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37화 (36/729)

# 37

제37장 도둑맞은 노예계약서

공서련은 떨리는 두 손으로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순간 공서련은 심장이 멎는 듯했다.

공서련은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땅에 쓰러졌고 얼굴에 핏기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 서련아!”

공화련이 뛰어 들어와 공서련을 안았다.

공서련의 얼굴이 한없이 창백해졌다.

몸에선 식은땀이 그치지 않았다.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뭔가를 계속 중얼거렸다.

“왜 그래!”

공서련은 넋이 나간 것처럼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공화련은 몹시 당황했다.

“놀라게 하지 마,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공서련이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계약서…… 계약서가 없어졌어! 그들이 계약서를 훔쳐갔어!”

“계약서, 무슨 계약서? 설마!”

공화련의 몸이 거세게 요동쳤다.

그녀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옆에 있는 천제현을 쳐다봤다.

공서련이 대성통곡을 했다.

“천제현의 계약서!”

천제현의 낯빛이 서서히 변했다.

“뭐? 그럴 리가!”

“천제현, 미…… 미안해!”

공서련은 떨리는 목소리로 울면서 말을 했다.

“진작부터 네게 계약서를 돌려주려고 했어.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내 노예계약서가 도둑맞았다고?’

노예계약서 안에는 노예의 정신이 봉인되어 있다.

노예 주인은 노예계약서를 가지고 있어서 언제든 노예를 죽일 수 있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노예주는 노예를 조종할 수 있었다.

천제현의 노예계약서가 도둑맞았다는 것은 천제현의 생사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계약서를 가지고 천제현을 위협할 수 있다.

만약 천제현이 말을 듣지 않으면 천제현을 죽일 수도 있다.

공서련은 후회가 막급했다.

“난 아무런 능력도 없고, 똑똑하지도 않아. 난 네가 날 떠날까 봐 두려웠어. 그래서 계약서를 감춰뒀던 거야. 하지만 계약서를 이용해서 널 협박하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진작 너에게 줬을 거야!”

공화련도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건 천제현의 목숨과 관련이 있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공화련이 그녀를 책망했다.

“이렇게 중요한 물건을 어떻게 아무도 지키지 않는 방 안에 놔둘 수가 있어?”

공서련의 자책감이 극에 달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행복감에 사로잡혀 웅대한 포부를 품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모든 희망들이 사라져 버렸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과 같은 엄청난 상실감.

공서련이 계약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천제현이 떠나는 게 무서워서였다.

그러나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천제현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에 처했을 뿐만 아니라 천제현을 사지로 몰아넣은 셈이다.

‘천제현은 나를 위해 이렇게 많은 것을 해줬는데. 천제현이 우리 가족을 구해줬는데. 난…… 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공화련도 눈물을 흘리는 동생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가슴 아파하는 동생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도둑놈은 친척들 중에 있을 거야. 아마도 천제현을 조사한 양씨 가문에서 천제현의 범상치 않음을 알아차리고 사람을 시켜 계약서를 훔친 것 같아.”

공화련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눈에 분노의 빛이 가득했다.

“이 일은 내게도 책임이 있어. 사람들을 총동원해서 도둑놈을 잡아오도록 해야 돼!”

‘잡아오라고? 잡아올 수 있을까?’

공서련의 눈에서 결연한 빛이 감돌더니 벌떡 일어나 뛰쳐나가려고 한다.

“내가 잡아올 거야!”

공화련은 동생이 사고를 칠까봐 황급히 그녀를 저지했다.

“서련아, 뭘 하려는 거야?”

공서련의 말투는 단호했다.

“분명 양씨 놈들이 사주한 걸 거야. 내가 가서 계약서를 돌려 달라고 빌겠어. 계약서를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그들이 뭘 원하든 다 들어줄 거야!”

공화련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바보, 그들이 왜 계약서를 훔쳐갔겠어. 천제현을 조종해서 자신들의 일에 이용하려는 심산이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이거 놔!”

공서련이 거세게 언니의 손을 뿌리치고 문 밖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천제현을 절대 나쁜 놈들 손에 넘어가게 할 수 없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거야!”

이때 누군가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따듯한 두 손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진정해요.”

자책감이 극에 달한 공서련은 감히 천제현을 쳐다볼 수 없었다.

자신이 천제현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다.

천제현은 항상 자신의 편이었고, 여러 번 자신을 도와주었고, 구해주었는데 말이다.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지난날 자신이 천제현에게 못되게 군 건 그렇다 치고, 지금은 자신 때문에 천제현의 자유와 목숨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고 싶었다.

그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공서련은 눈물을 닦으며 처량하게 말했다.

“내가 밉지?”

“바보, 그게 뭐라고 이렇게 난리를 치는 거예요. 누가 보면 하늘이라도 무너진 줄 알겠어요.”

천제현이 공서련의 눈물을 닦으며 가녀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고는 그녀를 부축해 들어왔다.

“그만 울고 씻고 잠이나 자요!”

‘멍청이!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네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야!’

천제현이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깟 계약서, 신경 쓰지 마요. 사실 난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어요. 안 그랬으면 그놈들이 그걸 훔쳐가게 놔뒀겠어요? 진작 박살 냈지!”

‘뭐?’

공서련과 공화련은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시대에 정신계약은 영원히 해제할 수 없다.

노예가 일단 정신계약을 맺게 되면 그 노예의 생사는 영원히 남의 손에 달리게 된다.

아직 정신계약을 해제한 사람이 있었단 말은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천제현에게는 그것을 해제할 수 있는 방법이 백 개나 되었다.

그중 가장 편리한 것이 혼성에 들어섰을 때 가능하다.

혼성에 들어서게 되면 외부 도움 없이도 자신의 정신을 회복할 수 있다.

‘지금 바로 혼성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무리니까,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겠군. 마수혼을 사용해야 할까?’

마수혼의 정신물질을 추출해내서 잠시 정신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

마수혼.

이는 매우 진귀한 재료로 2급 이상의 내단에서 얻을 수 있는 마나의 응집체라 할 수 있었다.

내단을 섭취했을 때 마력이 쌓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 마수혼의 보존 기간이 매우 짧기 때문에 시장에서 마수혼을 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천남성같이 작은 도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천제현은 운이 좋았다.

‘가만, 혈문이무기의 마수혼이 있잖아? 그거면 되겠어.’

계약서는 아직 양씨 가문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천제현은 서둘러야 했다.

“내게 방법이 있어. 잠시 정신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야. 조용한 방 하나만 구해줘. 빨리! 계약서가 그들에게 넘어가면 다 끝장이야!”

천제현은 방 안으로 들어가 품에서 붉은색 내단을 꺼냈다.

‘어쩔 수 없지! 이걸 사용하는 수밖에!’

혈문이무기는 2급 마수다.

천제현은 단약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하지만 마수혼을 안에서 끄집어내어 삼킬 수는 있다.

혈문이무기의 마수혼을 삼키기만 한다면 마수혼의 정신과 능력을 이용하여 분리된 정신을 메우고 정신체를 완전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노예계약서는 쓸모없게 된다.

천제현은 마력진을 그린 후에 내단을 그 가운데에 놓았다.

그러고는 마력진을 활성화시켰다.

반투명한 환영이 내단 안에서 밖으로 분리되어 나왔다.

천제현은 바로 그 마수혼을 삼켰다.

‘시작하자!’

그렇게 천제현은 마수혼 흡수를 시작했다.

자책, 후회, 괴로움, 번뇌, 불안!

공서련은 지난밤 동안 밤새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

충성스러운 호위무사처럼 천제현의 방문 앞을 지키고 서서 한 발짝도 떠나지 않았다.

“서련아, 벌써 날이 밝았어.”

공화련이 동생에게 담요를 걸쳐주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동생에 대한 사랑과 애잔함이 가득했다.

“이러고 있어 봤자 달라지는 거 없어. 가서 쉬도록 해. 여긴 내가 있을 테니까. 별일 없을 거야.”

이 일로 공서련은 큰 충격을 받았다.

평소의 활기차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공서련은 초췌한 얼굴로 말했다.

“그냥 놔둬. 나도 알아. 내가 쓸모없다는 걸. 나쁜 놈들이 와도 난 막을 수 없겠지.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그나마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이렇게 있게 해줘.”

“그래, 그럼 나도 같이 있어줄게.”

공화련은 동생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깊은 한숨을 들이마셨다.

‘보아하니 그 녀석에게 곧 마음을 빼앗기게 생겼군.’

날이 점차 밝아왔다.

이때 문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양씨 가문의 집사다. 감히 쥐새끼 같은 놈들이 날 막아? 저리 꺼져!”

호위 몇 명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공화련 자매는 크게 놀랐다.

서른 전후로 추정되는 한 청년이 호위병들을 바닥에 쓰러뜨리고는 그중 한 명의 얼굴을 거만하게 발로 밟고 있었다.

그는 공화련 자매가 나오는 것을 보더니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씨 자매의 미모는 경국지색이라더니 실제로 보니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구나. 하지만 좋았던 시절도 이제 끝이다!”

공화련은 주먹을 쥐며 말했다.

“무슨 뜻이지?”

양씨 가문의 집사는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이후로는 평온한 일상이 사라지게 될 테니 안타까운 일이지!”

공서련은 분노하며 외쳤다.

“이 자식, 꺼지지 못해!”

공화련은 화가 난 동생을 급히 막아서며 눈썹을 찌푸렸다.

“그 말을 하려고 죄 없는 우리 집 호위를 때려눕힌 것이오?”

양씨 가문의 집사가 웃으며 말했다.

“흥,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지 말고 어서 천제현 그 노예 자식을 불러와!”

공서련은 분노하여 소리쳤다.

“대체 뭘 하려는 셈이냐?”

양씨 가문의 집사는 뭔가 재미난 것이 생각난 듯 말했다.

“천제현 그 노예 놈이 우리 큰 도련님께 죄를 지었다지? 그런데 자기 목숨이 큰 도련님 손에 달려 있다는 건 아나 몰라?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면 시키는 대로 하라고 전해라. 우리 양씨 저택에 죄를 청하러 가되, 세 걸음마다 무릎을 한 번씩 꿇고 다섯 걸음마다 절을 한 번씩 해야 한다.”

집사는 생각만 해도 통쾌한 듯 크게 웃으며 말했다.

“진심으로 사죄한다면 도련님께서 그 정성을 보아 두 다리만 자르고 목숨은 살려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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