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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89화 (189/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89

진우량의 대답은 곧장 왔다.

오래 고민하고 그런 것조차 없었다.

사신으로 갔던 한천의 말에 의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확답을 주었다고 한다.

그만큼 내가 한 제안이 진우량의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솔직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긴 했지.”

아마 나라도 받아들였을 것이다.

서신에 적어서 보낸 내용은 간단했다.

대한국과 고려가 손을 잡고 방국진이 다스리는 복주를 치자는 내용이었다.

방국진의 세력은 꽤 거슬리는 존재였기에 진우량은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영토의 크기는 작은 편이지만,

바다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진우량이 복주를 도모한 적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나라의 상성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아니 최악이라고 봐야 했다.

병력의 수는 진우량이 유리했다.

더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었고 30년 가까이 전쟁을 치르며 장수들과 병사 모두 노련한 정예병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두 나라의 상성이 안 좋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곁에서 내 이야기를 듣던 황태자 왕현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 내게 되물었다.

최근 들어 나는 국가 중대사를 처리할 때마다 가능하면 황태자를 불러들였다.

언젠가 내 뒤를 이어서 고려를 이끌 테니 미리 보고 배우라는 의미였다.

더구나 동생의 혼례 문제도 있었다.

황태자는 그 일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안 그래도 자신 때문에 멀리 해남성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자책하던 아이다.

그래서인지 가능한 많은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나를 설득했을 정도였다.

“몇 년 전에 진우량의 대한국과 방국진의 여양국(闾洋國)이 크게 한 번 붙었던 것은 기억하고 있느냐?”

“소자의 기억으로는 모두가 진우량이 이길 거라 여겼는데 방국진의 반격으로 인해 중간에 회군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에 진우량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때 진우량의 기세는 대단했다.

훨씬 많은 병력을 가진 그는 파죽지세로 방국진의 병사를 끊임없이 밀어붙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진우량이 쉽게 방국진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국진도 그냥 당하지는 않았다.

“그게 무엇이옵니까?”

“방국진이 자신이 보유한 모든 함대를 관동성으로 보낸 것이 결정적이었다.”

“소자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과연 그것만으로 가능한 일이옵니까?”

“문제는 관동성에 있는 대한국의 궁궐이 어디 있냐는 것이었지.”

그래서 상성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진우량이 거점을 둔 관동성의 광주는 수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형이다.

고려의 사신단이 움직였던 것처럼 방국진은 주강(珠江)을 거슬러 올라가 대한국의 황궁으로 빠르게 향했다.

수로가 복잡하게 여러 갈래로 나뉘는 광주는 육상 전력이 쉽게 이동하지 못하는 천혜의 요새로 불리는 곳이다.

하지만 수상 전력의 경우는 반대다.

오히려 이동이 수월한 탓에 대한국의 병력은 고립되고 각개 격파를 당했다.

“아하! 소자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로에 대한 방비가 전혀 없었사옵니까?”

“당연히 진우량도 수로를 중심으로 방어하는 책략을 짜놨으나 방국진의 전력이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던 것이지.”

“전쟁이 벌어지면 너무 많은 변수가 있는 것 같사옵니다.”

어린 시절부터 책보다는 칼을 쥐고 살았던 황태자지만, 전쟁으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지는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수년 전에 고려 전체를 돌아보고 왔을 당시에 전쟁 고아와 홀어미를 둔 아이들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온 덕분이다.

“그만큼 국가 간의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항상 신중하게 생각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번에 진우량과 손을 잡고 방국진을 치게 되면 고려의 역할은 역시 바다를 장악하는 것이옵니까?”

“그러하다.”

황태자의 말은 정답이었다.

과거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게 고려가 방국진의 함대를 묶어두고 육상에서 진우량이 복주를 칠 것이다.

어떤 변수가 또 생길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역습을 당해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되돌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번에 다녀온 사신에게 쥐여준 서신에 담긴 내용이 바로 그에 관련된 것이었다.

당연히 진우량은 그 기회를 잡았다.

지금까지 대한국은 크고 작은 전쟁에서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고 있었으나 그 당시의 일은 굴욕에 가까운 것이었다.

“방국진도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저들 모두가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한 나라를 만든 이들이다. 그러니 누구도 쉽게 보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두거라.”

“하오나 대한국은 복주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고려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 작은 것이 아니옵니까?”

방국진의 함대는 작지 않다.

바다를 장악하는 것이 자신의 살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지난 세월 동안 수백 척의 전선을 마련했다.

그들과 붙으려면 고려도 적지 않은 피해를 보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정작 이번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려가 바다 너머에 있는 땅을 가질 수도 없었다.

대신 고려가 가져가는 곳은 고려에서 대만이란 이름이 붙인 제법 커다란 섬과 해남성의 영구적인 이양이 전부였다.

거기에 왕곤이 부마의 자격으로 해왕 자리에 올라 공식적으로 해남성과 대만을 비롯해 인근 해상 지역의 통치자임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덤이었다.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황태자가 우려하는 것은 이해되었다.

고작 두 곳의 섬을 가져오는 것으로 이번 전쟁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고려는 내가 즉위한 이후부터 줄곧 해양 제국이 되기 위한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절정에 도달하기 직전이라 보면 되었다.

고려의 경쟁자는 두 곳이다.

섬나라인 왜국과 방국진의 여양국.

두 곳만 발밑에 둔다면 최소 수십 년 이상은 고려가 동아시아 전체의 바다를 손아귀에 쥐게 되는 것이다.

가장 먼저 손을 보기 시작한 왜국은 지난 이십 년 가까이 꾸준하게 타격을 준 덕분에 쇄국을 선언했다.

문제는 방국진이었다.

그는 생각보다 영리한 인물이었다.

즉위 초기부터 그는 고려에 끊임없이 사신을 보내서 관계 개선에 힘을 썼다.

어지간한 일로는 꼬투리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처신도 잘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고려의 입장에서는 그는 존재 자체가 위협이 될 정도로 세력이 커지고 있었다.

영토는 작으나 인구는 고려보다 조금 적은 수준이라 어느 순간이 되면 오히려 역전이 될 가능성도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이번 전쟁이 끝나면 방국진이 소유한 배는 모두 고려가 습득하는 것으로 조건을 내건 것이기도 하다.”

방국진의 배라고 해봤자 고려의 쾌선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능도 나쁘고 상태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진우량이 가진다면 이번 정벌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진우량이라고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바다가 아닌 북쪽의 내륙 지역으로 향해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든 탕화와 장사성 등과의 싸움에서 우위에 서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거기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흙을 머금고 있는 땅도 중요하나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거라.”

당장은 와닿지 않을 테지만,

훗날에 그 중요성은 입증될 것이다.

바닷속 깊숙한 곳에서 가스와 석유가 나오게 될 줄은 어느 누가 알았겠는가.

이 시대라면 작은 섬 하나 정도는 그냥 내어줘도 된다고 여기겠지만, 훗날 그게 큰 분쟁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었다.

황태자도 어느 정도 이해는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아직 알려준 것은 아니었으나 여러 예를 들어가며 어릴 때부터 이해력을 키워 놓은 덕분이었다.

언젠가 때가 되면 그 모든 것을 알려줘야 할 순간이 오겠지만, 아직은 적절한 시기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과연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그건 마치 아빠는 외계인이라고 설득해야 하는 수준과 거의 맞먹는 일이었다.

그래도 준비는 차근차근하고 있었다.

과거에 미천사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이후부터 나는 이 시대에 떨어져서 적어 놓은 것을 천천히 정리하고 있었다.

왕에게서 왕으로 전해질 비서(祕書).

나는 그 비밀스러운 서책의 이름조차 아직 정하지 않았으나 내용은 착실하게 채워가고 있는 중이었다.

앞으로 개발될 여러 물건에 대한 힌트와 고려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들에 대한 나의 조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후장식 화포와 현대식 총에 대한 것이었다. 과학의 발전이 더 진행되어야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만약 그게 훗날에 노출된다면 동양의 노스트라다무스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평가받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을 정도였다.

그것은 나의 마지막 사명과도 같았다.

죽기 전에 반드시 마쳐야 할 것이라 여기고 있으나 아직 급하지는 않았다.

내 수명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꽤 여유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적어도 손주가 장성하는 것은 보아야지.’

*

대한국과 사신이 오갈 때마다.

협동 공격은 점점 구체적으로 짜졌다.

하지만 서신을 주고받으며 진행할 문제는 아니라 이번 공격의 주력을 맡게 될 제3함대의 양관이 대한국으로 갔다.

그곳에서 대략적인 작전을 구상하고 서로 보완해야 하는 점들을 조율한 이후에 다시 돌아온 것은 가을 무렵이었다.

그때부터는 출정 준비를 시작했다.

고려에서 동원해야 하는 전선의 숫자는 대략 삼백여 척에 달할 정도였다.

적어도 그 정도는 보내야 육백여 척이 넘어가는 방국진을 상대할 수 있었다.

만약에 화포가 이쪽이 훨씬 우세하고 전선의 덩치에서 차이가 나지 않다면 나올 수 없는 수치였다.

일단 급부터 다르다고 보면 된다.

최근에 만들어서 배치되고 있는 전투용 쾌선의 경우에는 최소 두 배 정도의 차이가 날 정도로 덩치가 상당했다.

저들이 초계함이라면 이쪽은 순양함 정도라 보면 되었다.

당연히 그만큼 많은 화포가 실려 있는데 왜선과 전투를 해보니 일대 다수의 전투에서도 쉽게 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삼백 척이란 규모는 고려 해군의 전체 전력에서 거의 3할에서 4할 정도를 차지할 정도다.

당연히 제3함대만으로는 그 숫자가 나오지 않기에 탐라에 주둔 중이던 주덕유의 함대로 절반 가까이 합류했다.

그렇게 모인 해군은 명령 체계를 정리하고 여양국으로 출발한 것이 그 이듬해 3월 무렵의 일이었다.

“이렇게 많은 해군이 모인 것은 처음 아닌가요?”

“에이, 그건 아니지. 몇 해 전에 왜국에 쳐들어갔을 때 동원된 배가 몇 척인데. 보급선까지 합치면 지금보다 많았어.”

“그때는 정말 대단했다면서요?”

“하하! 그날만 생각하면 석 달 그뭄 전에 먹다가 체한 떡이 쑤욱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니까.”

실제로 이번 원정을 떠나는 해군 중에 그 당시에 동원되었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왜국의 해안 도시를 여러 차례 습격했으나 왜국에서 천황이라 부르는 이의 코앞까지 간 적은 없었다.

“하지만 방국진의 함대도 적지 않다고 들었는데 괜찮을까요?”

“우리가 누구냐, 귀신 잡는 해군이야.”

“그렇지! 이번 기회에 누가 위에 있는지 확실히 알려주어야지.”

방심은 하지 않되, 자부심은 갖는다.

그건 고려군에서 의도적으로 병사들의 훈련 중에 주입시키는 정신무장이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었다.

때로는 그 자신감 하나가 열세에 몰리던 전황을 뒤집을 때가 분명히 있었다.

그렇게 커다란 바다를 건너자,

그들은 고려에서 대만이라 이름을 붙인 제법 커다란 섬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고려의 해군이 그곳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항구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방국진의 주요 전력은 둘로 나뉘어 있었는데 대만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해적으로 생계를 연명하는 이들이었다.

당연히 적지 않은 반항이 있었으나 그들은 바다로 나오지도 못하고 항구에서 화포 세례를 받고 수많은 배를 잃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진짜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대만에 있는 해적선들은 조무래기에 불과했고 진짜 주력이라 할 수 있는 함대는 복주에 분포되어 있었다.

양관은 그 기세를 몰아 곧장 함대를 이끌고 복주의 입구라 할 수 있는 민강구(闽江口)로 향하여 빠르게 이동했다.

대만을 공략함과 동시에 이미 방국진도 고려의 움직임을 파악했을 것이 분명했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돛을 펼쳐서 전속력으로 전진하라. 바다의 제왕이 누군지 저들에게 똑똑히 알려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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