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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53화 (153/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53

그로부터 3년 뒤.

을사년(1365년) 3월 무렵.

고려는 커다란 경사를 맞이했다.

황태자인 왕현의 혼례가 벌써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지금까지 3년이란 시간 동안 상당히 많은 일이 있었다.

가장 먼저 거론해야 할 업적은 역시 여진족을 정벌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삼강 평원의 일부는 시작에 불과했다.

동쪽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 북부의 항카 호수까지 모두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막판에 김삼선이 여진족을 모아서 격렬한 저항을 했으나 송화강 북쪽으로 몰아냈다.

지금까지 고려는 북부에 모든 행정력 쏟아서 실효 지배하는데 신경 썼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진 않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몇 명이 졸했다.

안렴사 김광재는 물론이고 철성 부원군 이암 같은 이들이 거기에 포함되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기는 했다.

여전히 가진은 건강하게 내 곁에 있었다.

원래 역사대로 흘러갔다면 이미 그녀는 죽었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충격은 따로 있었다.

그건 신대륙으로 떠난 장사의와 탐사대가 5년 가까이 실종된 상태라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거란 예상은 했으나 실제로 벌어지니 상당히 황망했다.

2년 전까지는 약간의 희망이 있었다.

지난번에도 온갖 고난 끝에 돌아왔다.

그래서 배유형이 돌아온 뒤에도 일 년 가까이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가 떠난 지 5년째가 되는 터라 더는 기대할 수 없었다.

그동안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다시 한번 배유형의 탐사대가 떠났다.

이번에는 거의 십여 척에 달하는 대형 탐사대였는데 멀리 남미까지 내려갔으나 장사의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뒤질 수도 없는 일이라 그쯤에서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탐사대는 그걸로 종료됐다.

더는 아메리카 대륙에 볼일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배유형이 옥수수 종자를 찾아왔고 그 외에 감자와 고구마도 추가로 여러 품종을 찾아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구아노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고 금과 은 같은 것을 탐낼 이유가 없었다.

식민지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정의를 논하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고려에 전혀 이득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탐사대를 보낼 때마다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북부 개발에 쓰는 게 더 효율적이다.

문제는 장사의의 신분이었다.

대주국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장사성의 동생이다. 그런 그가 고려의 배를 타고 나가서 사라진 지 5년이나 됐다.

장사의에게 탐사대를 맡길 무렵에 모두 해결한 문제였지만, 우습게도 장사성은 내게 책임을 물으려 했다.

시기도 참으로 애매했다.

지금까지 그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황태자인 왕현의 혼례가 코앞까지 다가온 지금 문제 삼았다.

아무래도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인복과 염제신 그리고 이방실.

여전히 삼정승 자리에 있는 그들을 부른 나는 이번 일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세 사람 모두 올해 삼정승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이었는데 이방실은 나이가 있어서 완전히 은퇴할 예정이었다.

두어 해만 더 지나면 그의 나이가 칠순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신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아마도 고려가 소유한 산동성의 초석 광산과 철광산 때문에 그러는 것으로 보이옵니다.”

이인복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겠지만, 이러면 우리를 아예 손절··· 아니 단교하겠다는 의미이지 않소?”

“얼마 전부터 대도와 산동 반도 방향으로 병력을 집중시키는 것을 생각하면 고려에 대한 견제가 시작된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이방실도 어느 정도 동의했다.

일단 군사적인 움직임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는 않을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고려가 그쪽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장사성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요서의 일부를 차지했지만,

내 시선은 여전히 만주로 향해 있었다.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다시 건강을 되찾은 요왕을 두고 대도로 향할 정도로 바보 같은 짓을 할 생각은 없었다.

염제신은 그쯤에서 진우량을 언급했다.

“혹시 옥새를 진우량에게 넘긴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니옵니까? 그렇다면 고려가 새로운 동맹으로 그와 손잡은 거라 여길 수도 있사옵니다.”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현재 진우량과 탕화 그리고 장사성.

세 사람이 이끄는 나라는 중원과 강남 등지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 중이다.

탕화와 장사성은 대도를 놓고 눈치 싸움을 하고 있었고 진우량은 그런 그들의 후방을 공략하고 있었다.

모두가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구경꾼의 입장에서는 삼국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 중에 절대적인 강자는 없다는 것이다.

올해 벌어진 파양호 전투에서 진우량과 탕화는 커다란 피해만 입고 무승부가 났다.

거기에 명옥진의 기세도 상당했다.

중경을 수도 삼아 명하(明夏)를 창건한 그까지 합치면 동아시아에 스스로 황제라 부르는 이만 다섯이나 될 정도였다.

문제는 각 나라의 규모와 군사력이 다들 엇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 오래전의 일이 아니오.”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옵니다.”

“혹시 대주국에서도 화약 개발에 성공한 것이 아닌지 의심되옵니다.”

“확실히 화약을 사가는 양이 매년 줄어들고 있기는 하옵니다. 만약 그렇다면 산동성에서 가장 큰 초석 광산을 되찾고 싶어하는 것이 이해되옵니다.”

이인복의 말에 염제신도 동의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말이 되긴 했다.

대주국에서 가장 큰 초석 광산을 고려가 소유해서 캐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걸 가지고 와서 다시 화약으로 팔 때는 어마어마하게 비싼 값을 받았다.

전략 물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고려가 대주국에 화약을 퍼주는 것은 아니고 매년 한계치를 정해놨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대주국이 사들이는 양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들이 사가는 화약은 하품이다.

오랜 시간 노력을 거듭하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의 격차였다.

하지만 고려가 실제로 쓰는 코닝 작업을 마친 화약까지 도달하려면 멀었다.

처음부터 이런 일을 예상했다.

산동성의 광산은 일시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인력을 동원해서 미친 듯이 채광을 했던 것이 아닌가. 언젠가 잃을지 모르는 곳이라 바닥까지 싹싹 긁어냈다.

그런 탓에 지금까지 채굴해서 고려로 보낸 양이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하오나 그곳을 쉽게 내줄 수는 없는 일이옵니다.”

이방실은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요동을 먼저 고려군이 치지 않았다면 장사성이 산동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병사들의 희생을 통해서 떳떳하게 얻은 것이니 쉽게 내주고 싶진 않아 보였다.

당시에 작전을 지휘했던 그의 입장을 고려하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대주국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당장 화약만 하더라도 전면전을 치르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는 지금껏 채광한 것을 사용해도 20년은 거뜬했다.

거기에 마두라이는 이번에 치르는 혼례를 통해서 더 돈독한 우방국이 될 것이다.

하지만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심부와 동오의 상단이 절강의 항구와 장강을 위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상당히 큰 여파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절강의 항구만 닫혀도 중원에 판매되는 고려의 물건이 유통되기 어려워진다.

대안이 있기는 했지만,

하필 그곳은 해적이나 다를 게 없는 방국진의 영역이다. 그보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진우량이 나오나 거리가 멀었다.

그런 것들까지 고려하면 최대한 좋게 푸는 것이 좋았다.

“이건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 같소. 영의정이 밀직사의 설장수와 논의하여 방안을 마련해 보시오. 그리고 혹시 모르니 지재 상인 고지렴을 통해서도 무슨 일인지 알아보시오.”

“그리하겠사옵니다.”

몇 년 전에 고려로 귀의한 설장수는 현재 밀직사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확실히 언어에 관련된 재능이 뛰어난 편이라 고려의 말도 상당히 빨리 익혔다.

그의 유일한 단점은 회회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나 현재 고려의 도당에는 여러 인종이 섞여 있는 편이었다.

‘솔직히 우리가 꿀릴 것은 없지.’

예전의 고려가 아니었다.

인구는 적으나 영토는 비슷했다.

사막에 불과한 몽골 지역을 제외하면 원나라를 포함해서 다들 규모가 비슷했다.

더구나 고려는 기존에 비해 병력이 늘어난 덕분에 거의 15만 명이나 됐다.

거기에는 해군도 포함된 것이나 화력 같은 면을 고려하면 누구와 싸워도 절대 지지 않을 거란 자신감은 있었다.

실제로 요즘에는 여진을 정벌하고 차지한 지역이 어느 정도 안정화된 탓에 만주까지 차지하는 것이 어떠냐는 상소도 올라왔다.

“황태자의 혼례가 이제 달포도 남지 않았는데 의례에 대한 준비는 어디까지 준비되었소?”

나는 그쯤에서 주제를 바꾸었다.

현재 고려에서 가장 큰 화제는 역시 황태자의 혼례였다. 가진과 약조한 대로 열세 살이 되는 해가 올해이다.

긴 기다림 끝에 치르는 혼례인 데다가 모처럼 치르는 국가적인 행사였다.

더구나 왕현은 노출이 적었다.

고위 관직에 있는 이들만 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린 조치였다. 하지만 이제 슬슬 후계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더는 어린아이라 부를 수 없었다.

그만큼 성장도 많이 했다.

어린 것이 벌써 키가 나와 같았다.

덩치도 상당했는데 만약에 내 아들이 아니었다면 장군감이라 불렸을 것이다.

그렇다고 머리가 둔한 편은 아니었다.

누굴 닮은 건지 잔머리에 있어서는 천재 수준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예정된 날에 맞춰서 문제없이 진행될 수 있게끔 준비를 하고 있사옵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너무 화려하게 할 필요는 없소. 쓸데없는 낭비는 절대하지 마시오.”

“심려치 마시옵소서.”

내가 가장 경멸하던 것이 바로 원나라 때문에 열 수밖에 없었던 보르차 연회다.

즉위한 이후에 그 연회를 준비하느라 등골이 모조리 뽑히는 줄 알았다.

그걸 반복하고 싶진 않았다.

이인복도 내 성격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쓸데없는 짓을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만큼은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송구하오나 혼례 이후에 두 분을 궐 밖으로 보내시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한 일이옵니다.”

혼례를 마치고 난 뒤.

황태자와 황태자비는 당분간 궁궐 밖으로 내보내 져서 고려 전역을 돌고 올 것이다.

신혼여행 같은 낭만적인 일은 아니다.

남해안부터 북부의 최전방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하는 여정이라 상당히 고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다시 없을 경험일 것이다.

어쩌면 평생 궐 안에서 지박령처럼 살아갈 아이들이기에 주는 기회였다.

그리고 백성의 현실을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을 테니 적어도 그들을 다스리기 전에 피부로 느끼길 바랐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과 삶이 있다.

궁궐과 평양에서 벗어나는 순간부터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로 키울 생각은 없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편협한 시선을 가지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었다.

당연히 가진은 강하게 반대했다.

물가에 아이를 내놓는 기분일 것이다.

몇 년 전에 미천사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던 것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 편을 들어줬다.

내가 하는 말이 뭔지 그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둘 다 어린 시절에 넓은 세상에서 쌓은 경험이 있다. 나는 대도에서 자랐고 가진은 몽골의 초원에서 자랐다.

그 시절이 쓸모가 없지는 않았다.

적어도 두 나라의 차이를 직접 경험했고 비교할 것이 있기에 뭔가를 하더라도 더 깊은 고찰이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둘만 보내는 것도 아니었다.

응양군의 절반과 홀치가 은밀하게 따라갈 예정이었고 심지어 그들을 이끄는 이는 변안열과 얼마 전에 귀국한 정도전이다.

부여성을 지키고 있던 변안열은 이번 일을 마치면 우의정에 올라갈 예정이고 정도전도 감찰사를 맡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이 있으면 걱정할 것은 없었다.

나는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이인복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리 반대해도 이번 일은 굽힐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이게 앞으로 왕이 될 이들의 필수로 통과해야 하는 관례처럼 굳어지길 바랐다.

“이미 다 끝난 이야기이니 짐이 내린 지시대로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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