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50
폐위 소식은 내게도 전해졌다.
감찰사는 항상 기황후를 감시했다.
가족을 모두 잃었기에 복수에 눈이 먼 기황후가 황제보다 오히려 위협적이다.
언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
그 덕분에 아직 공식적인 발표도 없이 쉬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감찰사에서 그 사실을 모를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이오?”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황후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하지만 황태자까지 폐위를 시킬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 온갖 암투 끝에 그 자리에 올라선 황태자였다.
이제 조금 잠잠해진 상황이다.
다시 혼란을 불러일으킬 이유가 없었다.
내가 질문하자 이 사실을 보고하기 위해서 들어온 이인복과 김첨수가 대답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서 확인했으나 모두가 같은 내용이었사옵니다. 확실히 기황후와 황태자 모두 폐위된 것 같사옵니다.”
“황태자의 자리는 어떻게 되었소?”
“아직 공식적으로 공표된 것은 없으나 황자 중에 익왕(益王)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크옵니다.”
익왕이라면 토구스 테무르다.
우스칼 칸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현재 스무 살 정도 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훗날 현재 폐위 당한 황태자의 뒤를 이어서 황제가 되는 인물이라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김첨수가 설명을 해주었다.
“황태자가 최근에 벌인 일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옵니다.”
잠시 후에 그가 설명한 일들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온갖 패륜적인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에서 최고의 패륜아라 불리던 충혜왕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을 다 믿기는 어려웠다.
황태자인 아이유시리다라를 믿는다는 말은 아니고 어쩌면 폐위시키기 위한 명분을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어찌 되었든 상당히 기분 좋은 소식이지 않소. 어서 잔을 채우시오.”
모처럼 기분 좋은 소식이다.
지금까지 쌓인 악감정이 적지 않다.
기황후가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려고 고려에게 뜯어간 공물이 적지 않다.
반원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까지 수년 동안 고려는 머리를 숙이며 살았다.
당시를 생각하면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속이 부글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궁궐에서 쫓겨난 그들은 어떻게 되었다고 하오?”
“승덕(承德)이라는 곳에 마련된 장원에 감금되어 있다고 하옵니다.”
“승덕이라면 대도 북동부의 휴양지가 있는 곳이 아니오?”
“맞사옵니다.”
나도 그곳이 어딘지 안다.
독로화(禿魯花) 생활을 할 당시.
황실의 사람들을 따라서 여름에 휴가차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곳은 지대가 높고 강이 흘러서 더운 여름에도 시원했다.
그 덕분에 휴가지로 인기가 좋아서 황실에서 관리 중인 장원이 여러 곳 있었다.
주변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상당히 외진 곳이라 인적도 뜸했다.
그런 곳에 보내졌다는 것은 유배의 의미가 상당히 강했다. 내가 그 부분을 말하자 김첨수도 동의했다.
“폐하께서 보신 대로 주위가 한산한 곳이라 감찰사에서 마련한 안전 가옥도 그 지역에도 한 채 있사옵니다.”
“향락과 사치를 좋아하는 황후에게는 지옥이나 다를 것이 없겠소.”
“그보다는 목숨을 유지하는 것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사옵니다.”
내가 무슨 소리이냐고 묻자,
김첨수는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기황후가 궁궐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감찰사는 여전히 그녀를 감시 중이었다.
가능하다면 황후와 황태자를 고려로 압송해서 죄를 묻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았다.
김첨수의 말에 의하면 기황후가 갇힌 곳을 지켜보는 눈이 많다고 했다.
경비를 서는 병사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들도 감시하는 역할이었으나 그 외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배회 중이라고 했다.
“어쩌면 조만간 암살 시도가 있을지도 모르옵니다.”
“황제가 보낸 것이오?”
“그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사옵니다. 새로운 황태자로 유력한 익왕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사옵니다.”
나 같아도 그냥 두진 않을 것이다.
훗날 위협이 되기에 충분한 존재다.
조만간에 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김첨수에게 주의를 줘야 했다.
“괜히 주변에서 얼쩡대다가 암살의 배후로 지목될 가능성이 있소.”
“멀리서 감시만 하고 있으니 심려치 않으셔도 되옵니다.”
“그 일은 믿고 맡기겠소.”
거리가 먼 곳에 있기에 현지에 있는 한방신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차례 술잔을 채우는 내 옆에는 커다란 현황판이 놓여 있었다.
그곳에는 현재 최영 장군이 진행 중인 여진 정벌의 현황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는 현재 파죽지세로 진격 중이다.
올봄에 백두산을 출발해서 송화강을 따라 움직이는 그를 막아설 존재는 없었다.
가장 걱정하던 여진 족에서도 강경파에 속하는 김삼선 형제도 흑룡강 부근으로 도망치듯 물러난 상태였다.
그 탓일지 모르겠지만,
현재 송화강 북부는 혼잡했다.
고려군이 아닌 여진족끼리 싸웠다.
남쪽에서 도망친 여진족은 기존에 자리 잡고 있는 이들에게는 굴러들어온 돌이나 마찬가지였다.
“변안열 장군이 주둔하고 있는 부여성을 재건은 어떻게 되고 있소?”
과거 부여의 수도였던 부여성.
그곳은 현재 변안열 장군이 지키고 있는 고려의 북방경계선이라 볼 수 있다.
그 이상은 올라갈 생각이 아직 없었다.
송화강을 경계로 동쪽의 우수리강 일대를 가져오면 단숨에 고려의 영토가 두 배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그 이상은 무리였다.
현재 보유한 병력으로는 더 많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어도 관리가 안 된다.
여진 전체를 고려로 편입시키고 만주의 요왕을 무너뜨려야 삼강 평원 전체를 온전하게 고려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당연히 2군의 중심지도 옮겼다.
기존에 위치해 있던 화주는 너무 멀기에 사령부 전체를 부여성으로 옮겨야 했다.
문제는 다른 고구려의 성이 모두 흔적만 남아 있었듯이 부여의 수도 역시 거의 비슷한 상태였다.
“공부 상서와 논의하고 있사온데 적어도 내년 봄부터 축성을 할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왜 그렇게 늦어지는 것이오?”
“과거 축성을 담당하던 유민들이 올해 대다수가 양민이 되었사옵니다.”
원나라에서 넘어온 유민이 빠지자 확실히 축성 같은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약속했던 것을 안 지킬 수 없었다.
현재 그들은 함경도와 이번에 얻는 삼강 평원으로 이주해서 개간 중이다.
지난해 연말에 사로잡은 홍건적 포로는 현재 심양성에서 평양까지 잇는 도로 공사에 대부분 투입이 되어 있었다.
더구나 도로를 포장하는 곳이 거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로마와 같은 도로망은 바라지 않았다.
애초에 지형적인 특성상 고려는 그런 도로를 까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에 편입된 송화강 유역의 부여까지 합쳐서 열 개의 도(都)는 서로 이어놓을 생각이었다.
이미 도로의 효과는 모두 보았다.
나주에서 평양까지 도로가 이어지자 굳이 물길을 따라 물건을 옮기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육로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차 한 대에 실을 수 있는 양은 한정되어 있지만,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사두 마차까지 만들어져서 운용되고 있었다.
문제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유지비라 할 수 있다.
처음에 공사했던 지역 일부에서는 산사태와 호우 때문에 유실되었다.
자연적인 재해는 막을 수 없는 일이다.
계속해서 보수 공사를 할 수밖에 없다.
괜히 도로가 돈을 잡아먹는 괴물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부여의 개발이 가장 시급한 일이니 아낌없이 지원해주시오.”
*
평양의 황실에서 논의를 할 무렵.
서해를 통해 사신으로 떠났던 이들이 하나둘 돌아오고 있었다. 그중에는 동오의 막내아들인 동방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올해 약관이 되었는데 워낙 늦게 본 막둥이라 다른 형들에 비해 애정을 많이 받고 자랐다.
“평양까지는 얼마나 남은 것인가?”
그의 곁에는 원송수가 서 있었다.
원송수는 풍채가 준수하며 시문에 밝고 예학에 능한 이라 훗날 재상에 오를 자질이 있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실제로 그는 좌부대언으로 폐하의 곁에서 일을 하다가 이번에 교지국에 폐하의 즉위 소식을 전하고 오는 길이었다.
여정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하필 풍랑이 심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집채만 한 파도가 몰아칠 때마다 그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해도 상당히 질겁했다.
반면에 동방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배 위에서 보낸 시간이 적지 않았던 덕분이다.
비록 지금은 아버지인 동오의 바람대로 관직에 오르기는 했으나 원래의 꿈은 장사의처럼 모험을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상단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배유형이 이끄는 탐사선을 타고 신대륙에 가고자 지원하기도 했다. 나중에 아버지에게 걸려서 포기했으나 아직도 그는 관직보다 모험을 더 선호했다.
“이틀 정도면 도착할 것입니다.”
“지금 보이는 저곳이 어디쯤 되는가?”
“태안입니다.”
동방석은 슬쩍 태안의 해안을 바라봤다.
그가 지닌 성은 태안 동(動) 씨로 태안 출신의 아버지인 동오가 시조였다.
십 년 전에 아버지가 어용상인이 되기 전에는 성씨도 없는 삶을 살던 그였다.
자신이 물려받은 성은 폐하께서 내리신 것이기에 은연중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 덕분에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출신 때문에 한동안 일정 관품 이상은 받을 수 없는 한품자(限品者)에 머물렀으나 그런 제한은 이미 풀렸다.
그간 폐하를 위해 노력한 덕분이었다.
그걸 뛰어넘기 위해서 아버지는 개인적인 재산을 헌납하고 충심을 다했다.
아버지는 높은 관직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형님들의 품계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탓인지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작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때 가녀린 방울 소리가 들렸다.
돛배 위에서 주위를 살피던 선원이 내는 소리였다. 모두의 시선이 위로 쏠리자 그는 선미 방향을 바라보며 외쳤다.
“뒤쪽에서 쫓아오는 배가 있습니다.”
다들 이해가 안 되었다.
지금 그들이 타고 있는 배는 쾌선이다. 거기에 돛도 펼쳐놔서 어지간한 배로는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의 속도였다.
하지만 해무 사이로 여러 척의 배가 나타나더니 점차 그들을 따라잡고 있었다.
문제는 돛에 걸린 깃발이 없으니 해적인지 고려의 배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혹시 모르니 전투를 준비하거라!”
해군 출신의 선장이 외치자.
선원들은 다들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무리 대마도와 탐라에서 왜구를 막아내고 있다지만, 모든 바다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도 해안가 일대는 위험했다.
해군의 시선을 피해서 소규모 왜구가 약탈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는 했다.
당연히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해군이 나서서 몇 배나 되는 보복을 해줬다.
더구나 현재 그들이 탄 배에는 정말 보기 드문 보석과 진귀한 것들이 가득했다.
교지국의 왕이 보내는 것들이었다.
폐하의 즉위뿐만 아니라 황태자의 약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예물이었다.
“화약을 꺼내 장전을 준비하거라.”
“서둘러서 움직여라!”
“점점 더 따라잡히고 있습니다.”
긴장감이 더 강해지고 있었다.
아직 뒤쫓아오는 배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대충 다섯 척은 되어 보이는데 사신단이 탄 배는 고작 두 척이었다.
문관들을 제외하면 무관이 많지 않아 배를 접안해서 싸우면 무조건 질 것이다.
그나마 믿는 것은 화포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더 지났을까.
갑자기 동방석은 선미 쪽으로 달려가서 그 배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더니 크게 웃으며 오히려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원송수는 그런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무슨 일인지 물었다.
“신대륙으로 떠났던 탐사선들입니다.”
“확실한 것인가?”
“물론입니다. 제가 설계부터 조선할 때도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저런 형태의 배는 오직 탐사선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신대륙으로 향한 두 사람 중에 누구인지 알겠는가?”
원송수의 말에 대답하긴 어려웠다.
두 탐사대 모두 배의 외형적인 차이는 거의 없었다. 내부 공간을 개조한 차이가 있으나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장사의일 가능성도 있었고 아니면 배유형일 가능성도 분명히 있었다.
당연히 동방석은 배유형이길 바랐다.
그의 탐사대에 소속된 이들은 대부분 아버지의 상단 소속이기에 친분이 깊었다.
어릴 때부터 긴 시간 동안 봐오던 이들이라 간절한 마음이 가득했다.
하염없이 지켜보던 그는 마침내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전하께서 배유형의 탐사선에 직접 하사한 선수상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건··· 배유형 어르신의 배입니다!”