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제35장 친척들의 방문(2)
공화련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련이가 아직 어려서 두고 떠날 수 없습니다.”
조장하는 이미 공화련이 이렇게 말할 걸 예측하고 있었다.
“서련이도 이제 열여섯 살이니 일아의 첩으로 들어가면 되겠구나. 너희 자매가 한 남자를 모시면 평생 헤어질 일도 없겠어! 서련이에게 별다른 재주가 없는 건 너도 잘 알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그녀에게도 좋은 일이야.”
‘자매가 모두 큰 사촌오빠에게 시집을 간다고?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천제현은 더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지랄하고 있네! 듣고 있자니 토 나오려고 하는군!”
‘큰 외삼촌은 조카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머리를 굴렸고, 지금 두 조카를 자신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려고 하고 있다?’
천제현은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길래 이런 요상한 생각을 해낼 수 있는 거지!’
미래에서 온 천제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큰 사촌오빠란 놈도 만만치가 않군. 동시에 두 사촌동생을 강제로 취하려 하면서 어찌 저리 부끄러운 줄도 모를까. 세상에 나보다 더 뻔뻔한 놈이 있을 줄은 몰랐군.’
“닥쳐라! 네가 뭔데 남의 가문일에 왈가왈부하느냐?”
조일은 아름다운 두 사촌동생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상회를 빌미로 두 동생을 취하려고 하는데 저 눈에 가시 같은 놈이 방해를 하려하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주인에게 빌어먹는 쓰레기 같으니라고!”
천제현이 멋쩍은 듯 웃었다.
“다른 건 그렇다 치자. 난 적어도 염치는 있지, 누구처럼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 아니거든.”
조일의 눈에서 살기가 감돌았다.
“한 번 노예는 평생 노예다. 내가 널 죽이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보다 쉬워. 사촌동생을 믿고 까부는 것 같은데, 그런다고 무사할 성 싶으냐?”
천제현이 눈을 가늘게 뜨자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천제현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이런 표정을 보였을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공화련이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말이 너무 지나치군요!”
조장하가 아들에게 말했다.
“뭣하러 아랫것이랑 말을 섞느냐. 너의 신분을 잊은 게냐? 앉거라. 서둘러 얘기를 끝내자.”
“더 얘기할 필요 없어요!”
공화련이 결연한 어투로 말했다.
“저는 그런 황당한 요구를 들어줄 수 없어요.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내겠어요. 모두들 돌아가세요!”
조장하가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남운상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너희 두 자매의 미래를 위해서도 일아에게 시집오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야. 오늘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너랑 상의하기 위해서가 아니니 반대해도 소용없다.”
“조장하의 말이 맞다!”
“최근 남운상회의 실적은 절말 실망스럽구나!”
“조씨 가문과 결혼을 하던지 남운상회를 넘기던지, 선택을 해라!”
“…….”
공화련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분노는 이미 한계에 달했다.
조장하는 안하무인의 태도로 단호하게 말했다.
“일아, 잘 준비하거라. 이 일은 조속히 마무리 지어야 해.”
“감사합니다, 아버지!”
조일은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주 멋진 결혼식이 될 겁니다. 화련이를 잘 맞이할게요.”
이곳에서 공화련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의 따위는 할 생각이 없다.
‘승낙을 하지 않겠다? 좋아, 투자한 돈을 모두 회수하려하면 어쩔 수 없이 부적공방을 내놓겠지!’
조장하는 씨익 웃었다.
‘공화련, 네가 부모의 사업을 목숨처럼 중요시 여긴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있을까?’
공화련은 너무 화가 나서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더는 참기 힘들었다.
다행히도 이 자리에 서련이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있었다면 그녀의 성격으로 보아 일을 냈을 것이다.
공화련이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천제현을 바라봤다.
지금 이 국면을 타개할 능력이 공화련에게는 없었다.
‘천제현은 고약한 꾀가 많은 자이니 이 일을 해결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공화련의 눈빛을 읽은 천제현은 결정을 내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사양하지 않지!’
천제현이 벌떡 일어서더니 크게 외쳤다.
“모두 꺼져!”
“아!”
공화련은 대경실색했다.
사람들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근본도 알 수 없는 아랫것이 감히 이런 무례한 말을 하다니.
친척 중 한 명이 분노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이놈…….”
그 순간 천제현의 무지막지한 주먹이 그의 턱에 내리꽂혔다.
단 한 방에 턱뼈가 박살났다.
그는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땅에 고꾸라졌다.
천제현은 연이어 발로 그를 걷어차 몇 미터 밖으로 날려 버렸다.
‘주먹을 휘두르다니!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약물시장이 침체에 빠져서 남운상회는 지금 빚더미에 올라있다.
이런 때에 이 자들이 이렇게 몰려온 것은 남운상회가 돈을 마련하기 힘든 것을 알고 공화련의 퇴진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천제현이 주먹을 풀면서 말했다.
“이놈들이 원하는 건 다 무너져 가는 부적공방이잖아. 그럼, 그냥 줘 버리고 빨리 쫓아내!”
“건방진 노예 놈. 감히 우리 가문을 이간질해서 갈라놓으려고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조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제가 저놈을 불구로 만들어 놓겠어요!”
조장하는 말리지 않았다.
그는 공화련을 위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불구? 저런 놈을 살려둬서 뭐하게? 죽여!”
공화련이 다급히 외쳤다.
“멈춰요!”
“동생, 정말 어리석구나! 널 향한 내 마음을 이렇게 몰라주다니! 저 노예 놈이 저렇게 버릇없이 구는데 넌 그를 감싸기나 하고 말이야. 저런 놈을 가문에 남겨뒀다간 큰 화를 부를 것이야. 너, 나, 그리고 우리 가문을 위해 오늘 반드시 저놈을 죽여 버릴 테다!”
조일이 마력을 오른 다리에 집중시키고 높이 들어 올리니 마치 거대한 도낏자루 같았다.
“죽어라!”
조일의 다리가 무서운 기세로 천제현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온 힘을 다 쏟아부은 일격.
정말 그를 죽일 심산이다.
저 공격에 맞으면 천제현은 살아남지 못할 듯하다.
“약해!”
천제현이 오른팔을 들어 올리더니 휘둘렀다.
“충소권!”
오른 주먹을 번개처럼 휘두르자 두 힘이 격렬히 충돌했다.
쩌어어엉-!
대청 안에 광풍이 일더니 우지끈하고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참담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악!”
조일이 땅에 쓰러졌다.
오른다리가 심하게 비틀어져 있었다.
다리뼈가 주먹과 충돌하여 으스러진 것이다.
“내 다리!”
“겨우 연체5성 주제에 천하무적인양 거드름을 피우는군!”
무공 실력과 기교에서 모두 천제현이 앞섰다.
마력이 다소 부족하긴 했지만 온천에 섞인 이무기의 피로 인해 신체가 크게 강화되어 조일 따위를 상대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열예닐곱에 불과한 놈이 한 주먹에 중주학당 학생의 다리를 부러뜨리다니?’
친척들의 얼굴에 놀람의 빛이 가득했다.
“중주학당에 다 너 같은 놈만 있다면 하루 빨리 문을 닫는 게 낫겠군!”
천제현은 한 손으로 조일을 높이 들어 올린 후 주먹으로 연이어 대여섯 대를 때렸다.
조일의 피와 부러진 이가 사방으로 튀었다.
“날 죽인다고? 내가 먼저 널 불구로 만들어주마!”
조일은 공포에 질려 외쳤다.
“그만해!”
그 순간 조장하가 천제현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네놈이 감히!”
천제현의 주먹이 조일의 배에 꽂히자 조일의 단전이 완전히 파괴되며 마력이 산산이 흩어졌다.
이로써 그는 마력을 쓸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조일은 마력을 완전히 잃었다!’
매우 빠른 행동력이었다.
불구로 만든다고 하자마자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정말로 조일의 단전을 파괴한 것이다.
이는 공화련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조씨 가문은 명문 가문은 아니지만 중주성에서 어느 정도 세력을 지니고 있었다.
조일이 방계 자손이기는 하지만 천제현이 그의 마력을 폐한 것이 중주성에 퍼지게 된다면 천제현은 조씨 가문의 원한을 사게 될 것이다.
이로써 남운상회와 조씨 가문은 갈라서게 되었다.
“네가 감히 내 아들의 마력을 폐하다니!”
조장하가 분노하여 소리치며 두 주먹을 무섭게 날렸다.
“너를 죽여 버릴 테다!”
천제현이 냉소를 지었다.
“네 주제에? 꺼져라!”
퍽!
단지 발로 한 번 찼을 뿐인데 조장하는 수 장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조장하의 마력이 조일보다 높기는 하지만 5성 정점에 불과했다.
6성에도 미치지 못하는 마력에 천제현이 눈 하나 깜박할 리가 없었다.
천제현이 오만한 눈빛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흘겨보자 사람들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디 계속 떠들어보시지? 날 죽여서 후환을 없앤다고 하지 않았나?”
“자, 내가 이렇게 부탁하지. 어서 죽여봐.”
맙소사! 큰외삼촌까지 날려 버렸어!’’
기뻐서일까. 아니면 놀라서일까.
공화련의 몸이 살며시 떨렸다.
천제현이 한 짓은 결코 그녀가 바랐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이 원했던 일이기도 하다.
조씨 가문은 어머니의 가족들이다.
그녀는 조씨 가문과 영원히 갈라서기를 원치 않았다.
‘하지만…… 서련이를 건드리려 하다니. 큰외삼촌은 정말 도가 지나쳤어.’
천제현의 얼굴을 따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녀의 눈에 지금껏 볼 수 없었던 굳은 결의가 떠올랐다.
‘천제현……. 고마워!’
공화련의 눈에 눈물 한 방울이 반짝였다.
조장하가 창백한 얼굴로 호통 쳤다.
“공화련! 이 여우같은 것. 지난 날 내 너의 부모와 함께 상운상회를 설립하고 수많은 공을 세웠건만 이제 다 컸다고 나를 이렇게 대하다니……. 이 은혜도 모르는 짐승 같은 것!”
“은혜를 모른다고?”
공화련이 씁쓸하게 웃었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그 가면을 철저히 벗겨주지.’
아름다운 눈동자에 분노의 빛이 번득였다.
“그동안 묻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조장하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공화련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6년 전. 부모님께서는 비밀리에 상단을 이끌고 화물을 운송했었죠. 외부에 운송경로를 발설한 적이 없는데 뜻밖에도 도중에 적을 만나 목숨을 잃으셨고, 상단 사람들도 모두 몰살당했어요. 그런데 외삼촌께서는 어떻게 홀로 살아남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