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제70장 독 먹고 독 먹기
공화련이 버럭 화를 냈다.
“이 늙은이야, 그래도 이름깨나 있는 사람이 그따위로 파렴치하게 굴어? 사람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아?”
이장운이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말했다.
“저런 염치없는 놈을 상대하는데 도의를 지킬 필요가 있겠느냐!”
염천웅이 욕을 퍼부었다.
“이런 더러운 놈! 대체 누가 염치없다는 거야? 네놈이야말로 염치가 없지!”
이장운도 맞받아쳤다.
“염천웅 이놈!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다!”
“염천웅 아저씨, 큰아가씨, 진정하세요.”
천제현이 천천히 웃었다.
“제가 예전에 이렇게 말했지요. 저 영감탱이는 제 심부름꾼이 될 자격도 없다고요.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대결을 원한다면 응해야지요. 제가 두려워할 게 뭐 있겠어요?”
천제현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공화련과 염천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장운은 화가 나서 내상을 입을 뻔했지만 가까스로 분노를 억눌렀다.
‘입만 산 애송이 주제에 얼마나 건방을 떨 수 있는지 보자!’
이장운이 차갑게 약재 명단을 읊었다.
“귀면거미, 육채지네, 부시전갈, 적혈두꺼비, 쌍두살무사, 모두 하나씩!”
사람들이 모두 크게 놀랐다.
다섯 가지 모두 맹독을 지닌 약재중 어느 한 가지만으로도 9성의 연체술사라도 손쉽게 죽일 수 있다.
그런 다섯 가지 약재를 혼합하여 독약을 만든다면 혼성술사조차 황천길 행을 면치 못할 것이다.
남궁의와 장립청의 표정이 변했다.
‘이 늙은이가 오독수(五毒水)를 조제하려는군!’
오독수, 이름 그대로 다섯 가지 맹독으로 만든 맹독이다.
여러 독소를 섞어 성분이 매우 복잡하고 마력진을 통해 조제되면서 성분이 더욱 복잡해진다.
약을 조제한 당사자도 해독하기 몹시 어렵다.
공서련과 남궁혜는 천제현을 믿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공화련은 입술을 꾹 깨물고 몸을 조금 떨었다.
‘만약 잘못되면…….’
상상하기조차 두려웠다.
그때 천제현이 천천히 약재를 부르기 시작했다.
“혈요정과, 삼엽화, 비명초…….”
소년은 태연자약하게 대수롭지 않은 일을 처리하는 듯 서두르지 않았다.
이장운이 선택한 재료는 모두 맹독을 지녔다.
그러나 천제현이 선택한 재료는 평이했다.
두 사람이 고른 재료의 차이가 너무 크자 사람들이 천제현을 걱정하며 진땀을 흘렸다.
양웅이 이장운에게 속삭였다.
“대사, 자신 있습니까? 변칙적인 방법에 능한 놈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놈은 확실히 만만치 않소. 놈이 조제하려는 건 혈요정(血妖精)이라오. 확실히 1급 독약 중 가장 치명적이오.”
이장운이 천제현의 계획을 알아차리고 자신만만하게 웃기 시작했다.
“천남성의 다른 제약사라면 저 독약을 상대하기 어렵겠지만 내게는 별일 아니오.”
10분 후.
양측의 약재가 곧바로 준비되었다.
두 사람이 도구를 꺼내 독약을 조제하기 시작했다.
이장운은 약병을 여섯 개 준비하여 다섯 가지 재료에서 독을 추출했다. 그 후 다섯 가지 독을 섞어 모두 용기에 넣고 독약을 조제했다.
남궁혜가 무척 신기해했다.
“저게 무슨 수법이지? 처음 봐!”
“천제현이 힘들겠군!”
염천웅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건 아주 수준 높은 기술이야!”
“어떤 수법이죠?”
“우선 다섯 가지 재료에서 각기 독을 추출한 후 제약진을 발동시키면 성질이 완전히 변하게 되지요. 그 후 다섯 가지 독을 섞어 맹독을 만들어내지요. 전 과정에서 제약진이 두 차례 사용됩니다. 그럼 성질이 또 한 차례 변합니다. 그렇게 조제된 오독수는 성분을 알아낼 수 없습니다!”
남궁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재료에서 각자 다섯 가지 독을 추출한 다음 그걸 재료로 다시 새로운 독약을 만들다니, 그런 방법이 다 있구나…….”
이장운의 성품은 별로지만 제약술에 대한 조예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천제현은 약병 하나와 제약진 하나로 얌전히 독약을 조제했다.
별다른 기색 없이 전 과정에서 평범한 제약사처럼 평범한 약물을 만들었다.
약물이 점점 빨갛게 변했다.
색깔로 보니 확실히 혈요정이었다.
혈요정은 맹독으로 온몸의 혈액이 굳어져 심장이 마비되어 죽게 된다.
천제현이 혈액을 조절하는 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약 조제에 수준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약물로 이장운 같은 인물을 상대할 수 있겠는가?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
‘저놈은 이제 죽은 목숨이야!’
‘저런 능력으로 감히 제약사 조합 회장에게 도전을 하다니?’
사람들이 천제현을 향해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약 30분 후.
양측이 동시에 독약 조제를 마쳤다.
이장운이 독약을 교환한 후 약병에 담긴 선홍색에 빛나는 약물을 보며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혈요정? 후후!”
천제현도 오독수를 받아들었다.
암녹색 약물에 끊임없이 기포가 일었다.
천제현은 성의없이 대답했다.
“응. 그래.”
이장운은 그런 천제현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곧 끔찍하게 죽을 목숨. 건방진 건 용서해 주지. 후후.’
이장운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독수를 마시면 열 호흡 전에 온몸이 썩고 고름이 터지며 죽게 된다. 시체 주변은 전부 독기에 휩싸이며 생기를 잃게 되지!”
‘끔찍한 독이다!’
사람들이 잇달아 멀찌감치 뒷걸음질 쳤다.
하짐나 천제현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단해? 그럼 진짜 시험해 봐야겠군!”
그가 오독수를 들고 몇 번 흔들었다.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피더니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해독약을 만들자고! 난 무화과와 정광충, 구엽삼…….”
이미 답을 아는 이장운이 매우 느긋하게 해독약을 만드는 배합 표준에 따라 약재를 주문했다.
혈요정을 해독하는 약재였다.
이장운은 역시 노련했다.
얼마 걸리지 않아 바로 해독 약물을 조제해냈다.
남궁의는 점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특히 천제현이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급하게 다그쳤다.
“무슨 해독 약재가 필요한가? 내가 돕지!”
“필요 없습니다!”
천제현의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
이어지는 천제현의 행동은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그가 자리에 마력 제약진을 그리더니 오독수를 진법 안에 넣었다.
마력에 의해 제약진이 발동되자 눈부신 빛이 뿜어 나오며 약병 안의 암녹색 액체가 격렬하게 끓기 시작했다.
‘뭘 하는 거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이장운 역시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천제현은 어떤 약재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오독수를 새로운 제약진 안에 넣고 조제할 뿐이었다.
‘저놈이 미쳤나?’
‘대체 왜 저러는 이유가 뭐지?’
사실 이 마력진은 정화진(净化阵)이라 불리는 후세에서 매우 흔한 진법이었다.
그리고 이 진법은 유독물질과 암속성을 정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정화진에서는 어떤 독소라도 용해되어 무해한 물질로 바뀐다.
이장운이 조제한 오독수는 2급 독약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다섯 가지 1급 약재를 합성한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오둑수는 사실 1급 독약이라 보는 게 맞다.
1급 독약이라면 1급 정화진으로도 충분히 유독물질을 제거할 수 있다.
몇 분이 지났다.
이장운이 헐요정의 해독약을 천제현이 조제한 독약에 붓고 가소롭다는 듯이 천제현을 쳐다봤다.
“시작해도 되겠나?”
천제현도 정화를 마쳤다.
약병 안의 독약은 암녹색에서 색이 옅어져 연녹색을 띠고 있었다.
더 이상 기포도 일지 않았다.
천제현은 오독수가 든 병을 보란 듯이 흔들며 말했다.
“당신이 먼저 마실래? 아님 내가 먼저 마실까?”
“잔재주 따위가 두려울 게 뭐 있나? 네놈에게 우리의 차이를 똑똑히 보여주마!”
이장운이 선홍색 약물을 한입에 털어 넣고 약병을 던져서 깨뜨렸다.
“고작 혈요정 따위가 아닌가!”
천제현도 고개를 들어 한 모금에 오독수를 비웠다.
‘헉!’
‘정말 다 마시다니!’
놀란 사람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천제현은 이제 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언제라도 온몸이 문드러져 죽을 수 있다.
게다가 시체에서는 치명적인 독기가 발산되어 주변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
“천제현!”
“괜찮아?”
남궁혜와 공씨 자매가 극도로 긴장했다.
이장운이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저놈은 정말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군. 오독수가 그렇게 쉽게 해독할 수 있을 것 같아? 게다가 해독 약재의 도움도 없이 무슨 성분인지도 모르는 오독수에 진법을 사용하다니. 그럼 성분이 더욱 복잡해질 뿐이야.’
천제현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이장운의 미소도 점점 짙어졌다.
‘신이라 해도 네놈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남궁의와 장립청, 염천웅도 천제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장내는 쥐죽은 듯 고요했으며 모두가 속으로 숫자를 셌다.
1초.
2초.
3초.
…….
…….
모두가 긴장한 채 천제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천제현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어느덧 속으로 세던 숫자가 30을넘었음에도!
중독 증상을 보이기는커녕 천제현의 얼굴은 혈색이 돌며 번지르르한 게 마치 보약이라도 먹은 것 같았다.
“이 맛은…….”
천제현이 입술을 핥으며 입맛을 다셨다.
“좋네. 매실차 같아!”
사람들이 입을 떡 벌렸다.
맹독을 마셔놓고 입맛을 다시다니!
즉, 이 말은 천제현이 완벽한 해독에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와!
공서련과 남궁혜가 서로 손뼉을 치며 감격의 환호성을 질렀다.
공화련은 꽉 쥔 주먹을 피며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저 자식, 정말 사람 마음을 졸이는 데에 뭐 있다니까!”
한편 이장운의 주름진 얼굴에 한층 더 깊은 주름이 졌다.
“어떻게 내 오독수를 해독할 수 있었지!”
양웅도 얼굴을 구겼다.
천제현에게는 정말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그때.
낙원산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양측 모두 독이 발작하지 않았으니 이번 판은 무승부다!”
천익이 황급히 거들었다.
“저놈이 지 입으로 한판이라도 이기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다. 무승부로 끝났으니 이기지 못한 것이다. 무슨 할 말이 더 있느냐!”
“옳소!”
“자진해라!”
사람들 틈에서 호응이 일어났다.
“내가 보기엔 천제현이 이겼어!”
공화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십대 소년이 이장운과 비겼어. 경지의 차이가 엄청난데도 불구하고! 이게 이긴 게 아니고 뭐야?”
공서련이 얼른 말을 받아 외쳤다.
“언니 말이 맞아!”
양웅이 우기기 시작했다.
“무승부는 무승부야!”
도진천도 거들고 나섰다.
“무숭부는 이긴 게 아니라고!”
“맞아!”
“궤변 늘어놓지 마!”
양측이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주위의 사람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