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92
찌는 듯한 무더운 여름을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올 무렵.
모처럼 며칠 동안의 여유를 가졌다.
고려에도 지난 몇 년 동안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가 찾아왔으나 영토가 다시 한번 급격하게 늘어나며 쉴 틈이 없었다.
이제 내 나이도 쉰이 넘어갔다.
예전처럼 과한 업무량은 감당 불가였다.
그때는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도 버틸 만 했는데 이제는 몸이 안 따랐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가진도 계속 휴식을 권유했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피로 때문인지 입술에 물집이 생기는 일이 허다했다.
결국, 보름 동안은 쉬기로 했는데 모처럼 쉬는 터라 정말 꿀 같았다.
그럴 만도 한 상황이었다.
올해로 즉위 30년째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길게 쉬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황궁 밖으로 멀리 휴양을 다녀올 수는 없다.
내가 움직이면 수많은 이들이 따라서 움직여야 하는 불편함 때문이다.
공식적인 이동이 되면 가볍게 미복 잠행을 나가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래서 내 휴식은 언제나 황궁 뒤편에 마련된 후원에서 이뤄졌는데 이곳은 생각보다 내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다.
평양에 황궁을 지으며 만든 후원은 개경의 만월대에 비해 제법 규모가 컸다.
어디가 더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만월대의 후원은 산자락에 만들어져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고 평양은 평지에 만든 화원이라 정돈된 느낌이다.
허허벌판에 조성한 조경이라 이곳은 작은 풀꽃 하나도 사람의 손을 거쳤고 그런 탓에 유럽의 정원 같았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정신없이 살았던 걸까.’
몇 안 되는 후회 중의 하나다.
휴가는 사치라고 여기며 일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모두 자라나서 장성했다.
황태자도 벌써 이십 대 중반이다.
왕현과 채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어느덧 네 살이 되었고 연년생으로 손자 하나를 더 보았다.
그렇게 나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한 가지 좋은 점은 손자들의 재롱을 보는 재미가 상당히 쏠쏠하다는 것이었다.
과거에 황태자가 태어났을 당시에는 원나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박한 상태라 여유도 없었다.
황궁에 두 아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태손 외에도 여러 아이가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연주의 안렴사인 왕수의 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마두라이의 탄야까지 자신의 아이 중의 일부를 고려로 보내왔을 정도였다.
원래는 아이들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이 세계에 도달했던 당시에 대도에서 똘루게 생활을 1년 정도 했었던 나였다.
심적으로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보낸 것은 그들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나에게 잘 보이려는 것은 아니다.
교육과 신식 문물에 대한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 일종의 유학을 보낸 것이다.
확실히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늙어가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었다.
실제로 가진도 공방에 나가는 것보다 아이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폐하? 주무시는 것입니까?”
그늘막 아래에 놓인 의자에서 잠시 눈을 감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에 신소봉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이제는 백발이 다 된 그에게 그만 쉬라고 제안을 했으나 단칼에 거절하고 여전히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솔직히 마음에 없는 말이었다.
신소봉은 황궁의 환관에 불과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말벗이었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환관이 뒤로는 몹쓸 짓을 하는 일은 흔했다. 그러나 신소봉 만큼은 그런 일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청탁은 절대 받지 않는 거로 유명했다.
그러니 내 곁에서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이었고 그런 노력이 있기에 나는 그를 지금껏 친우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마저 없으면 너무 적적할 것 같았다는 욕심도 한몫했다.
“아니, 잠시 생각 좀 하고 있었다.”
“오전에 가져오라 시키셨던 서책을 모두 가져왔는데 여기 두면 됩니까?”
“그러거라.”
나는 그렇게 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신소봉은 그늘막 옆에 놓인 탁자에 큼직한 보따리를 올려놓았다.
그 안에 든 것은 수십 권에 달하는 책이었는데 표지에는 <나관중의 삼국지>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길고 길었던 이야기도 드디어 이렇게 끝나는구나.”
나관중이 쓴 스물 다섯 권의 소설.
거기에 적힌 내용은 상당히 방대했다.
이 시대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대하드라마인데 내가 살던 시기의 책이면 대충 열 권 정도로 정리될 것 같았다.
글자의 크기와 정렬 방식이 다르니 나올 수 있는 차이였다.
집필 기간도 상당히 길었다.
무려 25년이나 걸린 이야기였다.
그 과정이 손쉬웠던 것도 아니었다.
나관중은 의욕이 가득했으나 그 당시의 기록과 자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고려가 세워진 것도 벌써 450년 전의 일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걸림돌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후손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중이었다.
실제로 소설의 내용을 읽고 달려와서 협박하는 이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오죽하면 문화 상서가 그에게 홀치 몇 명을 붙여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지시를 받아서 쓴 것도 있고 충분히 역사적 내용을 검수 받고 쓴 덕분이다.
어쨌든 그 모든 위협을 당하면서도 나관중은 고려가 통일한다는 내용을 끝으로 긴 집필을 마무리했다.
사명감이라기 보다는 정말 끈질긴 인내를 가진 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확실히 대단한 이입니다.”
신소봉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관중이 쓴 글은 초반부터 고려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돈에 눈이 멀어 날림으로 쓰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반응은 어떠하더냐?”
“인쇄소에서 계속 찍어내는데 시중에 풀리는 숫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종이 생산이 부족한 것이냐?”
현재 고려에 세워진 인쇄소는 꽤 많다.
문화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인쇄소 외에도 사설 인쇄도도 상당히 성행하고 있었다.
요즘은 사대부는 물론이고 일반 양인들도 자신의 지식을 뽐내기 위해서 책을 써서 인쇄까지 하는 일이 잦아진 덕분이다.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한양 인근의 농부는 자신의 농사법을 한글로 풀어쓴 책을 통해 아흔아홉 칸의 기왓집을 올렸을 정도다.
그 외에도 문화부가 주최하여 매년 문학상을 수여 하며 활동을 장려한 덕분에 인기 작가도 여럿 탄생했다.
어쩌면 그중에 셰익스피어 같은 명작을 쓰는 이들도 하나쯤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없지는 않았다. 어쨌든 작가라는 직업이 정식으로 고려에서 탄생했고 그만큼 종이의 사용량은 급증하고 있었다.
“매년 엄청난 수의 닥나무를 심고 있으나 아직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 발생하는 생활 물자의 부족함.
그건 고려의 고질적인 문제가 되었다.
고려의 인구는 지금도 여전히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고 그 후유증이었다.
1373년(계축년)에 2,300만이던 인구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700만 명이 더 늘어서 어느덧 3,000만 명이 되었다.
즉위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 덕분이다.
초기 베이비붐 세대가 어느덧 성인이 되어 아이를 서넛 이상씩 낳고 있다.
식량은 간신히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생산되고 있으나 생필품이 부족해졌다.
인구의 평균 나이가 20대 후반에 불과하기에 숙련된 장인의 수가 부족한 탓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내가 즉위한 이후로 고려는 계속 영토를 확장했고 지금은 그 당시와 비교하면 거의 6배 이상이나 큰 영토를 가지고 있다.
연주와 해왕이 다스리는 자치령까지 합치면 9배 정도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만큼 발전할 가능성이 컸다.
지금은 잠시 도약을 위한 준비랄까.
10년 단위로 진행하던 개혁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태다. 이것만 잘 정리해도 천년의 제국이 되기 위한 기반 마련은 끝난다고 봐도 되었다.
“알겠으니 그만 가서 쉬거라.”
“소신도 곁에 있겠습니다.”
“저기 불청객들이 오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너는 그만 가보거라.”
내 시선을 따라 신소봉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정도전과 정몽주가 나란히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쉰다고 아예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신소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둘을 흘겨보았다.
“그렇게 쉬시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나보다 훨씬 힘들게 일하는 영의정과 좌의정에게 할 이야기는 아니다.”
“하오나 폐하께서는···.”
“그리 걱정되면 가서 동치미 국물이나 한 사발 떠오거라.”
“어디 안 좋으신 것입니까?”
나는 아랫배를 살짝 어루만졌다.
이상하게 얼마 전부터 소화가 잘 안 됐다.
식욕도 점차 떨어지고 있었고 명치 아래가 살짝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소화가 안 되는구나.”
“또 그러신 겁니까? 혹시 모르니 어의를 당장 불러들이겠습니다.”
“저번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탕약도 꾸준히 마시고 있으니 호들갑 떨지 말거라.”
“옥체를 소중히 여기셔야 하옵니다.”
“네 몸이나 잘 챙기거라.”
나는 웃으며 신소봉을 물렸다.
그와 동시에 정몽주와 정도전이 도달했고 나는 그들에게 비어있는 자리를 권했다.
“삼정승이 항상 같이 다니더니 우의정 이원림은 어디 가고 둘만 온 것이오?”
“오늘은 요동의 병사들이 순환 근무를 위해 평양에 들어오는 날이라 그 자리를 지키고 있사옵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소?”
아니,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
내가 공들여서 키웠던 인재가 어느덧 도당의 핵심이자 정점에 올라선 것이다.
둘의 나이가 이미 서른 중반은 넘어선 시점이라 파격적인 인사라 보긴 어렵다.
심지어 황군서의 아들인 황희마저 벌써 열아홉이 되어 관직에 올랐다.
하지만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말은 기존에 나와 손발을 맞추던 이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말이었다.
일부는 이제 은퇴하여 노후를 맞이하고 있으나 상당수는 흐르는 세월을 이겨내지 못했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던 이들.
백문보와 염제신 그리고 유숙은 물론이고 이방실마저도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중에는 오랜 시간 마두라이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정휘 장군도 있었는데 고향 땅을 밟은 지 2년 만에 병사했다.
그러나 빈 자리가 크진 않았다.
내 앞에 있는 두 사람 외에도 새로운 인재가 다시 고려의 도당을 채웠다.
잠시 아무런 말 없이 지켜만 보고 있자 두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고 기다려줬다.
평소에도 내가 종종 이러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왜 온 것이오?”
“기쁜 소식이 있기에 참지 못하고 곧장 올 수밖에 없었사옵니다.”
“기쁜 소식이 도대체 무엇이오?”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저들을 흥분시킨 걸까.
잠시 후에 그들이 하는 말을 들은 나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정녕 고려 내륙의 도로가 모두 연결되었단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작은 도시에 놓이고 있는 도로를 제외하면 각 도를 대표하는 도시는 이제 모두 연결되었사옵니다.”
“하하, 이게 도대체 얼마만의 일인가.”
도저히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개경과 평양을 잇는 도로를 시작으로 북쪽 끝의 발해까지 무려 만 리에 달하는 도로를 설치한 엄청난 일이다.
거기에 지금까지 들어간 재물만 합쳐도 금은보화로 산을 쌓을 정도였다.
적지 않은 시간을 들인 역대급 공사인 탓에 그간 등골이 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었다.
중원처럼 대륙을 가로지르는 운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험한 지형을 가진 고려다.
뭔가 하나를 옮기려고 하더라도 쉽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문제가 이제 확실하게 해결된 것이다.
이미 그 효과는 입증되었다.
북부의 도로만 연결되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한반도에 설치된 도로가 있었다.
그곳을 통해 고려의 물류는 끊임없이 움직였고 생산과 소비가 증가되었다.
그러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고 받았을 때는 적어도 반년 정도는 더 걸릴 거라 하지 않았소?”
“북부의 노선 일부를 틀어서 평원 지대 방향으로 돌린 탓에 공사가 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고 하옵니다.”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북부의 평원 지대는 기초 공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
그러니 공사 기간이 대폭 단축된 것이다.
“최근에 발해 지역에서 노략질을 하고 다니는 여진족이 나타났다고 들었는데 그 경로는 괜찮은 것이오?”
하지만 문제도 분명히 있었다.
아직 북부에서는 일부 여진족의 일탈이 있기에 무리를 지어 다니는 일이 잦았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상단의 물건이었고 그로 인해 사고도 여럿 발생했다.
“최근에는 대형 상단 위주로 무리를 꾸리고 일정 수준이 넘어서면 고려의 병사들도 같이 이동하고 있사옵니다.”
“그게 지속적으로 가능한 일이오?”
“시간이 흘러서 근본적인 해결이 이뤄질 때까지는 어쩔 수 없사옵니다.”
여진을 완전히 흡수할 때까지.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정몽주의 판단이다.
정도전도 그 의견에 동의했는데 여진족이 완전한 고려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도적질을 한 이들은 잡아들이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나 군대를 동원해 핍박하는 일은 최대한 자제해야 했다.
괜히 반감을 일으키면 안 되었다.
아직 그들은 고려의 관습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하루아침에 바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현재 고려는 여진족의 아이들을 상대로 의무 교육을 시행 중이다. 일정 규모의 부족에는 어김없이 학당이 세워졌다.
어릴 때부터 고려의 말과 글을 배우고 더는 여진족이 아닌 고려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각인시켜놔야 했다.
그렇게 서서히 동화시켜가면 언젠가 여진이라는 정체성은 잊게 될 것이다.
수십 년 이상이 걸리더라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 문제는 다음에 우의정이 있을 때 다시 이야기를··· 허억!”
정몽주에게 말을 하던 중.
칼로 배를 쑤시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 고통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미천사에서 화살을 맞았던 때보다 더 아팠는데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그걸 본 정몽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내게로 달려오며 외쳤다.
“뭣들 하고 있는 것이냐, 보고만 있지 말고 당장 가서 어의를 부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