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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66화 (166/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66

노비의 수를 줄이는 방법.

그걸 찾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마침 지금은 그리 바쁘지 않았다.

영토를 넓히는 일도 잠시 멈춘 상태다.

인구가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북부로 더 올라가는 일은 언제든 가능한 일이기에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현재 국경선으로 삼은 송화강.

그 너머는 무주공산인 상황이었다.

지금 그곳에 고려를 막을 수 있는 이는 없었고 말을 타고 달려가서 깃발을 꽂고 우리 땅이라고 외치면 그곳이 국경이다.

이전의 주인이었던 여진족이 와해된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여진족은 부족 단위로 움직인다.

그걸 이용한 동별초와 고려군은 부족 단위로 각개격파에 성공했고 지금껏 그들을 상대로 져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요즘 여진족에게 동별초는 저승사자와 동급일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애초에 수적인 차이가 컸다.

더구나 기마병인 여진족보다 말의 성능이 훨씬 좋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이 가진 말도 충분히 좋은 말이나 세계적인 명마인 아라비아의 말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에 카티아와리의 활약이 컸다.

척박한 환경에 맞춰서 개량한 품종답게 열악한 여건에서 싸워도 잘 버텨주는 대단히 훌륭한 장점이 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 계속해서 고려로 들어온 말들은 번식을 거듭하며 이제는 상당히 많은 수가 되었다.

만주도 가시권에 들어올 정도였다.

고려군의 최대 약점이던 기마병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온 덕분이었다.

지금은 요왕이 자랑하는 기마 병력과 비벼볼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요왕은 다시 건강을 되찾고 옷치긴 왕가는 안정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완전히 정리되진 않았다.

지금까지 서로 지지하는 왕자의 편에서 흘린 피가 적지 않았다. 잠시 골육상쟁은 멈췄으나 언제 터져도 이상하진 않았다.

이미 깊어져 버린 감정의 골은 다시 메워질 수 없을 정도였다.

‘5년··· 아니 3년만 기다려라.’

지금 싸운다고 질 거란 생각은 안 들었다.

문제는 그곳을 가져와도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미 고려는 십오 년 사이에 덩치가 네 배 가까이 커진 상태였다.

거기에 바다 너머에는 현재의 고려가 지닌 영토와 맞먹는 크기의 연주와 해남성도 존재했다.

3년은 새로운 영토를 소화할 시간이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고려의 인구는 복리 이자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태어나는 이들이 개척자가 되려면 적어도 십여 년은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길게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역시나 해답은 노비들이었다.

전체 인구의 1할이나 차지하는 그들을 동원한다면 더 빠르게 안정될 것이다.

나는 그와 관련해서 논의를 하기 위해 부른 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현재 고려에 존재하는 백만 명이 넘어가는 노비를 없앨 방안이 있소?”

그 자리에는 십여 명이 앉아 있었다.

워낙 민감한 이야기인 탓에 믿을 수 있는 이들만 불러야 했다. 당연히 그중에는 이인복과 백문보 그리고 유숙과 같은 전현직 삼정승과 감찰사를 맡고 있는 정도전 등이 자리에 참석했다.

영의정에서 물러난 이인복은 요즘 감찰사의 자문을 맡고 있으며 백문보는 성균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었다.

이미 관직에서 물러났으나 그들은 원로회 같은 역할을 하며 종종 이렇게 모여서 국정에 대해서 조언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긴 시간 관습처럼 내려오던 제도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애초에 노비가 없는 세상은 생각지도 못한 채 살아오던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고려는 토지와 법 등을 개혁하며 수많은 것들이 바뀌었사옵니다. 지금 노비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쉽지 않사옵니다.”

“당장 고려의 모든 노비를 양민으로 만들라는 의미로 꺼낸 말이 아니오.”

“결국에는 노비 제도 전체를 개혁하실 생각이셨던 것이 아니옵니까?”

백문보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만류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누구보다 내 곁에서 고생을 한 이가 백문보다.

그가 문하시중으로 있을 때만 하더라도 왕권이 그리 강하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일을 저지를 때마다 백문보는 죽을힘을 다해서 뒷수습을 해야 했다.

그런 탓에 적어도 그의 말은 항상 귀를 기울여서 들어줘야 했다.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소.”

이건 솔직한 마음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노비 제도의 개혁이다.

20세기가 될 때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예가 엄연히 존재했다.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아예 없는 시기였다.

완벽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비의 수를 지금부터 차근차근 줄여가서 결국에는 소멸시키는 것이옵니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이인복이 천천히 가자는 말을 돌려서 했다.

나도 그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고 그리 나쁜 방법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진행하면 내가 죽기 전에 과연 끝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때 정도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소신에게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세 가지의 방안이 있사옵니다.”

“어서 말해보시오.”

“가장 쉬운 길은 노비를 사들여서 관노로 일단 만든 뒤에 일정 기간 뒤에 풀어주는 것이옵니다.”

현재 노비 한 명의 평균값은 면포 200필로 말 한 마리의 절반 값에 불과했다.

내수사에서 벌어들이는 재물이 적지 않으니 몇 명 정도 관노로 돌리는 일은 전혀 부담되는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그게 백 명을 넘어 천 명 단위가 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당연히 모두가 펄쩍 뛰었다.

노비의 수가 한두 명이 아니다.

백만 명이 넘어가는데 그들을 사들일 수 있을 정도로 고려가 부유하지는 않았다.

고려의 상업을 부흥시키며 매년 벌어들이는 수입이 적지 않으나 그만큼 사용하는 것도 많았다.

어느덧 17만 명까지 늘어난 병력을 유지하는 비용도 적지 않았고 도로 공사도 거의 십 년 가까이 계속 진행되는 중이다.

거기에 북부 개간에 동원된 마두라이의 노동자도 존재했기에 적자가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일 정도였다.

“아무리 비싼 돈을 주어도 내놓지 않는 이들이 많지는 않을 거외다.”

유숙은 고개를 저으며 힘들 거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는 것이 적어도 일정 수준 이상은 팔지 않고 잡아둘 것이 분명했다. 결국에는 돈으로 사들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정도전도 다른 이들의 의견에 동의했는지 곧장 다음으로 넘어갔다.

“두 번째로 노비를 나라에 헌납하는 조건으로 매월 진행되는 군사 훈련에서 제외시키는 방법도 있사옵니다.”

이번에는 반응이 둘로 나뉘었다.

좋은 생각이라고 반기는 이들은 최근 권문세족의 불만이 적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이었다. 예비군이 고려에 적용된 이후에 고려의 남자들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훈련을 받는 중이다.

당연히 불편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나 씨가 귀한 집에서는 혹시나 다칠 수 있다는 생각에 돈을 주고 사람을 대신 보낼 정도로 온갖 꼼수를 쓰고 있었다.

그러니 노비를 헌납하는 조건으로 차라리 합법적으로 피해갈 방법을 마련해주자는 말이었다.

“그런 특혜를 줄 생각은 없소.”

나는 당연히 그 방안을 거절했다.

노비를 관노로 돌리는 것은 충분히 좋은 결과일 수 있으나 그런 식으로 지금껏 이뤄온 것을 허물어 버릴 수는 없었다.

양민만을 상대로 훈련을 시키자는 것을 어렵게 노비를 제외한 모든 이로 확대시켜 놓은 상태였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한 약속이 없었다면 아마 다들 완강하게 거절했을 것이다.

당시에 나는 훈련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이들은 숙위 기관인 홀치와 응양군 등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

무관에 뜻이 없는 이들도 혹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누구보다 내 곁에 가까이 있기에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위치다.

지금껏 홀치 출신만 보더라도 병마사가 된 최영도 있고 대부분 요직으로 승진한 상태였다.

두 가지의 방안 모두 좋지 않은 반응이 나왔으나 정도전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인지 얼굴색조차 변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주변을 한 차례 살핀 뒤에 마지막 방안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

그로부터 얼마 뒤.

고려 전역이 술렁거렸다.

외침이 있다거나 그런 일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평안한 일상이 이어지는 요즘이었다. 문제는 곳곳에서 사라지는 이들이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였다.

다들 노비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부터 노비가 도망치는 일은 빈번한 일이었으나 지금처럼 많은 노비가 동시에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그것도 대부분 가족 단위라 심한 곳은 하루아침에 십여 명이 넘게 사라진 집도 있었다.

“윗마을에서도 대여섯 명이 동시에 사라졌다고 하더이다.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잘 지켜보아야 합니다.”

“얼마 전에 개성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도 몇 집 건너 하나씩은 노비가 도망쳤다고 난리였소.”

“고얀 놈들! 기껏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은혜를 이렇게 갚는 것인가.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어.”

노비를 지닌 이들은 다들 분노했다.

당연히 사라진 노비가 있는 집에서는 추노꾼을 고용해서 도망친 노비를 찾아오라 시켰다. 하지만 그 수가 적지 않은 터라 추노꾼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돌쇠 이놈아! 네놈도 도망칠 생각이라면 관두거라. 이 세상 끝까지 쫓아가서 어떻게든 찾아낼 것이다.”

그중의 한 명은 주점의 낮은 담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노에게 소리쳤다.

돌쇠는 술에 취한 목소리로 호통을 치고 있는 이에게 고개를 숙였으나 정작 그들은 노비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소문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정말 그게 사실인가?”

“그렇다니까. 가족을 모두 데리고 가면 적어도 아이들이 성인이 될 무렵에는 양인의 신분으로 돌아올 수 있다더군.”

“그걸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폐하께서도 과거에 고려 유민에게 10년의 노역을 마치면 양인이 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시지 않으셨는가.”

그때의 일은 상당히 유명했다.

당시에 고려로 유입된 이들은 현재 다들 양인이 되어 북부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부러워하던 노비가 적지 않게 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십 년이라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면천이 되어 양인이 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폐하께서 직접 약조하셨던 것이 아닌가.”

“믿는 수밖에··· 나는 내일 죽어도 상관없지만, 아이들까지 대대손손 저놈의 집구석에서 노비로 살게 할 생각은 없네.”

“진짜로 떠날 생각인 건가?”

노비 중의 한 명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돌쇠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아이들만이라도 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 지금껏 주인네 가족에게 당한 부당한 처사도 한몫했다.

뜨신 밥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어지간한 것들은 참을 수 있으나 저놈의 술버릇이 고약해서 술만 처먹으면 사람을 패는데 언젠가 사고를 칠 것 같았다.

그때는 자신이 죽거나 저놈이 자신의 손에 죽게 될 것이 분명했다.

“까짓거 해보자고, 자네들도 요즘 추노꾼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야기 듣지 않나. 그만큼 잡힐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잖아.”

“그런데 어디로 가면 되는 건가?”

“자정에 몰래 뒷산에 있는 옹달샘으로 오게.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이 보이면 그냥 사라진다니 다들 조심해야 하네. 우리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네.”

모두들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이 다시 가족들을 데리고 모인 것은 자정이 되기 전이었다.

여섯 가구가 모이니 그 수만 하더라도 오십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그중의 절반 가량은 십 대부터 갓난아기였다.

그들은 긴장된 얼굴로 돌쇠가 말했던 뒷산의 옹달샘으로 향했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쯤 되자 돌쇠도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가자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쩌면 벌써 들켰을지도 모른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한두 명의 인기척이 아니었는데 어느 사이에 그들 주변에는 복면을 쓴 십여 명의 남자들이 나타나 에워싸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의 허리춤에는 칼로 보이는 것을 하나씩 차고 있었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모인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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