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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86화 (186/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86

첸나이에 황자가 도착하자,

탄야는 곧장 관리를 보내왔다.

상상 이상으로 커다란 환대였다.

마두라이가 스스로 고려의 아우임을 청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 여정에 동행한 일부 노쇠한 문관은 정말 격세지감이라며 흥분할 정도였다.

그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가 있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려는 원나라의 사신을 맞이하며 온갖 행패를 감내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반대가 된 것이다.

어쨌든 마두라이에 고려 황실의 황족이 직접 온 것은 처음이라 궁궐이 있는 마두라이 도시 전체가 들썩일 정도였다.

심지어 고려 출신으로 마두라이에서 관직에 오른 이들마저 모두 모였다.

그중에는 당연히 정휘와 홀치 출신의 장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거의 장성한 황자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꼈다.

“시간 참 빠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마두라이로 오는 배를 탄 이후에 태어나신 황태자께서 벌써 약관을 넘겼답니다.”

“이황자께서도 십 대 중반이라고 하던데 폐하도 참 대단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멀리까지 보내실 생각을 하셨답니까?”

“고려도 참 많이 바뀌었다는데··· 다시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을까요?”

장수들은 저마다 감회어린 마음으로 한 마디씩 꺼냈는데 정휘도 말은 하지 않았으나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신없이 전장에서 칼을 휘두르며 살다 보니 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흘러버렸다는 것을 이제야 실감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안에서 들리는 웃음소리를 들어볼 때.

상당히 분위기가 좋아 보였는데 같이 온 정룡이라는 무관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황태자비의 회임 소식 때문일 것이다.

정휘가 기억하는 채윤 공주는 어린 시절부터 무척 사랑스러운 분이셨다.

“이황자님을 뵈옵니다.”

술탄과 독대를 하러 들어간 황자가 다시 나온 것은 거의 한 시진이 지난 후였다.

그가 나오자 정휘부터 시작해서 고려의 피가 흐르는 장수와 관리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무릎을 꿇었다.

그걸 본 마두라이 출신의 관리들은 술탄이 아닌 다른 이에게 충성을 보이는 모습에 못마땅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긴 시간 마두라이를 위해 피를 흘리며 싸웠지만, 그 모든 것은 고려를 위한 것이라 여기던 이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장군의 이야기는 정말 수도 없이 들어본 것 같아서 오늘 처음 보는 거라 생각되지 않소.”

오히려 왕곤이 더 설렌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고려의 위인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들 중에 정휘도 있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여러 장군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코끼리라는 엄청난 동물과 맞서서 싸우는 정휘 장군이었다. 심지어 삽화까지 들어간 동화책은 구하기도 힘들어서 웃돈을 줘도 수개월은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그들은 잠시 자리를 옮겨서 가벼운 차를 마시며 한동안 왕곤이 던지는 수없이 많은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해주어야 했다.

긴 시간 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왕곤은 잠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폐하께서 마두라이에서 정휘 장군을 보게 되면 전하라는 말이 있었소.”

폐하의 전언이라는 말에 정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엎드리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왕곤이 그를 만류하고 다시 앉혔다.

정식으로 가져온 칙서도 아니고 그저 질문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장군은 왜 이인임 재상을 따라 랑카에 가지 않은 것이오?”

예상외의 질문이었던 탓일까.

정휘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가장 커다란 이유는 마두라이가 존재해야 고려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었다.

화약을 만들려면 이곳의 염초가 필요한데 여전히 이곳은 다른 제국과 전쟁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도 분명히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인임의 신뢰를 받고 있는 임견미 장군과 성향이 맞지 않다는 것도 분명히 있었사옵니다.”

“솔직하게 말해주어서 고맙소.”

“어떻게든 이곳은 분골쇄신하여 소장이 지켜내겠사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소.”

왕곤은 곧장 고개를 저었다.

폐하께서 바라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잠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에게 왕곤은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폐하께서 머지않아 장군들을 대신할 이들을 보낼 예정이니 그만 고집부리고 고려로 다시 돌아오라고 하셨소.”

그와 함께 왕곤은 수고했다는 말과 적지 않은 보상이 뒤따를 것이란 말도 정휘에게 잊지 않고 전해주었다. 지금까지 그는 자진해서 이곳에 남아있던 신분이었다.

하지만 왜 그가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허나 소장이 없으면···.”

“장군이 없다고 무너질 정도로 마두라이가 허약한 나라인 것이오?”

“그건 아니옵니다.”

정휘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지난 세월 동안 홀치 출신의 장군들과 함께 만든 정예병이 많았다.

심지어 고려에 요청해서 온 홍귀도 그 과정에 참여했고 현지 출신의 장수들도 꽤 많이 배출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럼 뭘 망설인단 말이오?”

왕곤이 되묻자 정휘는 곧장 마음의 결심을 내렸다. 황자께서 직접 이곳에 와서 폐하의 지시를 전달해준 것이다.

그걸 무시할 정도로 정휘가 이곳에 마음을 두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지 오히려 고려로 돌아가고 싶었다. 제국이 된 고려의 모습을 자신의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바다 너머에서 들려오는 고려의 소식을 들어보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게 결국에는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새로운 세상을 향한 끝없는 도전.

그것은 현재 고려의 모토와 같았다.

이미 십여 년 전에 고려는 신대륙에 발을 디딜 정도로 해양을 통해 많은 곳에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연주와 해남성 외에도 고려의 영향력이 닿는 곳은 동남아 전역이라고 봐도 됐다.

매년 평양에서 팔관회가 열릴 때마다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사신과 상단이 몰려드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들이 사들이는 것은 다양했다.

고려에서 만든 이륜부터 시작해서 연필과 지우개 그리고 공예품까지 인기였다.

당연히 교역량도 증가 추세다.

수많은 선박이 오가며 고려는 나날이 엄청난 부를 쌓고 있는 중이었다.

심지어 아라비아의 상인들 사이에는 해가 떠오르는 동쪽 끝에 황금으로 만들어진 산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을 정도다.

처음에는 우스갯소리인 줄 알았다.

그러나 소문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살이 붙고 있는 중이란다.

그쯤 되니 조금 우려될 정도였다.

전설 속의 황금 도시인 엘도라도에 눈이 멀었던 유럽인들이 어떤 짓을 벌였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위협이 되진 않았다.

거리상의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저들이 아무리 많이 함선을 이끌고 와봤자 오는 중간에 잃는 배가 태반일 것이고 정면으로 붙어도 이쪽이 유리했다.

대항해 시대는 오히려 고려가 훨씬 더 빨리 접어든 상태였다.

고려가 제작하는 쾌선 중에는 당연히 전투용으로 구분되는 대형 선박도 있다.

과거에 왜구와 싸우기 위해 만들었던 초기 형태에 비해 덩치가 엄청 커졌다.

화력도 엄청났기에 최근에 와서는 왜선이 싸울 엄두도 못 낼 정도인데 철갑을 두른 증기선이 아니라면 싸워볼 만 했다.

“흠흠! 다가오는 이듬해 봄에 출항을 요청한 선박의 목록이옵니다.”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자,

영의정 김첨수가 헛기침을 했다.

그가 내민 것은 고려에서 분기마다 출발하는 탐사선의 목록이었다.

과거에는 내수사와 고려에서 투자한 재물로 떠났던 탐사선이 이제는 서서히 민간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잠시 목록을 살피던 나는 살포시 고개를 저었다.

“너무 많소. 능력이 안 되는 소형 선박은 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하지 않았소. 괜히 그들을 보내봤자 과부만 늘어날 것이오.”

“소형 선박의 경우에는 대부분 지리관에서 인근 해역의 해도를 만들려고 계약된 이들이옵니다.”

“그렇다면 좋소. 다만, 전에도 말했듯이 검증받지 못한 동식물을 몰래 가지고 들어왔다가는 엄한 벌을 내릴 것이오.”

신대륙에서 종자를 가져온 이후.

고구마와 감자 등은 고려의 식습관을 바꿀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

더구나 실종된 장사의와 달리 배유형은 여전히 고려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그걸 통해 사람들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죽을 위험성도 있으나 만약에 성공한다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탓인지 민간에서 운영되는 탐사선의 수는 매년 늘어갔다.

심지어 주식회사 형태마저 나타났다.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탐사대를 보낸 뒤에 훗날 수익을 내면 그걸 투자한 사람들이 나눠서 갖는 것이었다.

실제로 상단 중에도 그런 투자를 받아서 몸집을 키우는 이들도 제법 많았다.

하지만 문제도 분명히 있었다.

이것저것 막무가내로 가져오다 보니 상상하지 못한 외래종도 유입이 됐다.

요즘은 궁궐 주변에서는 어느 지역에서 온 건지도 알 수 없는 화려한 깃털을 가진 앵무새가 종종 보일 정도였다.

그런 탓에 최근 항구에서는 평소보다 더 철저하게 검역을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얼마 전에 배유형이 올렸다는 상소문은 도대체 무슨 내용이오?”

“다시 대양 너머에 있는 대륙에 가보고 싶다는 내용이었사옵니다.”

“이제 나이도 적지 않아서 힘들 텐데 도대체 이유가 무엇이오?”

“아직 미련이 남아 있는 것 같사옵니다.”

김첨수가 말하는 미련이 뭔지는 뻔했다.

아마 배유형은 여전히 신대륙에서 실종된 장사의가 살아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워낙 넓어서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허락해줄 수는 없었다.

“그곳에 다시 탐사대를 보낼 생각은 없소.”

마음만 먹는다면 다시 보낼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여력도 있으나 괜히 그런 일에 힘을 빼고 싶지는 않았다.

장사의가 돌아온다고 대주국과의 관계가 다시 개선될 일도 없고 더는 신대륙에서 가져와야 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바다 너머의 대륙이 탐났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의 고려에서 그곳을 먹으려고 했다가는 배탈이 날 것이다.

가뜩이나 영토에 비해서 인구가 부족한 탓에 북부로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고려 주변에는 아직 비어있는 수준의 땅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극동 지역만 보더라도 현재의 고려가 보유한 영토보다 몇 배나 되는 동토가 널려 있을 정도다. 굳이 멀리까지 눈을 돌릴 이유가 없었다.

현재의 영토를 경작하고 지키려면 적어도 인구가 4천만 명 이상은 되어야 한다.

그것도 꽤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다.

고려의 인구 중에 이미 상당수가 농업 기반에서 수공업으로 넘어온 터라 사실상 그 이상으로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영토가 있었다.

그건 바로 북해도(北海, 홋카이도)와 부상도(扶桑, 사할린)였다. 그곳을 고려에서 가져와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연주와 북해도까지 이어지는 훗날 쿠릴 제도라 불리는 섬들이 필요했다.

적어도 그 수많은 섬들 가운데 일부에 폭풍우를 피할 시설만 설치되어도 배를 손실하는 것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더구나 그곳을 확보해야 오호츠크 해를 고려의 앞바다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내가 그린 그림대로 영토를 확보하면 동해를 둘러싼 땅의 절반이 고려에 복속되는 터라 앞으로 왜국이 동해에서 활동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

“이제 슬슬 북해도와 부상도까지 영토를 확장하여야 할 때가 온 것 같소.”

“준비는 거의 다 된 상태이옵니다. 언제든 지시만 내리시면 부동항에 있는 윤호 장군의 제4함대가 이동할 것이옵니다.”

“해군 외에 다른 병력도 준비를 마친 것이오?”

아무리 버려진 땅이라고 하지만,

반항이 없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북해도와 부상도에는 아이누 족이라 불리는 원주민이 있었고 왜국의 영향력이 아예 닿지 않는 곳도 아니었다.

왜국에서 감히 고려의 해군을 건드리진 못하겠지만, 분쟁이 터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혹시 왜국에서 대마도 쪽을 통해서 도발을 할 지 모르니 탐라에 있는 주덕유 장군과 대마도에도 언질을 해주시오.”

현재 주덕유는 오랜 대마도의 생활을 마치고 조금 더 넓은 탐라로 옮겼다.

기존에 해군 원수였던 김휘남이 지병으로 물러나고 공석이던 그 자리에 주덕유가 그간의 공을 인정받아 올라간 덕분이다.

“혹시 염두에 두고 계신 시기가 있으시옵니까?”

김첨수는 준비 과정을 마무리하기 위한 시간이 충분한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당연히 그 시기는 뻔한 것이었다.

“부동항 주변 지역의 얼음이 녹아서 연주를 향한 항로가 열릴 때가 가장 적절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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