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83
고려를 이끌던 공민왕의 죽음.
거기에는 자제위였던 홍륜이 엮여있다.
원래의 역사대로면 공민왕이 죽는 것은 바로 내년인데 홍륜과 자제위가 모의한 흉계에 당하게 된다. 당연히 그 일로 인해 홍륜뿐만 아니라 그의 아비인 홍사우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참변을 당한다.
그 과정은 뭐랄까···.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믿을 수는 없다.
내가 즉위한 이후부터 역사서가 수없이 많이 제작되고 있지만, 내가 알고 있던 역사는 정작 조선 시대에 만들어졌다.
정말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적은 것일까.
그건 상당히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고 내가 이곳에서 직접 겪어 보니 잘못 기록된 부분도 적지 않게 있었다.
실제로 고려사에서 환조와 태조를 거의 하늘이 내려준 무신처럼 그려놨는데 판타지 소설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홍륜이 공민왕을 죽였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나는 당연히 그런 일을 방지하고자 자제위를 두지 않는 것으로 예방을 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기어서 올라오다니 어쩌면 운명인가 싶기도 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무관 시험에서 거둔 성적에 따라 홀치나 응양군으로 배정되는 것이 관례였다.
홍륜 등을 곁에 두지 않고자 자제위를 만들지 않았는데 내 곁을 지키는 홀치로 들어오면 아무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상황이 그를 그렇게 만든 걸까,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인 걸까?’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는 것이 그 문제다.
마치 오랜 시간 성악설과 성선설을 놓고 결론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나도 그 사이에서 아직 어떤 결론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었다.
상황이 역사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인임처럼 권력욕에 쉽게 빠지는 이들은 태생이 그렇다고 치더라도 대부분은 강력한 왕권을 통해 억제가 가능했다.
여러모로 그때와는 상황 자체가 많이 다른 것이 가진을 잃지도 않았고 고려는 역사상 경험해보지 못한 제국이 되었다.
“이들은 이제 어디로 배속될 예정이오?”
“상위권에 올라선 이들은 예년처럼 홀치와 응양군에 배치하고 나머지는 북방과 탐라 등의 지역으로 골고루 나눠서 보내려고 하옵니다.”
“이 중에서 차석인 이방과는 대마도로 보내고 수석인 홍륜은 연주로 보내어 윤송의 밑에 두는 것으로 하시오.”
찜찜하게 지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무작정 쳐내기도 애매했다.
그의 조부가 홍언박이었고 아버지인 홍사우도 고려를 위해 오랜 기간 세운 공이 적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홍언박은 드물게 원래 자신의 천수를 훨씬 넘겨서 수년 전에 사망했으나 적어도 그에 마땅한 대우를 해줘야 했다.
“그렇게 처리하겠사옵니다.”
최영은 내 지시가 의외였는지 잠시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따르지 못할 내용은 아니었다.
무과에서 좋은 성적으로 급제했다고 모두가 홀치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황제의 곁을 지키는 일이기에 몇 가지 조건이 있었고 그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성적이라도 들어오진 못한다.
최영도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여기는 눈치였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이방과와 홍륜은 6품의 낭장이 아닌 5품의 중랑장으로 제수하기로 했다.
내륙도 아니고 바다 너머의 변방에서 근무하니 그 정도의 배려는 해줘야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쁜 조건은 아니다.
현재의 고려는 무관의 승진이 상당히 더딘 상태였다. 여러 전쟁을 통해 이십 년 가까이 수많은 무관이 공을 쌓았다.
당연히 그만큼 승진이 많이 된 탓에 요즘은 정규 편성을 받지 못해서 대기 발령 중인 장군도 여럿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무관을 뽑는 이유는 지휘관인 장군과 병사 사이를 잇는 중급 무관이 그만큼 비어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제대하는 이들의 수가 적지 않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처리되고 있소?
고려군은 점차 노쇠화되고 있다.
현재 각지에 흩어져 있는 20만 명의 병력 중에 사십 대 이상만 4할이 넘어갔다.
그들 대부분은 고려에서 모병한 이들로 매월 적지 않은 녹봉을 받아 가는 직업 군인으로 분류되는 이들이었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경험은 확실히 무시할 수 없으나,
이 시대의 전쟁은 육체적인 싸움이다.
체력이 예전만 못하고 대부분이 크고 작은 상처가 생긴 이력이 있었다.
“불혹을 넘긴 이들을 대상으로 제대 신청을 받고 있는 중이옵니다.”
“쫓아낸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절대 아니 되오.”
“물론이옵니다. 폐하의 지시대로 삼강 평원 일대에서 경작할 수 있게 좌의정 곽충수와 함께 논의 중이옵니다.”
참고로 내수사를 이십여 년 가까이 이끌었던 곽충수는 지난 세월의 공로를 인정받아서 최근에 좌의정이 되었다.
지금껏 고려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럿 있으나 내수사가 재정적인 지원을 통해 만들어내 결과라 봐도 무방했다.
엄청난 수준의 재물을 만지는 자리에 있으면서 한 번도 그 흔한 추문을 만들지 않고 내수사를 이끌었던 이였다.
그의 헌신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큼은 잘 알고 있었어야 했다.
현재 그의 뒤를 이어서 내수사를 맡고 있는 것은 안동 출신의 김사형이었다.
“세금 문제는 해결되었소?”
“조만간 도당에서 정리하겠지만, 무공 훈장을 받은 이들은 최대 20년까지 유예하기로 의견을 모으는 중이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반발하는 이들도 많았을 것 같은데 아니오?.”
“훈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작지는 않기에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판도사와 좌의정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사옵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경계가 애매했다.
길게는 이십 년 후를 예상하고 보상을 책정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당장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나도 현재의 고려가 이 정도로 번영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는 원나라와 홍건적에게 침략을 당할 시기라 생존이 무엇보다 우선이던 시절이었다.
“도당에서 정리되면 곧장 짐에게 보고하시오. 그리고 제대하는 이들의 빈자리는 어떻게 채우기로 하였소?”
노병들이 은퇴하는 만큼,
새롭게 젊은 병사로 채워야 했다.
현재 고려는 20만 명의 병력을 상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5년 전에는 18만 명의 병력도 많다고 여겨졌으나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가 이뤄지고 있는 덕분이었다.
현재 고려의 인구는 대략 2,3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큰 폭으로 늘어난 상태다.
5년 전에 1,700만 명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600만 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최초의 베이비붐 세대였던 135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이들이 어느덧 약관을 넘겨 성인이 된 영향도 적지 않았다.
거리만 나가봐도 눈에 띌 정도였다.
열 명 중에 너덧 명이 이제 갓 성인이 되거나 아이들이고 평균 수명이 조금 늘어난 덕분에 노인도 적지 않게 보였다.
지난 세월 동안 끊임없이 기초적인 보건에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었다.
“올가을에 추가 모병을 진행하여 부족한 병력의 수를 채울 예정이옵니다.”
“모병 과정에서 현재 진행 중인 정책에 대해서 충분히 고지시켜야 하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하오.
“물론이옵니다.”
20만 명의 병사는 고려를 지키고 현재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하지만 평화 상태에서 병력을 그만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먹이고 재우기만 하면 되는 징집병도 아니고 대부분 녹봉을 받아 가는 이들이다.
그래서 고려는 새로운 정책을 내놨다.
고려의 병사들은 훈련 외에도 공공을 위한 노동을 겸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레라는 기간 동안에 3일씩의 훈련과 노동을 번갈아 하고 하루는 휴식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노동이 고된 것은 아니다.
가볍게는 주둔하고 있는 지역의 농사를 돕기 위한 대민 지원을 나서는 정도였고 일부 부대는 저수지 공사에 나섰다.
삽질은 대대로 육군의 기본기 같은 것이었고 이앙법을 하기 위해서는 저수지 같은 수리 시설이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잠시 그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어깻쭉지가 저릿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미천사에서 광신도들에게 화살을 맞은 자리였다. 만춘전 안에서 바깥 하늘을 볼 수는 없으나 비가 올 것 같았다.
날이 궂으면 항상 이러니 일기예보가 따로 필요하지 않을 정도였다.
“오늘은 이쯤에서 마쳤으면 하오.”
최영이 알겠다며 자리에서 물러서자 불편한 표정을 하고 있던 것을 보았는지 신소봉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또 그러신 겁니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데 호들갑 떨지 말거라. 고려에 이런 상처 하나 없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느냐. 방금 나간 우의정도 온몸이 흉터투성일 것이다.”
“평생을 전장에서 지낸 무관하고 비교하는 것은 온당치 않은 일이옵니다. 지금이라도 어의를 부르겠습니다.”
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만류하려 했지만, 신소봉은 요즘 내가 목을 주무르는 일이 잦아졌다며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확실히 나이가 드니 아픈 곳이 많아지고 있었는데 맨날 고개를 숙여서 서책을 읽는 탓에 목디스크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에는 신소봉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침전으로 자리를 옮겨서 어의를 불렀다.
탕약까지는 아니더라도 침을 맞으면 조금이나마 통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잠시 후에 어의 두 명을 데리고 설주가 침전으로 들어왔다.
“또 어깨가 문제인 것이옵니까?”
그 사이 설주는 무척 늙었다.
어느덧 환갑이 넘어선 그는 백발이 되었고 최근에는 직접 침을 놓지 못했다.
세월이 야속하나 어쩔 수 없었다.
의침사인 중년의 어의를 둘이나 데리고 온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소.”
“최근에 활을 쏘러 나갔다가 오신 탓인지 모르오니 자중하셔야 하옵니다. 차라리 내성과 정원 부근을 가볍게 산책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사옵니다.”
“그리하겠네.”
요즘 운동 부족이라 느끼고 있어서 종종 활쏘기를 나갔는데 그 때문에 더 심해진 것 같다는 설주의 의견은 나도 동의했다.
순순히 상의를 벗고 엎드린 채로 설주와 함께 온 의침사가 놓는 침을 맞으며 눈을 감고 있던 나는 그 상태로 입을 뗐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영공이 요즘 많이 아프다고 들었는데 괜찮은 것이오?”
여기서 말하는 영공은 이인복이었다.
이미 그의 나이는 60대 중반이 되었고 얼마 전에 건강상의 이유로 낙향했다.
그와 외종질인 설주가 얼마 전에 그를 찾아보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물어보자 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등창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사옵니다.”
“성균관 출신의 일부 의원은 상처를 째서 고름을 빼내는 방법을 사용해서 효과를 제법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것마저 소용이 없는 것이오?”
“체질상 피가 잘 멎지 않아서 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사옵니다.”
등창은 여러모로 악명이 높다.
이 시대에 항생제가 있는 것도 아니라 조선의 왕도 상당수가 등창으로 죽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 시대는 정말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척이나 희미했다.
어쩌면 고려의 부흥을 위해 힘을 썼던 이들이 하나둘 천수를 다하고 생을 마감하는 일이 잦아지니 그런지도 모른다.
그만큼 새로운 이가 도당에 들어서고 정지와 정룡 같은 젊은 무관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으나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을 내서 자주 들여다 봐주시오. 이렇게 가기에는 아까운 이가 아니오.”
“그러하겠사옵니다.”
“그리고 괜히 걱정하게 될 것 같으니 오늘 온 것은 황후에게는 비밀로 하시오.”
“심려치 마시옵소서.”
설주는 알겠다며 약조를 했다.
가진이 내 어깨에 생긴 상처에 유독 민감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둘만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설주와 어의들이 치료를 마치고 침전을 나서기도 전에 황태자와 함께 가진이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 때문에 온 것 같진 않았다.
가진도 그렇고 황태자도 설주를 보았으나 왜 그가 여기에 있는지 묻지 않았다.
그런 것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보였는데 신기한 것은 두 사람 모두 표정이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확실히 뭔가 일이 있어 보였다.
“무슨 기쁜 일이라도 있는 것이오.”
“어떻게 아셨습니까?”
“황후와 황태자의 표정만 보더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소.”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옵니다.”
왕현은 자신있게 말을 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기쁜 일인지 묻자 황태자보다 가진이 먼저 입을 뗐다
“조금전에 의녀가 진맥을 하였는데 황태자비가 회임을 한 것 같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