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95
신덕린의 지시로 여민과 석공들이 만들고 있는 것들은 모두 고려 최초의 황릉이자 내가 묻힐 무덤에 부장될 것들이었다.
내 손으로 직접 내 무덤을 만들려니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일종의 임종 체험을 간접적으로 하는 기분이랄까.
빠르면 몇 개월 후에 내가 안장될 공간이라 생각하면 찜찜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설계가 완료된 황릉은 그 규모가 조선과 고려의 왕릉과 비교하면 그리 크게 차이가 나는 수준은 아니었다.
진시황릉이나 인도의 타지마할 같은 규모의 황릉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나 그렇게까지 만들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황남대총보다도 작았다.
천마총과 황남대총은 상당히 커서 경주 사람들은 작은 동산인 줄 알고 그 위에서 썰매를 타고 놀았다고 할 정도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욕심이 나기는 했다.
지금 조금 무리해서 만들어 놓으면 시간이 덧입혀져 언젠가는 한반도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런 꿈은 접어뒀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랜드마크를 통해 후손들이 관광 수입을 얻을 수도 있으나 내 무덤의 용도는 조금 달랐다.
나는 그보다 그 안에 담아 놓을 부장품과 표문에 훨씬 더 많은 신경을 썼기에 봉분은 낮으나 깊숙하게 파낼 예정이었다.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소?”
“말씀하신 대로 고려에서 이름난 석공을 섭외하여 작업을 시작하였사옵니다.”
“시간이 많지 않소. 어떻게든 전에 말한 기간 내에 끝내야만 하오.”
내가 신신당부를 하자 신덕린은 굳은 표정으로 알겠다며 대답했다.
곧 죽을 사람처럼 자신의 무덤을 만들고 있는 나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충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육진성의 진맥은 틀리지 않았다.
나날이 증상이 더 심해지고 있었다.
통증은 이삼일마다 한 번씩 반복되엇다.
입맛도 점차 줄어들어 몸무게도 눈에 띄게 감소되었는데 탕약과 보양식을 챙겨 먹어도 차도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죽음은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더는 그걸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는 그걸 인정하고 서둘러 다가올 훗날을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신덕린에게 지시한 것도 그중 하나다.
그는 나의 병환을 자세하게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이였고 황릉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있었다.
“다른 부장품이 많아서 무덤 아래에 넣을 공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으니 최대한 부피를 줄여야만 하오.”
“말씀하신 대로 커다란 석재는 옮기기 어려운 점이 있기에 표문을 새긴 돌을 나열하여 배치할 예정이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글씨를 알아볼 수 있게 작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시오.”
쓸데없는 우려에 불과한 일이었다.
돌에 새기는 글씨는 수백 년이 흘러도 풍화 작용에 의해 일부 글씨는 흐려져도 대부분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더구나 무덤 아래 들어갈 예정이었다.
천년이 지나도 아마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 분명했고 신덕린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심려치 마시옵소서. 천 년이 지나도 그대로 보존될 것이옵니다.”
황릉의 구조는 매우 단순했다.
부장품이 들어가는 하단부와 내가 안치될 상단부로 나뉘고 그사이에 지금 만드는 표석을 덮어서 숨겨 놓을 예정이었다.
표석에 들어가는 글씨도 특별했다.
그곳에는 나의 친필도 들어가나 덕린체로 유명한 신덕린의 글씨도 들어갈 예정이다.
확실히 나보다는 그의 글씨가 훨씬 좋은 편이었는데 서예 하나만 보자면 고려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자가 바로 신덕린이었다.
그가 괜히 밀직사를 맡고 있는 게 아닌 것이 황제의 칙서는 그가 직접 써서 각지로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 외에도 신경 쓸 게 꽤 많았는데 가장 우려되는 것이 바로 도굴꾼이었다.
그들을 막을 준비도 해야 했다.
간덩이가 큰 도굴꾼이 왕릉을 털어가는 일이 없을 거라 볼 수는 없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백제의 왕릉을 털어서 갔고 선릉과 정릉도 임진왜란 당시에 왜적이 파헤친 기록이 있었다.
그들의 집요함은 상상 이상이다.
땅굴을 파서 아래쪽에서 털어갈 정도 인내와 끈기도 대단한 이들이었다.
그러니 왕릉을 통째로 허물지 않고는 절대 들어올 수 없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사용되는 것이 회격이었다.
회격이란 석회 혼합물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지는 특성이 있기에 무덤을 파헤치는 것을 막는 용도로 쓰기에 가장 적절한 소재이기는 했다.
회격에는 석회와 황토 그리고 고운 모래가 들어가고 느릅나무 껍질을 삶아 끈적이는 물을 써서 접착력을 높인다.
“자세한 세부 사항은 황릉의 설계를 맡고 있는 공부 판서와 이야기를 나눠서 진행할 수 있도록 하시오.”
“그리하겠사옵니다.”
“그리고 똑같은 내용으로 현충원 등에 세우는 것도 잊지 말고 잘 챙겨주어야 하오.”
표석은 황릉에만 들어가진 않았다.
당장은 급하기에 진행하기는 어려우나 황릉이 다 만들어지면 현충원 한쪽에 같은 내용을 새긴 표석을 세울 예정이다.
분산하여 배치해야 하나라도 남겨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얼추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끝나자 신덕린은 상자를 열어 액자를 꺼냈다.
요즘 고려에서는 그림에 나무로 만든 틀을 끼워서 거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미술관에서 보고 배운 것이었다.
그곳에 끼워져 있는 그림은 나와 가진이 나란히 서 있는 초상화였다.
“허허! 실물보다 너무 잘생기게 그려준 것이 아니오? 남들이 보면 실물보다 너무 젊어 보인다고 흉을 볼까 두렵소.”
“소신은 있는 그대로 그린 것이옵니다.”
“어쨌든 고생하셨소.”
초상화의 얼굴은 조금 미화된 탓에 훈남 느낌이 났다. 병환에 시달리며 급격하게 노화가 온 지금의 얼굴은 없었다.
이번에 신덕린이 직접 그린 초상화는 내가 특별하게 부탁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그려준 가진의 초상화는 무척 많았으나 생각해 보니 나와 가진을 함께 그린 그림은 한 장도 없었다.
처음에는 가족사진처럼 모든 아이들까지 함께 그리려고 했으나 한 폭에 모두 담지 못할 것 같아서 참아야 했다.
그때 신소봉이 밖에서 헛기침을 했다.
인제 그만 쉬어야 한다는 압박이었다.
내가 아프다는 확진을 받은 이후부터 그는 어떤 무엇보다 내 병간호에 힘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병간호가 쉬운 일은 아니다.
구토와 혈변은 이제 일상에 가까웠다.
모든 뒤처리를 적지 않은 나이의 신소봉이 마다하지 않고 있는 탓에 나보다 그가 먼저 죽는 게 아닐까 걱정됐다.
“소신은 이만 가보겠사옵니다.”
내가 가보라며 손짓하자,
신덕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침전을 나서자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진이 수라상을 든 궁녀와 함께 왔다.
수라상은 예전에 비해서 꽤 조촐해졌는데 대부분 채소 위주였고 오늘은 호박죽을 가져온 탓에 달곰한 냄새가 가득했다.
하지만 입맛이 돌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 냄새가 견디기 어려웠다.
두어 숫가락만 떠도 넘길 수 없을 거란 예상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가진이 있으니 억지로라도 먹어야만 했다.
가진에게 한 약속이 있기 때문이었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가진의 곁에 머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했다.
그러니 먹을 것부터 시작해서 탕약까지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양이 너무 많은 것 아니오?”
“적어도 이 정도는 잡수셔야죠. 예전에도 이 정도는 쉽게 드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 않소.”
“모든 병마는 기력이 받쳐줘야 떨쳐낼 수 있으니 최대한 드셔보시어요.”
가진의 고집은 상당했다.
오죽하면 밥상에 풀밖에 없었다.
최대한 소화에 좋다는 음식만 골라 놓으니 나온 결과물이었다. 평소 육식을 좋아하던 나로서는 무척 고된 일이었다.
심지어 고추장 같은 것조차 절대 수라상 위에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이러다가 말라서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는 되는 것이 머리로는 고기를 원하고 있으나 막상 내와도 젓가락이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몸에서 거부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몸은 쇠약해져가고 있었다.
살집이 아예 없지는 않았던 몸이었는데 몸이 말라가고 있는 게 보일 지경이었다.
몸무게를 재볼 수 있다면 대충 10kg 이상은 빠졌을 거라 예상될 정도였다.
“오후에는 도당에 나가실 거라 들었는데 그냥 쉬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내가 힘겹게 식사를 마치자 가진은 오후의 일정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최대한 일정을 줄이고 있으나 아직 내가 아프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기에 계속해서 미룰 수 없었다.
물론,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아무리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더라도 볼이 홀쭉해질 정도로 살이 빠진 상태다.
겉모습만 보더라도 심상치 않음을 느낄 정도이기에 감출 수 있는 수 없었다.
“이미 이틀이나 아무런 이유 없이 빠진 터라 오늘은 나가봐야 하오.”
“그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히 쉬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황태자를 못 믿는 게 아니라 아직 알려줄 게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오.”
“선황이 되셔서 황태자의 뒤에서 봐주셔도 될 일입니다.”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내려놓기는 어려웠다.
황태자를 못 믿는 게 아니라 그보다 먼저 내가 정리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었다.
도저히 옥좌에 앉아있기 힘들 지경이 되면 오히려 내가 먼저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고 선황 자리로 옮길 생각이었다.
그래도 황태자는 꽤 부지런했다.
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예전보다 더 열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얼마 후면 자신이 고려의 황제가 된다는 기대감이 아니라 부담감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초반에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 내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며 국정을 살피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수라상은 치워졌는데 잠시 후에 궁녀가 나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그곳에는 비단 위에 가지런히 놓인 삼이 있었는데 인삼은 아닌 것 같고 한눈에 봐도 꽤 오래된 산삼 같아 보였다.
하지만 노두는 제거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 산삼을 올린 어의들의 말에 의하면 익히지 않은 상태의 노두는 음식을 토하게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란다.
갑자기 이런 산삼이 어디서 난 건지 궁금했기에 나는 가진에게 물어봐야 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이오?”
“적어도 이백 년은 넘은 산삼이랍니다.”
“이 귀한 걸 어디서 구했단 말이오?”
“성주 상단을 이끌고 있는 이인민 상단주가 보낸 것입니다.”
“이인민 상단주가 이것을?”
현재 그는 관직을 내려놓았다.
처음부터 이쪽에 뜻이 있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계정골의 장인들과 생활을 하면서 관직보다는 다른 쪽에 관심이 많이 있었던 그는 스스로 상단을 만들었다.
그게 최근 들어 엄청나게 세를 불리고 있는 상주 상단이었다.
아직은 심부와 지난해 사망한 동오의 상단만큼은 아니지만, 국내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상단 중에는 꽤 큰 규모였다.
하지만 기존의 상단과는 조금 달랐다.
다른 상단은 유통을 중심으로 규모를 키운 반면에 이인민의 상단은 기업형 공방이란 개념을 만들어냈다.
아니 정확하게는 물류를 움직이는 상단이라기보다는 제조업에 가까웠다.
어린 시절부터 계정골에서 쌓은 장인들과의 인연과 경마장을 운영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상단다웠다.
생산하는 물품의 종류도 무척 다양한 편이었다.
그의 아래 소속된 공방만 수십 곳이 넘었고 거래를 트고 있는 공방까지 합치면 셀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다른 상단보다 제법 좋은 값을 치러주는 덕분인데 그렇게 만든 것은 모두 심부와 동오의 상단을 통해 해외로 나갔다.
하지만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차라리 나보다는 가진에게 주고 싶었다.
이백 년이나 된 산삼이 너무나 아깝기 때문이었다. 이걸 먹는다고 과연 며칠이나 더 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진이 그걸 받아서 먹을 사람도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씹어 먹어야 했다.
지금은 약간의 시간이라도 더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난 30년 동안 여러 이유로 미뤄오던 일을 해야만 했다.
업적을 쌓으려는 오기는 아니었다.
이미 지금까지 쌓아 놓은 업적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나였다. 이제는 조금 디테일한 것들을 챙길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든 조금 더 버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