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제64장 고질병 치료
공화련이 부끄러워서 말을 잊지 못하며 고개를 가슴까지 푹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게…… 좀…….”
천제현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어서 준비하세요. 빨리 옷을 벗어요. 시간 없어요!”
공화련이 울컥했다.
그녀는 매우 보수적이었다.
사내 앞에서 옷을 홀딱 벗는 건 죽기보다 끔찍한 일이다.
공화련에게는 몹시 어려운 일인데 이놈은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다는 모습이다.
‘침을 맞는데 꼭 옷을 벗어야 하나? 일부로 날 놀리려는 건지도 몰라!’
공화련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몇 분을 망설이다 마음을 굳혔다.
“알겠어. 벗을게.”
공서련이 깜짝 놀라 물었다.
“언니, 정말 저놈 좋은 일 시킬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누가 저놈 좋은 일 시킨다는 거야!”
공화련이 동생을 노려봤다.
눈빛에 언짢은 기색이 가득했다.
“어서 검은 천을 가져와서 저놈의 눈을 제대로 가려.”
공서련이 어쩔 수 없이 검은 천을 찾았다.
“앉아.”
공서련이 등 뒤에 서서 그의 눈을 꽁꽁 싸맸다.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공서련의 숨결을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움직임이 너무 커서 공서련의 가슴이 이따금 천제현의 등을 스쳤다.
천제현은 부드럽다는 게 뭔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공서련도 이 정도인데 공화련은……!’
천제현은 눈을 가려달라고 한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제대로 동여매세요!”
천제현이 옷깃을 여미고 단정히 앉아 학자처럼 점잖게 굴었다.
“큰아가씨가 제게 혼인하자고 억지를 부리면 증인이 돼 주셔야 해요. 전 아무것도 못 보고 아무것도 안 만졌어요.”
공화련은 분통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와 혼인하는 게 그렇게 끔찍한 일이야? 이런 후안무치한 놈. 네가 원해도 내가 싫어!’
공서련도 화가 나서 머리를 박살 낼 것처럼 양손에 힘을 주어 눈을 꽁꽁 동여맨 후 매듭을 묶었다.
천제현이 억울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진짜 절 못 믿으시는 군요! 좀 믿고 옷이나 벗으세요!”
공서련이 언니에게 번쩍이는 눈빛을 보냈다.
“언니, 걱정 마. 내가 이놈을 잘 감시할게.”
공화련이 붉은 입술을 앙 다물었다.
어여쁜 얼굴은 온통 빨갛고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에잇! 까짓 거 벗지 뭐!’
공화련은 눈을 질끈 감았다.
‘천제현이 호의로 병을 치료해 주겠다며 눈까지 가렸는데 이렇게 투정을 부리는 건 말도 안 돼.’
그리고 몸을 떨며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하얀색 비단옷이 하나하나 바닥에 떨어졌다.
다리는 백옥처럼 하얗고 늘씬하며 바짝 올라붙은 둔부는 풍만하고 버들가지 같은 허리는 한 줌도 안 되었다.
뭇 여성들에게 패배감을 안겨줄 신성한 봉우리는 도도하게 우뚝 섰다.
검고 긴 생머리를 풀자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하늘의 선녀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아름다웠다.
공서련도 입을 쩍 벌리고 쳐다봤다.
‘친언니지만 정말 질투 나는 몸매야!’
공화련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부자연스럽게 서 있었다.
피부는 옥 같이 매끄럽고 눈동자는 촉촉했다.
평소처럼 근엄하고 단정한 모습이 아니라 부드럽고 여린 게 마치 만개하길 기다리는 모란꽃 같았다.
아름답지만 요사스럽지 않은 게 비길 데 없이 매혹적이었다.
공서련이 외쳤다.
“이봐! 언니가 옷을 다 벗었다고! 어서 치료하지 않고 뭐해?”
공화련이 이 말을 듣고 복사꽃처럼 얼굴을 붉히며 입을 삐죽거렸다.
천제현이 대답했다.
“알고 있어요.”
공화련이 깜짝 놀라서 양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어떻게 알았어? 너 내가 보이지!”
천제현이 웃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바보, 눈을 가렸다고 귀가 막힌 건 아니잖아요. 눈이 안 보인다고 귀도 안 들리나요?”
‘그랬구나. 다행이다!’
천제현이 천천히 일어섰다.
“준비 다 됐죠? 시작합니다!”
공화련이 양손으로 가슴을 단단히 가렸다.
그러나 가슴이 너무 커서 손으로 다 가려지지 않았다.
그녀는 발가벗었다는 부끄러움과 천제현이 놓을 침에 대한 걱정으로 긴장한 모습이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알몸으로 사내 앞에 서 본 적이 있었나? 그리고 이 선천적인 고질병을 정말 치료할 수 있을까?’
북을 치는 듯 심장이 쿵쾅거렸다.
한편 천제현도 긴장한 듯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심안이여 열려라!’
심안이 열리며 천제현은 순식간에 공화련 몸속의 경맥과 혈도를 전부 파악했다.
그러다 곧 인상을 찌푸렸다.
“큰아가씨, 팔로 가슴을 가리고 계시면 어떻게 침을 날리겠어요? 어서 손 치우세요!”
“아…….”
공화련이 손을 반쯤 내리다가 깜짝 놀라서 다시 가슴을 가렸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거의 울다시피 말했다.
“너…… 너, 안 본다고 했잖아!”
공서련이 분노한 짐승처럼 날뛰었다.
“이 나쁜 자식, 감히 언니를 괴롭히다니! 머리털을 다 뽑아버리겠어!”
“잠깐, 흥분하지 마세요!”
천제현이 펄쩍 뛰며 황급히 해명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아요. 이건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에요. 심안으로 본 거예요. 심안이 뭔지 아시죠?”
자매가 서로를 쳐다봤다.
천제현이 이어서 설명했다.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두 분은 제 앞에서 피와 살, 뼈, 마력, 정신의 혼합체일 뿐이에요. 심안은 오래 지속할 수 없어요. 협조해 주시지 않으면 오늘 치료는 물 건너갑니다.”
공화련이 입술을 꽉 깨물며 양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러셔야지요!”
이어서 천제현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제 제 말대로 하세요. 똑바로 서세요!”
“두 다리를 모으고 가슴을 내미세요.”
“맞아요, 그렇게요. 엉덩이를 치켜드세요!”
화가 난 공화련이 이를 악 물었다.
“적당히 해!”
“좋습니다.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움직이지 마세요!”
“작은아가씨, 침을 가져다 주세요!”
공서련이 지체 없이 상자를 열어 두 손으로 건넸다.
조막만한 얼굴에 불안과 긴장이 가득했다.
이제부터 가장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천제현이 행하려는 비침자혈은 전설 속의 침술로 난이도가 무척 높았다.
‘눈을 가리고 있는 상태에서 천제현이 정말 해낼 수 있을까? 이건 장난이 아니라고!’
침을 놓는 깊이가 좀 얕아도, 좀 깊어도, 좀 치우쳐도 문제가 생긴다.
경맥과 혈자리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비침자혈에 성공하려면 엄청난 정교함이 필요하다.
공서련이 언니를 걱정하는 사이에 천제현이 침술을 시전했다.
은색 빛이 번쩍이더니 가늘고 긴 침이 가슴에 몇 센티 깊이로 박혔다.
은침 표면에서 마력의 빛이 퍼지며 침이 계속 움직였다.
공화련이 가벼운 신음을 뱉었다.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약한 전류의 자극을 받는 것처럼 가렵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천제현은 정신력이 약하여 심안을 오래 지속시키지 못하므로 속도를 끌어올려야 했다.
십여 개의 침이 잇달아 공화련의 몸을 파고들었다.
몇 개의 침이 민감한 부위에 박히자 저릿저릿한 느낌이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아!”
공화련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피부가 민감한 체질이다.
외부의 계속된 자극으로 몸의 반응을 통제하기 힘들어지자 그녀는 급히 두 다리를 오므리고 얼굴을 붉혔다.
공서련이 몹시 긴장하여 주먹을 불끈 쥐고 천제현에게 물었다.
“이봐! 언니 호흡이 가빠졌어. 몸이 붉게 변하면서 두 다리를 떨고 있어. 별문제 없는 거지?”
‘그렇게 다 말해줄 거면 눈은 왜 가린 거야!’
공화련이 다급히 외쳤다.
“난…… 난 괜찮아!”
천제현도 그에 응하듯 외쳤다.
“돌아서세요!”
공화련이 급히 몸을 돌렸다.
다시 마력의 빛을 뿜는 수십 개의 은침이 팔과 어깨, 등, 둔부, 허벅지로 꽂혔다.
“저렇게 많은 침들을 몸에 꽂다니!”
공서련이 팔로 몸을 감싸며 벌벌 떨었다.
5분 후.
“끝났습니다!”
천제현은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심안은 장기간 사용할 수 없다.
천제현은 이미 탈진 직전이었다. 하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움직이지 마세요! 1분 후에 마력이 침을 따라 경맥에 주입되면 은침을 뽑으셔도 돼요. 그 후에 용기에 들어가 앉으세요. 다음 치료를 시작할 거예요.”
1분이 지나자 은침에서 더 이상 빛이 나지 않았다.
마력이 경맥에 주입되었다는 뜻이었다.
공서련이 급히 언니의 몸에서 은침을 뽑아냈다.
이후, 공화련이 수정 용기에 들어가 앉자 짙푸른 즙이 온몸에 스며들며 기분 좋은 청량감이 삽시간에 몸을 감쌌다.
천제현이 다시 천천히 다가왔다.
공화련이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당황한 눈으로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뭐하려고 그래?”
“함부로 움직이지 마세요!”
“아!”
천제현이 커다란 손으로 공화련의 어깨를 눌러 그녀를 다시 앉혔다.
공화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보니 그의 수려한 얼굴에 진지한 기색이 가득했다.
천제현의 진지한 태도에 가슴이 조금 설렜다.
‘큰아가씨의 피부는 정말 매끄럽다! 꼭 비단 같단 말이야!’
아쉬워하며 손을 거둔 천제현이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마력진을 펼치려고 해요. 방금 제가 일러준 구결대로 무공을 시전하세요. 이 과정에서 한눈을 팔면 안 됩니다. 방금 제가 비침자혈로 아가씨 몸의 경맥을 뚫어 별의 힘이 들어갈 길을 만들어놨어요.”
공화련이 모기처럼 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어…….”
천제현이 수정 용기를 손바닥을 대자 마력진이 순식간에 빛을 발하면서 즙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푸른빛이 뿜어져 나와 공화련의 몸을 향해 모였다.
공서련은 그 광경을 보며 감탄했다.
‘너무 신기해! 이 수련방식은 너무 아름답지만 이상해! 사람을 용기 안에 넣고 마력진으로 수련시키다니!’
잠시 후.
천제현은 수정 용기에서 손바닥을 떼며 피곤한 기색을 드러냈다.
“우리는 나가죠. 큰아가씨의 수련을 방해하면 안 돼요.”
둘이 방을 빠져나왔다.
공화련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한참 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나쁜 놈! 사람 괴롭히는 데 선수라니까!’
표정은 매서웠지만 공화련은 소녀 같은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 여장부 같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공서련은 천제현을 이끌고 정원에 도착해서야 검은 천을 벗겨주었다.
그리고 까맣고 촉촉한 큰 눈망울로 천제현을 몇 초 쳐다보며 물었다.
“괜찮아?”
“원래 괜찮았는데 그렇게 물어보시니…… 아!”
천제현이 눈을 깜빡거리며 뻔뻔하게 몸을 기댔다.
“갑자기 어지럽네요. 부축 좀 해주세요!”
“어디서 개수작이야!”
공서련이 몸을 피한 후 천제현의 정강이를 가볍게 걷어차며 인정사정없이 말했다.
“혈색 좋은 것 좀 봐. 어딜 봐서 어지럽다는 거야? 왜, 기분 나빠? 다른 남자들은 언니의 손도 못 잡아봤어. 그런 언니가 네 앞에서 알몸을 보였다고!”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그런 사람입니까! 게다가 보지도 못했는데…….”
억울해하던 천제현은 이내 의심하는 눈초리로 그녀를 훑어봤다.
“설마 질투하는 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