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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90화 (190/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90

양관과 해군이 움직일 무렵.

방국진의 여양국은 비상이 걸렸다.

진우량이 군사를 일으켜 복주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이번에 동원된 병력만 십만 명에서 최대 이십만 명에 달할 정도라 알려졌다.

절대 쉽게 볼 수 없는 숫자였다.

하지만 방국진은 걱정되지 않았다.

아무리 진우량이 날고뛰어도 궁궐을 옮기지 않는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예전처럼 함대를 이끌고 당장 달려가서 그의 가족을 포로로 잡으면 이기는 것은 불가능해도 동귀어진 정도는 가능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분명 진우량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지난 전투에서 뼈저리게 겪었던 문제다.

그런데도 다시 쳐들어온다는 것이 방국진으로서는 조금 이해가 안 되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 확실했다.

한동안 고민을 하던 그는 급하게 모인 장수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가족은 미리 다른 성으로 보낸 뒤에 궁궐을 비워 놓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것도 가능성은 있지.”

“하오나 얼마 전에 대한국의 출병 소식을 가지고 돌아온 간자의 말에 의하면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시 한번 바닷길을 이용해서 대한국이 비워 놓고 온 집을 털어보면 알게 되겠지.”

육상 전력은 확실히 뒤처진다.

그걸 인정하고 있는 방국진이기에 다시 예전처럼 그들의 병사를 뒤로 물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머지않아 항구 쪽에서 전달된 소식을 듣고 단번에 진우량이 뭘 꾸민 것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예전처럼 함대를 이끌고 뒤로 돌아가는 것을 아예 봉쇄하겠다는 의미였다.

“고려의 해군이라··· 허허! 진우량 그 인간이 이런 수를 쓰다니.”

방국진은 허탈하게 웃음을 지었다.

도무지 사면초가에 빠진 현재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은밀하게 숨겨 놓은 해적의 은신처도 박살 난 것 같았다.

그리고 고려의 해군은 복주의 입구인 민강구(闽江口)를 에워싸고 있는 중이다.

도무지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이미 진우량은 무서운 속도로 복주를 향해 달려와서 하루 이틀 내에 성 앞에 도달할 것이라 예상되고 있었다.

중간에 있는 성은 그냥 지나쳐서 돌파한 덕분에 나올 수 있는 속도였다.

목표는 누가 봐도 뻔한 것이었다.

다소 피해를 보더라도 어떻게든 자신을 잡겠다는 심산이 보였다. 그러니 바다로 도망치는 것도 막아 놓은 것이겠지.

그럴 만도 한 것이 자신이 도망쳐서 해적의 무리와 합류하면 그때부터는 진우량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큰일이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오국과 대주국의 손을 잡으시옵소서!”

“그 방법밖에 없사옵니다.”

“차라리 고려와 협상하여 중재를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옵니다.”

방국진은 신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혀를 찼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려는 이가 전혀 없었다.

그건 자신과 함께 바다를 누비던 오래된 부하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눈을 부라리며 겨우 화를 참고 있었다.

“지금 당장 동원 가능한 함선의 수는 얼마나 되는 것이오?”

“고려의 해군이 봉쇄한 지역 내에 있던 배들의 숫자는 모두 합쳐도 삼백 척이 안 되옵니다.”

“나머지는 어디에 있는 것이오?”

“포위망 밖에 있었는데 중소 규모의 항구 대부분이 지속적으로 공격 받고 있어서 상당수를 이미 잃은 상태이옵니다.”

수백 척에 달하는 배를 수용할 수 있는 항구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근 지역에 있는 중소 규모의 여러 항구에 나눠서 주둔시켰는데 그게 이제 와서 발목을 잡고 있었다.

너무나 뼈아픈 일이었다.

처음에 고작 두어 척의 배로 시작해서 지금의 여양국을 만들어낸 방국진이었다.

그 과정에서 흘린 피가 적지 않았다.

머지않아 고려의 해군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쌓아가는 과정인데 하필이면 이 순간에 일이 터진 것이었다.

“빌···어먹을! 도대체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다들 뭣들 하고 있었던 것이냐.”

단숨에 모든 것을 잃게 생겼다.

방국진은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집어 던지며 참아왔던 울분을 토해냈다.

워낙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터라 그중의 몇 개는 신하의 머리통을 깨버렸다.

하지만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이에게는 시선조차 두지 않았다.

쓸모라고는 전혀 없는 이들이었다.

방국진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머리가 좋다고 알려진 이들을 찾아서 금은보화를 주고 여양국으로 데리고 왔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순간에 그 값어치를 못 한 것이다. 적어도 일이 이 지경이 되기 전에 뭔가 대비를 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바다로 나가는 길을 막혀 있었고,

반대편에서는 진우량이 거센 파도처럼 밀고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몸을 피하고 싶어도 위쪽으로는 장사성과 탕화가 버티고 있기에 애매했다.

그들이 쌍수를 들어서 자신을 반겨줄 거라 생각되진 않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함대를 온전히 가져다 바치면 모르겠는데 고려의 포위를 뚫으려면 많은 희생이 뒤따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가 내린 결론은 어떻게든 진우량의 공세를 막는 것이었다.

“당장 모든 병력을 이곳으로 불러들여 수성을 하시오. 배는 다시 만들어도 되나 나라를 다시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오.”

그가 처음에 세력을 일으켰을 때.

당시에는 많은 영웅이 할거해서 스스로 왕과 황제가 될 수 있었던 시기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해졌다.

대주국 등이 원나라의 빈자리를 차지하며 각 지역에 대한 지배력이 강해졌다.

그렇다고 왜국에서 해안 지역을 습격하며 혼란을 야기시키는 일도 사라진 요즘이다.

고려가 강력하게 해상을 통제하고 있는 터라 앞으로도 안정세는 이어질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을 고려하면 다시 예전과 같은 기회는 오지 않을 거라 여겨졌다.

하지만 곧 그는 후회했다.

진우량의 공세는 상상 이상이었다.

과거에 방국진의 묘책에 당했던 그는 자존심에 상처 난 것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공격했다.

진우량 휘하에서 내놓으라 하는 장수는 대부분 이번 출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해적 놈들의 소굴을 모조리 불태우고 한 명도 살려서 내보내지 말아라.”

“지금까지 노략질을 일삼던 저들에게 당한 것을 돌려줄 때가 되었다.”

“이몸이 몸소 방국진의 육신을 도륙 내 물고기의 밥으로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공세는 상당히 거칠었다.

그간 쌓은 방국진의 업보 때문이었다.

여양국은 무수히 많은 해적질을 토대로 쌓은 나라였다. 당연히 그로 인해 가족을 잃은 이가 적지 않게 있었다.

하지만 정작 바다 위에 있는 고려의 해군은 아무런 움직임조차 없었다.

“장군! 지금이라도 전진하여 저들의 후방을 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양관의 부하들은 몸이 달아올랐다.

모처럼 공적을 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최근에 북해도 등을 점령하기도 했고 몇 해 전에는 왜국을 공격하는 대규모 작전도 있었으나 유독 제3함대는 배제되었다.

대부분의 공적은 주덕유와 윤호 등의 다른 장군이 가져갔고 제3함대는 언제나 뒤에서 보조하는 역할만 했었다.

그들의 위치가 요동 반도인 탓에 동원하는 것이 쉽지 않은 탓이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주력으로 활동한 작전은 요동 정벌 당시였는데 그게 벌써 십여 년 이상이나 지난 일이었다.

그때 함대의 막내가 벌써 서른 중반이 넘어갈 정도이니 꽤 오래전의 일이다.

당연히 그만큼 승진의 기회도 다른 함대에 비해서 상당히 적을 수밖에 없다.

양관도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충분히 이해되었으나 공적을 세우기 위해서 움직일 수는 없었다.

“굳이 우리가 피를 흘릴 이유가 없으니 잠자코 기다리거라.”

제3함대에서 양관의 말은 곧 법이었다.

해군 전체를 통틀어봐도 현재 그보다 연륜이 높은 이는 없을 정도였다.

이제 자리에서 물러난 김휘남과 현재의 해군 원수인 주덕유도 한 수 접고 그의 의견을 경청할 정도였다.

그는 이번 원정이 자신의 마지막 출정이 될 것이라고 이미 마음먹고 있었다.

가능하면 마지막을 화려하게 마무리하고 떠나고 싶었으나 육상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고려가 간섭할 이유가 없었다.

육지는 전적으로 대한국의 몫이었다.

고려는 방국진의 함대가 움직이지 못하게 봉쇄하는 것이 유일한 임무였다.

만약에 진우량이 지더라도 상관없다.

현재 무리 지어 집결한 채로 고려의 함대와 대치하고 있는 여양국의 함대만 박살 내더라도 임무는 성공이다.

당연히 동시에 공격해도 되지만,

그보다는 성문을 열고 바다로 도망치려 할 때가 가장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배에 병력을 태우는 일은 시간이 걸리는데 그때 진우량과 양쪽에서 공격하는 것으로 이미 조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뒤.

진우량의 병사는 불과 하루 반나절 만에 성문을 뚫어내는 기염을 토해냈다.

애초에 육지에서 싸우는 것은 여양국의 장기가 아니기에 진우량의 병사들을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이제 슬슬 저들도 움직일 것 같으니 다들 전투를 준비하라 전하거라.”

양관도 그제야 명령을 내렸다.

방국진이 현재 내릴 수 있는 선택은 세 가지가 전부였다. 진우량에게 항복하거나 내륙으로 도망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양관은 그의 선택이 바다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 그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여양국의 성문이 열리고 수많은 병력이 항구가 있는 방향으로 도주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방국진의 함대도 그들을 실으려고 움직였는데 그게 고려로서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결정적인 기회였다.

그때부터는 고려의 차례였다.

바다를 에워싸고 있는 고려의 해군은 수없이 많은 화포를 발사했다.

파도 때문에 간혹 고려의 함선에서 예상보다 높이 날아간 철환이 진우량의 병력 위로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양관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협의를 할 무렵에 이런 일이 있을 거라 경고했으나 진우량은 상관이 없다며 모든 화력을 쏟아부어 달라고 요청했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 덕분에 고려의 해군은 모처럼 측면에 부착된 화포를 쉬지 않고 쏠 수 있었다.

이렇게 단시간에 많은 화포를 쓴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심지어 철환이 떨어진 배들은 앞으로 접근해서 산탄처럼 퍼지는 조란탄을 쏘기도 했다.

최대한 많은 배를 나포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아예 박살 내야만 했다.

그 덕분에 민강구 주변은 수많은 배들이 수장됐고 수심이 비교적 얕은 곳은 돛만이 삐죽 솟아올라 있는 곳도 제법 많았다.

하지만 그런 과정 중에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뚫으려 하는 이들도 많았다.

“도망쳐봐야 소용없다!”

“선수에 있는 화포장 정신 안 차려? 도대체 몇 번이나 기회를 놓치는 거야?”

“썅! 자신 있으면 네가 쏴 봐.”

하지만 성공할 수 없는 작전이었다.

속도에서 고려의 쾌선을 따라잡을 수 있는 배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추격하는 고려의 배를 떨쳐낼 수 없었고 대부분 멀리 가지 못하고 반파되어 수장되길 반복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예외가 있었다.

유독 크고 돛이 많이 달린 배가 있었는데 어찌나 단단한지 화포를 맞아도 다른 배들에 비해 타격이 별로 없어 보였다.

더구나 그 주변에는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배들이 여럿 배치되어 있었는데 심지어 화포를 대신 맞으려고 막아설 정도였다.

“저곳에 방국진이 타고 있을 것이다. 절대 놓치면 안 된다.”

본능적으로 양관은 그곳에 누가 탄 것인지 알아채고 함대의 일부를 움직였다.

그때부터는 해상에서의 추격전이 시작됐는데 생각보다 방국진이 탄 것으로 예상되는 배는 잡히지 않고 있었다.

왜 그가 이 지역에서 바다의 제왕이라 불리는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건 다른 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바람과 파도 등을 최대한 활용해서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애썼다.

더구나 인근 지역의 바다는 그들의 안방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워낙 바닷길에 대해서 잘 아는 이들이다.

심지어 암초가 깔린 지역을 통과하는 위험한 일까지 시도했는데 그 덕분에 고려의 해군에서 좌초하는 배가 속출했다.

하지만 양관과 고려의 해군도 만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속도에서 이점을 가진 터라 미리 앞질러서 길목을 막았다.

사방이 탁 트인 해양에서 길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화망 안에 가둘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것은 고려의 해군에서 자랑하는 기동 작전 중의 하나였고 결국에는 집중포화를 통해서 여러 배들을 침몰시켰다.

그중에는 목표로 했던 배도 있었다.

침몰 되는 순간에 바다에 뛰어내린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최대한 건져내 보니 예상했던 대로 여양국의 왕인 방국진이 있었다.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상처는 꽤 깊었다.

급하게 양관이 군의를 불렀지만,

그로서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 화승총까지 동원해서 집중 사격을 한 탓에 두어 발이 그의 몸을 관통해서 피를 과다하게 흘리고 있었다.

그는 결국 어두운 선창에서 사망했다.

한때 중국의 바다에서 제왕이라 불리던 방국진의 최후치고는 너무 허망했다.

그건 곧 여양국의 멸망이기도 했는데 아시아의 모든 바다가 고려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는 의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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