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2화 (2/729)

# 2

제2장 공화련

4만 6천 5백 년 전.

인간은 진법의 비밀을 알아냈다.

진법으로 생산력을 대폭 늘리고 부락 문명에서 제국 문명에 이르는 기초를 쌓았다.

1만 4천 2백 년 전.

인간이 부적 제작 기술을 손에 넣고 사방을 정복하면서 제국의 영토가 급격히 늘어났다.

부적은 수련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모품이 되었다.

부적은 수련자의 실력과 군대의 전투력, 국력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그러니 새로운 부적의 출현은 세상을 뒤흔들 수 있다.

새로운 부적은 무한한 재물과 명예, 명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서련은 지금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소년이 숙제를 제때 끝마칠 수 있느냐에 쏠려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천제현의 진가를 알아차렸다.

초고난도의 심오한 과제나 최고로 간단한 기초 과목이나 천제현에게는 매한가지였다.

천제현은 단숨에 실마리를 찾아냈다.

수천 만 번의 연습을 거쳐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듯 번개 같은 속도로 답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공서련은 천제현의 붓놀림이 화가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모든 과정이 우아하고 대담하며 예술적이었다.

자유롭고 융통성 있으며 정확하고 완벽했다!

공서련은 아름다움과 사상의 향연을 감상하는 것처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숙제 100여 개가 차곡차곡 책상에 쌓였다.

천제현이 일어나서 기지개를 쫙 폈다.

“너무 지루해서 잠이 들 뻔했어.”

이 모든 게 믿기지 않는 공서련이 자신의 희고 여린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야!’

꿈이 아니다.

이 소년이 두 시간도 안 되어 한 달 치 숙제를 다 해결할 줄이야!

“숙제가 너무 쉬워서 의욕이 안 생기네요. 더 도와드릴 거 없어요?”

천제현이 소녀의 두 다리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백옥을 깎아놓은 듯 희고 늘씬하며 매끄러운 게 정말 예뻤다.

“안마와 목욕, 동침 같은 것도 다 해봤어요. 한 번 체험해 보실래요?”

순간 공서련의 얼굴이 붉어졌다.

“됐어!”

“정말 유감이네요. 그럼 전 물러가겠습니다.”

공서련이 급히 물었다.

“어디 가?”

천제현이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아시잖아요. 노예 매매상에게 잡혀 있느라 잠을 며칠 제대로 못 잤어요. 이제 적당한 곳을 찾아 잠 좀 보충해야죠. 왜요, 아가씨 침상을 빌려주시려고요?”

이 자식, 무슨 생각하는 거야!

“치, 네놈이 생각하는 게 다 그렇지!”

공서련이 급히 말을 이었다.

“성에는 나쁜 사람들이 많아. 내가 정식 신분을 만들어줄게. 우리 집에 새로 온 요리사의 제자라고 하자. 집에 빈 처소가 있으니 열쇠를 가지고 그리로 가.”

‘여자애가 세심하네.’

천제현이 열쇠를 가지고 떠나려고 할 때, 후원에서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천제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하네, 누가 오는 것 같아.”

순간 공서련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큰일 났네, 언니야. 숨어!”

“서련아, 자니?”

목소리가 무척 매혹적이었다.

아무리 노련한 선원도 뿌리칠 수 없어서 그물에 갇히게 만들어 버린다는 신비로운 해협에 사는 요정의 목소리 같았다

언니는 한밤중에 잘 오지 않는데, 오늘은 대체 무슨 일일까?

공서련이 급히 외쳤다.

“저기, 나…… 자려고 옷을 벗은 상태야!”

그녀는 천제현을 침상에 넘어뜨리고 목소리를 깔았다.

“별수 없으니 침상에 숨어. 움직이지 마!”

공서련은 천제현의 외투와 신발을 침상 밑에 처박고 머리띠를 풀었다. 까맣게 흩날리는 아름다운 머리칼이 폭포처럼 흩어졌다.

그녀는 재빨리 신발을 벗고 침상에 올라 큰 담요로 천제현을 덮었다.

그리고 다시 몸을 돌리고 휘장을 풀어서 침상을 가렸다.

심신을 편안하게 만드는 은은한 향기가 천제현의 코를 간지럽혔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소녀가 가로로 눕자 가녀린 다리가 천제현의 눈에 들어왔다. 공서련의 피부는 모공이 없는 것처럼 매끄러웠다.

‘이런 장면은 정말 너무 자극적이야!’

천제현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흠흠……. 지금 상황엔 안 되지 안 돼…….’

천제현은 진정하기 위해 애써 숨을 삼켰다.

이때 언니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 순간,

천제현이 몸을 움직여 공서련의 등에 찰싹 몸이 닿았다.

공서련의 자그마한 얼굴이 온통 빨개졌다. 그녀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천제현이 팔을 움직여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소리가 나는 것을 막았다.

“어딜 만……! 읍읍!”

“쉬잇. 들켜요.”

공서련이 몇 번 버둥댔다. 몸이 솜처럼 부드러웠다.

“읍읍!”

“소리 내면 안 돼요!”

공서련이 가벼운 신음을 뱉었다.

천제현이 잘생긴 얼굴을 자신의 볼에 바싹 붙이고 별처럼 깊고 신비로운 눈동자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너무 붙어 둘의 코끝이 닿을 정도였다.

천제현으로부터 체취가 어찔하게 느껴졌다.

천제현의 향기에 그녀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어떤 남자와도 가깝게 접촉해 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그렇다 보니 공서련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언니가 밖에 있는 매우 위급한 상황이다.

덜컥!

나무문이 열렸다.

그제야 공서련은 정신을 차린 듯 천제현을 노려보며 입에서 그의 손을 떼어냈다.

그녀는 평소 같은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아, 언니. 왜 들어왔어, 나 아직 옷 안 입었단 말이야!”

천제현은 공서련을 계속 껴안고 있었다.

분홍색의 반투명한 휘장 너머로 최소 172㎝는 되는 듯한 가늘고 긴 그림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매끈한 긴 다리는 보였다.

다른 건 차치하고 매력적인 목소리와 가늘고 긴 다리만으로도 그녀는 여러 남자들을 미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병이 도졌어. 아파서 잠이 안 와서 보러 왔지. 누워 있어, 일어날 필요 없어.”

목소리가 너무 매혹적인 긴 다리의 미녀가 다가와 침상 앞의 의자에 앉았다.

공서련은 심장이 북을 치는 것 같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언니가 휘장을 걷기만 하면 자신을 껴안고 있는 천제현을 발견하게 된다.

그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거야.

공서련이 극도로 긴장했다.

사실 천제현도 마음이 답답했다.

‘내 비록 영웅은 아니었어도 반평생 세상을 비웃으며 멋들어지게 살았는데, 빌어먹을 공간이동 실험에 실패만 안 했어도! 과거로 역행할지 누가 알았냐고!’

소년의 몸이 아니었다면, 마력을 모두 잃지 않았다면, 노예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재수없는 일이 왜 나한테 일어났을까?

‘일단 됐고, 지금은…… 들키지 않게 조용히 있자.’

천제현이 오른손이 공서련의 하얀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공서련은 다리를 꽉 오므렸다.

온몸이 긴장으로 팽팽해져서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천제현을 여러 차례 저주했다.

‘어딜 만지는 거야!’

천제현이 공서련의 입을 막았던 오른손을 담요 안으로 끌어당기며 한 차례 더 공서련의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움찔.

‘이 망할 놈이! 계, 계속!’

공서련은 붉어지는 얼굴을 도저히 감출 수 없었다.

간덩이가 부었군!

간덩이가 부었어!

언니가 이 장면을 본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천제현을 묵사발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공서련이 휘장을 살짝 걷고 발그레한 얼굴을 내밀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 한밤중에 찾아오다니 무슨 고민 있어?”

공화련이 아름답고 단정한 까만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그녀는 동생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약방 일 때문에 마음이 놓이질 않아. 곁에 밑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하소연하러 왔어.”

공화련은 남운상회의 실질적인 관리자이다.

남운상회는 부적 사업을 주로 한다.

그래서 공화련은 동생을 장립청 대사의 기명 제자로 보내려고 많은 돈을 썼다.

동생이 대사의 후계자가 가업을 일으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남운상회는 공화련의 부모가 설립했다.

잘나갈 때는 천남성 부적 시장을 독점하기도 했다.

그러나 6년 전 큰 사고로 세가 급속히 기울었고 현재는 천남성의 이류상회 수준이다.

남운상회의 부적사업이 많이 주춤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기반이 흔들린 것은 아니었다.

공화련은 가업을 다시 일으키고자 가산의 절반을 털어 설비와 자재, 약 제조법을 구매했다.

또 제약사를 다시 초빙하여 성안의 금싸라기 땅에 약방을 열었다.

공서련이 조금 풀린 눈으로 숨을 돌리며 건성으로 대꾸했다.

“약방을 연 지 며칠 되지 않았잖아. 장사 잘되는 거 아니었어? 이대로 가면 가게를 넓히고 분점도 열 수 있잖아. 걱정할 게 뭐 있어?”

공화련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순조로우니 더 걱정돼. 6년 전 일 아직 기억해?”

이 말에 공서련은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차갑게 굳었다.

마음속에서 꼼지락대는 엉큼한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공서련은 이를 악물고 흐느꼈다.

“그때 난 고작 열 살이었어. 어머니 아버지께서 그 해에 돌아가셨잖아!”

공화련의 아리따운 얼굴이 서늘해졌다.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난 계속 의심하고 있었어. 어머니 아버지가 마수가 아닌 어떤 집단에게 살해당한 거라고 말이야! 몇 년 동안 음으로 양으로 알아봤지. 실마리는 잡았는데 아직 증거를 찾지 못했어.”

공서련이 온몸을 떨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살해당한 거라니!”

“너도 이제 열여섯이야. 이제 어엿한 성인이니 말해주마.”

공화련이 주먹을 서서히 움켜쥐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마자 외삼촌이 급히 가산을 나눠갔어. 상회의 부적사들은 단체로 사직하고, 새로 개량한 부적의 정보도 새어나갔지. 거래처도 약속이라도 한 듯 재료 공급을 끊었어. 게다가 점포에서는 사흘이 멀다 하고 소동이 벌어졌단다. 고작 일 년 동안 상회 규모가 80%나 줄었어. 이게 우연처럼 보이니?”

“설마…….”

“놈들은 치밀한 계획을 세웠어. 그러나 한 가지 놓친 게 있지. 그건 바로 나야.”

공서련은 그제야 언니가 요 몇 년간 얼마나 힘들었을지 깨달았다!

“난 정말 밥버러지야. 언니는 고작 열여섯에 가문을 떠맡았는데, 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놀기나 좋아하고 돈이나 펑펑 쓰다니, 난 또…… 윽!”

공서련이 언니에게 천제현을 넘기려고 했다.

다급해진 천제현이 오른손으로 옆구리를 꼬집었다.

공서련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작은 얼굴이 다시 새빨개졌다.

그녀의 몸, 특히 옆구리 부위는 아주 민감했다.

따끔한 느낌이 퍼지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다시 두 다리를 바싹 오므리며 신음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이를 악물었다.

‘이, 이게 진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