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93
통증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몇 분 정도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졌다. 여전히 복통이 아련하게 남아 있으나 그다지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짧고 강렬했던 고통이 지나가자 나는 주변에 몰려든 이들을 물렸다.
“이제 괜찮으니 다들 그만 가보시오.”
그럴 만도 한 것이 순식간에 달려온 이들의 숫자만 십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대부분은 태의감 소속의 어의들이었다.
그들이 119 수준에 버금갈 정도로 빨리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후원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이 태의감이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급박했던 것 같긴 했다.
다들 얼굴과 목덜미에 땀이 가득했다.
숨도 안 쉬고 달려온 탓에 저런 상태에서 진맥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이도 아니고 황제의 건강에 적색 신호가 켜졌으니 이해할 만했다.
“아니되옵니다. 일단 침전으로 옮기셔서 제대로 진맥을 받아보셔야 하옵니다.”
태의감(太醫監)의 수장인 육진성.
그는 고려의 의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를 했던 설주가 은퇴한 이후에 태의감을 맡아 황실의 건강을 책임지는 자였다.
당연히 누구보다 이번 일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육 판서가 얼마 전에 직접 진맥한 뒤에 괜찮다고 하지 않았소. 그러니 그렇게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소.”
“송구하옵니다.”
“아니, 질책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오.”
“사람의 몸이라는 게 어제와 오늘이 다르기도 하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신소봉이 답답했는지 예의가 아님을 알면서도 끼어들었다.
입고 있는 관복 곳곳이 젖어 있는 것이 상당히 열심히 뛴 것 같았는데 동치미가 있어야 할 사발은 비어서 물기만 남았다.
그건 정몽주와 정도전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넘길 일이 아니옵니다.”
“맞사옵니다. 태의감 판서의 말에 따르시옵소서.”
두 사람의 우려는 상당했다.
지금 이 상황은 꽤 심각한 일이었다.
고려에서 내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 이상으로 커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고려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 연주와 마두라이를 비롯해 해왕이 이끄는 세력과의 관계도 미묘해진다.
국정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나는 무조건 오래 살아서 현 체제를 유지해야 했다.
황태자는 아직 부족함이 많았다.
왕현의 나이보다 더 어린 시절에 나도 즉위하였으나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 당시의 나는 즉위하기 전에 수십 년 동안 개판을 친 역대급 선왕들이 있었다.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았던 이점도 그때는 있었다.
하지만 황태자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재의 나와 비교당하니 어쩔 수 없었다.
결국에는 성화를 이겨낼 수 없었다.
단호하게 거절할 수도 있었으나 고통이 심상치 않게 느껴진 것도 한몫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아픔이 생길 리가 없었다. 통증의 위치를 보면 맹장염이나 심장 문제는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졌다.
추측건대 아마 급성 위염 아닐까.
평소부터 위장염은 나를 오랜 기간 동안 무척 괴롭히던 고질병 중의 하나였다.
가진은 평소에 내가 매운 음식을 먹어서 그런 거라 여겼으나 맵찔이 수준이라 그것 때문이라고 보기는 조금 어려웠다.
당연히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다.
왕이란 자리가 생각보다 무척 어렵다.
하나의 가정에서도 수많은 문제가 생기는 데 나라 단위로 보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무수하게 많은 일들이 매일 터졌다.
더구나 수천만 명에 달하는 목숨이 내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
“진맥을 보겠사옵니다.”
정도전 등을 모두 물린 뒤에 침전에 들어서자 육진성은 곧장 손목부터 잡았다.
차분하게 진맥을 하는 그의 표정은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상당히 심각한 표정을 짓자 나는 그에게 어떤지 물었다.
“뭔가 안 좋은 것이오?”
“얼마 전부터 체기가 있고 윗배가 더부룩하셨다고 들었사옵니다.”
“그렇소.”
“식후에 오목가슴 부위가 더부룩하고 불편하시다면··· 반위(反胃)일 가능성도 있사옵니다.”
반위(反胃).
그게 뭔지 나도 알고 있다.
한의학 공부를 한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에서 나온 병명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허준에서 그의 스승이 반위로 죽은 거로 기억하고 있다.
문제는 이게 위암일 가능성도 있다.
반위의 증상은 대부분 위암 말기 환자가 보이는 증세와 엇비슷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혹시나 싶어서 재차 물어야 했다.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심각한 문제였다.
“확실한 것이오?”
“아직 명확하진 않사옵니다. 최근에 다른 증상은 없으셨습니까?”
“여름부터 입맛이 없어서 식사량도 많이 줄었고 살도 많이 빠지신 편입니다. 어제는 헛구역질 증상도 있으셨지요.”
그에 대한 대답은 신소봉이 했다.
나보다 나에 대해서 더 잘 아는 이답게 내가 인지하지 못한 것까지 알고 있었다.
육진성은 그 이야기를 듣더니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여러 증상을 보더라도 점점 더 반위라는 증거가 되고 있었다.
“만약에 짐의 증상이 반위가 맞으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그게.”
“어서 말해보시오.”
“이와 같은 증상을 보인 이들은 짧으면 반년이고 길어야 일 년을 못 버티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금 충격적인 말이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느낌이랄까.
최근에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나도 계속 의식하고 있었으나 이렇게 심각한 수준인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마지막으로 육진성에게 진맥을 받은 것이 보름 전이라 더 황당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
태의감에서 내 손목을 잡은 어의가 적지 않았고 하나같이 고려에서 최고의 의술을 가졌다는 이들만 선발해 놓았다.
그들조차 감지하지 못했다면 어느 누가 와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시대에 항암 치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배를 째서 암 덩이를 제거할 수도 없다.
일찍 발견했어도 해결책은 없었다.
결국에는 하늘이 내려준 천수(天壽)대로 살다가 가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였다.
“반년이라···.”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옵니다. 설령 반위라 하더라도 소신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보겠사옵니다.”
육진성은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그는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잠시 그는 기체울결(氣滯鬱結) 등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기가 울체하여 내장이 손상되어 ‘담음’과 탁한 피인 ‘어혈’이 얽힌 탓이니 서둘러 반위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와송과 번행초를 구해오겠사옵니다.”
“짐이 알기로는 법국파채라 불리는 번행초는 탐라 지역에서 늦봄과 여름 사이에 채취가 가능한 것이 아니오?”
“지금 당장 탐라에 사람을 보내서 수소문해보겠사옵니다.”
신소봉은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구해올 기세로 말했다. 눈가가 붉어진 것이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덧 가을이 만연한 시기였다.
겨울이 지나 내년을 기약하자니 최악의 경우에는 그 이전에 내가 죽을 수도 있다.
더구나 그걸 구해도 도움은 될지언정 병을 낫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원래 살던 세상에서도 위암 사망률은 결코 낮은 편은 아니었다.
육진성에게 반위의 사망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니 반위 환자는 열에 예닐곱 이상은 사망했다고 한다.
“그만 나가보시오.”
나는 육진성마저도 내보냈다.
잠시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육진성이 말한 것이 맞는다면 일단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고려를 맡길 후계는 걱정 없었다.
왕현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았고 요즘에는 도당에서 같이 일도 보고 있다.
직접 본 게 있으니 가질 수 있는 확신이었다.
둘째인 왕곤에 비해 머리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마음이 단단한 아이다.
황제의 자리가 주는 무게감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여겨졌다.
하지만 막상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아서 막막할 지경이었다.
인간적으로 반년은 너무 짧았다.
그러나 두려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이미 한 차례 그 끝을 보지 않았는가.
남들에 비해서 복 받은 삶을 살아왔다.
노비도 아니고 한 나라의 왕이 되어 내가 바라던 세상을 만드는 성과도 냈다.
문제는 그걸 먼 미래의 후손까지 어떻게 물려주냐는 것이다.
“가서 밀직제학을 불러 오거라.”
“아니 되옵니다. 지금은 무조건 안정을 취하셔야 하옵니다.”
“어서 가서 불러오라고 하지 않았느냐.”
신소봉과 실랑이를 할 시간이 없었다.
남은 시간을 최대한 쪼개가며 활용해야 할지 모른다는 조바심이 생겼다.
육진성이 내린 진단이 틀려서 백 살까지 살더라도 지금은 그래야만 했다.
잠시 후에 침전에 들어온 밀직제학 신덕린은 반쯤 기대어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이곳에 오며 미리 귀띔 받은 것 같았다.
밀직사는 원래 궁중 숙위부터 여러 굵직한 일을 맡고 있으나 현재는 황명의 출납과 사관 등을 관리하고 있는 곳이다.
당연히 내가 그를 부른 이유는 사관이 관리하는 기록물 때문이었다.
“현재까지 밀직사에서 기록물 보관을 해놓은 곳이 정확하게 몇 곳이오?”
“혹시 그곳을 파훼하여 내용을 보실 생각이시옵니까?”
“그런 것은 아니오.”
조선에서도 배울 것은 있었다.
그건 사관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직필할 수 있게 만든 것도 포함되어 있다.
조선의 왕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고려 실록과 사초는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왕과 권력을 가진 이가 손을 대기 시작하면 그 진정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초는 매년마다 정리하여 전국 각지에 있는 다섯 곳의 기록물 저장소로 보내고 있고 실록은··· 아직이옵니다.”
“그건 짐이 죽은 이후에 쓰는 거니 됐고 매장한 문화재는 얼마나 되는 것이오?”
“현재까지 열 곳에 매장했사옵니다.”
내가 즉위하고 고려가 어느 정도 안정된 후부터 2년마다 새롭게 문화재와 기록물 그리고 무역품 등을 매장하고 있었다.
일종의 타임캡슐이라고 보면 되는데 그 위치를 아는 이는 극히 일부였고 나조차 대략적인 위치만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경주의 남산과 속초의 설악산 깊숙이 있는 계곡 같은 곳이었다.
대부분 쉽게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선정되었는데 전쟁과 실화(失火) 그리고 도굴꾼 손에 닿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너무 깊숙하게 숨겨서 영영 찾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기밀은 잘 유지되고 있는 것이오?”
“이 사실을 아는 이는 삼정승의 자리에 올랐던 이들과 보안을 담당했던 일부 홀치 외에는 없다고 보면 되옵니다.”
“매장 과정에 동원된 인부가 있지 않소.”
“마두라이와 연주로 이주가 확정된 이들만 동원했었기에 현재는 고려에 남아 있지 않으니 심려치 않으셔도 되옵니다.”
영화처럼 죽여서 입을 막는 행동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대신 그들은 마두라이와 연주에서도 계속 감시를 받고 있었다.
더구나 매장된 곳의 인근에는 은퇴한 홀치들이 마을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예전만큼의 무예 실력을 보이지는 못하겠으나 고려에 대한 충정 하나는 누구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이들이다.
더구나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매년 각지의 특산물도 지급되니 은퇴 후에 생활하기도 제법 좋은 여건이었다.
만약에 내가 사학과 출신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할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 내가 온 것이 학부 시절에 느꼈던 갈증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예전부터 종종 들었다.
그만큼 기록은 무척 중요하다.
만약에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사가 없었다면 그 당시의 시대를 엿볼 기회마저 없었을 거란 생각을 자주 하던 나였다.
같은 무게의 금은보화보다 기록이 가진 값어치가 훨씬 대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의 문화와 전통.
놀이와 음악까지 모두 망라된 기록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시기에 살던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유추가 가능했다.
전적으로 먼 훗날 볼 이들이 이해가 가능하도록 최대한 풀어쓴 덕분이다.
하지만 문제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기록물을 보관하는 장소에 따라서 일부는 습기로 인해 망가졌고 그로 인해 장소를 옮기거나 새로 건물을 짓기도 했다.
그러나 진짜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후대에 전해줄 가장 커다란 타임 캡슐은 이제부터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머지않아 조성될지 모를 내 무덤에 넣을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진시황의 병마용만큼은 아니더라도 절대 지워지지 않을 역사를 영원히 기록해 놓을 곳이 필요했다.
“지금부터 짐이 하는 말을 잘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