.

“멋진 궁술이네요!”

적전이 장궁을 갈무리하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백자묵은 팔짱을 끼고 별거 아니라는 듯 깐족댔다.

“네놈처럼 허접한 놈들은 이런 잔재주만 봐도 놀랍겠지! 그만 놀고 가서 강시 내단이나 주워!”

백자묵은 천제현에게 면박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적전까지 불편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명령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니 사람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천제현은 답답했다.

‘저놈은 자만심 한 번 대단하네. 내가 가만히 있다고 날 호구로 보는 건가?’

백자묵은 팔짱을 낀 채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왜? 기분 나빠?”

급히 채향이 끼어들었다.

“암우개, 나랑 같이 가자.”

채향은 집단의 내부 갈등이 빚어질 것을 우려해 천제현을 끌어 당겨 백자묵을 피하게 했다.

이를 본 백자묵이 미간을 더 찌푸렸다.

백자묵의 눈이 노기로 번뜩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럭저럭 원만한 성격을 지녔지만 오로지 백자묵만 성격이 형편없었다.

하지만 백자묵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백자묵은 지형에 익숙하여 함정과 위험 구역을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게다가 막강한 실력까지 겸비하고 있어 위기의 순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성격만…… 좀 참으면 된다.’

모두가 백자묵을 대할 때 그렇게 생각했다.

강시 내단과 보통 내단은 다르다.

내단은 마수의 근원적 힘이다.

마수가 진화할 때가 돼서야 마력이 체내에 응집된다.

그것이 내단이다.

그리하여 마수 열 마리를 사냥했을 때 내단 하나만 얻어도 괜찮은 수확이었다.

그러나 강시 내단은 완전히 다르다.

음기와 시체의 기운이 응결하여 강시 체내에서 생겨난다.

따라서 강시들은 무조건 내단을 가지고 있었다.

강시 내단은 사파무공의 무공을 수련을 할 때 사용했다.

또 특수한 약물 및 무기 제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약재이기도 하다.

천제현은 사파의 무공을 알지 못했으므로 강시 내단이 그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이 제한적이다.

‘차라리 암시장에 가서 필요한 재료와 맞바꾸는 것이 더 낫겠네.’

천재현은 강시 내단을 주우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섯 일행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강시협곡 주변에 강시가 쫙 깔려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약한 강시들만 나타났다.

항호, 채향, 적전은 강시가 나타나면 순식간에 제거했다.

적전은 기동성이 강했고 원거리 궁술에 능했다.

항호는 맹렬하고 광폭한 무공으로 근거리에서 극강의 파괴력을 자랑했다.

그의 추를 당해낼 수 있는 강시는 아직 하나도 없었다.

천제현이 내심 놀라워한 것은 채향이었다.

이 여인은 강했다.

내공이 연체 9성에 불과하긴 해도 무공이 우수하고 무학도 풍부했다.

그녀가 든 추수보검(秋水寶劍)은 그녀의 마력을 대폭 증강시켜 연체 9성 정점까지 끌어올렸다.

‘이 아가씨는 평범한 인물이 아닌 게 분명해!’

무공, 무학, 장비 모두 일반 자유 수련자가 지닐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백자묵과 천제현은 아직 한 번도 나서지 않았다.

백자묵이 나서지 않은 이유는 마력을 아껴두었다가 우발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천제현의 경우는 사람들이 그를 방어형 수련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순조롭게 강시협곡을 지났다.

강시 내단이 갈수록 많아져 주머니에 가득 담겼다.

항호는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강시 내단이 백 개쯤 될 거예요. 이걸 나누어 암시장의 대주국 상단에게 가져가면 좋은 단약이나 무기로 바꿀 수 있을 겁니다!”

채향 역시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손에 들린 장검이 가을의 호수처럼 아름답게 빛났다.

“하지만 아직 강시협곡 초입이에요. 다들 경계를 소홀히 하지 말고 조심해야 합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앞쪽에서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렸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매서운 한기와 음풍이 예리한 칼날처럼 순간적으로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이에 다섯 사람 모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적전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서남쪽 방향으로 고급 강시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강시들이 땅에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 강시는 분명 일반 강시와 확연히 달랐다.

비쩍 마르기는커녕 오히려 기골이 장대했다.

더욱이 온몸에 검푸른 빛의 시독까지 자욱하게 깔리고 흉흉한 눈빛으로 일행을 죽일 듯 응시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끔찍한 살기에 숨쉬기조차 힘들어졌다.

항호는 너무 놀라 심장이 벌렁거렸다.

“저 강시는 연체 9성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요!”

“이 강시는 창, 칼에도 뚫리지 않고 시독까지 내뿜기 때문에 우리가 이기기 힘듭니다!”

채향도 잔뜩 얼어붙은 채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백자묵, 여기서 당신의 실력으로 저 강시를 쉽게 제압할 수 있을 테죠? 수고스럽겠지만 직접 나서주세요.”

“서두를 필요 없지.”

백자묵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우리한테는 한 사람 더 있지 않소. 지금껏 나서지 않았던 것 같은데!”

채향은 주먹을 꽉 쥐고는 화를 내며 말했다.

“자묵, 이런 상황에서 그러지 좀 말았으면 좋겠어요!”

“흥, 채향 아가씨, 무엇이 겁나오? 내가 당신을 보호해 줄 텐데. 당신은 털 끝 하나 다치지 않을 거요.”

백자묵은 앞에 있는 강시를 응시하며 팔짱을 꼈다.

그는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난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어가는 소인배가 눈에 거슬려서 말이지. 집단에 섞여 들어와 여태껏 뭐 한 게 없지 않소!”

백자묵은 분명 천제현을 겨냥해 한 말일 것이다.

“네놈은 멍하니 서서 뭐하는 것이냐?”

백자묵이 고압적인 어조로 천제현에게 말했다.

“이번에 저 강시는 네 몫이다. 어서 움직이지 않고 뭐해!”

이 강시는 최소 백 년 가까이 묵은 놈이었다.

연체 8성더러 상대하라는 건 죽으라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강시는 시독 사용에 능하기 때문에 근거리 전투 시에는 단숨에 해치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시의 독에 감염되어 죽음에 이를 것이다.

강시는 생명체가 갖는 약점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철갑 피부와 무쇠 뼈를 가지고 있었다.

이 소년은 마력이 약하므로 방어전을 펼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 소년에게 이처럼 강력한 강시를 상대하라고 하다니!

소년을 사지로 내모는 꼴이었다.

채향은 분노가 일었다.

“당신은 단순히 저 애가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거잖아요!”

“내가 말했잖소. 우리 집단에 쓸모없는 인간은 필요 없다고. 당신들이 저놈을 데려와 놓고는 왜 나를 탓하는 것이오?”

백자묵이 차갑게 말했다.

“저놈이 정말 죽으면 그것도 잘 된 일이지. 사람이 적을수록 강시 내단을 좀 더 많이 나눌 수 있지 않소?”

“알았어요, 알았어! 당신이 안 나서겠다면 됐어요!”

채향은 참으려야 참을 수가 없었다.

“암우개, 우리 같이 공격하자!”

항호 역시 백자묵의 됨됨이가 눈에 거슬렸다.

“나도 도울게!”

적전은 달리 말은 안했지만 등 뒤에서 화살을 꺼내 전투 준비를 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백자묵은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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