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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87화 (187/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87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

초대 쇼군인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손자인 아시카가 요시미츠는 훗날 남북조를 통일시키는 업적을 세우는 인물이다.

왜국의 역사에서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지만, 현재 그는 겨우 십 대 중반의 아이에 불과했다.

요시미츠는 겨우 열 살이란 어린 나이에 쇼군이 된 탓에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관령인 호소카와 요리유키가 도와야 했다.

쇼군의 정치적 스승이기도 한 요리유키는 최근 들어 상당히 많은 고민이 있었다.

긴 시간 칼을 맞대고 싸우고 있는 남조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바다 너머의 고려가 보이는 적대적인 행위 때문이었다.

요즘 들어 생기는 대부분의 문제는 고려가 만들고 있다고 봐도 되었다.

약탈 외에도 고려는 저울질을 했다.

얼마 전까지 고려는 요리유키가 소속된 북조와 깊은 관계를 맺어서 수많은 물자를 사고팔며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제 무로마치 막부가 우세한 위치에 서니 고려는 점차 거리를 뒀다.

고려가 현재 바라는 것은 뻔했다.

앞으로도 계속 내란이 이어지길 바라는 것이었고 그 때문인지 요즘에는 남조와 손을 잡고 무역량을 대폭 늘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자신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화포 같은 물자는 팔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고려의 배들이 북쪽으로 향하는 숫자가 적지 않다고 들었소.”

요리유키는 그게 신경 쓰였다.

평소 냉정함을 잃지 않는 그였지만,

유독 고려의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편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고려 때문에 요즘 왜국은 홍역을 앓고 있는 중이었다.

고려는 직접적으로 군사를 동원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수년 전에 해적으로 위장한 병사들이 쳐들어온 적도 있었다.

그때 나니와(오사카)를 시작으로 헤이안쿄(교토)가 온통 불바다가 되었던 것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고려에서 연주라 불리는 북쪽 지역의 먼 곳까지 배를 보내는 것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요리유키의 왼팔이라 불리는 오우치 요시히로는 별거 아니라며 대답했다.

그는 친고려 성향이 강한 편이었다.

자신에게는 백제 왕실의 피가 섞여 있다고 믿는 탓도 있으나 고려와의 무역은 대부분은 그의 손을 거쳤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곧장 나왔다.

요시히로 반대편에 앉아 있는 이마가와 사다요는 규슈에서 남조와 싸우면서 고려의 해군을 상당히 자주 겪었다.

그런 탓인지 그는 고려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아닙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고려의 해군이 에조치(蝦夷地, 홋카이도)에 배를 대고 축성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확실한 것이오?”

“에조치 근처까지 어선을 이끌고 다녀온 이들이 직접 확인하였습니다.”

사다요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가감 없이 요리유키에게 전달해주었다.

그것은 정말 어렵게 얻은 정보였다.

현재 왜국의 가장 큰 문제는 바다에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매년 반복되는 습격을 통해 수중에 남은 전선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였다.

막부 전체를 통틀어도 백여 척이 넘지 않았는데 그중의 절반 가까이는 상단에서 사용하는 화물선으로 구분될 정도였다.

그나마 전국 곳곳 깊숙한 곳에 숨겨 놓아서 그 정도나마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고려의 해군은 집요하게 중대형 선박을 노렸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상선 일부와 소형 어선 정도가 유일했다.

“에조치마저 고려에게 넘어가면 남쪽과 북쪽에서 동시에 공격당할 수 있습니다.”

사다요는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이미 쓰시마를 고려에게 빼앗기며 규슈 일대는 쑥대밭이 되는 경험을 해보았다.

해적으로 위장한 고려의 해군이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쳐서 싹 쓸어가는 바람에 백성들이 굶어 죽는 일이 허다했다.

“평양에 있는 고려의 황제께 사신을 보내는 것은 어떠십니까?”

“이미 사신을 수차례나 보냈으나 언제나 고려는 시치미를 떼고 있지 않소.”

“절대 에조치를 빼앗기면 안 됩니다.”

“지금은 규슈를 두고 북부 지역에 군사력을 보낼 여력은 없소.”

위치에 따른 영토의 중요성.

그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무로마치 막부에서는 당연히 비옥한 남부와 중부 지역에 모든 역량을 투입한 상태였고 절대 지면 안 되는 싸움이었다.

겨우 잡은 승기를 낚아 채야 할 때에 실질적인 지배조차 하지 않는 에조치에 병력을 보내는 것은 낭비에 가까웠다.

더구나 고려와 전면전을 펼칠 경우.

피해를 보는 쪽은 자신들이 될 것이다.

막부의 병사들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려의 병사들과 전면전을 치르면 오히려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고려는 바다를 차지한 상태였고 절대 불리한 상태에서 싸우지 않았다.

아무리 재빨리 병력을 보내봤자 이미 사라진 뒤였고 함정을 파놔도 어떻게 아는 것인지 쉽게 걸려들지 않았다.

심지어 배에 올라타서 화포를 쏘는데 막부로서는 대응할 방법이 아예 없었다.

“하오나···.”

“애조치를 고려에서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한 것이오?”

“하오나 관령께서도 아시다시피 기세에서 밀리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기세? 지금까지 우리가 고려의 해군을 상대로 그런 것을 보여준 적이 있기나 한 것이오?”

사다요는 관령의 말에 우려를 표했으나 요리유키의 질문에 답을 할 수는 없었다.

반면에 오우치 요시히로는 요리유키의 말에 동의하며 고려와 분쟁을 할 시간에 내전부터 정리하자며 말을 거들었다.

“관령님께서 하시는 말이 옳습니다. 지금은 잠시 맡겨둔다고 생각하고 당장 급한 일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얄미운 그의 모습을 보며 사다요는 눈을 부라렸지만, 그의 말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기에 더는 반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더 기가 막힌 말이 요리유키의 입을 통해 나왔다.

“얼마 전에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는데 쇼군께서는 잠시 바다 멀리 나가는 것은 포기하더라도 전쟁부터 끝내시길 바라고 계시오.”

“설마, 바다를 포기하신다는 말입니까?”

“현실을 직시해야 하오. 지금으로서는 이렇다 할 방법이 전혀 없지 않소.”

지난 20년 가까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으나 고려가 보유한 해군의 상대가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론이었다.

무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북조와 남조를 모두 합쳐도 고려의 해군을 상대로 작디작은 승리조차 거둔 적이 없었다.

매년 패배는 그들의 몫이었다.

더구나 신출귀몰한 이들이다.

몰래 전선의 숫자를 하나둘 늘리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박살 내놨다.

마치 어둠 속에도 눈과 귀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였다. 한 척의 배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매번 그 비싼 배들을 허무하게 물속에 처박고 있다. 인제 그만 하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날 관령인 호소카와 요리유키가 수하인 사다요와 요시히로에게 말했던 것처럼 왜국의 북조는 쇄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훗날, 일본의 수많은 이들이 역사상 가장 바보 같은 짓이라고 여기는 조치였다.

*

북조가 쇄국 정책을 펼치자,

남조의 선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려에서 승인해준 일정량의 상선 외에는 바다 쪽으로 눈조차 돌리지 않게 되었다.

안 그래도 점차 전쟁에서 밀리고 있는 남조인 탓에 그럴 여력조차 없었다.

그 덕분에 고려는 꽤 이익을 보았다.

이제 왜국의 해안가는 고기를 잡는 아주 작은 나룻배 정도만 오갈 뿐이었다.

당연히 고려의 해군이 영토 확장을 위해서 북해도와 부상도로 향하는 것을 막아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곳에 사는 원주민이 고려의 상대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누 족은 여전히 원시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화승총을 들고 완전 무장한 고려군을 상대로 그들은 저항할 생각조차 못 했다.

그렇다고 반항하는 이들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금방 제압이 되었다.

“북해도와 부상도에는 육군 소속의 병사 천여 명씩 배치되었고 해군에서는 제4함대의 일부 전선이 이동하여 북해도 항구에 정박했사옵니다.”

영의정 김첨수를 비롯한 삼정승은 최근에 전령이 가지고 온 내용을 가지고 만춘전에 들어와서 내게 보고를 해주었다.

내용은 간단했고 특별한 것은 없었다.

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두 섬을 차지하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각각의 섬에 축성을 위해 인부를 보내는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소?”

“공부 상서의 말에 의하면 북부에 놓는 도로가 공사 중이기에 많은 인력을 차출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옵니다.”

“두 섬의 개발은 시간을 두고 진행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김첨수와 곽충수를 비롯해 최영까지.

삼정승은 이미 말을 맞춘 것인지 입을 모아서 속도를 조절하자고 제안했다.

이미 그들은 과거에 연주를 개발하며 얼마나 많은 재물이 들어갔는지 직접 보고 겪은 것이 있으니 많이 우려를 했다.

충분히 그렇게 여길 만 했다.

연주가 지금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지만, 당시에는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기분이 들 정도로 골치 아픈 존재였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에 가까운 대공사가 계속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축성부터 시작해서 항구도 필요했고 사람들이 살 집도 수없이 지어야 했다.

솔직히 그 때문에 반대도 많았는데 그나마 이제는 철광석 등의 지하자원을 가져오며 어느 정도 제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흑자는 아니었다.

투자한 재물의 양을 생각하면 적어도 수십 년 이상은 걸릴 거라는 예측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북해도 등을 개발하는 것에 미온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장은 손해를 보아도 좋으니 최대한 빠르게 정착을 할 수 있게 지원하시오.”

하지만 그렇게 계산할 문제는 아니다.

당장 그곳의 값어치는 다소 부족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더 길게 수백 년 후의 일을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했다.

예전에 비해 지하 자원에 대한 개념이 많이 자리 잡기는 했지만, 아직은 배타적 경제 수역 같은 그런 관념은 없었다.

“하오나 연주처럼 고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서 움직이는 것이 훗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우려가 많사옵니다.”

김첨수는 그걸 가장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항상 연주 안렴사인 왕수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스스로 왕이 되어 언제 고려를 배신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워낙 멀리 떨어진 곳이 연주다.

북해도와 부상도도 쉽게 고려와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위치라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연주 같은 곳은 대부분 안렴사인 왕수의 자체적인 판단에 의해서 운영되는 일이 자주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고려에 배를 한 번 보내서 답을 받으려면 서너 달이 걸리니 효율이 안 나왔다.

그래서 처음부터 나는 고려의 기본적인 법률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연주에 자치권을 어느 정도 인정을 해주었다.

다만, 왕수는 군사적인 권한은 없었다.

그가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왜국 등의 침략이 있을 때였다.

당연히 나는 북해도와 부상도 역시 그런 방법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식민지 통치 방법 중의 하나인 자치령에 가까웠다.

내가 그 이야기를 꺼내자 삼정승은 다들 펄쩍 뛰며 반대했다.

“권력을 그렇게 많이 주면 분명 점점 더 큰 욕심을 낼 것이 분명하옵니다.”

“아니되옵니다. 언제 반역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옵니다.”

“그렇게 따지면 탐라와 대마도는 물론이고 연주도 이미 반란이 일어났을 것이 아니오.”

“실제로 탐라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군사를 보냈던 것을 잊으셨사옵니까?”

“그건 고려의 군사가 아니라 원나라에서 놔두고 떠난 목호들이 벌인 일이잖소.”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연주부터 멀리는 왕곤이 머지않아 배치될 해남성까지 고려를 중심으로 연방제가 펼쳐져 있었다.

나중에 삼정승이 우려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고려의 피가 흐르는 친고려 정권이 자리를 잡아야만 한다.

민족은 언제나 뭉치려는 기질이 있다.

냉엄한 국제 정세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택하는 최후의 선택이기도 했다.

일종의 보험과 같은 것이라고 할까.

실제로 그렇게 구상된 고려 연방이 왜국의 쇄국 정책과 맞물려서 훗날 어떤 효과를 보이게 될 줄은 그 당시의 나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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