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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53화 (52/729)

# 53

제53장 미끼를 문 남궁의

성주부.

천제현과 남궁의는 천남성으로 돌아와 계약서를 교환했다.

남궁의는 계약서를 쓸 때가 되어서야 겨우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멍청한 놈이 있다니! 그 비옥한 자원으로 쓰레기를 사가는구나!’

그는 자신이 무언의 압박을 가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보기까지 했다.

‘아니다! 전부 저놈이 원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물론 입이 귀에 걸린 지금의 남궁의는 일 년 후 자신이 이 결정을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남궁의가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에 입을 다물지 못할 때, 천제현은 필기구를 가져와 뭔가를 쓱쓱 써내려갔다.

바로 천제현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십여 가지의 조제법이었다.

“성주님. 여기에 있는 재료 중에 천남성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있나요? 급하게 필요해요!”

거기에 적힌 것들은 모두 특별할 것 없는 약재였다.

하지만 천남성은 자원 생산량이 적은 소도시다.

기회가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얻어둬야 했다.

“대부분이 본 적 없는 것들이오만 8번째 약재는 천남성 도처에 있다오.”

수지맞는 거래로 기분이 한껏 좋아진 남궁의는 시원하게 말했다.

“성주부에 재고가 있으니 필요하다면 사람을 시켜 가져오게 하리다.”

천제현의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잘됐군! 재료가 있으니 수정의 눈물을 제련할 수 있겠어!’

과연 자원이 풍족한 시대였다.

이렇게 귀한 자원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니.

‘이 밖에도 얼마나 많은 자원들의 가치를 이 시대 사람들은 모르고 있을까?’

천제현은 자신의 선구안으로 대륙의 희소자원들을 선점해 찬란한 역사를 쓸 생각이었다.

남궁의는 재료 목록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남정사, 수정진, 월광초, 붉은 산호즙, 강력 용해제라…… 이상하군. 남정사와 수정진은 무기 제조 재료가 아니오? 남정사는 무기를 날카롭게 제련할 때 사용하고 수정진은 무기의 강도를 높여주는 데 쓸 터. 또한, 월광초는 제약 재료이며, 붉은 산호즙은 부적을 만드는 재료일 텐데. 이 재료들을 같이 구하고 있다니, 목적이 무기 제조도 약재 조제도 아닌 것 같구려!”

천제현은 남궁의가 그 재료들에 대해 이렇게까지 잘 알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한 터라 당황하여 말했다.

“성주님은 참으로 박학다식하시군요!”

남궁의는 사실대로 말했다.

“사실 나는 무기 제조를 배운 바 있소. 재주가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왕성에도 어느 정도 이름이 나 있지.”

말은 겸손하게 했으나 왕성이 어떤 곳이던가?

왕성에까지 어느 정도 이름이 나 있다는 말은 곧 천남성 최고의 무기 제조가라는 말과 같았다.

‘이 시대의 무기 제조술이라.’

천제현은 호기심이 호기심이 생겼다.

“그럼 성주님께서 만드신 작품도 있나요? 제 견문을 넓힐 기회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러자 남궁의는 허리춤에 있는 단검을 뽑았다.

2척 반밖에 되지 않는 붉은 검은 검날이 독사처럼 휘어 있었다.

예리하게 반짝였고, 검신에는 주문까지 새겨져 있었다.

“이 염사검은 내가 직접 만든 것이라오.”

염사검은 남궁의의 회심작이었다.

남궁의는 자부심과 오만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작은 마을의 시골뜨기가 언제 한번 구경이나 해봤겠는가?’

낮은 탄성을 질렀다.

남궁의는 천제현의 반응에 만족하는 듯 웃더니 이내 검을 검집에 넣었다.

그런데 그때 천제현이 담담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럭저럭 괜찮군요.”

남궁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럭저럭이라니? 이놈이 보는 눈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남궁의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염사검을 뽑아 천제현에게 건넸다.

“그대도 무기 제조에 대해 아는 것이 있소? 아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부족한지 말해줄 수 있겠소?”

천제현이 염사검을 받아 들었다.

“아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문제점을 발견할 정도는 됩니다.”

그는 두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가볍게 검신을 훑었다.

그러자 천천히 무형의 파동이 일었다.

‘심안!’

천제현이 또 한 번 심안을 뜨고 있었다.

흥분한 남궁의는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그는 심안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아니, 꿰뚫어 볼 뿐만 아니라 선악과 희로애락의 감정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방금 전의 거래 때문에 남궁의는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검신을 쓸던 천제현이 눈을 떴다.

“용암수정과 열문홍철을 사용했군요. 49일 동안 화염 도마뱀의 피와 열화수의 비늘로 제련했고…… 또 적염사(赤炎蛇)의 영혼을 봉인하고 세 개의 진법을 새겼네요. 그 진법은 각각…….”

‘정확하다! 놀랄 노자군!’

남궁의는 너무 놀라 더듬거리며 말했다.

“드, 들리는 말이 사실이었군. 심안을 뜨면 세상 만물을 꿰뚫어볼 수 있다더니!”

남궁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듣던 대로 무시무시한 능력이다!’

저 힘만 있다면 전투 중에도 적의 생각을 읽고 약점을 찾아내 우위를 점할 수 있으리라.

뿐만 아니라 보물을 찾는 데도 유용할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해서 일반인들은 분간조차 못 하는 보물들도 그의 눈을 피하지는 못 할 테니!

남궁의는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났다.

‘채 열여덟도 되지 못한 애송이가 어떻게 이런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단 말인가?’

천제현은 심안을 해제하며 말했다.

“심안이 뭐 별거라고요. 특별할 것 없는 작은 능력입니다.”

겉으로는 겸손한 척했지만 천제현의 꿍꿍이는 달랐다.

‘이토록 적나라하게 능력을 보여줬으니 거짓말은 못 할 테지.’

천제현의 말에 남궁의는 염사검이 무시당했을 때보다 더 화가 났다.

하지만 애써 덤덤한 척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천 회장은 정말 농담도 잘하오. 그런데 우리 왕국에 심안을 가진 자가 몇이나 되오?”

“이 왕국은 너무 작지요.”

천제현은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천천히 설명했다.

“입미든지 심안이든지, 어쨌든 이건 정신적 능력입니다. 흔히들 신식(神識)이라고 하지요.”

그건 견문이 넓고 지식이 깊은 남궁의로서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신식? 조금 자세히 말해 줄 수 있겠소?”

“신식은 육체적인 능력과 무관한 정신적 능력이지요.”

천제현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첫 번째 단계는 소위 말하는 입미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정신이 감각 기관에 이르러 오감을 민감하게 만들어 주지요. 두 번째 단계가 바로 심안이라는 것인데, 이 단계에 이르면 정신이 육체를 벗어나 몸으로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끼게 해줍니다. 심안을 가지면 물질의 정보와 특성, 심지어 사람의 감정 변화까지 알아낼 수 있지요!”

‘정말 놀라운 소년이로다!’

천제현의 설명은 남궁의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는 정신이 팔린 듯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심안보다 더 높은 경지의 신식이 또 있다는 것이오?”

천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요. 진정한 강자가 신식을 발휘하면 천 장(丈) 거리 안에 있는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까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하면 천 리 안에서 자유로운 운신이 가능하고, 이보다 더 강력한 신식을 지니게 되면 힘을 실체화하여 다른 이의 생각을 조정할 수 있게 되지요. 그 단계에서는 마음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최고 경지에 이를 경우…… 인간의 경지를 넘어 신과 같이 만물을 뜻대로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최고 경지는 천제현도 도달하지 못한 것이었다.

3만 년 후에도 도달한 자가 없는, 그야말로 이론상에나 존재하는 경지였다.

너무나 엄청난 것을 들은 남궁의는 넋을 잃었다.

‘인간의 육체에 그렇게 큰 힘이 잠재되어 있단 말인가?’

남궁의는 문득 16세에 불과한 천제현이 두려워졌다.

“그, 그렇다면 그대의 신식은 어느 단계요?”

“하하, 성주님은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 이 신식이라는 것은 정신력의 영향을 받는답니다. 저는 정신력이 강한 편이 아니지요. 그래서 심안을 뜰 수는 있으나, 간신히 잠깐 동안만 사용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군!’

천제현의 이야기는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남궁의는 직감적으로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 세상이 얼마나 크며, 자신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음을 느꼈다.

천제현의 말을 들어보아 그의 신식은 더 성장할 여지가 남아 있음이 분명했다.

불과 16세의 나이에 심안의 경지라면, 그가 자신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어느 정도까지 도달하겠는가!

남궁의의 경악도 모른 채 천제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무기를 제조할 때도 신식이 필요하지요. 제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신식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무기는 한계가 있습니다.”

천제현은 염사검을 남궁의에게 돌려 주었다.

“검 안에 있는 적염사의 혼이 너무 약해요. 혼을 강화시키는 약초를 사용해 한두 달 제련을 하면 검의 위력이 두 배로 강해질 것입니다.”

남궁의는 심경이 복잡해져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소.”

이에 천제현은 짐짓 놀라는 양 물었다.

“성주님께서 제게 부탁하실 일이 있단 말입니까?”

남궁의는 읍을 하며 말했다.

“신식을 수련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겠소?”

천제현은 웃으며 말했다.

“신식은 마력과 달라 특별한 기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답니다. 정신은 깊고도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니 그 수행도 개인의 깨달음에 달려 있지요. 한순간 깨달음을 얻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답니다.”

사실 신식을 수련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수련법들은 너무나 어려웠다.

천제현은 따로 생각이 있는지라 이 점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 그렇다면…… 난 인연이 없는 거로군!”

천제현은 실망한 남궁의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너무 실망하실 것 없습니다. 성주님께서는 천부적인 자질을 갖추셨으나 운이 없었을 뿐입니다.”

남궁의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운? 세상에 모든 운을 갖춘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신분도 운, 수행도 운, 인연과 만남도 운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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