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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54화 (154/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54

예상은 어긋나지 않았다.

대주국의 의도는 금방 파악됐다.

감찰사의 정보원이 전해온 말에 의하면 그들 역시 화약의 개량에 성공했다.

결정적인 증거도 심부가 찾아냈다.

절강의 항구를 통해 왜국에서 들어오는 유황의 수입이 대폭 늘어났다는 것이다.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았다.

고려의 위세는 화약에서 시작됐다.

적은 병력으로 왜구와 원나라를 몰아내는 것에 성공한 일등 공신이 화포였다.

그걸 잘 아는 대주국과 장사성이었다.

아마 긴 기간 준비를 한 것 같았는데 그건 다른 나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전투 양상이 바뀌고 있었다.

기존까지 화포는 보조에 불과했다.

화약과 화포는 비싸고 운반도 쉽지 않은 폭발 사고가 잦은 골칫덩어리였다.

하지만 고려가 전투에 활용하는 것을 본 이후에 점차 그 비중이 커지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곧장 화포부터 쏘고 시작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고려 같은 효율은 안 나왔다.

거의 1세기 이상을 넘나드는 오버 테크 수준인데 그걸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다.

일단 화포가 터지는 확률은 여전했다.

사고로 죽는 이가 많으니 숙련된 병사가 생기기 어려운 악순환이 이어졌다.

더구나 사거리도 고려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물량 공세라는 필살기가 있었다.

그로 인한 여파가 상당했다.

워낙 많은 양을 써대니 화약을 만드는 재룟값이 나날이 오르고 있었다.

각국이 염초나 초석을 거래하지 않으나 유황이 문제였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가 왜국에서 생산하는 것을 쓰고 있다.

당연히 왜국의 상인은 당연히 가격을 올리며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크게 한몫을 챙기려는 것이 분명했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고려에게는 그리 큰 타격이 있지 않았다.

미리 준비한 대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원의 보고인 연주가 존재했다.

현재 화약과 고무에 사용되는 유황 중의 상당수가 연주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최근에 이주한 이들까지 합치면 거의 만여 명에 달할 정도로 성장한 연주는 온갖 지하 자원을 캐내고 있었다.

매달 십여 척의 배가 오갈 정도다.

덕분에 남포항은 매일 북새통이었다.

과거에 사용하던 벽란도에 비해서 훨씬 더 큰 규모인 곳이지만, 사방에서 오는 화물선으로 인해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더구나 황태자의 혼례를 축하하기 위해서 각국에서 온 사신까지 몰리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마두라이에서 온 대규모 선박이었다.

술탄이 가장 아끼는 공주의 혼례이자 고려와 굳건한 동맹을 맺는 자리이다.

당연히 탄야도 혼례를 축하하기 위해 수많은 재물을 선물로 보내왔다.

정말 작심하고 보낸 티가 났다.

지금까지 두 나라를 오가던 수준이 아니었다. 정말 진귀한 불상부터 시작해서 보석과 심지어 유럽의 책까지 구해왔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양파와 같은 수많은 종자와 씨앗을 보내왔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내가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아는 탄야다운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마두라이 술탄의 이인자.

고려인으로 재상이 된 이인임.

그가 십여 년 만에 다시 고려로 돌아왔다.

사절단의 대표로 그가 올 거란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아직 마두라이는 패권을 놓고 제국들과 싸우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리를 비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남포항을 통해서 평양에 들어선 그는 곧장 형님인 이인복의 저택으로 향했다.

조금 늦은 시간에 항구로 들어온 탓에 폐하와 하게 될 독대는 내일로 미뤄졌다.

원래대로면 사신을 접객하는 곳으로 안내되어야 정상이나 평양에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니기에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게 얼마 만인지 헤아릴 수 없구나.”

이인복은 동생을 반갑게 맞아줬다.

평소에 우애가 깊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인임과 이인민에 대한 이인복의 평가는 무척이나 박했다. 예전부터 둘은 가문과 심지어 나라를 망칠 인물이라 평했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보는 두 사람이기에 제법 애틋한 분위기였다.

저녁 늦게 따로 술상을 본 그는 모처럼 이인임과 함께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제가 마두라이로 떠난 것이 벌써 11년이 넘어섰다니 시간이 참 빠릅니다.”

“그동안 다들 잘 지냈느냐?”

“걱정해주신 덕분에 인미와 인달을 포함해서 가족들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모처럼 만날 수 있는 기회인데 인립이와 인미가 평양에 없다는 것이 아쉽구나.”

두 아우 모두 관직에 올랐다.

마음대로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이인복과 그의 형제들 모두 고려와 마두라이에서 제법 잘 나갔다.

이 자리에 앉아있는 두 사람만 하더라도 양국의 재상 자리에 앉아 있었다.

확실히 그들의 위세는 대단했다.

이씨 가문은 십 년 전의 기씨 가문과 비교될 정도로 명문가로 탈바꿈되었다.

하지만 처신은 그들과 비교할 수 없었다.

만약에 헛짓거리를 하면 곧바로 내쳐질 거란 사실을 알기에 조심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그사이에 고려는 정말 많은 것이 바뀐 것 같습니다.”

이인임은 솔직히 꽤 놀랐다.

그가 떠났을 당시의 고려를 떠올리면 여전히 원황실에 휘둘리고 있었고 왕권은 거의 바닥을 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의 고려를 보면 동북아 전체를 아우르는 강국이 되었다.

일단 거리 분위기부터 달랐다.

뭔가 생동감이 넘치는 느낌이었다.

짧은 머리를 하고 있는 백성들이 대부분이고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여유가 없어 보일지 모른다고 하겠지만, 천축국에서 지내던 그에게는 솔직히 너무 부러운 모습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너무 여유가 넘쳤다.

뭘 하나 하더라도 느려터져서 답답해 죽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던 것은 바퀴 위에 앉아서 빠르게 이동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인임은 자신이 본 것을 설명한 뒤에 그게 뭔지 물었다.

“도대체 그 희한한 것은 무엇입니까?”

“폐하께서 고안해서 만든 이륜이라는 것일세. 요즘 평양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지.”

“혹시 돌아갈 때 이륜이라 불리는 그것을 몇 대 가지고 갈 수 있겠습니까?”

좋은 것이 있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이인임은 고려에서 이륜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고 단번에 매료됐다.

그걸 가져가면 많은 곳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인복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 쉽지는 않을 걸세.”

“혹시 반출이 불가능한 품목입니까?”

“그런 거는 아니고 주문이 워낙 밀려서 많이 기다려야 하네. 자네도 알다시피 그런 부분에 대해서 폐하께서 원리원칙을 중요하게 여기시지 않는가.”

“그런 거라면 상관없습니다. 다음에 보내는 배편에 보내주셔도 됩니다.”

여기서 먼저 달라고 말해봤자,

그의 말이 통할 거라 여겨지진 않았다.

자신이 아는 폐하라면 신분과 명성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순서를 지키라고 하실 분이었다. 대신 이인복은 자신의 이륜을 먼저 주기로 했다.

어차피 세워만 놓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아직 이륜을 타는 것보다 걷는 것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더구나 이제 나이가 적지 않아서 조심해야 했다.

이 나이에 잘못 넘어지면 꽤 오래 고생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폐하께서 삼정승에게 하사하신 것이 있는데 어차피 내 취향은 아니라 그거라도 먼저 가져가게.”

“그래도 되겠습니까? 폐하의 하사품을 저에게 주셔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걸 신경 쓰실 분은 아닐세.”

“고무라는 밑창을 넣은 신발도 생각지 못했는데 폐하께서는 이륜이라는 것을 어떻게 만드신 건지 신기합니다.”

“하늘이 고려에 내려주신 홍복(洪福)이라 생각하고 있네. 아마 폐하께서 고려가 아니라 원나라에서 태어나셨으면 원태조보다 더 큰 업적을 쌓으셨을 거네.”

이인복의 말은 진심이었다.

고려는 폐하가 즉위한 이후부터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된 것처럼 바뀌었다.

만약에 그분이 아닌 다른 이가 왕위를 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눈에 선하게 그려졌기에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이인임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폐하께서 하신 제안을 받아들인 덕분에 먼 타국이지만, 한 나라의 왕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 그였다.

한동안 술잔을 나누던 이인복은 학당의 상황에 대해서 물어봤다.

지금까지 들어간 지원이 적지 않다.

수년간 보낸 선생이 수백여 명이나 되었고 수많은 유학생을 받아 주었다.

담당 관리에게 매번 보고를 받기는 했으나 직접 그 일을 계획한 동생의 입을 통해서 현지 상황을 들어보고 싶었다.

“고려에서 보내주신 지원 덕분에 현재 마두라이에서 훈민정음을 쓰는 이들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훈민정음이야 워낙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이니 그렇겠지만, 고려의 말은 어느 정도 보급이 되었나?”

“솔직히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인임은 길게 바라보고 있었다.

형님의 말대로 훈민정음은 문제가 없었으나 언어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나이 먹은 후에 배우는 것도 쉽지 않고 사람들은 그럴 이유도 느끼지 못한다.

그래도 성과가 아예 없진 않았다.

마두라이 곳곳에 학당이 생겼다.

고려에서 지원해준 선생과 교재 덕분에 그리 어렵지는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상당히 많은 숫자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었다.

대부분 십 대 초중반에서 이십 대 언저리였는데 어려서 그런지 생각보다 빨리 고려의 언어를 익혔다.

그 덕분에 요즘 이인임은 살만했다.

궁궐 곳곳에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이들이 배치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탄야도 어눌하나마 고려의 말로 정사를 살피는 때가 잦아지고 있었다.

언어를 통일하고 문맹의 수를 줄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다.

“10년만 지나도 마두라이 전역으로 상당히 넓게 퍼지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시간이 약이지.”

“그래서 말인데 요즘 이색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이인임은 별안간 이색의 안부를 물었다.

두 사람은 연결점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나마 이색의 스승인 이제현과 이인복은 어느 정도 친분이 있으나 이인임은 그런 것도 거의 없었다. 어찌 되었든 이인복은 동생의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이색이라··· 참으로 안타까운 친구이지.”

요즘 그는 강태공처럼 시간을 낚으며 살고 있다고 들었네.”

“여전히 성리학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게 문제인 것이지.”

고려가 성리학을 박해하진 않았다.

아이들이 배움을 청하는 학당에서는 기본적인 과정으로 성리학을 포함했다.

일종의 도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보면 되었는데 그 이상은 아니었다.

“이번에 돌아갈 때 성리학자를 최대한 많이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그중에 이색이 있는 것이겠지? 도대체 그들을 어디에 쓰려는 것인가?”

“제가 구상한 일에 인재가 필요합니다. 고려에서 성리학자를 안 쓰신다면 제가 데려다 쓰고 싶습니다. 폐하의 의중을 여쭤볼 생각인데 어떻게 보십니까?”

“아마 쌍수를 들고 반기실 걸세.”

이인복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지금까지 본 폐하는 한결같았다.

성리학에 뭔가 크게 덴 사람처럼 극도로 혐오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

만약에 이인임이 그들을 데리고 간다면 앓던 이를 빼는 기분이 들 것이다.

성리학자들도 아마 이인임의 제안을 심각하게 고려할 것이다. 이곳에 계속 남아 있어봤자 솟아날 구멍조차 없었다.

이미 그들은 고려에서 비주류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폐하와 정몽주 등이 중심이 되어 밀고 있는 본학(本學)과 그 하위 분류인 공학을 배우고 있다.

“그나저나 아까 얼핏 들으니 올해 영의정 자리에서 물러나신다고 들었습니다.”

“너무 오래 한 자리에 앉아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네. 나보다 더 능력 있는 이가 많으니 슬슬 물러날 때가 된 거지.”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형님도 저와 함께 마두라이로 가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정말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리 달갑지 않은 소리였다.

이인복은 집안의 장손이라 가족을 데리고 마두라이로 떠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면 제사는 누가 지낸단 말인가.

더구나 고려에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지금은 잠시 영의정에서 내려올 시기이나 아예 관직을 놓고 떠날 생각은 없었다.

폐하께서도 반년 정도의 안식년을 가진 후에 복귀하라고 하셨다.

당연히 영의정보다 높은 자리는 없다.

하지만 어떤 자리라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미 그는 자신의 인생을 고려에 완전히 걸고 있었다.

동생이 한 제안은 말도 안 된다며 이인복은 고사하려 했다. 그러나 이인임은 그보다 먼저 충격적인 말을 했다.

“저희 형제가 모두 함께한다면 새로운 나라를 충분히 창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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