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제31장 더 큰 위기
여러 사건을 겪은 천제현은 만일의 사태를 방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전부터 그는 돌발 상황에 대비해 호신 부적을 여러 개 만들어뒀다.
천제현이 직접 만든 부적의 위력은 이 시대의 것보다 훨씬 대단했다.
연체 5성의 마력으로 발동시킨 이 기폭부(起爆符)는 단 일격으로도 한숭을 저세상으로 보내 버리기 충분했다.
한숭이 바닥에 처박혔다. 그의 가슴이 다 너덜너덜해졌다. 온몸은 아직도 화염에 불타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가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으나 그의 부상은 혼성술사라도 비명에 갈 만큼 심각했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고통 속에서 뒤늦은 후회가 한숭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흑수상회는 이미 전성기였는데. 그냥 안정적으로 경영해 나갔으면 오늘 같은 결말은 아니었거늘……!’
너무 늦은 후회 속에서 한숭의 숨이 멎었다.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만만한 놈이 아냐!’
검은 옷의 자객들이 경계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천제현이 사방에 자욱한 살기를 느끼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가장 버거운 상대를 처리했으나 부적이 몇 개 없는 데다 부적을 발동시킬 마력은 더욱 /부족했다.(모자란 상황.)/
같은 방법의 공격은 더 이상 써먹을 수 없었다.
목숨을 건 혈투를 피하기 어려웠다.
적련단의 약효는 약 15분 지속된다. 시간은 충분하나 승산은 약 2할뿐.
이건 정면으로 맞붙었을 경우의 이야기다.
만약 자객들이 공서련을 잡고 위협하면 승산은 2할도 안 될 것이다.
‘어쨌건 멀뚱히 죽느니 한 번 붙어보자!’
“한숭 같은 늙은 여우를 처치하다니 제법 실력이 있군. 그러나 부적을 발동시키며 마력을 많이 소모했으니 이제 우리를 막을 수 있겠어?”
검은 옷의 자객들이 포위해 들어왔다.
“저항을 포기한다면 자비를 베풀어 편하게 보내주지. 저 계집도 재미를 본 후 단숨에 보내주마.”
천제현이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체내의 마력을 조절하였다.
마력을 이용해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무슨 잡소리가 그리 많아! 내 목숨을 이곳에 내놓았다! 실력이 있으면 가져가 봐!”
절대적인 열세 앞에서, 죽음의 위협 앞에서 천제현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공서련은 좀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천제현의 능력이면 혼자서 충분히 도망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평소에 능글거리며 경박하고, 색을 밝히던 소년이 과감하게 적들과 맞서고 있었다.
마치 두려움이 뭔지 모르는 소년 영웅처럼 용감히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
체격이 결코 크지 않았으나 태산처럼 굳건히 서서 그녀에게 닥치는 거센 격류를 막아내고 있다.
‘천제현, 너 정말 바보구나……!’
공서련의 눈가에서 수정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좋아!”
“공격해!”
“연체 5성밖에 안 되는 놈에 불과하다! 우리의 포위 공격을 상대할 수 있을지 보자고!”
검은 옷의 자객들이 포위공격을 펼쳤다.
그 순간,
숲 왼편에서 갑자기 피에 굶주린 듯한 난폭한 기운이 솟구쳤다.
동시에 음산하고 끔찍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르렁!”
‘마수다!’
모두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봤다.
숲에서 비취 같은 비취색 눈동자가 나타났다.
그 눈동자는 거대한 늑대의 것이었다.
사람 키만큼 크고 몸집이 엄청나게 큰 데다 등에 거대한 날개가 달린 늑대.
‘쌍익흑풍랑(雙翼黑風狼)이다!’
천제현은 과거로 떨어진 이후 처음으로 몹시 놀랐다.
다 자란 쌍익흑풍랑은 보통 연체 9성의 전투력을 지녔다.
이 자객들은 물론이고 자신도 상대가 안 될 것이다.
아무리 강한 남궁혜가 상대한다 쳐도 이 늑대를 잡으려면 악전고투를 벌여야 할 것이다.
모두 넋이 나가 있을 때 천제현은 과감하게 연영보를 펼쳤다.
바람처럼 빠르게 공서련을 어깨에 들쳐 메고 재빠르게 숲으로 뛰어들었다.
눈 깜빡할 새에 천제현이 사라졌다.
“빌어먹을! 놈이 도망쳤다!”
“어서 쫒아!”
자객들이 천제현이 사라진 방향을 볼 때 쌍익흑풍랑이 온몸에서 검푸른 마력을 뿜어냈다.
푸른빛의 바람이 육안으로 알아보기 힘든 속도로 날아가 자객 둘의 허리를 동강냈다.
‘이 마수가 이 정도였나?’
‘도망간 놈을 신경 쓸 때가 아냐! 저 늑대를 죽이지 못하면 한 사람도 빠져나갈 수 없다!’
자객들은 저마다 생각을 마치고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쌍익흑풍랑이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었다.
발톱으로 자객 한 명의 머리를 부숴 버린 다음 공중으로 뛰어올라 다른 자객을 갈기갈기 찢었다.
“죽여라!”
자객 한 명이 쌍익흑풍랑의 날개에 검을 날렸으나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다.
쌍익흑풍랑의 몸에서 대량의 심오한 주문이 떠오르더니 거대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자객이 휘두른 장검이 조각이 되어 비수처럼 날아가 자객들의 몸에 박혔다.
쌍익흑풍랑은 한차례 포효하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자객들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저, 저런 놈을 어떻게 이겨!”
“어서 도망쳐!”
하나, 이미 자객들의 공격으로 바싹 약이 오른 쌍익흑풍랑이 놈들을 놓아줄 리 없었다.
푸른색의 마력이 솟구치며 화살처럼 빠르게 궤적을 남겼다.
곧이어 숲에서 처참한 비명 소리가 이어지며 사방에서 피와 살이 튀었다.
그리고 그곳에 더 이상 자객은 없었다.
그저 싸늘한 주검만이 있을 뿐.
쌍익흑풍랑은 마음껏 인육과 피를 즐기다가 배가 차자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리곤 두 마리의 먹이가 도망친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 마수는 성질이 무척 잔인하여 사냥감을 놓치는 법이 없기로 유명하다.
쌍익흑풍랑은 즉시 냄새를 따라 천제현과 공서련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연체 9성 마수의 속도를 천제현이 어떻게 당해내겠는가.
천제현이 한참 전에 도망갔음에도 거리가 금방 좁혀졌다.
배부른 쌍익흑풍랑은 재미삼아 사냥감을 쫓았다.
전력을 다하지 않고 일부러 거리를 조금씩 두며 천천히 추격을 시작했다.
이따금 바람을 날려 사냥감을 희롱할 뿐이었다.
녹색 눈동자는 인간이 허겁지겁 도망치는 꼴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봤다.
한편,
공서련을 둘러메고 정신없이 도주하던 천제현은 마수의 추격을 알아차렸다.
“쯧.”
천제현은 가볍게 혀를 찼다.
‘완전 괴물이네! 마수 따위가 날 식후 장난감으로 보는군!’
천제현은 도망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아, 제길.”
천제현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자객들에게도 2~3할의 승산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없구나! 망할,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불운은 끝난 게 아니었다.
‘이런. 적련단의 약효가 완전히 사라졌어!’
급격히 밀려드는 피로감으로 눈앞이 깜깜해진 천제현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으르렁!
쌍익흑풍랑이 더 이상 재미가 없다는 듯 음산하게 포효해 왔다.
서슬 퍼런 살기가 주위를 감쌌다.
푸른빛의 마력이 몸체에 응집되었다가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망했다! 여기서 멈출 수 없어!’
천제현은 젖 먹던 힘을 내어 마력을 발동시켰다.
극심한 통증이 타오르는 불길처럼 온몸에 퍼졌다.
보통 사람은 견딜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이었다.
모든 경맥이 파열되는 듯한 극렬한 아픔이었지만 고통 뒤에 고갈된 몸에서 기적같이 힘이 솟아올랐다.
극한의 상황에서 뜻밖에도 경지의 상승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천제현은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연체 3성이나 4성이나 쌍익흑풍랑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이때 앞에 깊은 연못이 길을 막았다.
반경이 약 20m로 보이는 연못 너머로 동굴이 보였다.
연못을 뛰어넘을 능력도 돌아갈 시간도 없었다.
“뛰어들어 잠수할 거예요!”
“뭐, 뭐?!”
천제현이 이를 악물고 몸을 날렸다.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둘은 차가운 연못 속에 잠겨 들었다.
어느덧 코앞까지 쫓아온 쌍익흑풍랑은 최후의 일격을 위하여 마력을 모으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연못 반대쪽 동굴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스스!
어떤 생물이 놀라서 깨어났다.
쌍익흑풍랑이 즉시 경계하며 동작을 멈추었다.
그르르르…….
천천히 한 걸음 물러나 등을 굽히고 낮은 소리로 으르렁대며 동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강적을 발견한 듯한 경계였다.
연못 반대편에서 15m에 달하는 핏빛의 거대한 이무기가 느릿느릿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몸체에는 아름다운 무늬가 있고 핏빛의 비늘이 태양 아래서 홍옥처럼 요염한 빛을 냈다.
흉악하고 거대한 머리에 자란 검은 외뿔 때문에 이무기는 더욱 무시무시해 보였다.
‘혈문이무기!’
천제현이 물속에서 새로 등장한 마수를 보고 무척 놀랐다.
교룡으로 진화할 수 있는 마수였다.
평범한 혈문이무기는 뿔이 없다.
외뿔이 자랐다는 것은 교룡으로 진화하는 첫 단계를 마쳤다는 뜻이다.
마수로서의 급은 쌍익흑풍랑보다 높았지만 막 진화를 마쳤기 때문에 몹시 허약한 상태였다.
그래서 혼성 1성의 경지에 올랐지만 실제 전투력은 연체 9성과 비슷했다.
나약한 두 사람이 흉악한 마수 두 마리 사이에 끼었다.
언제 두 마수 싸움에 휘말릴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공서련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엄습해 오는 절망에 눈을 감았다.
‘끝났어. 꼼짝없이 죽겠어!’
으르렁!
스스스!
그러나 늑대와 이무기는 서로를 견제하느라 이미 두 사람을 잊은 지 오래였다.
두 마수는 서로를 쳐다보며 포효했다.
짙은 전운이 감돌았다.
마수는 매우 잔혹한 방법으로 성장한다. 또한 자기 영역에 대한 집착이 몹시 강하다!
쌍익흑풍랑처럼 급이 비교적 낮은 마수들은 급이 높은 마수의 내단과 고기, 피를 먹었을 때 진화할 수 있다.
허약해진 혈문이무기를 만난 지금이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한편 혈문이무기는 자신의 영역에 침입한 쌍익흑풍역이 다른 뜻을 품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몹시 분노했다.
천제현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두 놈이 싸우게 된다면 살 길이 있을지도 몰라!’
문제는 마수가 생각보다 어리석지 않다는 것이었다.
두 마수의 전투력은 비등했다.
마수들은 자신이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쉽사리 싸우려들지 않는다.
천제현의 예상이 맞다면 쌍익흑풍랑은 먼저 물러날 것이다.
‘그건 안 돼! 조금만 지체되면 기회가 사라진다. 앉아서 죽느니 모험을 해보자!’
천제현이 갑자기 부적 하나를 던졌다.
순식간에 1급 부적인 물의속박이 발동되었다.
혈문이무기는 아무런 방비도 없이 갑자기 솟아난 네 개의 물기둥에 갇혀 버렸다.
부상을 입히려는 게 아니라 혈문이무기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행동에 제약을 주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