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71화 (70/729)

# 71

제71장 다음 상대 나와라

이 대결로 천제현이 공연히 유명해진 게 아니라는 사실과 양웅이 천제현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하하하, 무승부? 누가 무승부라는 거야!”

이 말을 뱉은 사람은 바로 천제현이었다.

모두 놀라서 천제현을 쳐다봤다.

천제현이 눈을 얇게 뜨며 비웃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아이고, 대사님. 제가 만든 게 정말 혈요정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시겠죠?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한데!”

이 독약이 혈요정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어림없는 소리!”

이장운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말했다.

“약을 조제하는 데 쓰는 재료나 약제의 색깔, 냄새 모두 혈요정이다. 내가 그것도 모를 것 같으냐!”

천제현이 혈요정을 만들 때 쓰고 남은 약재를 들어 올렸다.

“이건 혈요정 약제를 조제하는 약재가 맞아. 하지만 약재의 비율을 약간 다르게 해봤지. 비율만 변화를 줘도 결과는 완전히 달라지니까.”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당신은 너무 부주의해. 그래서 그냥 지나치고 넘어간 사실이 있어. 그건 내가 약을 조제하는 과정에서 비명초를 다섯 배 이상 많이 넣었다는 거야.”

이장운의 낯빛이 순간 변하였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혈요정을 만든 건 속임수라는 말이지. 비명초로 만든 비명독이야말로 진정 무서운 독약이지. 하긴 비명독은 무색무취에다 혈요정으로 위장했으니 알아차릴 리가 있나.”

‘비명독? 비명독이라니!’

이장운은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독이었다.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풍 떨지 마라! 네놈은 하나의 제약진만 쓰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떻게 두 종류의 독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냐!”

“그건 두 가지 독약을 하나의 제약진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

염천웅을 포함하여 장내에서 제약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제약병 한 병, 제약진 하나, 약재 한 묶음으로 어떻게 두 종류의 독약을 제조할 수 있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한 번의 제약으로 두 가지 약물을 조제한다는 천제현의 기술은 여태껏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천제현이 말을 이었다.

“당신이 무화과를 주재료로 만든 해독제는 분명 혈요정 독약을 해독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해. 그런데 모르는 게 하나 있어. 무화과의 해독제 성분은 혈요정의 성분을 해독할 수 있지만 비명초의 독성을 열 배나 증폭시키기도 하지.”

“뭐, 뭐라고!”

이장운이 초점 없는 눈으로 비틀거렸다.

서 있기도 버거운 모습이다.

“비명독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네.”

천제현의 무심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다시 한 번 울렸다.

“늙은 여우! 당신은 나한테 졌어!”

졌다.

이장운이 졌다.

이장운이 정말 중독되었다!

천제현의 제약기술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사람의 상식을 뛰어넘었다.

같은 약재, 같은 제약병, 같은 제약진.

모두 같았다.

그러나 비율을 다르게 하는 것만으로 천제현은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독약을 만들어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장운이 어떤 재료를 써서 해독할 것인지 천제현은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대비해 미리 함정을 파놓는 이중설계를 한 것이다.

천제현의 예상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이장운은 천제현이 만든 독약이 혈요정이라고 착각했다.

그리고 혈요정의 해독약을 만듦으로써 스스로 비명독의 독성을 증폭시킨 것이다.

“아니다. 이 마귀야! 불가능한 일이다!”

이장운은 이성을 잃은 채 울부짖었다.

바로 그때.

그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머리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워 위아래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심지어 무서운 악귀가 전신을 휘감고 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비틀리고 왜곡된 음성이 들렸다.

“이런 애송이에게! 내가! 어떻게 내가 네놈한테 질 수 있단 말이냐!”

이장운은 마치 실성한 듯하늘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포효했다.

그러자 거대한 이무기 정령이 등 뒤에서 하늘로 승천하듯 날아올랐다.

마침내 이장운이 이성을 상실한 것이다.

“죽어라!”

이무기 정령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무서운 마력을 내뿜었다.

그러나 이무기가 공격하려던 찰나.

악!

비명 소리가 울렸다.

이장운이 피를 토하며 빳빳하게 굳은 자세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무기 정령이 모종의 힘에 잠식당한 것처럼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정령이 찢겼다?’

이장운의 폭주를 보고 천제현을 지키려던 남궁의도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남궁의는 쓰러진 이장운과 천제현을 번갈아 쳐다봤다.

천제현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시종일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깜빡 잊고 말을 못했네. 비명독은 정신성 맹독에 속하지. 그 자체로는 치명적인 독극물이 아니야. 그렇지만 해독제를 복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정령을 소환하면 정신적인 피해를 입게 돼. 그리고 정령 역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어!”

이장운은 바닥에 쓰러진 채 창백한 얼굴로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네 이놈, 네 이놈…….”

‘대단하다. 정말 대단하다! 혼성 경지에 이른 자를 이렇게 갖고 놀다니!’

남궁의는 상기된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장운, 당신이 졌소이다! 내기한 대로 당신을 영원히 추방하겠소! 즉시 집행하라!”

이장운이 다시 붉은 선혈을 토하며 기절했다.

남궁의는 고무된 눈빛으로 사람들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천제현이 천남성의 최고 제약사를 단숨에 이겼소. 이를 보고도 그가 사기꾼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소?”

일개 사기꾼이 이장운 같은 인물을 이길 수 있다고?

이거야말로 천하가 비웃을 일이 아닌가!

“다들 넋 놓고 멍하니 뭐하는 거야? 난 그저 기술이나 훔치는 도둑놈에 불과하잖아? 그러니 당신들이 나한테 본때를 보여줘야지!”

천제현은 아직 만족하지 못한 듯 남은 세 명을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두 번의 기회가 남았잖아! 무서워 말고, 놀라지도 마시라고! 무슨 수를 써도 좋으니 본때를 좀 보여봐!”

천제현의 도발에도 세도가들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남궁혜는 키득키득 웃었다.

“멋지네! 총회장님, 패기가 넘쳐! 난 너 같은 남자가 참 좋다니까! 어서, 빨리! 저 사람들한테 한 수 가르쳐 줘!”

남궁가의 이 마녀는 생각한 것을 말로 쏟아내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못하는 소리가 없었다.

세도가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일그러졌다.

그들은 천제현의 오만방자한 조롱과 모욕 앞에서 주변의 의심어린 눈초리까지 받게 되자 일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번에 그들은 천제현을 혼쭐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기 발등을 스스로 찍은 격이 되었다.

천제현이 큰소리로 말했다.

“왜들 그래? 고작 한 판으로 간이 쪼그라들었나?”

“건방진 것! 그만 날뛰거라! 이번에는 내가 상대하지!”

낙원산이 화가 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부적으로 겨뤄보자!”

남궁의가 실소했다.

‘제약 대결에 졌으니 이제 부적으로 겨뤄보자고?’

낙원산은 본성에서 명성이 높다.

부적 제작에 정통하며, 그 실력은 천남성의 장립청과 비교해서 절대 뒤지지 않는다.

낙원산은 이번에야말로 승리를 예감했다.

아무리 천제현이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더라도 젊디젊은 나이에 부적 제작 기술까지 섭렵하고 있겠는가.

하지만 장립청과 남궁혜는 이 말을 듣고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부적으로 겨루겠다고? 이 사람 정말 지독하게 재수없군!’

천제현이 턱을 만지작거렸다.

“곤란하겠는데. 당신은 중주성 사람이잖아. 천남성에 가지고 있는 재산도 없을 텐데, 내가 목숨 걸고 내기해서 나한테 이득이 될 게 뭐가 있어?”

“헛소리 마라! 부적 대결에 자신이 없으니 도망가려는 것이냐!”

천제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판돈이 없잖아. 그런데 내가 왜 해?”

낙원산이 이를 으드득 갈며 금빛 찬란한 수정조각을 꺼냈다.

“이것은 50만 냥짜리 수정조각이다. 네놈의 비천한 목숨값으로는 과분하지!”

“부족한데?”

천제현이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도씨 가문의 모형 제조 공장을 줘!”

“뭣이라?”

옆에 있던 도진천이 깜짝 놀랐다.

천제현이 도씨 가문의 재산을 탐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 가문의 재산을 어찌 비천한 네놈 따위가 탐하느냐!”

도씨 집안은 군사 무기를 납품하고 있었다.

게다가 도진천이 무기 생산을 위해 운영하는 모형 제조 공장은 천남성에서 가장 발달되어 있다.

이 시대는 아직 기술이 발달하기 전이지만, 간단한 3차원 입체 인쇄 기술로 초보적인 모형 제조는 가능했다.

예컨대, 칼집을 만들려면 재료를 마력진에 넣고 마력을 불어넣으면 된다.

그러면 조정한 비율에 따라 재료가 자동으로 형태를 형성하여 모형이 제작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3차원 입체 인쇄 기술이었다.

천제현이 살던 시대는 작게는 정밀부품부터 크게는 우주선까지 3차원 인쇄 기술로 바로 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서는 단순하고 간단한 모형만 제조할 수 있었다.

기적상회에 이 같은 공장이 있다면 마력등을 생산하는 속도가 100배는 빨라질 것이다.

그러면 매일 10,000대 이상 생산도 문제없을 것이다.

게다가 도진천의 모형 제조 공장의 가치는 최소한 금화 100만 냥에 이르러 기적상회가 가진 자본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낙원산, 양웅은 미간을 찡그렸다.

‘이놈 정말 이길 자신이 있는 건가!’

도진천이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양웅이 말했다.

“도형, 낙 대인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요?”

낙원산도 한마디 덧붙였다.

“안심하시게. 저 녀석이 이길 일은 절대 없을걸세!”

도진천은 후회스러웠다.

진작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줄 알았더라면 이 흙탕물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 텐데.

도씨 일가는 천제현과 딱히 원수진 일이 없다.

도진천은 천제현의 세력이 커져 도씨 집안의 사업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웠을 뿐이다.

주변의 시선을 한 번 살핀 도진천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음을 깨닫고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좋아, 내기하세!”

낙원산은 천제현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부적술은 대단히 중요한 전투 보조 능력임을 너도 잘 알 것이다. 부적술의 발달 정도가 국방력과 국력을 결정하기도 하지. 내가 너와 겨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부적술의 위력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