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제63장 치료하려면 벗어요
사실 유성초의 효능을 제대로 흡수하는 방법은 따로 있었다.
대대적으로 투자하여 한 번에 대량의 유성초를 사용해야 한다.
또, 특수한 유도 방법이 더해져야 성광체(星光體)가 되어 비로소 효능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천제현의 운은 몹시 좋은 것이다.
이 시대의 유성초는 말도 안 되게 쌌기 때문이다.
천제현은 염천웅이 사온 유성초를 즉시 가공하기 시작했다.
유성초 1,000포기가 순도를 높여주는 추출 과정을 거쳐 짙푸른 즙으로 변했다.
여기에 몸을 강화시켜 주는 몇 가지 보조 약재를 더해 거대한 수정 용기에 부었다.
수정 용기는 사람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다.
이 용기에는 주문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하늘의 별처럼 신비롭고 광활한 기운, 이것이 미래의 1급 성광연체진법(星光淬体阵)이었다.
수정 용기는 사실 커다란 용광로의 역할이었다.
수정 용기에 성광연체진법을 새긴 후 유성초와 재료들을 한꺼번에 투입한다.
그리고 직접 수정 용기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진법의 효과로 각종 재료들이 수정 용기에서 융해되고 제련되며 별의 힘이 몸과 정신으로 흡수되는 것이다!
이렇게 창의적이고 대담한 방법이 세간에 알려진다면 엄청난 파문이 일어날 것이다.
‘자, 시작해 볼까!’
천제현이 옷을 벗고 진법 안으로 들어가 마력을 응집시킨 다음 손뼉을 쳤다.
수정 용기 표면의 진법과 주문이 마력에 의해 전부 발동되면서 순식간에 눈부신 빛이 일어났다.
약즙이 끓기 시작하면서 무수히 기포가 솟구치더니 깨알 같은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즙에 가득 녹아 있는 별의 힘이 분출되면서 모공을 통해 천제현의 체내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으어, 좋구먼.’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태고의 힘이 몸 구석구석에 스며들며 혈액을 적시고 뼈를 강화시켰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빛이 물길처럼 경맥을 지나며 불순물을 제거하고 경맥을 확장시켰다.
게다가 더 강한 별빛의 힘이 직접 정신으로 스며들었다.
정신에 거대한 힘이 주입되니 정신력이 대폭 강화되었다.
천제현의 머릿속에 아주 오래된 무공인 성광불멸체(星光不灭体)가 떠올랐다.
성광불멸체는 고강한 방어 위주의 무공이었다.
수련 난이도가 몹시 높아서 수련 도중에 반드시 별빛의 힘을 흡수해야만 한다.
유성초를 사용하지 못하면 별빛이 있는 밤에만 수련할 수밖에 없어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몇 년을 수련해도 입문 단계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광연체진 안에서 수련하면 빠르게 무공을 완성할 수 있었다.
천제현은 이 시대에 떨어지고 나서 제대로 된 무공을 수련하지 못했다.
충소권이나 금강절맥지는 괜찮은 기초 무공이긴 했지만 급이 높은 무공은 아니다.
게다가 성광불멸체는 미래에서도 몹시 귀한 무공이었다.
이 무공의 정점인 성광호체에 이르면 어떤 공격을 받아도 별의 힘을 흡수하여 마력과 상처를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다.
만약 이 무공을 터득한다면 곧바로 동급 수련자들을 쓸어버리고 자신보다 상급의 수련자에게 도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급 무공과 특수 무공은 수련 과정 중에 막대한 약재의 힘이 필요하다.
성광불멸체 역시 그렇다.
대륙에서 별의 힘이 담긴 약재는 모두 신체와 마력을 크게 강화시키는 보물들이다.
그러니 가격이 얼마나 비싸겠는가.
이 시대에서조차 무공을 익히는 데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성광불멸체는 미래에서는 거의 실전될 지경이었다.
천제현은 이 무공을 연구한 적이 있어도 직접 익히게 될 줄 생각지도 못했다.
***
15분쯤 지나자 짙푸른 즙이 점점 투명해졌다.
즙에서 나온 푸르스름한 별빛이 천제현의 몸을 감쌌다.
천제현의 몸은 마치 푸른빛을 발하는 파란 수정 같았다.
‘정말 좋군! 유성초 1,000포기가 헛되지 않았어!’
천제현은 이미 연체 8성의 경지에 이르렀다.
처음 사용하는 성광연체진법이라 마력이 뚜렷하게 향상되었다.
앞으로 효과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성광연체진법의 최고 장점은 신체 강화와 기초 마력 강화에 있다.
성광연체진법을 통해 유성초를 장기간 흡수한다면 신체는 더욱 강화되고 동일한 경지에서 동일한 급의 평범한 사람보다 마력이 두 배는 될 것이다.
출렁출렁!
물결이 일었다!
천제현이 옷을 걸치고 걸어 나와 거울 앞에 섰다.
피부가 예전보다 더 매끄러워졌다.
주먹을 가볍게 쥐자 푸른색의 별빛이 퍼졌다.
성광불멸체의 힘이었다!
물론 단번에 완성되는 무공은 없다.
대륙에서는 무공 수련 정도를 네 단계인 소성, 통달, 대성, 입신으로 분류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수련 단계가 높을수록 무공은 더욱 강렬하다.
성광불멸체는 이 네 단계에 따라 유리체, 금강체, 성광체, 불멸체로 명확히 구별된다.
천제현은 이제 겨우 발을 들여놓은 정도로 소성 상태인 유리체에도 한참 못 미쳤다.
그렇다 해도 천제현의 각종 방어능력은 대폭 증가했다.
무공은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다.
수련할 무공을 선택하는 데에는 두 가진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무공의 유형과 정령이 서로 보완적이어야 한다.
둘째, 기존에 익힌 무공과 충돌하면 안 된다.
남궁혜의 정령은 불의 속성인 봉황이다.
그래서 남궁 가문의 무공인 분천공을 연마했다.
분천공 역시 불의 속성이기에 정령과 상호 보완이 된다.
만약 얼음 속성에 속한 무공을 익혔다면 그 무공이 분천공보다 강한 무공이라도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무공 간의 충돌은 흔한 현상으로 동일한 속성의 무공 사이에도 충돌이 생길 수 있다.
무공은 다양한 것보다 정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생 한 가지의 무공만 연마하는 수련자도 적지 않다.
그래서 보통 수련자들은 정령 속성이 확실해지기 전에는 함부로 무공을 연마하지 않는 편이다.
천제현이 성광불멸체를 처음 수련할 무공으로 선택한 것은 이 무공이 지닌 강한 방어와 보조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성광불멸체의 최대 장점은 전투가 아니라 양생(養生)이다!
성광불멸체는 양생에 탁월한 무공으로 몸에 어떤 부작용도 주지 않으며 수련 과정에서 끊임없이 경맥을 새롭게 하고 체질과 재능을 강화시킨다.
방어와 보조 효과가 뛰어나지만 매우 무속성이라 거부반응이 없다.
다시 말해 어떤 정령을 각성시키든 어떤 다른 무공을 수련하든 성광불멸체는 전혀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기초를 다지기에 최적인 무공이다.
미래에서 성광불멸체를 익힌 극소수의 수련자마저도 대성까지 연마한 사람은 없었다.
천제현 역시 우연한 기회에 이 무공을 접했다.
그는 한 번 본 것을 잊지 않는 능력으로 이 무공을 외워 버렸다.
‘현재 대륙의 여건이라면 성광체나 최고 경지인 불멸체까지 연마가 가능할 거야!’
이때 천제현은 뭔가를 깨달았다.
이 성광불멸체가 우수하지 않아서 실전이 될 지경에 이른 게 아니다.
후세의 수련 여건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무공이 성광불멸체처럼 실전된 걸까?
‘이 시대에서 어쩌면 훨씬 더 강한 무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라!’
***
공화련과 공서련이 천남성으로 돌아왔다.
공화련은 천제현이 시키는 대로 동굴 속 생명의 샘에서 목욕을 한 후 연기단을 한 알 복용했다.
마력이 연체 7성에 이르렀다.
이제 천제현이 약속을 지켜야 할 차례다.
공서련이 기대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천제현, 정말 언니의 고질병을 치료할 수 있어?”
천제현이 미소 지었다.
“치료에 협조만 한다면 절대 문제없어요!”
‘치료에 협조한다면? 어떻게 협조를 안 할 수가 있겠어!’
태어나면서부터 이 고질병을 앓았으니 꼬박 20여 년을 고통 받은 셈이다.
그 고통은 오직 공화련 본인밖에 모른다.
천제현이 공서련에게 말했다.
“은침을 준비해 주세요!”
“알겠어!”
공서련이 재빠르게 은침을 가지러 달려갔다.
천제현이 엄숙한 얼굴로 공화련을 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제가 무공을 하나 전수할 거예요. 잘 기억해 두세요. 앞으로 쓸 일이 많을 겁니다.”
천제현이 전수하려는 무공은 다름 아닌 바로 성광불멸체였다.
공화련은 모든 구결을 듣고 몹시 놀랐다.
‘이 무공은 내가 알고 있는 왕국의 어떤 무공보다 더 심오해. 독립된 문파를 세워도 될 정도야!’
공화련은 천제현이 아무 무공이나 전수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강한 무공을 전수할 줄이야.
“은침 대령이오!”
공서련이 작은 상자를 두 손에 받쳐 들고 뛰어왔다.
천제현은 이미 유성초 천 포기로 즙을 만들어 수정 용기에 채워놓았다.
새파란 즙에서 상쾌한 향이 풍겼다.
이제 치료 준비가 끝났다.
공서련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즙을 쳐다봤다.
“이게 언니의 병을 치료할 약물이야? 양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질문은 잠시 접어두세요. 그럼 시작하죠. 이제 비침자혈을 시전할 거예요.”
공서련이 얼른 대꾸했다.
“그럼 난 자리를 피해 줄게.”
“가시면 안 돼요. 우선 검은 천을 찾아주세요.”
“어? 검은 천은 어디다 쓰려고?”
천제현이 진지하게 말했다.
“눈을 가려야만 할 수 있어요!”
공서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봤다.
“내가 책을 많이 안 봤다고 속이면 안 돼! 눈을 가리고 어떻게 침을 놓니? 그러다 사람 잡아. 하나뿐인 언니가 잘못되면 어떻게 책임질 거야?!”
공화련은 동생이 자신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고 입가에 따뜻한 미소를 머금었다.
“서련아, 흥분하지 마. 천제현, 그냥 침을 놔도 돼. 그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 없어.”
“안 돼요. 저는 진지해요. 반드시 눈을 가려야 해요.”
“답답해!”
공서련이 씩씩거리며 물었다.
“어째서 눈을 가리고 침을 놓아야 한다는 거야? 언니가 다치면 어떡해! 안 돼, 난 동의 못 해!”
“바보 같은 소리 그만하세요!”
천제현이 공서련의 머리에 꿀밤을 날렸다.
공서련이 머리를 감싸며 불평했다.
“아, 왜 때려!”
천제현이 그녀를 노려봤다.
“맥을 뚫으려면 옷을 다 벗어야 해요. 그러니까 큰아가씨가 알몸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요. 눈을 안 가리면 알몸을 봐야 하잖아요.”
두 자매가 놀라서 멍해졌다.
천제현이 흥분하여 계속 침을 튀겨가며 말을 이었다.
“만약 그런 이유로 두 분이 저에게 큰아가씨를 부인으로 맞아들이라고 협박하시면 전 어떻게 하나요? 절 그렇게 원하시는 거예요? 쳇! 어림없어요!”
아리따운 두 얼굴이 곧바로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 자식이 열 받게 하네.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어!’
공화련이 부끄러워서 빨개진 얼굴로 말을 더듬거렸다.
“옷을 꼭 벗어야 해?”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벗어야 해요!”
공화련이 빨간 얼굴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눈을 가리고 침을 놓을 수 있어?”
천제현이 언짢아하며 물었다.
“절 못 믿으세요?”
“아니, 화내지 마. 당연히 믿지. 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