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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97화 (197/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97

선위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예정되어 있던 일이기 때문이다.

내게 남은 수명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삼정승은 준비를 거의 해놨고 공식적인 발표만 남아 있었다.

즉위식의 규모는 절대 작다고 하긴 어려웠는데 황태자의 체면을 세워야 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새로운 황제다.

그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설득이 있었고 나도 그 부분은 인정해야 했다.

그래서 과거 고려의 전통은 일부 살려서 백관의 하례를 받고 황포를 입은 뒤에 용상에 앉는 과정은 거쳐야 했다.

그 영향은 백성들에게도 닿았다.

황제의 즉위를 기념하기 위해서 가벼운 죄를 지은 자에게 사면을 내리고 은전을 베푸는 일도 상당히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사면을 받은 이들 중의 상당수가 북부로 도망쳤던 노비들이었고 공식적으로 그들의 신분을 양민으로 인정해준 것이다.

최근의 고려는 노비가 대폭 줄었다.

전체 인구에서 1할을 차지하던 50만이 넘어가는 노비가 긴 시간을 들여 노력한 탓에 10만 명 단위로 대폭 줄어들었다.

전쟁을 통해 잡힌 포로가 관노가 된 것을 고려하면 훨씬 더 많이 줄어든 것이다.

그 외에도 크게 바뀐 것이 있었다.

내가 즉위할 때만 하더라도 원나라의 허락을 받고 그들이 보낸 사신이 참석한 상태에서 즉위하는 불쾌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더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었고 제법 통쾌한 기분이었다.

모처럼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랄까.

그렇게 황제의 자리에 오른 왕현은 내 뒤를 이어 2대 황제이자 32대째 이어지는 고려의 절대적인 권력자가 되었다.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일이 쉽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축하와 함께 애도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

“아아아··· 심심하다.”

문제는 그 이후에 생겼다.

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황위를 내려놓은 뒤부터 딱히 할 것이 없으니 항상 몸이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평생 다니던 직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명예퇴직을 당한 기분 같았다.

뭔가 쓸모가 다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통증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으나 수십 년 동안이나 괴롭히던 두통은 사라졌다.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사라진 덕분이다.

왕현에게 황위를 물려준 이후부터 의도적으로 국정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었다.

상황이 되어 뒤에서 아들이 하는 모든 일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맡긴 것이니 믿어야 했다.

다행히 내 적적함을 달래줄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내 옆에는 가진이 항상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황제의 최측근 자리에서 은퇴한 신소봉도 있었고 아이들의 재롱도 내게는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꺄르르 웃으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 시간이 가는 줄 전혀 모를 정도였다.

“아직 바람이 차니 그만 침전으로 드시는 것이 어떠하시옵니까.”

신소봉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권유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날이 쇠약해지고 있는 터라 감기에 걸려서 좋을 것은 없었다.

아직은 완연한 봄이 아니기에 솜옷을 둘둘 감고 나왔으나 추위를 완벽하게 막아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너무 답답했다.

지난 겨울 동안 나는 침전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계속 누워있어야 했고 이렇게 종종 나와서 바람을 쐬는 일도 하지 못했다.

더구나 어쩌면 마지막 봄이 될 이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기는 싫었다.

“꽃망울이 참 싱그럽구나.”

“내년도 내후년에도 다시 보실 수 있는 그런 것들입니다.”

“허허. 허튼 소리하지 말거라.”

“소신이 어떻게든 이뤄낼 것입니다.”

화타를 데리고 와도 안 될 일이었다.

가을에 반위를 진단받고 겨울을 보내는 사이에 이제 나는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어느덧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혼자 걷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휠체어까지 만들어야 했다.

좌륜(座輪)이라 이름이 붙여진 그 물건은 의자에 바퀴를 부착하는 것이 전부였으나 이렇게 잠시 나오는 데 도움이 되었다.

궐 안에서 사람 여럿을 동원해서 가마를 타고 다니는 것도 조금 애매했다.

“진시황처럼 불로초라도 구해오라고 서복(徐福) 같은 이라도 보낼 생각이더냐.”

“세상 어딘가에는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은 없느니라.”

의학이 엄청나게 발달된 미래에서도 이 정도의 말기의 암은 어쩌지 못한다.

그때도 불가능한 것을 지금 바라는 것은 무지몽매한 일에 불과했다. 차라리 하늘에 비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 여겨졌다.

실제로 가진은 최근 들어 사찰에 자주 나가서 나의 쾌유를 빌고 있었다.

그건 왕사 보우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함께 손을 잡고 불교의 개혁을 이뤄낸 그는 여든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의 건강을 위해 매일 백팔 배를 했다.

그뿐만 아니라 보우가 머물고 있는 사찰에 전국의 승려가 모여서 법회를 열고 그의 백팔 배에 동참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도 조금 의외였다.

승려의 특권과 재산을 빼앗은 나에게 그리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불교계의 폐단을 우려하던 승려들은 나의 그런 조치를 무척 기뻐하며 따랐다.

더구나 수많은 종파가 정리되었다.

현재 고려의 불교계는 오직 선교 양종만 존재하는 상태가 되었고 일부 승려는 그 과정에서 실리를 챙겼다.

어차피 내가 막는다고 고려에서 불교가 사라질 것은 아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불교계는 오히려 더 번창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부조리함이 사라지니 백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고 할까. 더구나 고려의 상업이 발전하며 시주하는 양이 엄청났다.

안 그래도 사찰의 숫자를 제한한 탓에 그 규모가 엄청난 수준까지 확장 중이다.

그중에서도 평양 외성 밖에 있는 보우가 머물고 있는 사찰은 압권이었다.

워낙 불공을 드리러 오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건물을 하나둘 짓다 보니 작은 마을 수준에 도달했다.

“이번에 가진이 또 사찰에 불사(佛事)를 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이더냐?”

“크게 무리한 수준은 아니옵니다.”

“아무리 내수사의 저화라도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모두 상황 폐하의 건강을 염려하여 하시는 일이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이 문제가 아니다.

공민왕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죽고 나서 명복을 빈다는 이유로 엄청난 재물을 써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되었다.

원래의 역사에서 공민왕도 가진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줄을 놓고 온갖 불사를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왕현이 황제 자리에 있지만,

나름 효자 소리를 듣는 녀석이다.

어머니의 부탁을 모르는 척하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이 문제에 대해서 미리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불교를 믿는 것도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황태후께서 과거부터 공방을 운영하며 벌어들인 저화가 적지 않으니 이해해주십시오.”

“그래도 너무 심하지 않느냐.”

“더구나 사치라고는 전혀 모르셨던 분이셨습니다.”

“쯧···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구나.”

가진은 왕후에 있으면서도 신소봉의 말처럼 사치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다.

타국의 사신이 온갖 진귀한 것들을 가져와도 모두 경매에 내놓을 정도였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재물은 소유하지 않았고 오히려 공방의 여인들을 통솔해서 목화로 옷을 지어 저화를 벌었다.

초창기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고려가 여기까지 오면서 수많은 개혁을 했는데 그녀의 도움이 없었으면 적어도 몇 년 이상은 늦춰졌을 것이다.

면포로 만든 옷이 고려에 널리 퍼지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그녀가 세운 공을 빼놓고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덧 고려에 사는 이들치고 겨울에 면포로 지어진 두툼한 옷을 입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아무리 못 사는 이들도 솜옷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

고려에도 이제 유행이란 게 있어서 고관대작이나 부호들이 버리는 옷이 아래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투웅···.

그때 공이 날아와 발치까지 굴러왔다.

근처에서 놀던 아이들이 차던 공이었다.

한 무리의 아이들 중에는 이제 어느덧 다섯 살이 된 태손과 탄야가 보낸 동갑내기 손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 것인지 정말 쉬지 않고 잘 뛰어다녔다.

어린 시절의 왕현을 보는 기분이었다.

아직은 황태자 자리에 오르지는 않았으나 어쩌면 3대 황제가 될 나의 손자 왕경은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쪼르르 달려왔다.

그리고는 공손하게 배꼽 인사를 한 이후에 내게 달려와 안겼다.

“할부지!”

아직 너무 어리기에 폐하니 뭐니 그런 것은 교육시키고 있지 않았다.

내 아들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느 정도 자라날 때까지는 보통의 아이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재미있게 잘 놀고 있느냐?”

“으음··· 저는 공차는 게 제일 잼 써요.

“그래, 어서 가서 더 놀거라.”

“할부지도 함께하면 안 돼요?”

마음이야 굴뚝 같았지만,

그럴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괜히 좌륜을 타는 게 아니라 나는 아쉬움을 감춘 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 말고 나중에 하자꾸나.”

“약속해써요.”

“그래. 인제 그만 가서 놀으렴.”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신소봉은 나를 대신해 공을 굴려줬다.

다시 뛰어가는 아이의 뒤로는 어쩔 줄 몰라하는 궁녀 다수가 서 있었다.

언제나 함께 있던 아이의 어미이자 고려의 황후인 채윤은 아마도 가진과 함께 사찰에 간 것 같았다.

채윤은 원래 종교가 없었는데 가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불교를 믿기 시작했다.

그 아이에게 강요를 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 고려로 와서 자라난 탓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아이에게는 마두라이의 이슬람이 낯선 종교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면 이인임이 다스리던 제후국인 랑카는 유교가 널리 퍼져서 묘한 나라가 되었다.

이색과 함께 떠난 백여 명의 성리학자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어느덧 이인임도 이제 칠순이 넘어서 최근에는 아들인 이정근이 대부분의 정사를 맡고 있다고 했다.

참고로 지금의 고려를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했던 이인복은 등창으로 인해 고생하다가 몇 해 전에 세상을 떴다.

고려의 재건을 위해 힘쓰던 초창기의 권신 중에 아직 살아있는 이를 헤아리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를 정도였다.

‘심지어 이방원이 진방회에 들어왔을 정도이니 시간이 참 빠르구나.’

북부의 수호신이 된 이성계는 역사 그대로 일곱 아이를 보게 되었다.

아직 막내아들인 이방석은 태어나지 않았는데 그중에는 조선의 3대 국왕이 되었을 이방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미 그 아이의 나이가 열다섯이다.

확실히 특별한 녀석이기는 했다.

다른 형들과는 달리 머리가 제법 좋았다.

가능하면 우의정인 정도전으로부터 멀리 두고 싶었는데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계속 튀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 걱정되지는 않았다.

정도전은 어린 시절부터 거의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았고 조선이 건국될 당시처럼 고려가 막장인 상태는 아니다.

오히려 요즘은 국뽕이 너무 심해졌다.

일부 무관 사이에서는 중원 정벌론까지 대두되고 있을 정도였다.

참고로 이방우 등의 다른 형제는 발해와 탐라에서 복무를 하는 중이었는데 제법 무관으로서 성공 가도를 걷고 있었다.

그들은 이성계의 뒤를 이어서 고려의 국방을 지킬 인재로 평가될 정도였다.

“황제 폐하 납시오!”

그때 후원 입구 쪽에서 왕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에 나타난 왕현의 뒤로는 삼정승이 뒤따르고 있었는데 표정을 보니 병문안을 온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발걸음부터 조금 다급해 보였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일단 그들을 내가 머무는 어궁(御宮)인 교태전(交泰殿)으로 맞이했다.

교태전은 원래의 역사에서 경복궁에 만들어지는 침전 중의 하나인데 가져다가 쓴 명칭이었다. 어차피 조선은 건국되지 않을 테니 상관없었다.

“아침나절에 문안 인사를 하고 갔는데 무슨 일이길래 다시 온 것이냐?”

“논의 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러느냐?”

필요하다면 조언은 해주고 있지만,

가능하다면 삼정승과 도당에서 의논해서 황제 스스로 문제를 처리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왕현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잠시 후에 그의 말을 들으니 왜 그렇게 바쁘게 달려온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소식이었다.

“방금 감찰사에서 보내온 소식이 들어왔는데 원나라의 대도가 함락되고 황제가 죽었다고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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