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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58화 (158/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58

고려의 원동력은 해상에 있다.

한때 고려는 파탄 직전까지 갔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어서 바닷길을 통한 교역로는 f매우 중요했다.

고려에서 생산된 물건을 판매하며 간신히 재기하는 데 성공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구의 준동을 막아냈다는 것이다.

고려는 왜 망했을까.

그걸 단순하게 대답하긴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왜구도 그 이유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원래의 역사에서 이 무렵이면 수백 척에 달하는 대규모 왜선이 빈번하게 고려의 해안을 덮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감히 고려의 땅에 들어서는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고려의 해상 전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현재 아시아 전체를 놓고 봐도 고려와 견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왜국과 방국진 정도였다.

하지만 방국진은 해군이라기 보다는 해적에 가까운 존재다. 반면에 왜국은 충분히 위협이 될 정도의 수준은 됐다.

그들이 숨겨 놓은 배를 모두 꺼내 놓으면 어느 정도 될지 파악조차 안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기는 했다.

여전히 그들은 남북조로 나눠져서 끊임없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었다.

밖으로 눈을 돌릴 틈도 없어 보였다.

만약에 고려가 허약했다면 보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쳐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득보다 손해가 컸다.

당연히 왜구도 셈이라는 것을 할 수 있기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주덕유가 가장 문제가 되는 규슈 지역은 계속해서 관리(?)해주고 있었다.

나는 황태자의 소식을 가지고 들어와 있던 이인복에게 물었다.

“현재 윤호 장군이 거느린 제4함대는 어디까지 완성되었다고 하오?”

“우의정의 말에 의하면 이번 달에 조선이 완료되는 열 척의 전선까지 합치면 60척까지 확보할 수 있사옵니다.”

“그걸로는 아직 부족하오.”

격차를 더 벌려놔야 했다.

바다 너머의 고려를 탐내면 죽는다는 사실을 DNA 깊숙하게 박아놔야 한다.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의 큰 차이를 보여줘야 했다. 현재 고려가 보유한 전투형 선박은 대략 오백 척 내외다.

처음에 제로에서 시작한 것치고는 제법 덩치가 커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만큼 지켜야 할 게 많아졌다.

현재 1군과 2군은 탐라와 대마도에서 왜구를 막고 있었고 3군은 요동반도에 머물며 원나라로 향하는 해협을 관리했다.

그나마 지금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새롭게 꾸려지는 4군이 유일했다.

“조선하는 중에 부족한 것이 없도록 신경을 써주시길 바라오.”

“최대한 신경 쓰고 있으나 기존에 건조된 전선과 상선의 노후화가 진행되어 수리에 투입된 인력이 적지 않사옵니다.”

“수리창에 들어간 배가 몇 척이나 되오?”

“올해 마흔 척으로 예정되어 있사온데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아서 밀려있는 상황이옵니다.”

배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아무리 유지보수를 잘하고 최대한 이 시대의 기술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물에 띄워 놓으면 나무는 썩기 마련이다.

더구나 전투에 동원되는 전선의 경우에는 더 심각했다.

왜구도 이제는 화포를 사용했다.

지금껏 고려에게 당한 것이 있었다.

당연히 그들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해결책이 대주국을 통해 화포와 화약을 사들여서 사용하는 것이었다.

설마 그걸 팔아먹을 줄은 몰랐다.

고려도 외교의 일환으로 화포와 화약 일부를 팔기는 했다. 그러나 소량인 데다가 성능도 떨어지는 구형 모델이었다.

전폭적인 지원이 들어가는 마두라이를 제외하면 전략 물자를 팔진 않았다.

어쨌든 그 영향이 적지 않았다.

아직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지만,

전선의 내구도를 갈아먹고 있었다.

아무리 후진 화포라도 제대로 한 번 맞으면 침수가 되기 때문이다.

“남포항에 있는 수리창에서 전선을 수리하면 되지 않소?”

“현재 각국을 오가는 상선과 사신이 타고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옵니다.”

“그러면 이번 기회에 개발 중인 부동항에 조선소와 수리창을 짓도록 하시오.”

부동(不凍)항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의미했다. 러시아어로 동방의 지배자라는 뜻을 가진 그걸 그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단순하게 얼지 않는 항구라는 의미를 그대로 가져다 쓰기로 했다.

부동항은 현재 극동 개발의 중심지다.

하지만 그 지역까지 도로를 잇는 것은 아직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당연히 항구를 이용해서 물자를 이동해야 했다.

주로 그곳을 통해 옮겨지는 것은 북부 지역에서 재배되는 감자였다.

아메리카에서 가져온 품종은 몇 년 사이에 고려 전역에 뿌리를 내렸다.

아직은 식량 공급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으나 매년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서 감자는 북부를 위주로 재배했고 고구마는 남부 지역으로 보내졌다.

‘문제는 옥수수지···.’

생각보다 알이 영글지 못했다.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보고 얼만 안 남은 구아노까지 사용했으나 해결이 안 되었다.

결국에는 옥수수는 반쯤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고추의 생산량이 가장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제는 고춧가루를 만들어서 고추장과 김치 같은 것도 담가서 먹을 정도였다.

그것만으로도 삶의 만족도가 확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역시 스트레스 받을 때는 매운 것을 먹어줘야 풀리는 것 같았다.

대부분 자극적인 맛에 거부감을 드러냈으나 미식가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매운 음식이 시중에 퍼지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고추 가격도 꽤 비싸게 거래되는 탓에 생산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좌의정을 통해서 공부 상서에게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이인복은 내 지시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지금 걸린 과부하를 풀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수리창을 하나 더 만든다고 엄청나게 많은 재물이 들어가진 않는다.

숙련된 장인이 있고 목재의 수급이 원활한 곳이라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부동항이 가장 적합했다.

연해주에는 대단위의 원시림이 있다.

굵고 튼실한 나무가 빼곡했는데 대부분 조선에 주로 쓰는 참나무와 소나무다.

더구나 그렇게 수리창이 들어서면 해군이 주둔하는 효과도 나오게 된다.

“그러면 북해도 정벌은 언제쯤 가능할 거라 보시오?”

홋카이도의 위치는 중요했다.

그곳을 차지하면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서 한반도까지 동해를 둘러싼 원형의 지형 중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규슈가 아닌 왜국 전체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드넓은 대륙을 차지한 나라와 섬나라의 싸움에서 해군의 우위마저 차지하고 있을 경우에 전쟁의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적어도 일 년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하옵니다. 아직 부여도 그렇고 연해주 인근도 개발이 시급하옵니다.”

이인복은 속도를 조절하길 바랐다.

폐하께서 즉위하신 이후에 계속해서 영토가 늘어났다. 얼마 전까지는 어느 정도 뒤에서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힘든 지경이 됐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더라도 끝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관리들이 먼저 지쳐서 떨어져 나가고 있는 요즘이었다.

무려 십 년 동안 등청과 퇴청 중에 해를 보지 못한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당연히 진이 다 빠져서 커다란 병을 얻어서 앓거나 그런 척이라도 해서 관직을 내려놓고 도망치는 이들도 생겼다.

“나랏일을 하는 것을 너무 쉽게 본 것이 아닌지 모르겠소.”

적어도 그 정도 각오는 했어야지.

세금으로 먹고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권위와 명예가 그냥 생기는 거라 여기고 도당에 들어선 자들치고 오래 버티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이인복은 누구보다 나를 잘 알기에 슬슬 옆에서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나중에 황태자께서 해야 할 일을 조금은 남겨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크게 바라지도 않소. 그냥 지금 가지고 있는 영토만 잘 지켜내도 성공이오. 입에 발린 소리는 그만 하고 심부 상단의 이전은 어떻게 되었소?”

“절강 지역에 있던 모든 것을 정리해서 오국과 대한국으로 옮기는 중이옵니다.”

더는 장사성을 믿을 수 없었다.

먼저 뒤통수를 친 것은 그쪽이었다.

차라리 양해를 구하고 해결책을 찾아볼 생각이라도 했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사의의 실종을 핑계로 여러모로 고려에 해를 끼치고 있었다.

이제는 그와의 관계도 끝났다.

역시 영원한 우방은 없는 것 같았다.

역사에서 수도 없이 증명된 터라 나도 미련은 없었다. 당연히 고려도 대주국을 손절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심부의 상단을 빼는 것이었다.

가능하면 유지하고 싶었지만,

치사하게 폭탄 같은 세금을 매겼다.

기존에 매겨지던 것과 비교하면 거의 세 배 이상은 되었고 온갖 부정부패로 인해 실제 들어가는 비용도 추가됐다.

“기존에 심부의 개인적인 재산은 거의 다 고려로 옮긴 탓에 문제 될 것은 없으나 땅과 상단의 재물 일부는 손해를 많이 보고 처분한 것으로 들었사옵니다.”

“내수 전수 곽충수와 의논해서 신발의 재고를 최대한 그쪽으로 몰아서 주시오.”

어느 정도 챙겨줄 필요가 있었다.

심부가 어용 상인이 되어 많은 이득을 얻기도 했으나 이번 일은 본거지를 잃는 것이라 상당히 타격이 클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탕화와 진우량 같은 이들과의 관계는 꽤 좋은 편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이번이 기회라 여겼다.

고려와 대주국에 생긴 균열을 비집고 들어와서 동맹을 맺으려고 애를 썼다.

그중에서도 진우량의 애정 공세는 적극적이었다. 그의 목적은 뻔했는데 절강의 무역량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고려에게 등을 돌리면 누가 더 손해인지 지켜보자고.’

*

대마도의 남쪽 바다.

그곳에는 항상 배가 띄워져 있다.

어업을 위한 것은 아니고 정찰선이었다.

고려가 대마도를 장악한 이후에 태풍이 오거나 파도가 심각할 정도가 아니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진행되는 업무였다.

그들의 임무는 단 하나였다.

왜국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것이다.

대부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고 돌아서는 일이 잦으나 불필요한 일이라 여기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왜선을 놓치게 될 경우.

고려에 들어가서 난동을 부리게 된다.

종종 정찰선의 시야를 피해서 크게 돌아가는 경우도 있기는 했으나 성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어떤 왜선은 방향을 아예 잘못 잡아서 대주국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일도 생겼다.

“그런데 왜 대주국으로 가는 배는 잡지 말라고 하는 거지?”

“이야기 못 들었나. 그놈들이 왜구 놈들한테 화포를 팔았다잖아. 그래서 그쪽으로 가는 애들은 놓아주라는 거야.”

“그게 진짜였어? 썩을 놈들!”

“폐하께서도 진노하셨다고 소문이 자자하네. 솔직히 우리가 아니었으면 대주국의 해안 지대가 멀쩡했겠나.”

“절대 아니지!”

여기서 놓치더라도,

탐라에서 한 번 더 걸러준다.

당연히 그 틈을 뚫고 절강까지 가는 배들도 있으나 그 수가 많진 않았다.

아마 고려의 해군이 그런 일을 해주지 않았다면 절강쪽의 해안 지대는 박살 났을 것이 분명했다. 대신 고려도 그만큼의 보상을 받았으나 말단 병사가 알 리가 없었다.

“그나저나 몇 해 사이에 지형이 많이 바뀐 것 같지 않아?”

병사의 시선은 해안가 쪽으로 향했다.

그곳은 처음에 봤을 때와는 전혀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금껏 지속적인 간척이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구불구불하던 해안선은 상당히 많이 매워졌고 그곳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지난 두 해 동안 엄청나게 내린 비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조와 수수 그리고 땅콩 같은 것을 재배해서 식탁 위에 올라오고 있었다.

그 덕분에 식량의 여유가 제법 생겼다.

아무리 내륙에서 음식을 가져다주어도 방금 밭에서 캐내서 먹는 것과는 달랐다.

적어도 채소 같은 신선도가 생명인 것은 자급자족이 필요했다.

“제비뽑기만 잘했어도 우리도 윤호 장군님을 따라서 내륙으로 갔을 텐데 아쉽네.”

“이미 지난 일을 후회해봐야 무엇하나.”

“지금쯤이면 다들 기성현(거제)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그렇게 놔두실 분인가. 아마 해상 전투 훈련을 시키실걸.”

전술 훈련이란 말을 듣자,

다들 신경질적인 눈빛을 보냈다.

해군이 매년 받는 훈련 중에 가장 힘든 것이 해상 전투 훈련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실전처럼 진행되는 터라 다치는 이도 제법 많이 나올 정도였다.

“야야! 저쪽에 저거 뭐냐?”

그때 한 명이 이키섬 방향을 가리켰다.

평소에 눈이 좋기로 유명한 병사였기에 다들 그의 시선을 쫓아서 고개를 들었다.

처음에는 섬 외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으나 작은 점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어선이라 하기에는 너무 컸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 수가 점차 많아졌다.

“씨벌! 도대체 저게 몇 척이야?”

“혹시 1군에서 이쪽으로 오기로 했나?”

“그럴 리가 없잖아. 탐라에서 오는 배가 왜 이키섬에서 나와.”

배 위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중사 계급의 무관도 선창에서 나왔다.

정찰선은 소형 쾌선이라 선원의 수가 많지 않아서 그가 이 배의 선장이었다.

무관은 병사의 보고를 받은 뒤.

잠시 이키섬 방향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리더니 곧장 돛을 펼치라고 명령했다.

누가 봐도 저건 대규모 함대였고 그 정체가 무엇인지 단번에 눈치챘다.

“전속력으로 복귀한다. 어서 서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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