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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46화 (45/729)

# 46

제46장 찢어진 노예 계약서

양웅이 자신의 정령, 마랑(魔狼) 힘을 모은 후 양손을 높이 치켜세웠다.

주변에 조각난 돌들과 먼지가 강력한 허공에서 뭉치더니 순식간에 예리한 암기로 변했다.

이 암기는 허공을 가르며 육안으로 분간할 수 없는 속도로 천제현을 향해 날아갔다.

“악!”

염빙의 정령 풍설곰이 힘을 분출했다.

염빙이 왼손을 앞으로 뻗자 차가운 기운이 하늘로 솟아오르며 얼음벽을 만들었다.

귀를 찢는 파열음 속에서 암기가 얼음벽을 맹렬하게 뚫기 시작했다.

그 충격으로 얼음벽에는 커다란 균열이 생기고 말았다. 그러나 얼음벽을 뚫지는 못했다.

양웅의 공격이 다시 염빙에게 막혔다.

“염빙!”

양웅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소리쳤다.

“계속 그렇게 방해할 셈인가!”

기호들이 빼곡하게 그려진 족자 하나가 양웅의 소매 안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양웅은 재빠르게 손을 들었다.

크아앙!

마랑이 주인의 분노를 느끼기라도 한 듯 거칠게 발톱을 세워 족자를 쳤다.

황토빛의 힘이 족자를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었다.

염빙은 크게 놀랐다.

지금 양웅이 가루로 만든 것이 천제현의 정신 계약서가 아닌가.

양웅은 핏발 선 눈으로 실성한 듯 웃으며 말했다.

“비천한 노비야! 죽어라!”

이 시대는 인구가 2~3백 명인 도시에서 노예가 무려 2~30만 명에 달할 만큼 노비제도가 성행했다.

가문의 지위가 약간이라도 높으면 거의 모두 노예를 사들여 시중을 들게 했다.

빈곤한 가정에서 스스로를 노예로 파는 건 흔한 일이었다.

자유를 배불리 먹는 삶과 맞바꾸는 것이다.

노예거래가 성행한 데에는 이처럼 안정적인 생활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노예의 주인은 노예의 목숨이 봉인된 계약서 족자를 보유한다.

이 노예 계약서가 일단 체결되면 대부분 해지할 수 없다.

계약서 족자를 가진 자가 그 노예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계약서 족자가 파괴되면 노예의 정신과 영혼도 함께 붕괴된다.

양웅은 본래 원수를 갚아줄 요량으로 천제현에게 치명적인 고통만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염빙에게 가로막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양웅은 계약서를 파괴하여 천제현의 정신과 영혼이 무너뜨릴 셈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보는 가운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그 모습을 보려 한 것이다.

‘아무리 선천적인 재능을 타고나든 뛰어난 능력을 가졌든 어쩔 수 없는 게 있지. 네놈이 비천한 노비라는 것! 양씨 가문을 모욕하고 장자를 죽였으니 그 죗값을 치르거라!’

모든 사람이 숨을 삼키며 무대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1초, 2초…….

10초가 흘렀다.

천제현은 여전히 어깨를 으쓱하며 경합무대에 멀쩡하게 서 있다.

양웅은 경악과 분노로 뒤섞인 혼란에 빠졌다.

‘어찌 된 일이지? 왜 죽지 않은 거지?’

“놀랐지? 양가 놈아!”

천제현은 전혀 아픈 기색 없이 소리쳤다.

“그래. 양가 놈들에게 아직 이런 비열한 수단이 남았었지! 하지만 그래 봤자 날 어찌할 수 없을걸!”

‘저놈의 정신이 붕괴되어 죽어야 하는데 살아 있다고?!’

‘이건 불가능해!’

도진천은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었다.

천제현은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일찌감치 그를 제거하지 않으면 앞으로 천남성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씨 가문도 충격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도씨 가문은 천제현과 직접적인 원한 관계는 없었다.

하지만 잠재적인 위협을 제거하려면 지금 나서야 했다.

“비천한 놈이 설치는군! 내가 도와주겠소!”

도진천이 정령을 소환했다.

그의 정령은 특이하게도 생물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칠흑같이 검은 날을 가진 거대한 양날 도끼. 그것이 바로 도진천의 정령이었다.

도진천이 양손을 위로 뻗어 시커먼 도끼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높이 휘둘러 경합무대를 향해 육중한 공격을 가했다.

“베라!”

천제현은 몸을 옆으로 기울여 공격을 피했다.

시커먼 도끼가 상공을 가로지르며 방금 그가 있던 자리를 내리찍었다.

무대가 마른 고목 갈라지듯 쩍 갈라졌다.

‘엄청난 파괴력이다!’

양웅, 이장운, 도진천.

이 세 명의 혼성 고수가 동시에 공격하니 장립청과 염빙만으로는 막아내기 힘들었다.

이로써 천제현의 상황을 더욱 위험해졌다.

공화련, 공서련은 멀리서 이 모습을 바라보며 안절부절 못 했다.

천제현이 이토록 애쓰는 이유 중에는 자신들 때문인 것도 있지 않은가.

상황이 이처럼 위험할 줄 진작 알았더라면 천제현이 나서지 못하게 말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때는 늦었다.

‘어떻게 하지?’

“멈추시오!”

광장 전체가 흔들렸다.

화산과도 같은 기운이 용솟음쳤다.

세상에 종말이 온 것처럼 세차게 굽이치는 음파가 사람들의 고막을 덮쳤다.

“당신들에게 이 성주는 안중에도 없나 보오!”

살벌하게 짓누르는 위협이 대지로부터 흘러나왔다.

붉은 화염의 마력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자 뜨거운 기운이 현장 전체를 에워쌌다.

뒤이어 그 기운은 거대한 정령으로 형상화했다.

정령의 모습은 화산 입구와 같아 활활 타는 용암이 굽이쳐 흘렀다.

정령에게 용암이 끊임없이 분출되고, 코와 눈을 자극하는 독한 연기가 사방을 덮었다.

성주인 남궁의가 나섰다.

‘화산 정령이다!’

화산은 대지의 힘, 불의 힘을 상징한다.

화산이 폭발하면 일거에 사람을 쓸어버릴 수 있고, 성을 파괴할 수 있으며, 끝내는 일국을 파멸시킬 수 있다!

그런 화산이 천남성에 강림했으니 모든 이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남궁 일가의 정령은 불속성이다.

남궁혜가 신급 정령인 봉황을 각성시킨 일은 중주성 전역에 소문난 사실이다.

반면 남궁의는 성주로 부임한 후, 지나치게 신중한 데다 말을 아끼고 행동을 조심하여 어느 누구도 그가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누구도 남궁의의 진짜 실력을 알지 못했고, 심지어 남궁의가 심약하고 무능한 자라 여긴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화산 정령은 딸의 불사조만 못하더라도 탁월한 파괴력을 가진 정령이었다.

궁극의 상태까지 수련할 수 있다면, 신급 정령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화산의 힘이라니!’

‘힘이 계속 팽창하고 있다!’

이 힘이 방출되면 동급의 고수 중 어느 누구도 그의 적수가 될 수 없다.

사실 남궁의의 기운을 봤을 때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능히 압도하고도 남는다.

현장에 있는 혼성술사들이 모두 달려들어 협공한다고 해도 남궁의를 이길 확률은 반반 정도였다.

‘이것이 바로 성주의 진짜 실력인가?’

‘이것이 삼 대 가문의 하나인 남궁 일가의 숨겨진 실력이란 말인가?’

남궁의는 평소 겸손하고 품위 있는 모습을 버리고 근엄하고 고압적인 태도로 질책했다.

“양웅, 무엄하다! 해마다 치러지는 천재대회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설마 당신 아들만 사람을 죽일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당신 아들을 죽이는 꼴은 못 보겠다는 건가?”

화산 정령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열과 짓누르는 압박으로 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남궁의는 한마디씩 끊어가며 말했다.

“누구든 다시 소란을 피운다면! 부디! 이 성주의 무정함을 탓하지 않길 바라오!”

‘막강하다!’

‘성주에게 대적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어!’

양웅은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지만 딱히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 세상은 어찌 되었든 힘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힘이 강한 자가 옳은 것이다.

세 사람은 노기등등한 눈빛으로 천제현을 바라보다가 결국 부자연스러운 태도로 성주에게 사과하고 자기 위치로 돌아갔다.

남궁의는 태도를 확실히 함으로써 천제현을 보호하고자 했다.

앞으로 천제현은 천남성에서 목숨의 위협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남궁의가 성주로 있는 한 저들은 쉽사리 천제현에게 손을 대지 못할 것이니.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군! 성주는 어째서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건가!’

양웅, 도진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대더니 끝내 화난 듯 말했다.

“우린 이만 가보겠소!”

두 집안의 가주가 항의의 의미로 자리에서 일어나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데리고 퇴장했다.

남궁의는 화산의 힘을 거두었다.

그는 천제현을 지키기 위해 두 사람과 척을 지게 된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쩌랴.

남궁의는 크게 개의치 않은 듯 엄중하게 선포했다.

“이번 천남성의 최고 천재는 대중의 뜻에 부합하는 바, 천제현밖에 없는 듯싶습니다!”

“천제현!”

“천제현!”

사람들이 너도나도 환호성을 터뜨렸다.

천제현의 급부상으로 열기가 뜨거워졌고, 성주의 강력한 기세에 흥분이 멈추지 않았다.

천남성은 중주성이 관할하는 평범한 도시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 곳에 이런 기재가 있었다니, 머지않아 천남성에 번영과 발전의 시대가 올 것이다.

남궁의는 말을 이었다.

“천남성의 전통에 따라 천제현이 대전에서 우승을 하였으니, 그가 속한 일가 혹은 세력이 천남성에서 일 년 간 면세 자격을 획득하게 됩니다. 아울러 광산과 산림 자원도 파격적으로 얻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최고 대회에서 최초 발언 기회도 갖게 됩니다!”

이 말을 끝으로 사방을 울리던 함성이 멎었다.

‘천제현은 남운상회 대표로 나온 것이 아닌가?’

‘남운상회? 망해가는 상회잖아. 무슨 말을 할까?’

천제현은 남궁의의 지시대로 길게 이어진 붉은 양탄자를 지나 천천히 회의장 중앙으로 다가갔다.

호화로운 회의장 중앙에 오른 천제현은 인산인해를 이룬 수많은 대중 앞에서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 저는 여기 이 자리에서 특정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 발언코자 합니다!”

천제현은 말을 이어갔다.

“성주 앞에서, 천남성 시민들 앞에서 저는 한 가지 사실을 엄숙히 선포합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상회인…… 기적상회가 오늘 정식으로 설립되었음을 알립니다!”

‘기적상회?’

‘여태껏 들어본 적 없는데!’

장내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놈도 별수 없군. 오만하기 그지없어!’

‘자기 입으로 자기 상회가 가장 위대하다고 말하다니!’

‘오만? 흥!’

천제현은 정직하다.

방금 전 선포는 양심에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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