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제13장 단약 조제(2)
천제현이 일부러 겁먹은 척했다.
“그렇게 대단해요?”
공서련이 의리 있게 말했다.
“겁먹은 꼴 좀 봐. 무섭긴 뭐가 무서워? 만약 놈들이 시비를 걸면 내가 지켜줄게. 걱정 마!”
‘어이없는 계집애. 날 지켜준다고?.’
천제현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공서련이 언짢아하며 물었다.
“왜 웃어?”
천제현이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렇게 양씨 가문이 밉다니 일차적으로 가볍게 복수할 생각 있으세요?”
“두말하면 잔소리지!”
“좋아요, 제가 돕죠.”
“어떻게 도울 건데?”
“조급해하지 마세요.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될 겁니다.”
집사 꼬락서니를 보니 그 가문 작은 도련님이라는 놈의 성격도 알만했다.
천제현은 이런 놈들을 보기도 많이 봤고 죽이기도 많이 죽였다. 이런 놈들은 안하무인에 지만 잘난 줄 안다.
또 탐욕스러운 데다 끈질겼다.
‘만약 놈이 정말 온다면 공서련에게 복수할 기회를 줘야지. 양씨 가문의 기세를 제대로 꺾어 버리게 도와주겠어!’
***
약방은 십여 평 남짓이었다.
안에는 단약 화로와 지열진(地,熱眞), 제련도구, 추출도구, 일회용 소모품이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럭저럭 괜찮군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네요. 이제 약을 만들자고요.”
공서련이 물었다.
“물약이야 아님 단약이야?”
물약과 단약은 다르다.
물약의 약효는 대부분 일시적이다.
상처 치료 물약이나 마력 회복 물약, 해독 물약, 일시적으로 일시적으로 힘이나 마력을 높여는 물약 등 다양하다.
물약은 효과가 일시적인 대신 한 번에 여러 개를 사용해도 부작용이 없는 소모품이다.
그러나 단약의 약효는 대부분 영구적이다.
한 번 먹으면 영구적으로 마력을 올려주거나, 체질을 개선시켜 주거나, 수명을 늘려준다.
대신 단약을 중복 사용하면 효과가 떨어진다.
“단약이요!”
천제현이 잠시 멈췄다 말을 다시 이었다.
“제가 마력진을 준비할 테니 아가씨는 약을 조제해요!”
공서련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제정신이야? 이 약재는 비싼 거라고. 그리고 난 약 만드는 법 몰라!”
천제현이 설명했다.
“단약 조제에는 요점은 네 가지예요. 첫째는 제약진이고 둘째는 약재, 셋째는 도구, 넷째는 기술이죠. 그중 제약진이 가장 중요해요. 최고의 제약진만 있으면 많은 일을 줄일 수 있어요. 심지어 기술의 차이도 보완할 수 있지요. 제겐 연체 1성의 마력도 없으니 직접 약을 만들기에는 마력이 부족해요. 그러니 아가씨가 할 수밖에 없죠.”
공서련의 머리가 핑 돌았다.
“기초적인 기술도 없단 말이야. 마력 수송 주파수니 불의 세기니 단약 응집 기술이니…… 너무 복잡해!”
“걱정 마세요. 제게 초월제약진이라는 것이 있어요. 배합 비율이 정확하면 약재를 넣기만 해도 단약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공서련은 안개에 속에 있는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초월제약진……? 그건 또 뭔데? 내가 아는 게 없다고 속이는 거야?”
같은 약재와 배합이지만 다른 제약진으로 조제하면 완전히 다른 약이 나온다.
대륙의 무수히 많은 진귀한 단약 배합은 모두 공개되었다.
배합만 알아서는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관건은 제약진에 있다.
약을 조제하는 마력진을 손에 넣어야만 제대로 된 약을 조제해낼 수 있다.
현대 약학 분야에서는 제약진은 각기 그 특성이 다르다.
다시 말해 어떤 종류의 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약에 맞는 제약진이 필요하다.
하나의 제약진으로 두 종류의 약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건 거의 법칙으로 굳어졌다.
‘이 법칙을 정말 깰 수 있을까?’
기대감이 생긴 공서련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천제현이 진법 그리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있는 공서련은 천제현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시간이 넘어가는데도 완성을 짓지 못했다.
앉아 있던 공서련은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
두 눈꺼풀은 쇳덩이를 매단 듯 점점 무거워지고 의식은 점점 흐릿해졌다.
그러다 공서련은 잠이 들고 말았다.
입에서 맑은 침이 흘리고 눈처럼 흰 뺨이 분홍빛으로 물든 모습이 천진난만하고 귀여웠다.
10여 분 후 천제현이 선잠이 든 공서련을 흔들어 깨웠다.
그녀는 입가의 침을 닦으며 얼굴을 붉혔다.
“깜빡 졸았네.”
천제현이 제약진 도안을 보여주었다.
“보세요.”
공서련이 여태까지 살면서 본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도안이었다.
도안에는 수만 개의 부적 주문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각종 진법 형태와 도안이 쌓여 마치 드넓은 은하수 같이 무궁무진했다.
‘이건 무슨 마력진일까?’
지렁이 같은 부적 주문은 확대경으로 본다 해도 잘 안 보일 것 같았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그려냈는지 대단했다.
마력진의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보기만 해도 오싹했다.
그러니 이걸 모두 기억했다가 선 하나 틀리지 않고 그려내는 것이 매우 대단한 것이었다.
마력진은 정밀할수록 틀리기 쉽다.
부호 하나만 빠뜨리거나 아주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효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공서련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 진법을 발명한 사람은 사람이 아닐 거야. 그리고 이걸 통째로 외워서 그려낸 너도 요괴야!”
한 가지는 맞췄다.
이 진법은 사람이 발명한 것이 아니었다.
천제현이 살았던 시대에는 문명이 극도로 번성하고 발달하여 기적 같은 발명이 무수히 이루어졌다.
가장 위대한 발명은 바로 마력 행렬로 만든 슈퍼 컴퓨터였다!
슈퍼 컴퓨터의 연산 속도는 인간의 뇌보다 100억 배 빠르다.
이 컴퓨터의 출현으로 문명의 발전에 강력한 엔진이 생긴 셈이었다!
당시 대륙의 제약사들은 수십 년 동안 대량으로 수집하고 개선한 제약학과 진법학 데이터를 전부 슈퍼 마력 컴퓨터에 입력했다.
그리고 이 컴퓨터의 연산 능력으로 수 년 간 계산을 돌려 36가지 초월제약진을 만들어낸 것이다.
초월제약진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대륙을 뒤흔드는 대변혁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기존 제약진의 80% 이상이 구시대 유물이 되어 버렸다.
각 지역의 세력들이 보물처럼 아끼며 숨겨왔던 제약진이 모조리 철 지난 쓰레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슈퍼마력진 컴퓨터는 인간의 뇌보다 100억 배 빠른 가공할 만한 계산과 추론 능력에다 수만 년 문명이 발전되면서 쌓인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런 초월마력진을 만들어냈다.
이런 초월 마력진은 이 시대 사람들에게 마치 신의 지혜처럼 보일 것이다.
오행팔만 제약진!
대륙을 뒤흔든 36가지 초월마력진 중 하나다.
이름이 좀 이상해 보이지만 사실 이해하기 쉽다.
오행은 쇠, 나무, 물, 불, 흙이고 팔만은 평범한 약재 80,000만 가지를 뜻한다.
오행팔만은 오행 속성에 속하는 평범한 1급 약재 80,000만 종류를 하나의 마력진으로 해결한다는 물건이다.
즉, 활용성이 극히 높은 단약 제약진을 뜻한다.
공서련이 천제현의 설명을 듣고 나서 곧바로 반박했다.
“그렇지만 기본 상식과 제약학 법칙에 완전히 위배된다고!”
“법칙은 진리가 아니라서 깨질 수 있죠.”
천제현은 우선 제약진을 단약 화로에 넣고 나서 도움을 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와서 해보세요. 고기를 굽거나 탕을 끓이는 것보다 크게 어렵지 않아요. 아가씨도 할 수 있어요.”
천제현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눈 딱 감고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우르릉!
마력을 주입하는 순간 단약 화로에서 폭풍 몰아치는 듯한 굉음이 터졌다.
약이 제련되는 반응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슈퍼마력진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면서 단약 화로 표면에 무수한 부적 주문이 빛을 내며 나타나 화로를 고정시켰다.
화로 안에서 아무리 격렬한 반응이 일어나고 폭풍 같은 소리가 몰아쳐도 단약 난로는 시종일관 미동도 하지 않았다.
10여 분 정도 지나자 반응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다 됐어요. 화로를 여세요.”
“그럴 리가! 이렇게 빨리 끝났다고? 난 아직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합이 정확하기만 하면 안정적이며 고효율에 실패확률이 거의 없다.
초월마력진은 이렇게 신기하다!
이 마력진은 수만 년 쌓인 지혜와 슈퍼컴퓨터를 엔진으로 삼아 마침내 탄생한 위대한 지식이다.
물론 오행팔만 제약진은 오행 속성에 속하는 평범한 약재에만 사용할 수 있다.
특이성이 있거나 희소한 일부 약재는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
천제현이 옅은 금빛의 단약 한 알을 골라냈다.
“보세요, 이건 연기단이라고 해요. 연체술사에게 가장 좋은 약 중 하나지요. 연체 경지에 오른 사람의 마력을 대폭 향상시켜 줍니다.”
공서련이 급히 물었다.
“약효가 얼마나 강한데?”
“이렇게 말씀 드릴게요. 연기단 한 알만 있으면 자질이 아무리 떨어져도 연체경 1~2성이 될 수 있어요. 이미 연체 마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력의 세기를 대폭 향상시킬 수 있죠.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단약은 부작용이 전혀 없다는 거예요.”
대륙에 마력을 높여주는 단약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부작용이 있어서 해를 입을 수 있다.
정말 부작용이 없는 우수한 단약은 조제 비용이 몹시 비쌀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구할 수 없었다.
조제법 역시 소수의 세력이 독점하여 알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이런 진귀한 단약을 조제할 수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공서련은 갑자기 힘이 넘쳐 곧장 단약 한 알을 더 조제했다.
“우리 한 알씩 먹자!”
둘은 동시에 약을 집어삼킨 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배 속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나더니 순도 높은 원기가 먼저 사지와 뼈에 주입되었다가 다시 크고 작은 경맥에 침투했다.
연체경은 수련자의 첫 번째 경지로, 모든 경맥마다 마력이 흐르면 정식으로 이 경지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연체경에 들어서고부터 마력이 강해질 때마다 체력과 힘, 속도가 전면적으로 향상되어 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경맥이 뚫렸을 때, 환골탈태에 근사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천제현은 이 경지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천제현은 한 차례 호흡을 길게 내뿜었다.
천제현은 순조롭게 연체 1성이 되었다.
‘아직이야.’
천제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단약의 힘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는 매우 능숙하게 단약의 힘을 끌어내어 계속 경맥에 보양하고 마력을 계속 키워 경지를 빠르게 향상시키고 있었다.
몸을 순환하는 단약의 기운을 모두 흡수한 것은 경지가 연체 1성에서 연체 2성으로 높아졌다가 연체 3성에 이르렀을 때였다.
‘고작 두 시간밖에 안 걸리다니!’
연체 1성 마력조차 없던 사람이 연체 3성의 경지로 도약했다.
몸 전체의 강도가 세 배 정도 올라갔으니 효과가 만족스러웠다.
천제현이 눈을 떴을 때 공서련도 단약 흡수를 모두 마쳤다.
그녀는 땅에서 펄쩍 뛰어올라 그 자리에서 천제현을 껴안았다!
천제현은 순간 부드럽고 탄력 넘치는 봉오리 두 개가 태산이 짓누르듯 기습하는 것을 느꼈다.
천제현은 순간 피가 쏠리는 느낌을 참을 수 없어 몸을 앞쪽으로 비벼댔다.
‘얘는 대체 뭘 먹고 큰 거야? 세상을 다 가진 녀석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