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제28장 저놈좀 때려주세요
100여 명이 넘는 위풍당당한 용병이 거대한 늑대와 소 같은 마수를 끌고 큰길에 나왔다.
마수의 등에는 포도주와 맥주, 식용유, 빵, 밀가루, 쌀이 실려 있었다.
그들은 지나가는 백성에게 이것들을 무료로 나눠주었다.
“새치기하지 마십시오!”
“모두에게 다 드리겠습니다!”
“흑랑상회에서 천남성에 분점을 열 것입니다!”
“이분이 바로 분점의 회장인 양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백성들이 선물을 받아 신나게 돌아가며 흑랑용병을 칭송했다.
‘이런 어리석은 놈들을 속이는 것은 일도 아니군!’
스물이 안 되는 소년이 전투늑대 등에 앉아 용병들 틈에 둘러싸여 있었다.
은색 갑옷과 투구를 착용한 모습이 위풍당당하고 비범했다.
얼굴은 준수한 편이고 눈빛은 차가운 게 강하고 오만한 기운이 느껴졌다.
“양웅 대인의 장남 양한 아닌가?”
“우리 천남성에서 이름난 천재라고!”
“양웅 대인께서 1년 전 수련을 위해 중주(中州)의 본성으로 보내시지 않았나? 어떻게 다시 돌아왔지?”
“…….”
천남성이 속한 남하국에는 여덟 개의 큰 주가 있다.
중주는 바로 그중의 하나였다.
양씨 가문의 본부가 바로 중주의 본성에 있었다.
천남성은 중주에 있는 평범한 도시에 불과했다.
양웅은 양씨 가문의 장로급 인물로 10년 전 천남성으로 보내져 이곳의 가산을 관리하고 있었다.
양웅은 여러 아들 중 두 명을 가장 아꼈다.
하나는 막내 양봉이다.
하나는 첫째 양한이다.
양봉은 약 조제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그리하여 이장운의 문하로 보냈다. 양한은 무예에 비범한 재능을 보였다.
그리하여 가문을 더욱 번창시키기 위해 중주성으로 보냈다.
양한이 차가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늘씬하고 육감적인 그림자를 발견하더니 입맛을 다시며 늑대를 몰아 천천히 다가갔다.
“공화련 회장, 일 년 넘게 못 본 사이에 더 아름다워졌군.”
공화련이 쌀쌀맞게 대답했다.
“칭찬 고마워요.”
“내가 왜 돌아왔는지 궁금하지 않나?”
“천만에요. 전혀 알고 싶지 않아요.”
양한의 눈에 음흉한 빛이 스쳤다.
“천남성에 흑랑상회의 분점을 설립하려고 해. 이미 한씨 가문의 전 사업을 인수하여 내가 관리하고 있지. 이번 일은 정말 고맙게 됐어.”
공화련이 입술을 꾹 깨물고 대꾸하지 않았다.
양한이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 말을 안 할 수가 없군. 남운상회에서 이번에 일을 너무 크게 벌렸어. 중주 본성에 있는 우리 가문에서도 너희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잖아.”
“하지만 그건 양봉이 일으킨…….”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잘 알고 있잖아. 중주성의 우리 가문에 비하면 너흰 버러지만도 못 해. 손가락만 까딱해도 죽일 수 있지.”
노골적인 위협이었다.
공화련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공화련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악한 늑대를 쫓아냈는데 사나운 호랑이가 오다니.
이번에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새로운 상회를 설립하려는 시점에 이렇게 무서운 상대가 호시탐탐 노린다면 매사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양한이 눈을 가늘게 뜨고 옆의 천제현을 바라봤다.
“내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이자가 바로 내 동생에게 중상을 입힌 천제현이겠군?”
“그래, 바로 이 어르신이다.”
천제현의 사전에 예의라는 말은 없었다.
“너는 왜 이렇게 무례해? 큰아가씨께서 너랑 이야기하기 싫다고 하시잖아. 그런데도 낯짝 두껍게 집적거리다니. 썩 꺼져! 길 막지 말고.”
양한의 얼굴이 순간 싹 변했다.
용병 몇 명이 동시에 무기를 뽑았다.
“무례하다!”
양한이 용병에게 무기를 거두라고 손짓하며 재미있다는 듯이 냉소를 지었다.
“6년 전에는 너희 가문을 완전히 박살 내는 데 실패했지. 그렇지만 우리 가문은 그때보다 몇 배 더 커졌지. 게다가 본가의 지원까지 받고 있으니 이번에 너희가 우리의 공세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군!”
공화련과 공서련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이건 6년 전의 일이 자기네 소행이라고 시인하는 것이었다.
‘정말 부모님께서 저놈들 손에 돌아가셨단 말이야? 이 짐승 같은 자식들!’
공서련이 눈을 붉히며 달려들려고 하자 공화련이 잡아끌었다.
공화련이 양한에게 말했다.
“흑수상회는 화를 자초했어요. 천남성 백성들이 다 아는 사실이지요. 남운상회는 손해가 막심해서 당신들과 맞설 힘이 없어요. 저희를 너그럽게 봐주세요.”
공서련은 언니가 왜 저따위 인간에게 고개를 숙이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씩씩거렸다.
‘저들은 부모님을 죽인 원수라고!’
양한은 전투 늑대 위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며 쾌감을 만끽했다.
“네가 고개를 숙이고 부탁하니 기회를 한 번 주지. 천제현의 마력을 폐하고 내게 넘겨. 그러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그러나 훗날의 일은 너희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어.”
공서련이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며 외쳤다.
“꿈 깨!”
“걱정 마. 죽이지는 않을 거야. 저자에게 재주가 있다고 들었어. 난 인재를 아끼는 사람이거든. 놈을 살려 두는 건 대단히 자비로운 처결이지. 놈이 저지른 죄로 보면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아.”
양한은 입술을 핥으며 비열하게 웃었다.
“너희에게는 선택권이 없어. 천제현을 내놓거나 우리 가문의 적이 되거나 둘 중 하나야. 알아서 결정해.”
“말 다 했어?”
천제현이 같잖다는 얼굴로 짜증을 내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갑자기 남궁혜에게 손짓했다.
“이리 좀 오세요.”
남궁혜가 다가왔다.
“왜 불러?”
천제현이 천연덕스럽게 손짓을 하며 명령조로 말했다.
“저놈을 좀 때려주세요. 지분을 나눌 때 좀 더 챙겨드릴게요.”
“정말? 그럼 나야 고맙지!”
남궁혜가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 말을 기다렸어!”
양한은 남궁혜를 무척 두려워했다.
그러나 남궁혜가 진짜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가문을 감히 건드릴 수 없을 거야!’
그러나 남궁혜가 점점 가까이 오자 그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너는 남궁 가문의 방계일 뿐이잖아. 네 아버지가 힘들게 건진 성주 자리를 지키고 싶으면 함부로 날뛰지 마. 서로 건드리지 말자고. 우리 양가를 건드리면 성주 자리를 내놓아야 할 거야. 할 테면 해보던가!”
양한의 말은 사실이었다.
남궁혜의 아버지 남궁의는 남궁 가문의 방계로 낙하산으로 천남성의 성주가 되었다.
중주성에서는 가문의 지원을 받지 못했고 적대적인 세력이 많았다.
양씨 가문은 절대 가볍게 볼 세력이 아니었다.
따라서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으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남궁의 역시 딸에게 다른 세력은 다 건드려도 되지만 양씨 가문은 건드리지 말라고 재차 당부했다.
양한이 겁 없이 날뛰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남궁혜는 이런 상황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제멋대로 날뛰지 마. 네가 연체 6성밖에 안 되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천남성에서야 천재 대접 받는다고 쳐도 본성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네놈이 키워줄 가치가 없어서 이곳에 가산 관리나 하라고 보낸 거잖아.”
남궁혜의 눈빛이 머리색처럼 붉게 타올랐다.
“맞아, 우리는 방계야. 그러나 중주성의 양씨 본가에서 너 같은 하찮은 놈 때문에 나라의 삼 대 가문 중 하나인 남궁 가문을 건드릴 것 같아?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마!”
“너…….”
양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남궁혜의 말이 아픈 곳을 찔렀기 때문이다.
1년 전 그는 큰 포부를 안고 본성으로 갔다.
하지만 양한의 포부는 불과 일주일 만에 무너졌다.
천남성에서는 천재라고 불렸지만 본성에 도착해 보니 그 정도의 재능을 지닌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양한은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1년 동안 푸대접을 받았다.
때문에 귀향을 자청했다.
돌아와 보니 흑수상회 사건이 터져 얼떨결에 회장의 직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남궁혜가 뿌드득 소리가 나게 주먹을 쥐자 삽시간에 몸 주위로 붉은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봉황의 울음소리가 낮게 깔리며 강렬한 힘이 방출되자 주위의 용병들이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남궁혜가 손가락을 뚜두둑 꺾으며 물었다.
“어떻게 때려줄까?”
“때리려면 얼굴을 때려야지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십니까?”
안색이 창백해진 양한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감히 날 건드린다면 너희 가문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천남성에서 내가 못 할 일은 없어!”
남궁혜가 강한 기를 내뿜자 붉은색 마력이 온몸을 감쌌다.
그녀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유성처럼 낙하해 양한의 얼굴에 강한 따귀를 날렸다.
양한은 늑대 등에 앉아 있다가 치아 몇 개를 흩날리며 땅바닥에 처박혔다.
모두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로 때리다니!’
양한은 양웅이 가장 아끼는 아들이자 천남성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 중 하나다.
중주성에서 천남성으로 돌아와서 영광스러운 흑랑상회 분점의 회장이 되었다.
‘그런데 성에 막 들어서자마자 따귀를 얻어맞다니! 양씨 가문의 체면이 땅에 떨어졌군!’
양한이 부어오른 얼굴을 감싸 쥐었다.
두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사람들 앞에서 얻어맞았다는 것은 오만방자한 그에게 크나큰 굴욕이었다.
“후회하게 될 거야!”
짝!
양한이 따귀 한 대를 더 얻어맞고 사람들 틈으로 나가떨어졌다.
“너야말로 제멋대로 날뛰고 있는 거 아냐?”
남궁혜가 그를 들어 올린 다음 아리따운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뜨렸다.
“쫄지 말고 덤벼!”
“큰도련님!”
용병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감히 남궁혜에게 맞서려고 하지 않았다.
어쨌건 남궁혜는 성주의 딸이다.
그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천남성에서 남궁혜와 맞설 수 있는 자는 몇 되지 않았다.
설령 맞설 수 있다 해도 진짜로 행동에 옮길 사람이 또 몇이나 되겠는가.
양한의 수치심이 분노로 변했다.
“천제현! 여자에게 복수를 부탁하는 게 무슨 실력이야! 12일 후 천남성축제를 개최하니 사내라면 거기서 나와 붙자!”
남궁혜가 눈썹을 치켜떴다.
“내가 널 박살 낼 거야!”
다혈질인 남궁혜는 이성을 살짝 잃은 상태였다.
천제현이 바로 남궁혜를 말렸다.
“이제 됐어요!”
양한은 막 중주성에서 돌아온 양웅의 장자이다.
따귀 두 대로 창피를 주긴 했으나 이건 수습할 수 있다.
기껏해야 남궁의가 좀 곤란할 뿐이다.
그러나 남궁혜가 화를 참지 못하고 놈을 죽인다면 후환이 엄청날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남궁혜가 어떤 인물인가.
뛰어난 수련자가 부족한 천남성에서 열여덟의 나이에 연체 9성에 오른 천재 중의 천재!
막강한 실력과 든든한 배경으로 그녀는 천남성에서 겁 없이 제멋대로 굴었다.
성주도 그녀를 어쩌지 못했다.
사람들은 마녀 같은 그녀가 천제현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다.
양한을 가늠해 보던 천제현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도전을 받아주지. 십여 일 후에 열린다는 축제에서 붙자고.”
남궁혜가 눈을 똥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