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61
뛰어난 눈썰미와 감.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관찰력.
그것은 재능의 영역에 포함된다.
조금 전에 안으로 들어온 주덕유 휘하에 있는 병사도 그런 재능이 있었다.
규슈 등으로 수금(?)을 갈 때마다,
항상 그가 동행하는 이유가 있었다.
개코라는 별명이 괜히 붙여진 게 아니다.
아무리 재물을 감추려고 해도 그의 손을 거치면 귀신같이 찾아냈다. 그 덕분에 주덕유의 함대에서 그의 위치는 독보적인 수준이었다. 이곳 이소노카미 신궁에 그를 데리고 온 이유이기도 했다.
“앞장서거라.”
이지란은 주지를 팽개친 뒤.
서둘러 그 병사의 뒤를 따라갔다.
그가 발견한 신고(神庫)의 위치는 정말 예상외의 장소에 있었다. 그곳은 신궁의 뒷편 산기슭을 파내 만든 공간이었다.
설마 신궁 내부가 아니라 밖에 이런 걸 만들어 놓았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더구나 입구도 교묘하게 숨겨 놓아서 이걸 어떻게 찾은 건지 신기할 정도였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발견한 건가?”
“사람이 오가는 곳에는 흔적이 남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저도 아직 확인 못 했습니다.”
“어서 열어 보거라.”
이지란의 지시가 떨어지자,
병사들이 다들 그곳에 달라붙었다.
조잡한 자물쇠가 걸려 있었으나 그걸로는 침입자를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병사 중의 하나가 머리통만 한 바위로 내려치니 단번에 부서져서 떨어져 나갔다.
까아아앙!
그렇게 열린 신고의 내부는 넓었다.
횃불을 쥐고 가장 먼저 안으로 들어간 이지란은 조금 휑한 느낌을 받았다.
신고라 부르기에는 너무 허접했다.
더구나 안에 있는 것들 대부분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이건 그냥 창고에 가까웠다.
굳이 이런 물건들을 은밀하게 이곳에 놔두는 건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낙담하긴 어려웠다.
이지란은 품에서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꺼내 병사들에게 나눠줬다.
“다들 여기에 그러진 이것과 비슷한 것이 있는지 찾아라.”
그곳에는 기묘한 검이 그려져 있었다.
보통의 검이라면 일자로 길게 뻗어 있어야 정상인데 그것은 나뭇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나누어졌다. 실용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래도 워낙 독특한 모습이라 찾는 것은 쉬워 보였다.
하지만 그런 예상은 빗나갔다.
아무리 뒤져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이지란은 조금씩 초조해졌다.
어느덧 시간이 꽤 많이 흘렀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나니와에 들어가 있는 고려군이 뒤로 물러날 때가 되었다.
왜국도 분명히 대응을 할 것이다.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감찰사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나니와에서 헤이안쿄까지 거리는 약 백 리 정도라 했다.
문제는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병영은 그보다 훨씬 가깝다는 것이다.
쉬지 않고 달릴 경우.
반나절 이내에 올 거리다.
기마병이라는 변수도 있었다.
하지만 숫자는 많지 않을 것이고 복잡한 시가지에서 기마병의 효율이 높지 않다.
대충 계산을 해보면 동이 틀 무렵 이전에 상륙한 이들도 완전히 퇴출해야 하니 이지란도 그 이전에 이곳을 떠야 했다.
‘혹시 이곳에 없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폐하께서 하신 말이었다.
뭔가 알고 계시니 정확하게 이곳을 지목해서 가져오라고 하신 것이 아닐까.
이지란은 평소의 습관처럼 애꿎은 땅을 걷어찼다. 그런데 그 느낌이 뭔가 묘하게 달랐다. 혹시나 싶어서 발을 몇 차례 구른 그는 병사들을 불렀다.
“다들 이 거적을 거둬내거라.”
짚으로 엮은 거적을 드러내자,
아니나 다를까 나무로 만든 문이 보였다.
역시 밖에 놓인 것들은 눈속임으로 사용할 용도였다. 잠시 후에 병사들이 그걸 열어젖히자 다들 입을 쩍 벌렸다.
그 안에는 황금과 온갖 보석이 가득한 궤짝이 네 개나 들어 있었다.
“이놈의 땡중들은 어딜 가나 탐욕스러운 것은 마찬가지구나!”
감찰사에 소속된 이들은 혀를 찼다.
그들 중의 일부는 고려에서 종교 개혁에 앞장섰던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승려들이 저지른 치부를 파헤친 덕분에 못 볼 꼴을 많이 봐서인지 종교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궤짝은 어찌나 무거운지 꿈쩍도 안 했다.
병사 세 명이 있는 힘껏 들었으나 살짝 들리는 수준에 불과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에 쏠려 있을 때 이지란의 시선은 그 옆에 놓인 나무 상자에 꽂혀 있었다.
길이를 보면 충분히 검이 들어갈 정도였다. 더구나 겉면에는 육차모(六叉鉾)라고 적혀 있었다.
“일단 저것부터 꺼내 보거라.”
이지란의 지시를 받은 병사는 그가 가리키고 있는 상자를 집어 들었다.
워낙 오래된 탓에 나무가 바스러질 정도였는데 상자를 받아서 열어본 그는 안에 든 것을 보고 환호를 지를뻔했다.
그림에서 본 것과 똑같은 검이 그 안에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건지 검붉은 녹이 검신에 가득했고 손만 대어도 그대로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완충재로 삼을 목화솜을 가득 채운 상자를 미리 준비해놨다는 것이다.
이지란은 직접 검을 들어서 옮겼다.
살짝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것을 보면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비단으로 감싸고 상자에 넣은 뒤에 목화솜을 덮은 뒤에야 깊게 숨을 내쉴 정도였다. 하지만 그걸로 모든 상황이 끝나지는 않았다.
“이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2조를 이끌고 온 중사가 묻자,
이지란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예상에 없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받은 지시는 고려의 것으로 보이는 것은 챙기고 나머지는 없애는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지원을 나온 감찰사의 관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활동 자금이 필요하지 않소?”
“저 정도의 양이면 포섭할 수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인근에 숨길만 한 곳이 있으면 그곳까지 옮겨주겠소. 나중에 조금 잠잠해진 뒤에 찾아가서 쓰시오.”
어차피 다 옮기는 것은 무리다.
그래도 그냥 놔두고 갈 수는 없었다.
감찰사 쪽에서는 이지란의 배려를 당연히 반길 수밖에 없었다. 원나라와 중원에 비해 왜국은 지원이 다소 부족했다.
그걸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서른 명 남짓한 이들은 저마다 품에 가득 금덩이를 안고 인근의 산자락으로 옮겼다.
그곳에는 예전에 쓰다가 말랐다고 알려진 우물이 있었다. 하지만 동이 틀 무렵이 되어서 더는 옮길 수 없었다.
굵은 땀을 흘리며 한숨 돌린 이후에 이지란은 곧장 신궁에 불을 놓았다.
목제 건물인 탓에 신궁은 금방 불길에 휩싸였는데 당연히 그 안에 보관 중이던 선대 천황의 신주까지 타올랐다.
그 과정에서 이소노카미 신궁의 주지와 승려도 모두 숨을 거뒀다. 증인을 남겨둬 봤자 유리할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고려가 이번 일에 엮여 있다는 추측은 할 수 있으나 확신을 하게 해서는 안 되었다.
“시간이 지체되었으니 서둘러 접선지로 향한다.”
*
나니와 습격 작전.
그건 대성공이라 할 수 있었다.
감찰사와 함께 해군 그리고 서달이 만들어낸 성과는 상당했다. 나니와의 시가지 절반 가까이 불태웠을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현재 무로마치 막부는 쇼군이 없다.
지난해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미요시 요시츠구에게 습격당해 사망한 이후에 아직 쇼군 자리는 공석이었다.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심지어 천황이 머물고 있다는 헤이안쿄의 성도 일부가 불타서 인근의 다른 성으로 파천(播遷)했다는 첩보도 들려왔다.
당연히 왜국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고려의 병사들은 불필요한 살육이나 강간 등의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으나 칼을 쥐고 싸울 수 있는 나이의 남성은 모두 죽였다.
아직 정확하게 파악된 것은 아니지만,
대략 수천 명 이상은 될 것 같다고 했다.
당연히 그중에는 왜국의 병사들도 포함되어 있기에 민간인 학살과 같은 분류로 놓기는 조금 애매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쁜 소식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회수 작전을 보낸 이지란이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감찰사가 사용할 재물까지 확보했다니 예상외로 쏠쏠했다.
그리고 그 소식과 함께 이지란이 확보한 육차모(六叉鉾)가 들어 있는 상자가 궁궐로 곧장 옮겨졌다.
“이걸 다시 찾아 오다니 다행이구나.”
내 앞에 놓인 기묘한 검.
그건 훗날 칠지도라 불리는 것이다.
솔직히 이번에 원정을 보내면서 다른 것은 크게 바라지 않았다. 크게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본때를 보여줬으면 했다.
하지만 단 하나 칠지도만큼은 되찾아 오고 싶었다.
왜놈들의 역사 왜곡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의 하나가 광개토왕릉비와 바로 내 앞에 놓인 칠지도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의 단초는 칠지도다.
한반도 남부에 임나라는 지역을 자신들이 지배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물론, 나중에 학계에서 퇴출당했으나 아예 여지조차 주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칠지도는 선물로 준 것이다.
나중에 역사 왜곡에 쓰는 것도 모자라서 일본은 한반도를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의 근거처럼 사용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냥 놔둘 수 없었다.
‘이제는 또 뭘로 역사 왜곡을 시도하려나.’
칠지도를 빼온다고 끝날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역사를 왜곡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뭐든 활용해서 결과를 만들어낼 이들이다.
그래서 일부러 광개토왕릉비도 탁본을 뜨고 내용을 정리해 놨다.
비가 세워진 뒤로 천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나 내가 원래 살던 시대보다 그나마 글씨가 꽤 선명한 편이라 다행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논란이 되었던 몇 가지의 문자가 왜국의 주장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이게 백제의 왕이 왜왕에게 하사했다던 그 칼입니까?”
가진도 신기한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천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다시 한반도로 돌아왔다는 것부터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마치 오래된 전설을 보고 있는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이건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가진의 질문은 이것도 미술관에 전시할 생각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당연히 거기에 걸어 놓을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아무리 포장해도 몰래 약탈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었다.
“이것도 다시 묻을 생각이오.”
“어둠 속에서 꺼내져 빛을 본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다시 인고의 시간을 보내겠군요.”
“그래도 이번에는 외롭지 않게 마두라이에서 보내온 예식용 다마스쿠스도 같이 넣을 생각이오.”
어차피 쓸 곳이 없었다.
잠시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던 중.
가진은 현재 남해안 일대를 돌고 있는 황태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왜국을 공격한 탓에 아이가 남쪽에 있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안심이었다.
녀석의 성격이라면 왜국 원정에 같이 가고 싶다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어려서 그런지 공을 세워서 영웅이 되고 싶다는 치기 어린 마음이 종종 엿보였다.
어쩌면 지금 감찰 어사라도 되는 것처럼 돌아다니는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래도 변안열과 주덕유의 아들이 함께하고 있지 않소. 곁에서 엉뚱한 짓을 벌이지 않게 잘 지켜줄 것이오.”
어린 시절부터 형제처럼 지낸 두 아이도 이번에 세상 경험을 위해 추가로 보냈다.
호부 밑에 견자 없다는 말이 맞는 것이 두 아이 모두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다만, 변안열의 아들은 칼보다는 글에 더 재능이 있었기에 다음 세대에 좌의정과 우의정에 오를 인재라 평가받고 있었다.
“두 아이가 황태자의 곁에 함께 있어서 그나마 안심입니다.”
“더구나 황태자비도 있지 않소.”
아무리 왕현이라도 채윤을 이기진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녀석은 미래의 신부에게 꽉 잡혀서 살고 있었다.
그렇다고 채윤이 유난을 떠는 것은 아니고 상당히 현명하게 왕현을 제어했다.
웃으며 패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하여튼 최근에 아들 녀석이 벌이고 다니는 일에 대해 가진의 걱정을 들어주던 중에 신소봉이 슬며시 다가왔다.
“영의정이 논의할 일이 있다고 지금 만춘전 앞에서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이미 밤이 늦었는데 다시 등청한 것인가?”
“마두라이에서 온 동오 상단 소속의 상선이 방금 남포항에 도착하였는데 중요한 소식이 있다고 하옵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가진에게 양해를 구했다. 당연히 그녀는 흔쾌히 자리를 피해주었고 이인복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방금 들어온 따끈따끈한 소식을 내게 전해주었다.
“마두라이의 이인임 재상이 정휘 장군과 함께 정벌에 성공하여 <랑카(Lanka)>라는 이름의 제후국을 세우고 통치를 시작했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