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제38장 양씨 가문의 도발
‘세 걸음마다 무릎을 한 번 꿇고 다섯 걸음마다 절을 한 번 하라고? 그렇게 사죄하는 데도 두 다리를 자르겠다고?’
공서련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이 악독한 놈들, 천벌이 두렵지도 않으냐!”
“악독?”
양씨 가문의 집사는 또다시 웃었다.
“아니지. 우리 큰 도련님이 얼마나 인자하신 분인데. 죽여 버려도 시원찮을 노예 놈을 고작 다리 두 개 자르고 넘어가 주신다잖아? 물론 그건 모두 너희 자매의 손에 달려 있지만 말이야.”
공서련은 그 말을 듣고 다시 물었다.
“우리한테 원하는 게 뭐지?”
양씨 가문의 집사는 장난치듯 말했다.
“아주 간단해. 너희 자매 한 명당 그의 다리 하나야. 너희가 천제현 그놈과 함께 절을 하며 양씨 저택 앞까지 가서 사죄하고 우리 가문의 계집종이 되면 돼. 그렇게만 하면 양씨 가문에서 호강하며 살 수 있다고.”
“짐승 같은 놈!”
공서련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해도 해도 너무하는구나!”
양씨 가문의 집사는 차갑게 말했다.
“고작 노예 따위가 우리 집 작은 도련님에게 중상을 입히고 큰 도련님께는 큰 모욕을 주었으니 너무한 건 너희들 아니냐! 명심해라. 그놈이 앞으로 남은 평생을 병신으로 살지, 사지 멀쩡한 인간으로 살지는 너희들에게 달렸다. 그놈은 너희 모용 가문의 은인이니 이제 너희가 대신 빚을 갚아줄 차례겠지.”
‘한 명당 다리 하나라고?’
공씨 자매가 양씨 가문에 들어가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양씨 가문의 집사는 자매의 낯빛이 파랗게 질린 것을 보고는 통쾌해서 고개를 들고 박장대소했다.
“그럼 할 말은 다 했으니 나는 이만 돌아가겠다. 명심해라! 도련님께선 오늘 밤이 되기 전에 성의를 보고 싶어 하신다!”
여기까지 말한 집사는 몸을 돌려 나가다가 어디선가 들리는 느긋한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아침부터 어디에서 개가 짖나 했더니 양씨 가문의 개가 기어들어왔군. 그런데 말이야. 여기가 시장 뒷간인 줄 알아? 네 맘대로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게?”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천제현은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으며, 풍채 또한 늠름했다.
그의 주변에서 마력이 넘실대는 것이, 어제보다 더욱 강해 보였다.
“천제현, 네가 감히 모습을 드러내?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큰소리 칠 수 있다니 그 용기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구나!”
양씨 가문의 집사는 믿는 구석이 있는 덕에 팔짱을 끼고 오만한 말투로 말했다.
“내 말은 잘 알아들었을 거라 믿는다. 죽든 복종하든 네가 알아서 선택해라.”
“다른 걸 선택해도 될까?”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 두 가지뿐이다! 다른 건 없어!”
“내가 세 번째를 얘기해 주지. 먼저 지금 널 혼내주고 그다음엔 양웅을 혼내주고, 그다음엔 천남성 양씨 가문을 혼내주고, 마지막으로 중주성의 양씨 본가를 따끔하게 혼내주는 거다!”
“이놈이…….”
‘감히 저따위 미친 소리를!’
양씨 가문의 집사가 대경실색하여 말문이 막혀 있을 때 천제현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 집사도 다섯 개의 경지를 넘긴 연체술사라고는 하나 미처 손 써볼 틈조차 없었다.
뚝! 뚝!
뼈 부러지는 소리가 두 번 들리더니 집사의 두 다리가 부러졌다.
양씨 가문의 집사는 참혹한 비명을 질렀다.
그의 얼굴이 끔찍하게 일그러졌다.
‘저놈이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자기 명줄이 양씨 가문의 손에 달려 있는데!’
두려움에 질린 집사는 덜덜 떨며 말했다.
“네…… 네가 날 죽이면 도련님께서 널 용서하지 않으실 거야!”
“난 너 안 죽일 건데? 가서 그 머저리 같은 주인한테 전해라! 내가 찾아갈 때까지 인생을 열심히 즐기라고 말이야. 앞으로는 그럴 기회가 없을 테니까.”
집사가 이를 갈면서 대답했다.
“알겠다. 반드시 그렇게 전하지!”
천제현은 갑자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놈이 나한테 세 걸음마다 한 번 무릎을 꿇고 다섯 걸음마다 한 번 절을 하면서 사죄하라고 했다고? 정말 창의적인 생각인데?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다는 말도 있으니 뭐라도 답례를 해야겠지?”
양씨 가문의 집사는 천제현의 미소를 보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뭘 하려는 게냐?”
천제현이 실실거리며 말했다.
“난 귀찮은 건 딱 질색이거든. 그러니 널 발가벗기고 팔다리를 부러뜨려 양씨 저택까지 기어가게 해야겠어. 이렇게 하면 천남성 사람들 모두 그 양씨 가문 색마 놈의 행태를 잘 알게 될 테니 말이야.”
“감히 네가…… 안 돼! 그만둬!”
천제현이 집사의 팔을 부러뜨리자 공씨 자매가 집사에게 침을 뱉었다.
그리고 천제현이 자신의 말을 행동에 옮기는 동안 자매는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천제현은 신속하게 집사의 옷을 벗긴 후 그를 길가에 내다 던졌다.
사람들은 발가벗겨진 남자가 길거리를 기어가는 모습을 구경하러 나왔다가 그게 양씨 가문의 집사라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양씨 가문이 천제현에게 개망신을 당하는구나!’
이 일은 한동안 천남성 사람들의 입에 쉴 새 없이 오르내릴 것이다.
“걱정할 것 없어요.”
천제현은 고개를 돌려 공씨 자매를 바라보았다.
“제가 마수혼의 힘을 흡수했잖아요. 벌써 연체 5성까지 도달했는걸요. 떨어져 나간 정신도 일단 회복했고. 물론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적어도 두 달은 유지할 수 있을 거예요.”
공서련은 그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또 갑자기 걱정이 되어 급히 물었다.
“그럼 두 달 후에는? 방법이 있는 거야?”
천제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혼성에 이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하지만 혼성에 이르기만 하면 정신을 회복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예요!”
‘두 달 안에 혼성에 이른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천남성 전체에서도 혼성에 이른 수행자는 몇 명 없다.
두 달 안에 혼성에 이를 확률은 그야말로 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서련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만 아니었다면 천제현이 이런 일을 겪지도 않았을 텐데.
“서련 아가씨, 자책하지 마세요. 아가씨 잘못이 아니에요.”
천제현이 공서련에게 다가갔다.
“아가씨가 절 노예시장에서 사준 것만 해도 제게 큰 은혜를 베푼 거예요. 다른 사람이 절 데려갔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테니까. 계약서는 잊어버려요. 이참에 우리 관계가 평등해졌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니겠어요?”
그의 말을 듣고 공서련은 감동해서 눈물을 흘릴 뻔했지만, 오히려 천제현에게 두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나쁜 놈! 이제 거리낄 것도 없으니 더 심하게 날 괴롭히겠지?”
천제현은 짐짓 겁난다는 표정을 하며 말했다.
“큰 아씨가 계시는데 제가 어찌 감히!”
공서련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두 달 안에 혼성에 이를 수 있는 거야?”
“절 못 믿는 거예요?”
“아니, 믿어! 하지만 혼성이라니, 너는 점점 더 나한테서 멀어지네. 내가 널 쫓아가지 못할까 봐 겁이 나!”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같이 강해지면 되죠!”
천제현은 공서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단약 화로, 아직 있어요?”
공서련은 짜증내며 말했다.
“머리 만지지 마! 난 애가 아니란 말이야! 화로야 당연히 아직 있지. 낡아 빠져서 돈도 안 될 것처럼 보이는 그 화로를 누가 가져가겠어?”
천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약 화로를 도둑맞는 건 계약서를 도둑맞는 것보다 열 배, 백 배 심각한 일이에요. 명심하세요. 그 진법은 절대로 다른 사람이 알아선 안 돼요! 그럼 이제 화로를 가져다주세요. 수단으로 단약을 만들어야겠어요.”
그 말에 흥미가 생긴 공서련이 말했다.
“또 단약을 만들려고? 이번에는 무슨 단약인데?”
“이번에는 모두에게 하나씩 만들어 줄 거예요. 무슨 단약인지는…… 일단 비밀!”
천제현은 일부러 호기심을 자극하듯 말했다.
“정상회의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그 전에 조금이라도 더 실력을 키워야겠어요. 그래야 가능성도 커지지 않겠어요?”
‘이놈들, 비열한 수법으로 날 조종하려 했겠다? 내 손속이 악랄하다고 탓하지 말거라!’
천제현은 은원관계를 확실히 하는 성격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일단 은혜를 입으면 몇 배로 보답하지만, 하찮은 원한이라도 한 번 품으면 반드시 돌려줘야 직성이 풀렸다.
하물며 이번에 양씨 가문에 진 빚은 도가 지나칠 정도로 컸다.
자객을 보내는 걸로 모자라 계약서를 훔쳐가다니.
그들의 음모가 하나라도 성공했다면 지금쯤 천제현은 저승을 헤매고 있을 것이고, 공씨 자매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천제현은 양씨 가문이 다시는 문제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염천웅, 장립청, 남궁혜에게 며칠간 돌아가면서 남운상회를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자신은 집 안에 틀어박혀 공서련과 함께 단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쌍익흑풍랑에서 얻은 내단과 밖에서 구해온 십여 개의 진귀한 영약을 더해 대량으로 단약을 제조하면서 정상회의를 기다렸다.
***
며칠 후.
남궁의는 노발대발하며 찻잔을 집어 던졌다.
“남궁혜, 이 아이가 갈수록 더하는구나!”
남궁의는 딸을 생각할 때마다 치솟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딸의 제멋대로인 성품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날만 해도 남궁의를 포박한 걸로 모자라 몰래 그의 개인 창고에서 보물을 훔쳐 내다 팔았다.
금화 만 냥이 넘는 엄청난 보물들이었다.
그걸로 모자라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누가 안단 말인가.
며칠 전 그녀가 길 한복판에서 양한과 싸웠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남궁의는 그 소식을 듣고 피를 토할 뻔했다.
양한이 어떤 작자던가?
얼마 전 중주성에서 돌아온 양씨 가문의 큰 아들이다.
양씨 가문은 중주 지역의 토박이 세력으로, 남궁의조차도 그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런데 딸아이가 문제를 일으키다니.
“성주님, 아씨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지금 뭐라 했느냐! 그녀석이 감히 어딜 돌아와!”
남궁의는 너무 화가 나서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것 같았다.
“쳇! 제가 못 돌아올 이유는 또 뭔데요?”
남궁혜가 건들거리며 들어왔다.
“어? 아버지!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요? 어디 아프세요?”
남궁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