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제54장 수정의 눈물 사용법
남궁의가 깊게 실망하자 천제현은 인심 쓰듯이 말했다.
“하지만 정신력을 수련하는 방법은 알려드릴 수 있어요. 신식 수련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어느 정도의 도움은 될 거예요. 지속적으로 수련할 경우 입미의 경지까지는 이를 수 있겠지요.”
남궁의는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그게 사실이오?”
순간 천제현의 눈에 교활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힘들 것 같아요. 제가 여태까지 누구를 가르쳐 본 적이 없는지라 천천히 시간을 두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겠소?”
“한 달 정도 걸릴 듯해요……. 한 달 정도…….”
남궁의는 초조해졌다.
“그렇게 오래 걸린단 말이오?!”
천제현은 정색하며 말했다.
“정신을 수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에요. 조금이라도 잘못되었다간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초래하지요. 운이 좋으면 병신이나 바보가 되는 것으로 그치겠지만, 운이 나쁠 경우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으니 절대로 서두를 수 없어요. 천천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요.”
사실 이 말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하지만 천제현이 정신 수련의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남궁의도 그 점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정말 한 달이나 시간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럴 리가! 이 애송이 녀석이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 달 동안 어떻게든 내 보호를 받으려는 생각이겠지!’
그러나 유혹이 너무 컸다.
신식 수련을 할 수 있는 방법 아닌가.
그 가치는 남궁 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무공, 분천공(焚天功)보다도 클 것이 분명했다.
분천공이 아무리 강력해도 결국에는 일개 무공에 불과하다.
왕국에 그러한 무공을 갖춘 자는 한둘이 아니었으며, 대륙 전체로 보면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천제현의 정신 수련법은 신묘하기 이를 데 없으니 왕국뿐만 아니라 대륙을 통틀어도 그것을 아는 자를 찾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남궁의가 들어본 적 없을 리 만무했다.
“좋소!”
“서두르면 될 일도 아니 되는 법이지요. 한 달!”
“그 수련법이 정말 도움이 된다면 우리 남궁가, 그대에게 후히 사례하겠소!”
천제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목적을 이뤘다.
이제 양씨 가문에서 그 어떤 음모를 꾸미든 남궁의가 목숨을 걸고 지켜줄 것이다.
양씨 가문의 힘이 성주조차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 아니라면 천제현은 안전했다.
그럼 한 달 후에는 어쩐단 말인가?
걱정할 것 없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천제현은 그때 이미 혼성 경지에 도달해 있을 테니까!
이때, 한 하인이 수레를 끌고 들어왔다.
수레 안에는 남정사와 수정진, 월광초 가루, 붉은 산호즙이 담긴 병들이 들어 있었다.
‘재료가 왔군.’
천제현은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한 후 조심스럽게 수정의 눈물이 담긴 작은 통을 꺼냈다.
“이제 실험을 하나 하려고 해요. 흥미가 있으시다면 옆에서 지켜보셔도 돼요.”
수정의 눈물과 관련된 실험임이 분명했다.
수정의 눈물은 매우 위험한 물건이다.
함부로 다뤘다간 큰일이 난다!
이 애송이가 사고라도 쳤다간 옆에 있던 남궁의 자신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남궁의는 정신 수련법을 배울 수 있게 되어 매우 흡족했으므로 천제현의 실험을 막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이렇게 된 거 남아서 구경이나 하자고 생각했다.
“그럼 나도 옆에서 천 회장의 솜씨를 지켜보겠소!”
남정사, 수정진, 월광초 가루, 붉은 산호즙.
네 가지 재료를 3:1:1:1로 혼합한 후 강력 용해제를 적당량 넣고 10분쯤 젓자 100㎖ 정도의 파란색 용액이 만들어졌다.
천제현은 고운 천에 용액을 부어 침전물을 걸러냈다.
그 모습을 본 남궁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천제현의 손놀림이 너무 숙련된 탓이었다.
다만 전혀 관계도 없고 종류도 다른 재료들을 왜 혼합한 건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었다.
천제현은 용액을 제약병 안에 넣은 후 열을 가해 끓였다.
‘설마 저 재료들로 약을 만들려는 것인가? 그럴 리가!’
천제현이 붉은 먹을 묻힌 붓을 들고 정신을 집중한 후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붓끝이 제약병에 닿는 순간 붓은 갑자기 생명을 갖게 된 듯 우아한 움직임을 뽐냈다.
붓이 움직일 때마다 신비로운 정교한 주문이 그려졌다.
남궁의는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글씨!
완벽하게 아름다운 기교!
어떤 마력진을 그린 건지는 차치하더라도 천제현이 방금 보여준 솜씨는 대단했다.
왕성의 장인들이 그 모습을 봤더라면 스스로의 솜씨를 비하하며 통탄에 빠졌으리라!
천제현은 묵묵히 붓을 거뒀다.
삼각형 모양의 복잡한 도안이 완성되어 있었다.
마력진은 부적 제조, 제약, 무기 제조 등 모든 생산 작업의 기초였다.
마력진의 등급은 그것을 그리는 자의 경지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다.
경지가 높을수록 더 높은 등급의 마력진을 그릴 수 있었다.
현재 천제현은 경지가 낮아 1급 마력진만 그릴 수 있었다.
전에 염천웅에게 준 2등급 해독단 제약진도 진법 설계도만 줬을 뿐 직접 마력진을 그리진 못했다.
경지가 부족했기 때문에 혼성 경지의 장립청만이 직접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수정의 눈물 정제에 복잡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 1급 진법으로도 충분하리라!
준비 작업을 끝낸 천제현은 제약병을 열고 조심히 들어 올려 수정의 눈물을 따르려 했다.
남궁의의 두 눈이 커졌다.
‘미쳤군! 저건 미친놈이야! 정말 수정의 눈물로 실험을 하려는 것인가!’
남궁의는 안색이 파리해졌으나 감히 달려들어 병을 빼앗지는 못하고 황급하게 말했다.
“잠깐 기다리시오! 수정의 눈물은 매우 불안정한 물질이오! 작은 실수로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날 수 있소. 집이 망가지는 건 괜찮으나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으니…….”
지난 수천 년간 인류는 이 거대한 힘을 이용하고자 무수히 많은 시도를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언제나 무시무시한 사고로 이어졌고, 인류는 그때마다 참혹한 교훈만을 얻어야 했다.
수정의 눈물은 인간의 뜻대로 할 수 없는 물질임을 경고라도 하듯이!
수정의 눈물은 열을 가하면 격렬한 진동이 나타나며, 다른 물질을 섞을 경우 대폭발이 일어난다.
그 힘은 성주부를 통째로 날려 버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성주부야 날아가도 상관이 없지만, 천제현 저 애송이가 죽는다면 신식을 연마할 비법은 누가 가르쳐 준단 말인가?
그런데 이 미친 작자는 자신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감에 찬 말투로 말했다.
“성주님, 걱정 마세요. 제게 생각이 있어요.”
‘생각이 있기는 무슨 망할 놈의 생각!’
천제현은 지금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다는 건 알고 있을까?
“빨리 멈추시오!”
성주는 천제현 앞에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
그러나 천제현은 남궁의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약병을 기울여 수정의 눈물과 남정사를 섞어 버렸다.
그 순간.
수정의 눈물 온도가 급등하는가 싶더니 엄청난 양의 기포가 올라오며 제약병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힘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남궁의는 혼비백산했다.
“도망가시오! 폭발하오!”
혼성술사라 하더라도 폭발하는 수정의 눈물 옆에 있으면 중상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천제현은 여전히 그의 말을 못 들은 양, 두 손으로 제약판을 눌렀다.
그러자 순식간에 천제현의 마력이 마력진 안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마력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수정의 눈물에 다른 물질을 혼합하는 걸로 부족했단 말인가? 마력까지 쏟아 붓다니!’
그러나 남궁의의 우려와 달리 이 악명 높은 수정의 눈물은 마치 일반 약재처럼 마력진에 의해 제련되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놈은 이 대륙에 저놈밖에 없을 거야!’
남궁의는 말리고 싶었지만 말리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제현이 수정의 눈물을 건드린 순간 제약병 안에서 강렬한 폭발 반응이 일어나더니 햇빛과도 같은 눈부신 빛줄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큰일이다!’
남궁의가 무의식적으로 마력을 발휘했다.
이내 붉은 빛으로 이뤄진 보호막이 생겨났다.
1초 후.
2초 후.
‘어, 왜 아무 일도 없는 거지?’
남궁의는 진땀을 흘리며 살짝 눈을 떴다.
제약병 안에서 나오던 강렬한 빛이 사라지고 청백색의 응고된 빛다발만 남아 있었다.
청백색 빛도 그리 강렬하지는 않아 조금 전처럼 눈을 뜰 수 없을 정도가 아니었다.
남궁의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정의 눈물이 폭발하지 않았어? 반응이 가라앉았다고? 이런 일은 불가능한데……?’
남궁의는 너무 놀라 사고가 정지된 것 같았다.
남궁의가 구석에서 혼자 놀라며 주춤거리든 말든 천제현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일을 묵묵히 했다.
천제현이 어디선가 고강도 수정관 다섯 개를 가져왔다.
제약병 안에는 청백색의 걸쭉한 액체가 남아 있었는데, 그는 천천히 수정관에 그 액체를 넣은 뒤 구리로 된 덮개를 덮어 봉인하기 시작했다.
액체를 모두 부은 후 수정관 다섯 개를 차례로 앞쪽에 차곡차곡 내려놓았다.
각각의 수정관 안에는 청백색의 액체가 가득 담겨 있어 언뜻 보기에는 청백색 빛으로 이뤄진 짧은 막대 같았다.
남궁의는 간신히 정신을 다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대가 지금 수정의 눈물의 힘을 제어한 것이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요?”
천제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성주님이 보시기엔 제가 어떻게 한 것 같아요?”
남궁의는 이성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불가능하오! 이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야!”
그러나 천제현은 별거 아닌 듯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란 건 없어요. 다만 그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지요. 수정의 눈물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아세요?”
“모를 리가 있소? 수정의 눈물의 유래에 대해선 연구한 자들이 꽤 있었소. 수정 광산에 서식하는 미생물들이 죽어 그 사체가 침전되고 그 후 오랜 시간이 흐르면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특이 물질로 변하는 것 아니겠소? 이것이 수정의 눈물 제어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오?”
“그 생성 유래를 알면서 왜 처음으로 돌아가 제어할 생각을 하지 않는 거죠?”
“날 갖고 놀려고 들지 마시오……. 그 두 가지가 관계가 있다는 거요?”
‘멍청하군! 나름 학식을 좀 쌓은 줄 알았는데. 역시 이 시대 사람들은 멍청해.’
천제현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