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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64화 (164/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64

고려의 법체계는 매우 빈약했다.

조선이 건국되기 전까지는 율령법의 시대라고 봐도 된다. 고려는 중원의 법을 가지고 와서 일부를 계수(繼受)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고려율인데 그마저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대부분 임금이 내리는 교서와 관습법에 의거했다.

주먹구구식이라 보면 된다.

그걸 바꾸는 것이 바로 정도전이다.

정도전은 조선을 건국할 무렵에 이성계를 통해 법치주의를 내세웠고 스스로 조선경국전이라는 법전도 편찬했다.

어린 시절부터 의도적으로 성리학 사상을 쏙 빼놓은 정도전이지만, 타고난 성향까지 완전히 변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부패와 비리를 뿌리 뽑고 백성이 억울한 일을 겪지 않게 하는 일은 중요하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일이었으나 지금껏 고려는 영토의 확장에 중점을 두고 있기에 쉽게 건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는 미룰 수 없을 것 같았다.

적어도 바뀌고 있는 고려의 상황을 담을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한다. 이미 고려는 여러 민족이 고려에 들어온 상태였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관습이 다르기에 고려의 관습을 잣대로 법을 집행하니 민족 간의 불화가 생기는 일이 잦았다.

다민족화 되어 가는 부작용이었다.

‘역시 정도전은 정도전이구나.’

강력한 법을 이용하는 통치는 정도전의 평소 사상과 흡사한 면이 꽤 있었다.

문제는 그로 인한 황제의 권한이 다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이라고 할지라도 정해진 법이 있으면 그걸 따라야 한다.

조선의 왕은 생각보다 권한이 적었다.

쉽게 움직일 수도 없었고 삼정승이 모두 동의하지 않으면 임금에게 정책 제안이 올라가지도 못했다. 절대 권력에 대한 견제라 보기에는 너무 과한 수준이었다.

당연히 내가 옥좌에 앉아있는 이상 그런 꼴을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이번에 정도전과 함께 감찰사의 일을 경험해보니 어떠하더냐?”

“고려에 반드시 필요한 이들이라 생각되었습니다.”

한반도와 요동까지 크게 한 바퀴를 돌며 왕현은 감찰사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그들이 부패와 비리를 뿌리 뽑아야 백성이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고 겪은 덕분이었다.

더구나 그의 곁에는 감찰사를 맡기로 내정되어 있는 정도전도 함께했다.

자연스럽게 그가 옆에서 감찰사의 중요성을 강조했을 것이 분명했다.

현재의 고려는 관청별로 예산을 주고 그 범위 내에서 일 처리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감찰사가 받는 예산의 비중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고려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곳곳을 살피고 있는 탓이었다.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라 차기 황권을 지닌 황태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도대체 같이 다니며 뭘 했길래 이 아이가 홀딱 빠진 것이오?”

나는 정도전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연히 진심으로 묻는 것은 아니었다.

정도전은 내가 던진 농을 웃는 얼굴로 왕현이 입은 옷을 가리키며 맞받아쳤다.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 시켜 드린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비렁뱅이인가?”

“하찮게 보여도 거리에서 흘러 다니는 말을 그들만큼 잘 듣는 이들은 없습니다.”

정보의 습득과 활용하는 방법.

그걸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고 하여서 이런 기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황태자와 함께 뭘 하고 다닌 건지 눈에 선하게 그려질 정도였다.

어쨌든 몸 건강하게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간 고생이 많았소. 조만간 우의정과 감찰 상서 자리에 제수될 테니 보름 정도 푹 쉬고 도당에 들어오시오.”

황제에 즉위할 당시에 6부를 개편했는데 각 부의 수장과 내수사와 감찰사의 수장은 정3품의 상서로 모두 통일했다.

변안열과 정도전의 나이를 생각하면 상당히 빠른 출세라고 할 수 있었다.

원래는 김첨수 다음으로 한방신이 그 자리에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그의 귀국은 조금 뒤로 미뤄져야 했다.

대주국의 등을 돌린 이후에 중원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그들은 정말 막 나갔다.

과거 탕화와 암묵적으로 맺은 협약마저 깨고 거의 전면전 직전까지 간 상황이다.

요즘에는 대도에 있는 황제보다 오히려 중원에서 싸우는 일이 잦아지고 있었다.

더구나 그간 잠잠하던 명옥진마저 장사성과 함께 탕화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둘이 모종의 협약을 맺었을지도 모르지.’

한방신은 둘의 관계를 의심했고 충분히 타당성이 있기에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명옥진이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쯤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왕현의 귓불을 잡았다.

“집 나간 자식이 언제 돌아오려나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가 계시지 않느냐. 지금 당장 돌아가자꾸나.”

당연히 왕현은 순순히 따라왔다.

근처에서 쉬고 있던 채윤까지 데리고 궁궐에 들어서자 당연히 가진은 예상치 못한 아들의 귀환에 크게 기뻐했다.

적어도 보름마다 한 번씩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정도전과 안도치 등이 안부를 보내왔으나 그녀는 항상 노심초사했다.

떠났을 당시에 비해 늠름해져 돌아온 아들을 위해 가진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음식을 차려줬을 정도였다.

하지만 왕현은 오히려 불편해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반찬 투정을 하고 입도 짧았는데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직접 겪은 터라 소박해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뒤.

고려의 도당에서는 새로운 법전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존재하던 71조의 법안은 상당히 포괄적이었고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컸다.

그중에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법도 제법 많이 있었다.

도망친 노비를 숨겨주면 베 30척을 징수하여 노비의 주인에게 줄 정도였다.

지금은 폐지되었으나 과거에는 소를 도살했다는 이유로 얼굴에 낙인을 찍어서 귀향까지 보냈고 상을 치르는 중에 잡된 놀이를 했다고 징역형에 처하기도 했다.

“현재 71조의 법조차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방대한 법 조항을 만들어봤자 혼란만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성균관에서 형률에 관련된 율학(律學)을 배우는 이들의 수를 더 늘리고 직접 파견하자는 것이 아닙니까. 그와 더불어 기존에 배출된 이들을 활용해도 될 일입니다.”

“게다가 송사에 외부의 인물을 들어오게 하여 변호를 하게 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판결을 내리는 이에게 혼란만 주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도당도 모처럼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은 억울한 백성이 한 명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고 반대하는 이는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당연히 개혁은 정도전 등이 주도했는데 오히려 이번에 전법 상서로 자리를 옮긴 김첨수는 반대하는 편에 섰다.

전현직 감찰 상서의 대립이었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이들이 각을 세우고 있으니 당연히 지켜보는 이들은 입술이 바짝 마르는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정도전이 상당히 많이 봐주고 있는 것 같았다.

정도전은 어린 시절부터 정몽주와 함께 성리학을 놓고 수없이 토론과 설전을 벌이며 본학의 기틀을 세운 경험이 있다.

그 덕분에 다른 이의 논리를 박살 내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능력은 탁월한 수준에 도달했다.

“새롭게 법전을 만든다는 것은 변하지 않을 테니 그것은 빼고 논의하시오.”

나는 그들의 싸움을 구경하다가 논점에서 벗어난 것들이 있으면 틈틈이 지적해줬다.

이미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결정한 것이기에 혈압을 높여봤자 본인 손해였다.

“각지에 판결을 내리는 이를 따로 배치하면 그만큼의 녹봉이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사관이라는 이름의 관리를 선발해서 죄의 유무를 조사한다고 하였는데 전국에 배치될 이들의 수를 모두 합치면 무려 수천 명이 넘어갑니다.”

여기서 말하는 조사관은 경찰의 업무를 대신할 이들이다. 평양과 같은 대도시 같은 곳은 순군만호부가 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목사가 거주하고 있는 도시 외에 작은 마을의 관청은 수령이 향리 같은 이들을 데리고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당연히 지방의 권력자와 관계된 죄는 아무리 수령이 청렴하여도 향리가 중간에 끼어서 무마시키는 일이 빈번하게 생겼다.

기초적인 조사부터 완전히 어긋나니 정확한 판결이 나올 수 없었다.

도무지 끝이 나지 않는 토론이었다.

도당에서 토론하는 것은 장려했었으나 이번 일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그날 이후로도 며칠에 걸쳐서 계속된 논의가 이뤄졌는데 보다 못한 나는 그쯤에서 내용을 정리하기로 했다.

“각 부에서는 기존의 71조를 바탕으로 새롭게 법안을 작성하여 가지고 오시오. 그간 문제가 생겼던 판결송사를 참고하면 무슨 법이 필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오.”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다.

그들이 가져온 것을 기반으로 법전을 만들 생각이었다. 당연히 대충 만들어 올 생각을 하는 이들은 전혀 없었다.

이번에 만들어지는 법안을 기준으로 앞으로 죄에 대한 벌이 내려질 것이기에 쉽게 볼 수 없는 문제였다.

당연히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수없이 많은 고민이 필요한 문제였다.

그래도 이레에 한 번씩 그와 관련된 논의를 진행한 덕분에 반년쯤이 지나자 어느 정도 법안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문제는 모아 놓고 보니 거의 한 뼘 정도 되는 두께의 법전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원래 살던 시대는 민법만 보아도 이것보다 훨씬 방대했기 때문이었다.

존재하는 모든 법을 모으면 이것의 수백 배에서 수천 배는 될 것이다.

그걸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아예 판례집까지 만들어서 판결을 내리는 이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줬다.

정상참작이 가능한 범위와 훌륭한 판결 사례 등을 익힐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성균관에서 율학(律學)을 배우던 이는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이걸 언제 다 외운단 말인가.”

사람을 내리치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두께의 대법전이라 이름이 붙여진 서책을 본 학생들은 거의 울상이 되었다.

글씨가 큼직한 것도 아니고 작은 편이라 방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이 법전을 기준으로 과거를 보게 될 거란 사실이다.

기존까지 공부하던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71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새롭게 추가된 내용이 거의 9할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아예 처음부터 새롭게 공부하는 게 속이 편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율학을 포기하고 산학(算學)으로 전공을 바꾸는 게 더 빠를 것 같네.”

“다시 처음부터 할 자신이 있나?”

“나는 지금까지 율학을 공부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포기할 수 없네.”

“그래도 이 판례집에 적힌 내용들은 꽤 재미있지 않은가.”

그 말에 다들 동의했다.

요즘 고려에서 유행하는 소설 못지않게 꽤 재미있는 판례가 담겨 있었다.

반전에 반전이 있는 판결도 있었는데 그걸 보니 느끼는 바도 제법 많았다.

“더구나 기존에 율학을 배운 선배들은 아무리 성공해도 참상관은 꿈도 못 꾸는 하급 관리에 불과했지 않은가.”

“사제의 말이 맞네.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진 거라 여겨야 하네.”

율형을 배우는 이들은 대부분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판결이라고 해봤자 대부분 관습법에 의거하기에 공부하는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성공하고자 하는 이들은 대부분 다시 과거 시험 공부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 대법전이 나오며 율형 시험에 통과한 이들은 판사라는 정7품의 관직을 받고 파견을 간다고 했다.

그 정도면 작은 현을 다스리는 감무(監務)와 비슷한 직위를 가지는 것이었다.

더구나 전법사에도 율형을 전공으로 하는 이들은 상서 바로 아래인 정4품까지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받게 되었다.

기존까지는 대부분 율형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해보지도 않은 이들이 앉아 있던 자리였다.

그때 성균관의 잡무를 담당하는 학정(學正) 한 명이 나와서 마당에 있는 나무판에 뭔가를 붙였다. 그곳은 성균관을 다니는 이들에게 알려야 할 소식이 있을 때 쓰는 공간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율학을 담당하는 학정인 탓에 학생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곳을 향해 우르르 달려갔다.

혹시라도 또 다른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기 적힌 내용은 조금 생소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 적혀 있는 모의 법정이라는 게 도대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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