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제68장 반격의 시작
통통한 몸집에 머리가 벗겨진 중년 사내가 사람들 틈에서 걸어 나왔다.
날카로운 매부리코에 눈빛이 매처럼 예리하고 온몸에서 강한 기운을 뿜어냈다.
남궁의와 맞서기에는 한참 부족했지만 그가 내뿜는 기세를 잠시 막아낼 정도는 됐다.
‘혼성술사군!’
남궁의의 안색이 다소 굳어졌다.
‘이런 작자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낙원산이 코웃음을 치며 품에서 백옥 영패를 꺼내 높이 치켜들더니 큰소리로 선포했다.
“중주성 감찰부, 사법부 집행 장로 낙원산이오!”
감찰부는 중주성의 상당한 권력을 가진 기관이다.
중주성 성주 직속 기관으로 각지 군대의 장수와 집행관을 감찰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실질적인 힘도 상당히 큰 기관이다.
낙원산이 계속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남궁의는 함부로 선을 넘어 천씨 가문의 일에 관여했소. 이는 국법을 어기는 행위요. 나는 사법부 집행 장로로써 이 일을 좌시할 수 없소. 성주께서는 자초지종이 명확히 밝혀질 때까지 이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오.”
남궁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낙원산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성주님,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자리에서 비켜주시지요. 시간 낭비하지 맙시다!”
남궁의의 지위는 굳건하지 않았다.
만약 감찰부가 이 일을 꼬투리 잡아 시비를 건다면 성주 자리를 지킬 수 없을지도 몰랐다.
낙원산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남궁의, 네놈은 이제 아무것도 할 수없다!’
남궁의는 이 일이 음모인 것을 알아차렸다.
“낙원산, 대체 뭘 어쩔 셈인가?”
“질문이 틀렸습니다.”
낙원산이 자신이 마치 정의의 사도인 양 의기양양하게 굴었다.
“천씨 가문의 일에 성주님도 저도 끼여들 권한이 없습니다. 어떻게 처리할지는 천씨 가문 사람에게 물어야지요.”
천익이 싸늘하게 말했다.
“가문을 배신한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 이 도둑놈은 가문을 배신하고 기밀을 빼갔습니다. 능지처참하여 시체를 마수에게 던져줘야 저희 가문의 위신이 섭니다!”
천익의 말이 끝나자 낙원산은 남궁의에게 뻔뻔한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들었습니까?”
남궁의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어찌해야 하는가!’
남궁의가 쉽사리 물러나지 않자 낙원산은 콧방귀를 뀌면서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뭘 멍하니 있는 게냐? 이 도적놈을 끌고 가! 능지처참하고 시체를 마수에게 던져줘라!”
공서련이 분노하며 작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천제현을 모함하고 극형으로 죽이려 하다니!’
공서련은 천익에게 한 마디 쏘아주려 했다.
그런데 공서련의 입을 열려는 순간 발밑의 땅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남궁의의 도포가 바람도 없는데 흔들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거센 화염이 몸에서 솟구쳤다.
강렬한 화염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 뜨거운 열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화르륵-!
그리고 남궁의의 머리 위로 화산 정령이 천천히 모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화산 정령은 아직 완전한 형상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가공할 기운이 뿜어냈다.
곧 파멸적인 힘이 화산 정령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터지지 않았던 화산이 한 번 폭발하면 천지를 파멸시키듯, 세상을 멸망시킬 것 같은 힘이었다.
낙원산이 대경실색하여 뒤로 물러서며 식은땀을 흘렸다.
“남궁의…… 설마 감찰부 관리에게 손을 쓸 셈이냐? 성주 자리가 지겨운가 보지?”
남궁의가 싸늘하게 웃었다.
“성주는 관둬도 상관없다! 나 남궁의가 여기 있는 한 네놈들 뜻대로 되게 두진 않겠다!”
남궁의에게는 천남성의 성주 자리보다 천제현이 훨씬 가치 있었다.
게다가 신식을 익히기 위해서라도 남궁의는 전력을 다해 천제현을 보호해야 했다.
낙원산은 기세가 꺾였지만 애써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남궁의! 성주가 되어서 국법을 무시하다니, 네가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아느냐?”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게냐?”
남궁의의 기세가 점점 강해지며 날카로운 살기마저 뿜어져 나왔다.
“내가 정말 네놈 따위를 신경 쓸 것 같았느냐? 네놈을 죽여도 국법이 날 어쩔 수 있을 것 같느냐!”
이 세계는 실력이 곧 법이었다.
남궁의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천제현을 보호할 수단이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무력을 사용하는 수단뿐이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천제현을 보호해야 한다!’
남궁의가 낙원산을 향해 한 발자국을 떼었다.
낙원산은 그 기세에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로서는 일이 이렇게 될지 전혀 예상 못했다.
모든 계획은 남궁의가 물러선다는 상황하에서 세워졌다.
그런데 남궁의가 이런 쓸모없는 놈 때문에 성주 자리까지 마다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여기까지 본 천제현의 입가에 담담한 미소가 걸렸다.
사실 양웅의 음모는 전부 다 예상범위 안이었다.
게다가 천제현은 천재대전이 끝난 직후에 바로 대책을 마련해 놨다.
‘이것들이 나와 해보겠다고? 멍청하긴. 아직 멀었어!’
천제현이 속으로 피식 웃었다.
남궁의가 나서자 남궁혜는 흥분하며 폭소를 터트렸다.
“잘했어요! 그래야 내 아버지죠!”
상황이 계속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자 낙원산은 혼란에 빠졌다.
“성, 성주님께서 이 도적놈을 비호하려고 왕국의 법을 굳이 어기시겠다면 저는 사법부의 장로로 법을 보호하고 왕국의 존엄을 지키겠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낙원산의 말에 동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옳소!”
“낙 장로는 역시 정의감이 넘치십니다!”
“저희가 거들겠습니다!”
그러더니 그림자 몇 개가 남궁의의 주위를 에워쌌다.
양웅과 도진천, 이장운 외에 절정의 고수 몇 명이 순식간에 남궁의를 포위하고 나섰다.
‘혼성술사들이 연합하여 성주와 맞선다고?’
현장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두 놀라 당황했다.
남궁의가 자신을 둘러싼 혼성술사들을 보고 오히려 웃음을 터트렸다.
“좋다! 이렇게 된 거 나와 겨룰 기회를 주지! 모두 함께 덤벼라!”
그때.
방금 전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외침이 흘러나왔다.
다만 이번의 경우는 성주의 편을 드는 외침이었다!
“정의의 편에 선 성주님을 돕겠습니다!”
장립청이 상쾌한 바람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순식간에 멀리서 날아와 남궁의 옆에 섰다.
등 뒤에서 거대한 푸른 매가 날아올랐다.
끼이잉!
날카로운 매 울음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푸른빛 마력이 거대한 매의 형태로 응집되어 도도하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노련하면서도 강한 기운이 장내의 모든 사람에게 엄습했다.
기운에 섞여 있는 예리한 살기는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장립청의 등장에 남궁의는 든든함을 느꼈다.
그러고는 아까부터 더 강렬한 기세를 담아 외쳤다.
“싸움을 원한다면 받아주마! 이 천남성에서는 난 누구도 두렵지 않다!”
천제현 때문에 혼성술사들이 혼전을 벌인다?
혼성술사들이 지닌 파괴력은 엄청나다.
전투가 정말 벌어진다면 그건 자연재해에 버금가는 대재앙이다.
만약 전투가 벌어졌을 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남궁의와 장립청이 우위를 점할 것이다.
남궁의의 마력은 가늠할 수 없이 강하다.
화산 정령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은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주위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남궁의의 화산 정령이 지닌 파괴력은 너무 강했다.
힘을 조금만 강하게 방출하면 무고한 피해자가 나올 게 뻔했다.
바로 이 때문에 남궁의는 전력을 다해 싸울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장립청 혼자서 네 명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무리 장립청의 마력이 강하다고 해도 혼자서 넷을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일이다.
공화련 자매는 대치하고 있는 혼성술사들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상황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천남성 절정의 고수들이 충돌한다면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적상회나 천제현, 모두에게 모두 굉장히 불리하다.
‘이걸 어쩌면 좋지?’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정말 어울리지 않는 나른한 목소리가 울렸다.
“성주님, 왜 이렇게 화를 내십니까? 이게 뭐 별일이라고요! 일단 물러나셔서 제 말씀 좀 들어주십시오.”
이 대립은 천제현 때문에 벌어졌다.
그런데 당사자는 태연자약하다니!
남궁의는 천제현의 그런 태도에 더욱 어이가 없었다.
‘놈들이 널 능지처참하겠다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라니, 목숨이 몇 개라도 된다는 거냐?’
모든 사람의 이목을 한 몸에 받으며 천제현은 산책하듯 느긋하게 중앙으로 걸어 나와 천익 패거리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말끝마다 내가 천씨 가문 사람이고 가문을 배신한데다 기술을 훔쳤다고 하는데, 그럼 하나만 물어볼게요.”
천제현이 경박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내가 정말 천씨 가문 사람입니까?”
사람들이 놀라 자리에 굳어 버렸다!
‘지금 천제현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설마 천익이 사람을 잘못 본 건가?’
천익이 분노하며 대답했다.
“네놈이 우리 가문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면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거냐!”
“말에는 증거가 있어야지요!”
천제현이 방정맞게 웃기 시작했다.
“증거는요? 족보를 가져와 모두 앞에서 공개하시지요! 만약 족보에 천제현의 이름이 있다면 내 기꺼이 목을 내놓지요!”
“네 이놈! 사생아 따위가 어찌 족보에 오를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이상하군요. 족보에 오르지도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천씨 가문 사람입니까? 족보에 오르지도 못하는데 가문을 배신한 죄라니요! 족보에 오르지도 못하는데 무슨 권한으로 내게 가문의 규율을 적용하려는 겁니까?”
이 말이 끝나자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륙의 가족 체계는 매우 엄격했다.
방계건 직계건 자손이면 모두 족보에 올려야 했다.
왕국에서는 가문의 규율을 인정한다. 그러나 규율의 범위가 무한정인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국법이 존재할 까닭이 있겠는가?
가문의 규율은 가문 사람에게만 한해서 적용된다.
그리고 족보야말로 가문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해 주는 기준이 아닌가.
족보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자동적으로 모든 지원과 특권, 지위를 상실한다.
가문의 지도자를 뽑을 수 없고 가문의 무공을 익힐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이나 다를 바 없다.
가문의 특권을 누릴 수 없는데 규율만 지키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천제현의 경우가 그랬다.
족보에 오르지 못하고 가족들이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천씨 가문 사람이라는 것인가?
천제현이 천씨 가문 족보에 올라가 있지 않다면 이 일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