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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51화 (151/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51

신대륙으로 떠났던 배유형.

그의 탐사선이 다시 돌아왔다.

거의 22개월 만의 귀환이었다.

당연히 남포항에 그의 배가 들어서자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하지만 장사의가 첫 탐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때는 다들 망가져 있었다.

무풍지대에서 표류를 한 탓이었다.

그리고 다수의 선원과 배도 두 척이나 잃고 살아남은 이들도 상태도 나빴다.

하지만 배유형의 탐사대는 다들 환한 웃음을 지으며 즐기는 분위기였다.

뭔가 여유가 넘친다고 할까.

긴 항해를 마친 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손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덕분이었다.

비록 탐사선 한 척은 좌초해서 잃었으나 선원을 모두 구조한 덕분에 인명 손실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확실히 경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배유형은 물론이고 선원들까지 모두 마두라이까지 장거리 항해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이었다. 신대륙처럼 먼 거리를 항해한 적은 없으나 생존에 관련된 기술과 항해 지식은 독보적인 이들이었다.

더구나 장사의가 다녀오며 경험한 것들이 있기에 충분히 대비가 가능했다.

당연히 그 소식은 황실에도 전해졌다.

항구의 관리에게 그들이 돌아오면 곧장 전해달라는 지시를 내린 덕분이었다.

하지만 곧장 궁궐로 불러들이진 않았다.

적어도 이틀 정도의 시간을 주었고 그 이후에 배유형은 동오와 함께 등청했다.

“무사히 탐사를 마치고 폐하를 다시 뵐 수 있어서 영광이옵니다.”

두 사람은 허리 숙여 예를 표했다.

배유형은 신대륙으로 떠나기 전에 나를 몇 번이나 보았지만, 황제가 되기 이전의 일이라 신기한 듯이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이번 탐사에 대한 결과를 물어보자 그는 곧장 내 말에 집중했다.

“탐사는 어떠하였소?”

“폐하의 배려와 지원 덕분에 상당히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었사옵니다.”

“혹시 가져온 종자가 있는 것이오?”

“그러하옵니다.”

그가 신소봉을 바라보자,

곧 편전에 상자 몇 개가 들어왔다.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건지 건장한 홀치도 상당히 무거워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걸 열기 전에 배유형이 작성한 목록을 한 번 살펴보았다.

가장 눈에 띈 것은 다섯 상자에 달하는 보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게 썩 달갑지는 않았다. 탐사를 떠나기 전에 좋은 조건으로 매입하기로 약조를 해놨다.

문제는 딱히 쓸데가 없다는 것이다.

치장하는데 쓰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미술관에 전시하는 것이 전부일 뿐이었다.

거기서 나오는 수입이 적지는 않다.

그러나 보물을 매입하는 비용으로 쓸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중원에 팔 수도 없는 일이고···.’

배유형이 가져온 보물들.

그건 일종의 증거이기도 했다.

고려의 해상력이 멀리 아메리카까지 닿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가능한 중국에 유출하면 안 되는 물건이다.

중국이나 일본 모두가 역사 조작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연 상자에는 여러 작물의 종자가 담겨 있었다. 기존에 가져온 품종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더구나 그중에는 고구마로 보이는 것도 있었고 야콘이라 의심되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감자의 품종은 생각보다 많았다.

수천 년 전부터 식량으로 재배되던 터라 거의 수천 종에 달할 정도였다.

제각각 맛과 색이 다르다.

식감 같은 것도 천차만별이었다.

그나마 기존에 가져온 것은 당도가 높았는데 아예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것들을 직접 먹어본 적이 있소?”

“현지에서 발견한 것들 중에는 독이 있는 것도 있었는데 그런 것들은 제외하고 가져온 것이옵니다.”

“사람이 죽을 정도인 것이오?”

“혹시나 싶어서 선원들이 섭취 전에 동물을 잡아서 먹여 보니 숨을 거둬서 그것들은 가져오지 않았사옵니다.”

대충 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카사바라 불리는 것이 아닐까.

생긴 거는 야콘이랑 비슷하게 생긴 것인데 독성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으면 청산가리를 먹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가져온 것들을 보니 왠지 배유형이 중미를 넘어 남미까지 다녀온 것이 아닌가 의심되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갔다가 온 것이오?”

“의도치 않았으나 풍랑에 휩쓸려서 장사의의 탐사대가 다녀왔던 곳을 넘어서 더 아래쪽까지 내려갔사옵니다.”

“혹시 지도를 그린 것이 있소?”

“여기 있사옵니다.”

배유형은 품에서 지도를 꺼냈다.

첫 항해인 데다가 지형을 파악하기 위한 여정은 아니었기에 그리 정확한 지형을 그려내는 것을 바랄 수 없었다.

다만, 지형적인 특정을 살펴보니 확실히 중미를 넘어 페루 정도까지는 내려갔다가 올라온 것으로 보였다.

“왜 여기서 발길을 돌린 것이오?”

“파종할 수 있는 시기를 맞추려면 더 체류할 수는 없었사옵니다.”

“그 시기를 놓쳤다면 아마 1년이란 시간을 더 그곳에서 보내야 했을 것이옵니다.”

동오도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나도 탐사대가 출발하기 전에 상당히 강조한 부분이라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종자도 썩을까 봐 미리 챙긴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길에 가져왔다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고생하셨소. 이것들은 새로 만들어진 농림부에 보내고 보상은 달포 이내에 정산하여 줄 것이오.”

그것은 동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 탐사대는 동오의 상단이 투자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당연히 보상도 동오의 상단에서 받아서 선원에게 나눠줘야 했다.

당연히 죽은 이들에 대한 보상 같은 것도 그가 처리해야 할 몫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긴 했다.

그건 옥수수가 이번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은 다시 탐사대를 보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외의 물건을 두 가지나 가지고 돌아왔다.

그중의 하나가 구아노였다.

일명 새똥 전쟁이라 불리는 최초의 자원 전쟁을 일으킨 구아노는 천연 비료다.

영양분과 유기물이 풍부해서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자원이다.

새롭게 얻은 삼강 평원의 일부와 구아노면 엄청난 결과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것이다.

계속해서 캐올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배에 실어 올 수 있는 양도 한정적이고 워낙 먼 거리라 효율이 높지 않았다.

오히려 내 눈길을 끈 것은 배유형이 가져온 고무나무의 씨앗과 채취해서 배에 가득 채워온 천연고무였다.

‘이게 과연 어느 종류일까?’

고무나무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인도에도 고무나무가 있으나 최고로 치는 것은 남미의 파라 고무나무였고 그다음이 파나마 고무나무라 할 수 있다.

현재 배유형이 다녀온 경로를 보면 아마존에 자생한다고 알려진 파라 고무나무는 아닐 것 같았다.

“원주민들이 이 나무에서 채취한 것에 황으로 보이는 것을 가미하니 이렇게 탄성이 강한 물건으로 바뀌었사옵니다.”

배유형은 주먹만 한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작은 공이었는데 바닥에 한 번 튕겨보니 상당히 높게 튀어 올랐다.

단단하게 쥐어지는 느낌이 지금까지 보았던 천연 고무와는 사뭇 달랐다.

그제야 나는 가황 고무라는 것을 뒤늦게 떠올렸다.

빌어먹을 문과의 한계였다.

지금까지는 고무 나무의 차이였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애초에 화학이나 과학 같은 쪽에 관심이 전혀 없었기에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상당히 쓰임새는 많이 있을 것 같았다.

신발 밑창부터 시작해서 연필에 쓸 지우개와 온갖 것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하나 있었기에 신소봉을 바라보며 하윤린을 데리고 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여정 중에 장사의가 데리고 떠난 탐사선은 보지 못하였소?”

“그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소?”

“탐사 초반에는 그들의 흔적을 어느 정도 발견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찾아볼 수 없었사옵니다. 그리고 중간에 좌초한 두어 척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사옵니다.”

배유형은 장사의가 탄 배라 확신할 수는 없다고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혹시나 몰라서 그 주변을 탐색했으나 장사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장사의일 가능성이 컸다.

신대륙에 그 정도 크기의 배가 있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뭔가 일이 있기는 한 것 같았다.

한동안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자 하윤린이 왔다고 신소봉이 알려줬다.

어느 정도 이야기는 마무리되어 가고 있기에 나는 동오와 배유형에게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며 양해를 구했다.

잠시 후에 들어온 하윤린은 상당히 초췌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가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 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수년째 증기 기관에 도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계속 실패하고 있었다.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론은 어느 정도 세워졌으나 실제로 그걸 만들어낼 기술이 아직은 없었다.

심지어 폭발 사고도 일어났는데 금속 가공이 뒤따르지 못하니 생기는 일이었다.

하윤린의 입장에서는 거의 다 된 것 같은데 완성할 수 없으니 답답해 죽을 것 같은 요즘이었다. 내 탓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없기에 그의 신경을 다른 데 돌릴 수 있도록 숙제를 줄 생각이었다.

“부르셨사옵니까?”

나는 일단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런 이후에 한지와 연필을 꺼냈다.

그걸 본 하윤린은 오해한 것 같았다.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것이라 생각한 건지 자세를 단정히 하고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평소에 종종 관리들을 불러서 한 장씩 그려주었기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오해였다.

하지만 내가 그린 것은 다른 것이다.

바퀴 두 개 사이에 막대가 놓인 것인데 그걸 본 하윤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형태의 그림이었기 때문이었다. 수레라 보기에는 너무 앙상했고 바퀴도 두 개에 불과했다.

“이게 무엇이옵니까?”

나는 이륜(二輪)이라고 답을 해주었다.

그에게 그려서 준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효율적인 이동 수단인 자전거였다.

따지고 보면 레오나르드 다빈치에 비해 백 년 이상 앞선 스케치였다.

이게 만들어지면 최초의 자전거보다 400년 가까이 빠르게 세상에 나오게 된다.

지금까지는 뒤로 미뤄놨으나 가황 고무를 얻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자전거였다.

일단 자전거의 활용도는 꽤 다양했다.

고려는 포장된 도로가 있다.

그곳에서 자전거는 말과 비교해도 그리 뒤처지지 않는 운송 수단이 된다.

당연히 속도는 아직 말을 타는 것이 빠르겠지만, 자전거는 여물을 안 챙겨줘야 하는 생명체도 아니다.

운동 신경이 좋은 이의 경우.

반나절이면 충분히 탈 수 있다.

심지어 군용으로도 활용이 가능했다.

실제로 2차세계대전에서 군용으로 쓰던 것이 바로 자전거이다. 병력의 빠른 이동은 모든 사령관들의 로망 아닐까.

그렇게 자전거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명을 곁들이자 하윤린은 눈을 반짝이며 설계도를 살폈다. 내가 하는 이야기만 들어도 증기 기관 같은 것은 잊을 정도로 흥미가 충분히 생긴 것 같았다.

“두 개의 바퀴 위에 앉아서 이걸 밟으면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말이옵니까?”

“여기 있는 발판을 밟아서 돌리면 바퀴가 동시에 돌아가는 구조라 보시면 되오.”

“하아··· 증기를 이용한 기관도 놀라운 일인데 폐하께서는 이런 발상을 도대체 어떻게 하시는 것이옵니까?”

하윤린은 살짝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12시진 내내 발명품에 대해 고안하고 만드는 일과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자신보다 내가 내놓는 결과가 대단하다니 자괴감이 드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그의 감정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가능한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만들어 올 수 있겠소?”

“충분히 가능하옵니다. 하오나 수레에 앉는 것도 상당히 힘들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데 이렇게 앉아서 가면 상당히 고될 것이옵니다.”

나무 바퀴는 충격 흡수가 안 된다.

그나마 도로가 포장되어 수레가 다니고 있으나 울퉁불퉁한 곳을 지날 때마다 꼬리뼈가 쪼개지는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그래서 여전히 물건 외에 사람이 타고 다니는 것은 쉽지 않았다.

훌륭한 지적이었지만,

이번에 가황 고무를 얻었다.

바퀴 겉면에 고무를 두르면 된다.

아직은 공기를 주입하는 것까지는 불가능한 일이나 통고무라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것을 한 번 보시오.”

하윤린에게 고무공을 준 뒤.

천연고무와 가황 처리된 고무의 차이에 대해서 그에게 설명해줬다. 그러자 그는 곧장 내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오래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중간에 들어가는 막대는 철보다는 대나무 같은 것으로 만들어도 될 것이오.”

“다양한 재료로 시험해보겠사옵니다.”

내가 힌트를 준 것은 실제로 자전거가 만들어지던 과도기에 나왔던 모델이다.

만약에 하윤린이 철로 모든 것을 만들 생각이라면 너무 무겁고 낭비였다.

대나무는 철보다 훨씬 가볍고 무엇보다 철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하윤린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그건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 장치였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할 수 없다.

안전상의 문제 때문이라도 꼭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로 그게 가능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마찰을 이용해서 멈추는 기술에 대해 따로 설계도를 그려서 주었으나 원리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하윤린은 꽤 자신이 있어 보였다.

“소신에게 맡겨주시면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 보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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