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제11장 겁 없는 천제현
몇 분 후 공서련이 등심구이를 가져왔다.
고기를 잘게 잘라 입에 넣는 순간 남궁혜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와! 정말 맛있다!”
장립청은 고기의 맛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프라이팬 위에 그려진 마력진을 눈여겨보며 호기심에 가득 차 물었다.
“마력진으로 마수 고기를 요리할 생각을 어떻게 했나?”
천제현이 쏘아붙였다.
“고기나 먹지 뭘 꼬치꼬치 물어요?”
공서련이 급히 천제현을 치며 눈치를 주었다.
“너무 무례하잖아. 이분이 누구신지 몰라?”
천제현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사람이 그렇게 비양심적이면 안 되죠. 사리사욕에 눈 먼 것들 따윈 질색이라고요.”
공서련은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장립청은 태산북두 같은 인물이다.
‘대사님을 대놓고 비웃다니! 죽는 게 두렵지도 않나?’
장립청의 실력이면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천제현을 골백번 저승에 보낼 수 있다.
“미안하군. 영업 비밀을 묻다니 이 늙은이가 잘못했네.”
장립청은 화를 내지 않았다.
천제현의 의중을 알아챈 장립청은 설계도가 십중팔구 그의 작품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천제현이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장립청은 천제현에게서 매우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다.
‘새파랗게 어린 나이에 입미의 경지에 오르다니!’
전대미문의 일이다.
‘이자는 견문을 넓히려고 이 좁은 천남성을 찾은 엄청난 가문이나 숨겨진 종파의 후계자일지 모른다. 절대 이자와 척을 져서는 안 된다.’
거대한 세력이 천남성을 초토화시키는 건 손바닥 뒤집기처럼 쉬운 일이다.
천제현이 언짢은 기색으로 말했다.
“알면 됐어요.”
장립청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 늙은이는 방금 자네의 싸움을 지켜봤네.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입미의 이치를 깨우치다니. 보다가 땀이 다 났네. 내 학술대회를 개최할 건데 와서 강연을 좀 해주게. 보수는 두둑이 챙겨주겠네.”
공서련은 일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천제현이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데 노여워하기는커녕 체면 불구하고 강의를 부탁하시다니!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 대사께서 체면도 내려놓고 수염도 안 난 애송이에게 부탁을 하다니!’
그러나 천제현은 즉시 거절했다.
“관심 없어요!”
남궁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봐, 잘 생각해! 이분은 아주 부자라고. 보수는 넉넉히 주실 거야. 그리고 넌 하루아침에 유명해져서 천남성에서 아무도 널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될 거야. 완전 땡 잡은 거라고.”
천제현은 여전히 단호했다.
“시간 없어요!”
장립청이 차분하게 말했다.
“기다리겠네. 자네가 짬이 날 때 다시 이야기하세.”
공서련은 너무 답답해서 천제현을 후려칠 뻔했다.
‘이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꿈꾸는 기회인데!’
장립청 대사가 직접 천거한다는 것은 천제현을 아주 높이 평가한다는 뜻으로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천제현은 하루아침에 유명해져서 무수한 인맥과 자원을 얻게 된다.
장립청의 천거가 지닌 위력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다!
천제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말씀 드려 죄송하지만, 당신은 곧 죽을 목숨입니다.”
‘헉!’
공서련은 놀라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남궁혜도 두 눈을 부릅떴다.
학술대회에 안 가겠다는 것은 그렇다 쳐도 면전에 대고 장립청 대사를 저주하다니!
‘대체 무슨 속셈이야?!’
장립청의 표정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니 알려주게.”
천제현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걷는 모습이나 안색, 호흡을 보니 심장에 큰 문제가 있어요.”
장립청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한바탕 웃었다.
“사람이 늙으면 장기도 노쇠하기 마련이니 당연한 일 아닌가?”
천제현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당신은 마력이 강하니 장기 노화를 40~50년 늦출 수 있잖아요. 그런데도 심장이 조기 노화되었으니 이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겠죠. 내 말이 틀렸나요?”
“대단하군. 어린 친구가 대단한 통찰력이야. 이 늙은이는 고질병을 앓고 있네!”
장립청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난 아직 건강하다네. 어딜 봐서 곧 죽을 목숨이란 말인가? 날 자극하려고 하는 말 같네만.”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죠. 약을 대량 복용해서 버티고 있잖아요. 그러니 곧 죽을 목숨이란 거지요!”
천제현이 계속 정곡을 찔렀다.
“당신의 왼쪽 손목에 있는 검은 기운. 그거 마력으로 억누르고 있는 맹독이잖아요. 한밤중만 되면 독기가 역류해 심장이 제멋대로 날뛰고 천계혈과 천충혈, 천주혈, 자궁혈, 단중혈이 개미에 물어뜯기는 듯한 느낌이죠?”
장립청의 온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천제현이 설명을 이어갔다.
“그건 식심독(蝕心毒)이죠. 한 15년쯤 되었고요.”
남궁혜가 장립청을 쳐다봤다. 그의 안색이 매우 좋지 않았다.
‘스승님 심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았지만, 맹독 때문일 줄이야! 이게 정말 사실인가?’
장립청이 천천히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천제현에게 공손히 허리를 굽히더니 높임말을 쓰기 시작했다.
“선생은 진정한 기인이시오. 방금 하신 말씀이 모두 맞소. 15년 전 유적을 탐험하다가 부주의로 식심독에 중독됐소. 지금까지 마력을 전부 쏟아부어 독기를 억눌렀지만 이 질긴 독을 없앨 수는 없었소. 명의와 제약사를 수없이 찾아 다녔지만 모두 속수무책이었지. 이제 거의 포기했다오.”
“너무 오래 무리해 가며 독성을 억제한 데다 혈을 뚫어주는 법을 몰라서 독이 골수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이제 두 달밖에 못 삽니다.”
장립청이 호쾌하게 웃었다.
“죽기 전에 선생 같은 불세출의 기인을 만나게 기쁘오.”
남궁혜는 스승님의 심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중독 때문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 했다.
오랫동안 스승님 밑에서 공부하며 스승님이 누군가에게 무공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스승님이 묵묵히 때를 기다리고 계신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실은 맹독을 억제하느라 모든 마력을 소모하여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정신 차리세요.”
천제현이 너무 놀라 넋이 빠진 공서련을 툭 쳤다.
“고기도 다 팔았으니 정리하고 집에 가시죠.”
공서련은 점점 더 천제현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이 녀석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
두 사람이 노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때 남궁혜가 급히 물었다.
“이봐, 한눈에 모든 걸 꿰뚫어봤으니 해독법도 알고 있지?”
천제현이 고개를 돌리며 한마디만 했다.
“알지요.”
남궁혜가 기뻐하며 물었다.
“정말?”
천제현의 말투가 급변했다.
“그런데 내가 왜 저 사람을 도와야 하죠?”
남궁혜는 말문이 막혔다!
‘이분은 장립청 대사라고!’
장립청 대사의 목숨을 구한다면 어마어마한 보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죽게 내버려 둔다면 감당할 수 없는 원한을 사게 될 것이다.
‘얘는 그런 것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나? 완전히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움직이는 것 같아!’
“놔두거라.”
장립청이 손을 저어 남궁혜를 만류했다.
“이 사람은 세상을 놀라게 할 지식을 가지고서도 명예나 이익을 좇지 않았다. 그걸로 공서련의 숙제를 도왔지. 손쉽게 거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는데도 노점을 하며 등심구이를 팔았고. 대현자는 도시에 은거한다던데 딱 이 사람 이야기로구나.”
“잘 생각하세요. 이게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어요! 이 사람을 잡아다가 해독법을 알아내야지요!”
“혜야, 넌 정말 어리구나. 그런 일을 함부로 벌이면 절대 안 된다. 도의를 저 버리는 일이고 거대한 세력의 원한을 살 수도 있단다. 그럼 너희 남궁 가문이라 해도 감당하지 못 할 것이다.”
장립청은 느긋하게 지혜로운 미소를 지었다.
“저자는 총명한 사람이다. 날 구할 마음이 없는데 그런 말을 했겠느냐? 생각해 보거라. 천남성에서의 내 영향력과 능력을 알면서도 저렇게 구는 건 성가신 일을 자초하는 거지.”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첫째, 저자는 날 오해하고 있다. 공서련을 제명시키고 숙제를 가로챈 탐욕스러운 사람이라고 말이야. 그래서 자신의 실력을 보이며 내게 시위한 것이다.”
남궁혜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건 오해죠. 그 숙제는 머저리 같은 것들 때문에 다 타 버렸잖아요!”
장립청이 말을 이어나갔다.
“둘째, 그는 자신만이 날 구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했단다. 그러니 앞으로 그자가 무슨 사고를 치던 난 반드시 그자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해.”
남궁혜가 순간 모든 걸 알아차렸다!
‘이 자식 완전 여우네!’
공서련이 마수 차에 앉아서 물었다.
“천제현, 정말 장 대사님을 구할 수 있어?
“당연하죠!”
“스승님을 구하는 게 어려워?”
“아뇨.”
“그런데 왜 안 구해?”
천제현은 이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당장 죽지는 않아요. 일단 시간이 좀 지난 후에 다시 이야기하죠.”
공서련은 할 말을 잃었다.
천제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천제현은 뭔가를 불현듯 떠올리더니 즉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오늘 얼마나 벌었나요? 얼른 꺼내서 세어보세요. 돈을 나눠야죠.”
공서련이 자루의 금화를 바닥에 쏟아 하나씩 세기 시작했다.
“노점장사 세 시간 만에 금화 140냥이나 벌었어! 약속대로 네게 70냥 줄게. 자, 이건 네 거야!”
공서련이 통 크게 금화를 반으로 나눴다.
그러면서도 흥분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하룻밤 동안 번 돈이 일 년 용돈과 맞먹다니!’
노점 첫날이라 일손과 재료, 경험이 부족한 까닭에 수입에 한계가 있었다.
이름이 나면 수입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럼 규모를 늘리고 분점을 여러 개 내자. 하루에 수백 냥은 족히 벌 수 있겠지! 그렇게 되면 매달 수천 냥을 가뿐히 벌 수 있어! 게다가 경쟁상대가 없으니 다른 도시의 시장도 손쉽게 공략할 수 있어!’
공서련은 기대에 부푼 채 계산을 이어나갔다.
‘남운상회 휘하의 여덟 점포에서 벌어들이는 월 평균 영업이익은 금화 30,000냥이고 순이익은 10,000냥 정도에 불과해. 그러나 등심구이 하나만 잘 운영해도 언니가 고생하며 꾸려 나가는 상회를 추월할 수 있어!’
공서련은 언니가 이 일을 알게 되면 기뻐할지 아니면 실망할지를 생각했다.
“잠깐, 마수차를 세워주세요!”
“왜?”
“돈이 생겼으니 뭘 좀 사려고요.”
공서련이 곧바로 따라붙었다.
“나도 갈래!”
천제현은 어리둥절했다.
“왜 가시려는 거예요?”
공서련이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궁금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