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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60화 (160/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60

왜국으로 떠나는 정벌.

정확하게 말하면 응징의 여정을 떠날 준비는 곧장 시작되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으니 미룰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공민왕이 된 이후부터 이날이 오기만을 꽤 오래 기다려왔다.

언젠가 한 번쯤은 규슈를 넘어 저들의 명치를 있는 힘껏 때려주고 싶었다.

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

이제 급한 숙제는 모두 처리했다.

대다수의 여진을 복속시키며 북방의 위협도 줄었고 초원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 해군이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잠시 남쪽으로 시선을 돌린다고 문제 되진 않을 것이다.

더구나 선을 넘은 것은 저쪽이다.

수십 척 단위도 아니고 삼백 척이다.

그 정도 규모는 왜국의 막부가 깊게 연관되어 있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오히려 왜국은 해군 위주로 보내는 고려의 아량에 고마워해야 했다.

준비할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난해는 풍년이라 창고는 가득했다.

해룡창(海龍倉)과 같은 남쪽에 있는 조창 중에 두어 개를 열면 그만이었다.

점령을 하려는 것도 아니기에 현지에서 조달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었다.

주덕유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규슈를 중심으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활동하며 쌓인 노하우가 있었다.

이제 그 재능을 꽃피울 시기가 됐다.

하지만 곧장 배를 띄울 수는 없었다.

서달과 이지란의 병사들.

부여에 있는 그들이 내려와야 했다.

내륙 깊숙한 부여성에 있는 병사들이 움직여야 하는 여정은 상당히 길었다.

그들은 우선 부동항까지 이동한 뒤에 배를 타고 집결지인 대마도로 왔다.

“와··· 이게 도대체 몇 척입니까?”

이지란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부분의 여진족에게 바다는 낯설고 두려운 곳이다. 하지만 이지란이 살던 곳은 바다와 가까웠고 물질도 즐겨 했다.

이백 년 전에는 여진족 출신에 해적도 있었으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대마도에 도착한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수백 척에 달하는 전선이었다.

니이항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띄워진 배의 숫자를 본 그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평양에 있는 남포항도 여러 번 다녀온 경험이 있었으나 그보다 더 많아 보였다.

“대충 몇 척인 것 같소?”

서달의 말에 이지란은 잠시 헤아려봤다.

이지란은 서달보다 한 살 더 많았으나 몇 살 차이는 친구처럼 지내는 시기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친한 두 사람이나 직위상으로는 서달이 한참 위에 있기에 공적인 자리에서는 깍듯이 존대를 해줬다.

서달이 지금껏 쌓은 공적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가 고려로 넘어온 것도 십수 년이나 되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이지란이 받는 기대도 컸다.

그는 최근 고려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무장 가운데 하나였다. 여진 정벌을 하는 중에 세운 공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여진족의 습성을 잘 알고 있는 탓이라 폄하하기도 했다.

심지어 운이 좋게 미천사의 변에서 폐하를 호위하며 공신 자리도 올랐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원정은 이지란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더 높은 곳으로 향하려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도저히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지란은 가슴이 벅찼다.

드넓은 땅을 뛰어다니던 그였다.

하지만 그는 보다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고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었다.

“대략 삼백오십 척이나 된다고 하오. 나도 이런 규모는 처음 보는 것이오.”

“폐하께서 즉위한 이후에 창설된 해군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과거에 대마도 정벌을 할 당시.

고려의 모든 해상 전력이 모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김휘남과 주덕유 함대가 전부였고 그 이후로 양관과 윤호의 함대도 생겨나서 규모가 완전히 달라졌다.

모든 함대가 이 자리에 모였지만,

그렇다고 고려의 해상을 완전히 비워둔 것은 아니었다. 탐라와 요동반도에 적어도 오십 척 정도씩은 남겨놔야 했다.

잠시 후에 항구에 들어서자 대마도의 병사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각 함대의 전선을 차례대로 정박시키고 정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2함대의 병사들이 안내해주는 대로 접안에 성공한 서달 등의 무장은 곧장 성안에 들어가 해군 원수인 김휘남부터 찾았다.

“충(忠)! 부여성에서 출발한 병력이 방금 도착했습니다.”

“어서 오시오. 서 장군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소.”

“거의 십 년 만인 것 같습니다.”

김휘남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고려에서 해군의 장군들은 가장 최전방에 있는 존재였다. 종종 휴가차 수도에 들어올 때가 아니면 얼굴 볼 기회도 없다.

김휘남도 탐라에서 오랜 시간 보냈기에 최근에는 그의 얼굴조차 모르는 무장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영공(令公)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탐라를 누구보다 아끼신 분이라 모든 이들이 슬퍼할 정도였소.”

“어디에 안장하신다고 합니까?”

“덕수현과 탐라중에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탐라에 모시기로 하였소.”

여기서 말하는 영공은 이공수였다.

올해 59살이 된 그는 병을 얻어서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기황후의 외종 오라비인 그는 과거에 기씨 일가가 아닌 폐하의 곁에서 공을 세웠다. 만약에 그가 아니었다면 임진정변의 책임을 물어서 폐하를 끌어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정몽주가 들어갔다.

폐하께서 아끼는 인물이라 이공수처럼 십 년 가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길어야 일이 년 정도일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마지막으로 서달 등이 도착하자 곧장 전체 회의부터 열렸다.

“이번의 우리 목표는 나니와(오사카)를 시작으로 헤이안쿄(교토)를 완전히 불태우고 돌아오는 것이오.”

김휘남은 가장 먼저 목표부터 밝혔다.

이미 이 부분은 주덕유 등과 의논을 거친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하지만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서달은 경악을 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헤이안쿄면 왜국의 수도라 할 수 있는 곳인데 고작 삼천 명의 병력으로 시도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걱정 마시오. 고려군은 나니와만 박살 내고 돌아올 것이오.”

“그러면 헤이안쿄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서 장군이 상륙하여 시선을 끌면 감찰 어사와 함께 공작을 펼칠 것이오.”

“감찰사의 박상충이라 합니다.”

박상충은 왜국의 정보를 총괄하는 이로 이번 작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왜국의 요충지라 할 수 있는 헤이안쿄와 나니와는 그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눈 감고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거기까지 들은 서달과 이지란은 대충 어떤 작전인지 알아챘다. 더구나 김휘남이 마지막으로 꺼낸 말이 결정적이었다.

“폐하께서 원하시는 것이 그곳에 있소.”

다른 이유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폐하가 원한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가 바칠 이들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회의는 거의 반나절 가까이 이어졌다.

그리 어려운 내용은 없었으나 신중을 기하기 위함이었다. 작전은 단순했고 현장 상황에 맞춰서 임기응변이 필요했다.

문제는 그쯤 되니 방금 대마도에 도착한 이들이 피로감을 호소했다. 아무리 강철 같은 체력을 가졌어도 어쩔 수 없었다.

의욕이 앞서 있던 김휘남도 뒤늦게 그걸 알아차리고 그쯤에서 회의는 끝내야 했다.

다들 기쁜 마음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그는 이지란만 따로 불러세웠다.

“장군에게는 따로 맡길 일이 있으니 잠시 남으시오”

*

그로부터 보름 뒤.

나니와는 큰 화재에 휩싸였다.

주민들은 실화(失火)인 줄 알았다.

그나마 겨울이 아니라 다행이라 여겼는데 만약에 바짝 마른 시기였다면 나니와 전체에 불길이 번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얼마 뒤에 접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시가지 곳곳에서 불이 났는데 대부분 창고와 관청 등이 있는 중요 시설이 있는 곳이었다.

우연이라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거기 신경 쓸 틈은 없었다.

삶의 터전이 순식간에 사라질 위기인 탓에 주민들은 불을 끄느라 바빴다.

당연히 그중에는 나니와를 지키기 위해 주둔하고 있는 병력도 포함되어 있었다.

“죽을 맛이네!”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불이 이렇게 동시에 곳곳에서 생기다니 이상하잖아. 누군가 일부러 불을 놓을 것이 아니면 이럴 수는 없어.”

“일단 불부터 끄고 그런 거는 나중에 생각하자고.”

다들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물을 나르는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자칫 도시 전체가 다 타버리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황하는 이는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다.

그중에서도 헤이안쿄는 십 년 사이에 몇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을 정도였다.

당연히 그 인근에 있는 나니와도 항상 헤이안쿄 못지않은 피해가 뒤따랐다.

하지만 체력의 저하는 어쩔 수 없었다.

물을 길어서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동안 죽을 힘을 다해 불을 끌기 위해서 움직이던 이들은 멀리서 비상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항구 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그쪽 편을 바라본 병사들은 두 눈을 의심했다.

그곳에는 수백 척의 배가 가득했다.

어둠을 뚫고 나타난 그 배들을 보자 귀신을 본 것처럼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머지않아 화포 소리가 들렸다.

하늘이 찢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는데 수백 개의 철환이 나니와에 떨어졌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포격에 나니와의 백성들은 혼비백산하여 흩어졌다.

불길을 잡는다는 것은 무의미했다.

다시금 번지는 불길에 훤하게 밝아오는 나니와는 배에서 내리는 정체불명의 이들에 의해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습격이다! 어서 빨리 헤이안쿄에 이 사실을 알리거라.”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외쳤지만, 병사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으나 같은 시각에 고코곤 천황이 머물고 있는 헤이안쿄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그곳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나니와처럼 크고 작은 화재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심지어 천황이 머무는 성에도 불길이 치솟았다.

오늘따라 거친 바람을 불어서 번지는 불길을 잡느라 정신없을 정도였다.

일련의 상황이 벌어질 무렵.

남쪽에 있는 나라현의 험준한 산속을 헤집고 다니는 이들이 있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대략 이십여 명 정도는 되어 보였는데 그들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멀리서 하늘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 지 어느덧 한 시진 이상이 지난 상태였다.

그렇게 계속 걷자 길잡이 역할을 하는 감찰사의 정보원이 멈춰 섰다.

“이곳이 합류 지점입니다.”

그들이 멈춰서자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화랑”

“···담배.”

“암구호가 즉각 튀어나와야지. 조금만 더 느렸으면 머리에 화살이 박혔을 거야.

어둠 속에서 나타난 이는 이지란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는 검은 옷을 입은 이십여 명이 나타났다. 대부분 전직 홀치거나 왜국 말이 능통한 감찰사의 소속이었다. 그렇게 모인 이들만 사십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그런데 도대체 담배란 거는 뭡니까?”

이틀 전에 미에현 쪽에서 출발해서 합류한 2조의 조장인 중사 계급의 무관은 이지란에게 이해가 안 된다며 물었다.

암구호로 쓰기에는 어려운 단어였다.

보통은 흔한 단어를 쓰는데 이번에는 유독 이상한 것들이 종종 있었다.

“난들 아나. 어차피 오늘 하루만 쓰고 내일은 다른 거로 바뀌잖아. 호흡 고르는 거 다 끝났으면 어서 가지.”

이지란은 어서 가자며 재촉했다.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고려군이 오사카 공격을 마치고 퇴출하기 전에 그들이 맡은 일을 끝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산기슭만 내려가면 목표로 하는 곳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그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어둠을 뚫고 달려가자 마침내 나타난 곳은 그리 크지 않은 사찰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이소노카미 신궁이라 부른다고 하는데 특별해 보이진 않았다.

고려의 사찰보다 밋밋했다.

그곳에 도달한 이지란과 병사들은 순식간에 상주해 있는 십여 명의 병사를 처치하고 승려들을 포박해서 모았다.

이곳에 병사가 있는 이유는 선대 천황의 신주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이지란은 주지로 보이는 이의 멱살을 붙잡고 물었다.

“신고(神庫)는 어디에 있지?”

“신성한 이곳에 피를 흘리다니, 하늘이 노하실 것이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어서 말하기나 해. 순순히 불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이지란은 다른 손에 쥔 단검을 주지의 목에 대며 다시 물었다. 가능하면 승려에게 손을 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입을 열지 않으면 어떤 수단이라도 사용할 생각이었다.

몇 차례나 더 질문을 던졌으나 아무 대답을 들을 수 없자 이지란은 감찰사에서 지원 나온 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닫힌 입을 여는 것은 그들이 전문이었다.

뱀 같은 눈을 가진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가느다란 침을 꺼내며 나섰다.

그걸로 뭘 하려는 건지 호기심이 생겼으나 그 이전에 안으로 병사 하나가 뛰어서 들어왔다.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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