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제45장 3대 1의 싸움
한껏 달아오른 천재대전 현장을 바라보며 낙우는 주먹을 힘껏 쥐었다.
그의 얼굴은 돼지의 생간마냥 새빨개졌다.
‘제기랄! 이건 분명 내 무대였는데!’
그러나 이제 천제현의 독무대로 변해 버렸다.
중주학당에서 일 년 동안 수련에 정진했고, 실력도 크게 늘었다.
그가 이번에 천남성으로 돌아온 것은 대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영향력을 키우고 앞으로의 발전 토대를 굳건히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누가 천제현이 나타날 줄 알았겠는가.
그보다 훨씬 뛰어난 천재.
낙우는 질투심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저자는 매우 난폭하고 잔인하니 절대로 살려둬서는 아니 되오!”
낙우는 화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살벌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힘을 합쳐 저놈을 처치합시다! 양한의 복수를 하는 게 어떻겠소!”
“좋소!”
“알겠소!”
도풍과 이천강은 바로 찬성했다.
물론 양한의 복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죽음은 기뻐할 만한 일이었다.
둘은 그저 천제현이라는 자가 너무 두려웠다.
‘남궁혜보다 더 어마어마한 천재라니.’
‘지금이 적기야! 반드시 저놈을 죽여야 한다!’
세 명이 협공하면 분명 승산이 있을 것이다.
“내가 먼저 가겠소!”
이천강이 고함을 지르며 다리를 박찼다.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르며 높이 뛰어오른 후 발을 길게 뻗었다.
다리로 마력이 모이더니 푸른빛의 맹렬한 바람으로 변했다.
이천강은 마치 무거운 강철봉을 내리꽂듯 바림이 휘감긴 다리로 바닥을 후려쳤다.
단단한 돌바닥이 순식간에 쩍쩍 갈라져 나갔다.
“죽어라!”
공격이 빗나가자 연속으로 발을 굴러 하늘 높이 올라 팔을 휘둘러 회전시켰다.
그러자 거센 회오리바람이 일 듯 땅을 휩쓸고, 거친 폭풍우와도 같은 기세가 내리꽂혔다.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마치 폭격이라도 당한 듯 돌바닥이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날아가 버렸다.
강력하고 빠른 공격에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광풍퇴법은 바람같이 빠르고 빗물처럼 치밀하여 족히 천군을 쓸어버리고도 남을 기세였다.
이때 도풍의 두 주먹에 마력이 용솟음쳐 오르며 불빛이 일렁였다.
주먹을 뻗기도 전에 뜨거운 기운이 허공을 가르며 뻗어나갔다.
‘염양권!’
도풍은 자신의 생각과 달리 통제할 수 없는 사내임을 직감했다.
게다가 양한까지 죽였으니 이미 양씨 가문과 척을 진 상황이다.
그러니 천제현을 계속 자신의 가문으로 들이려 하면 양씨 가문과 틀어질 것이 뻔했다.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는데, 저 자를 죽이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발 뻗고 잘 수 있겠는가.
이천강은 위에서 아래로 압박을 가하고, 도풍은 정면으로 맹공을 퍼부었다.
그 사이 낙우는 기회를 보며 유연한 발걸음으로 천제현의 등 뒤로 우회하고 있었다.
그는 호심탐탐 기습할 기회를 노리고 중이었다.
참지 못한 사람들이 불만을 쏟아냈다.
“세 사람이 한 사람을 공격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으시오!”
“비겁하오!”
천제현은 입미 경지에 이른 예리한 통찰력으로 두 사람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했다.
그러고는 도풍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몸놀림에 기품이라곤 전혀 없구나! 이런 형편없는 실력으로 결승에서 감히 날 보호하겠다고 지껄인 것이냐?”
도풍은 머리끝까지 약이 바짝 올라 날뛰었다.
그가 주먹을 휘두르자 갑자기 폭발적인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맹렬한 기세로 뻗어 나갔다.
“자신 있으면 내 주먹을 받아보거라!”
“못할 것도 없지!”
천제현의 오른팔에 새하얀 마력의 불빛이 일었다.
팔 전체가 서서히 불그스름해지더니 모공에서 하얀 증기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일순간 거대한 마력이 결집됐다.
“꺼져라!”
그의 주먹이 높디높은 하늘을 뒤흔들었다.
이 충소권은 일반적인 기초 무공이지만, 3만 년 동안 무수히 다듬어진 기술이다.
배우기 쉽지만 속도와 살상력은 출중하여 초급 수련자가 반드시 갖춰야 하는 무공이었다.
두 주먹이 맞부딪혔다.
뜨거운 기류가 폭발했다.
주변에 부서진 돌과 먼지가 공중으로 부양하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의 시야를 가렸다.
흙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람이 흙먼지를 씻어내고서야 사람들은 수 미터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도풍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른팔 전체가 부러졌고 피투성이 상태였다.
‘일격에 무너졌다.’
‘정면 승부에서 바로 고꾸라졌다!’
사람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사람들이 도풍을 보고 있을 때 천제현은 이천강을 향해 빠르게 도약했다.
그는 공중에서 이천강의 다리를 단번에 걷어찼다.
이어서 채찍과도 같이 이천강의 가슴을 묵직하게 내려쳤다.
쾅!
이천강의 몸이 유성처럼 빠르게 수직 낙하하여 몸의 절반이 무대에 박혀 버렸다.
온몸의 뼈 중 성한 게 있을까 싶을 정도다.
“고작 이 실력으로 날 죽이겠다고? 그것 밖에 안 되는 능력으로 스스로 천재라 지껄인 것이냐?”
천지를 뒤흔드는 천제현의 음성이 귀에 똑똑히 박혔다.
장래가 기대되는 기재들을 단 한 초식으로 제압하다니!
이번 대회에서 우승후보로 뽑히던 자들이 천제현 앞에서 단 한 번의 공격도 막아내지 못한 채 허물어진 것이다.
이때, 어렵사리 기회를 잡은 낙우가 오른손을 허리춤에서 뽑아냈다.
차가운 빛이 번쩍였다.
은빛으로 빛나는 연검이었다.
낙우의 연검이 음험하고 교활한 독사처럼 천제현의 등 뒤로 날아갔다.
“대회에서는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
“부정행위를 저지를 셈이냐!”
‘네놈!!’
눈이 돌아간 낙우는 주변의 목소리마저 외면한 채 검을 뽑아 들었다.
이는 경합의 규칙을 공개적으로 짓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질풍검우!”
낙우가 마력을 연검에 주입하자 연검에 가시가 돋더니 곧 은빛의 검기 그물로 변하였다.
설령 앞에 쇳덩이가 있다고 해도 저 가시에 족히 백 개나 되는 구멍이 뚫릴 것이다.
천제현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은색의 검영과 흰색의 검기가 섞여 허초와 실초를 구분하기 힘들었다.
역시나 중주학당에서 수련한 보람이 있는 것인지 그의 실력은 세 사람을 모두 합친 것보다 강한 것 같았다.
천제현은 입미 상태에 접어들었다.
만물이 움직이고 모든 것이 느려졌다. 1㎜의 변화라도 분명하게 꿰뚫어볼 수 있었다.
이윽고 모든 검광을 간단하게 간파하고 기초 보법인 연영보 중 연회소를 시전했다.
천제현의 신형이 앞으로 향하는 듯싶다가 갑작스레 뒤로 빠졌다.
휙휙획.
예리한 검기들이 천제현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중 하나가 가슴에 상처를 냈지만 심한 것은 아니었다. 겨우 찰과상 정도였다.
낙우의 눈동자에 당혹스러움이 스치듯 지나갔다.
‘이것도 피할 수 있다니?’
천제현은 불세출의 천재가 틀림없다.
그를 죽이고자 하는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죽어라!”
천제현이 잠깐 휘청한 사이에 예리한 검기가 또다시 다가왔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천제현은 입미의 능력으로 검기를 스치듯 겨우 피해냈다.
애초에 낙우는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다.
마력, 속도, 힘.
모든 면에서 천제현은 그를 이길 수 없었다.
더욱이 낙우는 무기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의 검기를 한 번이라도 정면에서 맞는다면 천제현은 영락없이 죽게 될 것이다.
“죽여 버리겠다! 추풍자!”
낙우는 천제현이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연검에 마력을 주입했다.
이내 연검이 꼿꼿해졌다.
이윽고 유성처럼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뻗어나갔다.
생사의 길목.
천제현은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경악했다.
‘설마…… 피하지 못할 것을 알고 체념한 건가?’
천제현이 눈을 감는 순간 괴이한 기운이 자욱하게 깔리기 시작했다.
더 높은 경지가 열린 듯 보이진 않지만 주위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의 방향, 기운의 변화, 물질의 진동, 힘의 주파수, 심지어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심리상태까지.
천지 만물, 정신에서 물질까지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다.
남궁의는 이렇듯 천제현의 갑작스런 변화를 알아차리고 눈을 크게 떴다.
‘신안이다! 틀림없다! 이러한 감각은 바로 심안이다!’
심안은 입미와 마찬가지로 정신과 영혼의 경지에 속한다.
입미의 경지도 오랫동안 수련한 사람이라면 꿈에 그리는 능력이다.
그러나 심안의 경지는 입미의 경지보다 상위에 속한다.
중주 전체를 통틀어 입미에 오른 자가 몇 명일 뿐이라면, 심안에 이른 자는 나라 전체에서 겨우 손에 꼽는다.
그런데 천제현이 심안에 이른 것이다.
열여덟 살도 채 안 되는, 혼성 경지에도 도달하지도 못한 그가 말이다!
천남성은 작은 도시라 사람들이 심안에 대한 전설을 들었을지 몰라도 직접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러니 현장에 있는 사람들 중 오로지 남궁 가문의 남궁의만 심안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자의 앞날은 내가 감히 헤아리지 못하겠구나!’
남궁의는 이 북새통에 끼고 싶지 않았으나 천제현이 심안을 개안한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어찌 되었든 천제현을 지켜야 한다.
성주의 지위가 박탈당한다고 해도 가문을 위해 이 사내를 데리고 갈 수만 있다면 이건 큰 공을 세운 것이나 다름없다.
천제현이 눈을 감은 순간, 낙우는 괴이한 느낌이 들었다.
안에서 밖까지.
육체에서 정신까지.
마력에서 무공까지.
그 무엇 하나도 빠짐없이 천제현 앞에 까발려진 것만 같았다.
심지어 지금 마음속으로 하는 이 생각까지도 상대방에게 간파당할 것 같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이건 대체 무슨 능력이냐.’
하지만 놀란 것과 별개로 낙우의 연검은 빠르게 움직였다.
검날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곧장 천제현을 향해 맹렬히 날아갔다.
천제현은 심안을 개안한 순간부터 낙우를 꿰뚫어 보았다.
온몸 구석구석에 드러난 모든 빈틈뿐만 아니라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연검에서도 가릴 수 없는 허점이 보였다.
이러한 틈과 구멍은 평소 육안으로 볼 수 없다.
천제현이 오른손 손가락 두 개에 마력을 집중시키니 손가락이 점차 옅은 황금색으로 변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연검이 공격해 오기를 기다렸다가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탁!
은색 연검이 황금색 손가락 중간에 끼었다.
천제현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팍.
은색 연검이 천제현의 손가락 사이에서 부러졌다.
“헉!”
사람들은 놀라 숨을 죽였다.
낙우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부러진 검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이때, 흉흉한 살기가 그의 마음을 강타했다. 낙우의 심중으로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내가 졌다!”
“나를 죽이겠다면서?”
천제현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니 부러진 검날이 유성처럼 빠르게 내달려 낙우의 가슴을 관통했다.
“탓하려면 너의 오만을 탓해라!”
팍!
부러진 검이 무대 돌바닥에 깊이 꽂혔다.
새빨간 선혈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렸다.
“안 돼, 안 돼!”
낙우는 관통 당한 왼쪽 가슴을 부여잡았다.
붉은 선혈이 계속 뿜어져 나왔다.
인정할 수 없다는 듯 크게 울부짖다가 이윽고 흐느적거리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일격! 또 일격이다!’
천제현은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를, 심지어 절대적인 열세인 상황에서 적을 일격에 쓰러뜨렸다!
회장 안으로 일순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천제현!”
“천제현!”
“천제현!”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미친 듯이 환호했다.
이것은 천남성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비록 심안을 알지 못했으나, 천제현이 가진 모종의 능력을 느꼈다.
그리고 그 능력은 그들에게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그 어떤 후배들도 이 같은 위협을 느끼게 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입술을 잘근 씹어야 했다.
“저놈은 반드시 죽여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