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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52화 (152/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52

이레가 지난 뒤.

하윤린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처음에는 자문을 얻으러 온 줄 알았다.

뭔가를 새로 만들 때는 다양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당연히 나는 그에 대해 최대한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만춘전에 들어선 그의 얼굴에서 고민 따위는 전혀 엿보이지 않았다.

“설마 벌써 완성된 것이오?”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다.

하윤린은 그렇다며 대답했다.

직접 듣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결국에는 완성할 거라 생각은 했으나 빨라도 너무 빨랐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해가 되었다.

“증기 기관을 만들겠다고 노력한 결실이 이륜을 통해 나타난 것 같사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껏 그들이 기계 장치에 대해서 들인 노력이 상당히 컸다. 하윤린과 같이 일하는 장인들의 능력도 늘어난 것이다.

그들에게 자전거 정도는 매우 쉬운 과제였던 것 같았다.

“이번에 만든 이륜을 가지고 왔소?”

“그러하옵니다. 편전 밖에 세워 놓았으니 폐하께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사옵니다.”

“일단 나가서 봐봅시다.”

흥분된 마음으로 밖으로 나서자,

자전거의 형태를 가진 이륜이 보였다.

이번에 만들어진 것은 대나무를 이용한 것으로 형태가 조금 엉성해 보였으나 필요한 것들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디스크 형태의 두 바퀴와 핸들.

그리고 페달도 나무로 만들어놨다.

바퀴에는 가황 작업을 해서 고무를 둘러놨는데 구동 장치는 생각보다 컸다.

체인을 얇게 만들 수 없기에 생긴 일이다.

하지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이제 막 만든 초기 형태다.

차후에 천천히 개선하면 될 일이다.

더구나 그가 가져온 이륜에는 제동 장치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지렛대 방식을 응용하여 집게 같은 장치가 바퀴를 잡아주는 형태였다.

“여기도 고무가 들어간 것이 맞소?”

“그러하옵니다. 속도를 줄여주는 것을 찾다가 고무를 사용하였사옵니다.”

“빠르게 달리다가 이걸 잡으면 뒷바퀴가 들릴 수 있는 것은 아시오?”

기본적인 상식이지만,

혹시 모르니 짚고 넘어가야 했다.

그가 만든 제동 장치는 앞바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윤린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왜 그런가 봤더니 애초에 그 정도로 완벽하게 제동하는 수준은 아직 아니었다.

천천히 속도를 줄이는 정도랄까.

오히려 그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점은 천천히 개선하면 되니 크게 문제가 될 부분은 아니었다.

‘멈출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어차피 속도를 내기도 어려워 보였다.

지금 수준에서는 한강을 질주하던 자전거들처럼 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무리 빨라 봐야 10km 내외일 것 같았는데 그 정도만 되더라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도 추측에 불과했다.

제대로 만들어진 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자전거에 올라탔다. 신소봉이 다급하게 만류하려 했으나 그보다 내가 더 빨랐다.

덜컹대는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자 뒤에서 신소봉의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 위험하옵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자전거를 처음 타는 것도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주 타던 거라 볼품 사납게 넘어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무리 공민왕의 몸뚱이가 운동과 거리가 멀어도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페달을 밟으며 달리기 시작하자,

바람이 목덜미를 훑으며 스쳐 갔다.

말을 탈 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넓은 펼쳐진 궁궐의 뜰을 달리기 시작하자 신소봉이 내 뒤를 따라 달렸다.

혹시라도 이륜을 타고 다른 곳으로 갈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인 것 같았다.

끼이이익···.

안뜰을 한 바퀴 돈 뒤.

다시 원래의 자리에서 멈췄다.

그러자 브레이크가 약하게 느껴졌다.

확실히 아까 하윤린이 말한 대로 쭉 밀리다가 어느 정도 지나자 멈췄다.

제동력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작동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조금 애매한 수준이라 멈춰서 이륜을 살피고 있자 하윤린이 다가와서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어떠시옵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이오. 그러나 안전과 관련이 깊은 제동 장치는 조금 더 손볼 필요가 있소.”

“그리하겠사옵니다.”

“그리고 이것도 한번 만들어 보시오.”

나는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하윤린이 이륜을 만드는 동안에 추가로 그에게 시킬 것을 준비해 놓았다.

그가 종이를 펼치자 거기에 그려져 있는 것은 이륜 뒤에 연결하는 작은 수레였다.

용도는 뻔한 것이었다.

자전거로 물건을 옮길 용도였다.

아주 무거운 것까지는 힘들겠지만, 가볍고 부피가 큰 것을 옮기기 좋았다.

당연히 하윤린에게는 어렵지 않은 숙제였기에 그는 곧장 알겠다며 답했다.

그날 이후에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하윤린은 제동 장치를 보완한 이후에 수레까지 몇 대를 제작하였다.

가장 먼저 그것을 탄 것은 이외로 가진이었다. 그녀는 두어 시간 만에 이륜을 타는 법을 배우더니 그걸 타고 궁궐 곳곳을 누비는 취미가 생겼다.

궐내에서는 말을 탈 수 없었다.

제법 넓은 공간이 있었으나 달릴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륜 정도는 충분히 타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가끔 궁궐 내에서는 본의 아닌 자전거 레이싱이 펼쳐지기도 했다.

“폐하, 조금만 천천히 가시옵소서!”

나와 가진이 이륜을 타고 한 바퀴 돌면 그 뒤로 호위를 맡은 홀치들이 뒤따라왔다.

당연히 그중에는 신소봉도 끼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뛰었는데 속도를 맞추기 어려워서 십여 대의 이륜이 동호회처럼 같이 달리는 일이 벌어질 정도였다.

궁궐 밖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하윤린이 만든 이륜을 본 하륜이 타고 다니더니 순식간에 평양의 명물이 됐다.

일부 관리들은 체통을 운운하며 격렬하게 거부했으나 상당히 많은 수의 관리가 이륜을 구매해서 타고 다녔다.

고려는 실리 위주로 흘러갔다.

시간을 금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문제는 관청 대부분이 내성에 있어서 출퇴근 거리가 다들 제법 멀었다.

내성 바로 앞에는 조선의 육조거리처럼 시전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주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이게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하윤린이 이걸 계속 붙잡고 있기는 어렵기에 내수사 소속의 공방에서 맡았다.

그런데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터무니없이 부족해지는 탓에 시간이 흐를수록 민간의 영역까지 넓어지고 있었다.

“지금 이륜이란 것을 주문하면 언제쯤 받을 수 있소?”

“주문량이 밀려서 적어도 넉 달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긴 것이 아니오. 웃돈을 줘도 어떻게 안 되겠는가?”

“그나마 저희가 짧은 겁니다. 내수사 소속의 공방은 지금 당장 주문해도 거의 일 년 가까이 기다려야 한답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이륜과 거기에 부착하는 수레를 같이 내놓자 신기하게도 요식업 쪽의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륜을 이용한 배달이 성행하기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달의 민족이 시작된 것이다.

18세기 조선 시대에도 냉면을 배달 시켜 먹었고 효종갱(曉鍾羹)이라 불리는 해장국도 배달했다는 기록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전화기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어차피 사람이 오갈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 예약제로 운영되었다.

전문적인 식당이 생긴 덕분이다.

과거 경시서(京市署)에서 관리하던 시전의 주점과 달리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평양에 꽤 많이 생겼다.

대부분 저마다 하나 이상의 주력 메뉴가 있었는데 돌솥비빔밥을 하는 곳도 있었고 장국도 상당히 인기를 끌었다.

그런 가게에는 특징이 있었다.

저마다 간판이 하나씩 있다는 것이다.

공방에서 브랜드화가 일어났듯이 시전도 그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평양에서는 시전 어디에 있는 누구네라고 불렀는데 그때보다 규모가 더 커져서 다른 가게와 혼동하는 일이 잦아졌다.

심지어 어느 가게는 마치 프랜차일즈를 하듯이 평양 외에 여러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건 가게를 열었다.

그런 현상은 술도가를 비롯해서 여러 방면에서 보였는데 상업이 발전하고 있는 증거이기에 상당히 반가운 일이었다.

잘하면 우리도 수백년 된 브랜드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외의 것도 있었다.

평양 시내에 이륜으로 끄는 인력거가 생겼다. 누군가가 아예 좌석까지 만들어서 삯을 받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륜용 수레에 사람을 태운 것을 보고 떠올린 것이라고 했다.

내가 알려준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게 나온 것을 보면 사람의 상상력은 다들 비슷한 것 같았다.

생각보다 값도 그리 비싸지는 않았다.

평양의 끝에서 끝까지 쌀 두 되 정도면 충분히 오갈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시대에 집마다 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걷는 것보다 훨씬 빠르니 이용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 혼잡해지진 않았다.

아직 보급이 원활하지 않았고 애초에 마차가 다닐 수 있게 평양 대부분의 길은 상당히 넓은 대로로 만들어진 덕분이다.

평양과 고려가 그렇게 빨리 바뀌고 있을 무렵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

훗날, 과테말라라 불리는 지역.

그곳에서는 장사의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이었다. 허리케인에 의한 악천후에 배를 모두 잃은 그들은 암울한 상태였다.

살아남은 이들은 백여 명에 불과했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오늘도 배유형의 배는 보이지 않는가?”

“저희가 너무 멀리까지 내려온 터라 여기에 올 거란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계속 주시하거라. 그들이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니라.”

“알겠습니다.”

병사는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벌써 출항한 지 2년 가까이 지났다.

애초에 2년 이내에 돌아가는 일정으로 다들 출발했기에 배유형의 배가 아직 이 근방에 있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이미 고려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장사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들이 아니면 이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근방에 있는 나무는 마땅치 않았고 조선 기술이 있는 이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물자는 어느 정도 건졌다는 것이었다. 파도에 밀려서 해안 위까지 올라온 배에서 꺼낸 것이다.

그나마 그것 덕분에 아직 버틸 수 있었다.

화약은 이곳에서도 큰 효과를 보였고 원주민들은 그들을 신처럼 여겼다.

과연 그게 얼마나 유지될까.

화약은 언젠가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많은 양의 화약이 물에 빠져서 잃어버렸고 바닷물 때문인지 말려도 제대로 불이 붙지 않게 되었다.

장사의는 오랜 고민 끝에 선원들의 대표를 모았다.

해군 출신의 무관.

기록 등을 위해 따라온 문관.

그리고 선원들을 대표하는 항해사.

그렇게 모인 이들만 십여 명이나 되었다.

워낙 여러 사람이 모여서 떠난 항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간 고생이 많았지만, 이제 더는 배유형의 배를 기다릴 수는 없소.”

“맞는 말씀이십니다. 아마 그들은 다시 고려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가능하다면 좌초된 배를 수리하거나 새로 배를 만들어서라도 고려로 돌아가고 싶으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오.”

처음부터 일이 꼬이진 않았다.

그들은 과거에 화약을 팔았던 부족과 다시 거래해서 많은 재물을 얻었다.

배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하지만 대부분 수장되었고 남은 것도 이제 아무런 가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음에 보내질 탐사선이 올 때까지 이곳에서 어떻게든 버텨야 합니다.”

해군 무관의 말이었다.

다들 그의 말에 동의하는 기색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행인 것이 있다면 그들이 좌초한 이 땅에 식수와 과일이 풍족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나쁜 소식은 이곳의 원주민이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모두의 의견이 같은 것으로 보이니 정착지를 마련해야 할 것 같소.”

“현재 자리 잡은 이곳은 악천후가 닥치면 위험합니다.”

“하지만 탐사선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내륙 깊숙하게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지금처럼 탐망꾼을 보내면 됩니다.”

그 부분의 의견은 서로 갈렸다.

두 의견 모두 틀린 것이 없기는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륙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확정 지었다. 모두의 안전이 가장 최우선이기 때문이었다.

울창한 수풀 사이로 들어간 그들은 역사 속에 아주 작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훗날 우연히 발굴된 그들의 흔적은 20세기 최대의 미스터리 중의 하나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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